아나키즘. 한때 ‘무정부주의’로 번역되었던 이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파괴, 테러, 방화, 무질서 등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아나키즘은 19세기 이래로 폭넓은 의미의 사회주의운동의 한 조류로서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도 이를 공산주의 이상으로 과거의 유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유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민족주의 등 기존의 거의 모든 정치적 이념이 파산하거나 거의 작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21세기의 현실에서 아나키즘은 대단히 매력적인, 아니 어쩌면 거의 유일의 출구가 될 수 있는 정치사상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아나키즘은 그 장구한 역사 속에서 너무나 많은 면모를 띠고 변해온 사상이기 때문에 파괴, 테러, 무질서의 모습만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나키즘을 정의하는 일은 무척 어렵지만 한마디로 ‘소외된 일체의 외적 권위에 대한 거부’라고 말할 수 있으며, ‘신도, 주인도 없다’(No God, No Master)라는 간명한 구호로 집약할 수 있다. 이것이 소수 비밀음모 집단의 요인 암살, 파괴 공작, 방화 등의 위험한 운동으로 나타나던 국면도 있었지만 더 긴 시간을 두고 아나키즘 운동과 사상의 흐름을 살펴보면 공동체 만들기, 국가의 과도한 권력에 대한 항의와 제한의 노력, 공산주의나 파시즘 등과 같은 억압적 전체주의국가에 대한 투쟁,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단의 옹호, 반전 평화 운동 등과 같은 건설적이고 평화적인 운동과 사상의 면모를 띠어왔던 때가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그런데 왜 이 케케묵은 옛날의 사상을 두고 21세기의 인류 사회에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정치사상이라고 치켜올리는 것인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미묘하게 작동하기 시작한 21세기 산업문명을 더이상 주권국가라고 하는 틀로서 규제하고 관리하기가 불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산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조직원리가 곧바로 생산성과 효율성 제고로 이어지던 테일러주의/포드주의의 2차 산업혁명 시대는 이미 20세기가 다하기 오래전에 종말을 고했다. 숨가쁜 혁신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면서 산업 관계자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사회적 관계가 매일 변하는 이 새로운 세상에서 상황 전체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일률적인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사회 전체를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고 또 방향을 이끌어갈 수 있는 국가도 성립할 수 없다.
이러한 세상이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그 질서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과 공존할 수 있는 ‘무정형의’ 것이 되려면 모든 개개인들이 자율적인 존재가 되는 수밖에 없다. 어떤 상위의 권위에도 의구심을 품고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려 들지만, 스스로의 성찰과 결단에 의해 스스로가 정한 원칙과 질서만큼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던져 고수하고 책임지면서 이를 ‘스스로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소중히 할 수 있는 사람. 찌르레기 떼는 하늘을 날면서 놀라운 장관을 만들어내지만 이는 누군가의 기획과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마리 한 마리의 찌르레기들이 무의식중에 만들어내는 창발적 질서다. 개개인들이 과연 그런 질서를 창발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수많은 정치사상의 조류들 가운데에서 인간이 그러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존재라고 적극 긍정하는 유일한 정치사상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이 말에 달려 있는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고, 그 미래적 의미의 유혹 속에 한번 푹 빠져볼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