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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여행을 상상할 때 우리 머릿속에서 즉시 불려나오는 그림은 무엇일까. 눈앞의 좌석 등받이와 안전벨트 램프 그리고 승무원이 기내식 수레를 밀며 다가오는 긴 복도다. 그러나 스튜어디스가 지닌 비행의 이미지는 판이할 것이다. 한 공간을 체험한다고 그 공간의 모든‘면’(面)을 알 수는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의 시야를 차지하는 ‘프레임’들을 더듬어보자. 눈을 떠서 마주보는 벽지와 화장실 세면대 거울, 책상 앞에 세워진 파티션이 차례로 시야를 채운다. 매일 똑같은 그림책을 순서대로 넘겨보는 형국이다. 더구나 대동소이한 설계로 지어진 한국의 아파트 생활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여행이 선사하는 해방감의 큰 부분은, 여행지에서 눈을 떴을 때 다가서는 새로운 구도, 일상적으로 우리를 가뒀던 고정된 평면이 일시적으로 걷혔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최윤정의 <붉은 커튼>과 <우산>은 너무 익숙한 나머지 우리를 소스라치게 만드는 그림이다. 작가는 실내 풍경이나 정물이 아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틈새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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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절이 올 줄 몰랐다. 비호감도 호통이나 독설도 아니고 싼티가 대세라니. 성인이 된 이후 싼티나 보이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싼티나는 남자 만나지 않기 위해서 조심조심 살아온 지 어언 이십년인데 이제 와 싼티 트렌드에 올라타야 하다니 이것이 웬말인가 말이다.
하지만 싼티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조금 웃기고 많이 편한 것이라는 의미 변화에 편승해 고백하자면 내 인생은 싼티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한마디로 싼티나는 남자한테 끌렸단 이야기다. 물론 쫄티에 기지바지, 한쪽 귀걸이 정도는 아니다. 일대일 맞춤식 서비스(상냥함, 발랄함, 우아함, 골라만 주세요!)로 소개팅 백전백승을 자랑하던 이십대의 내가 대차게 차였던 적이 한번 있는 데 바로 싼티나는 남자한테였다. 임창정을 닮은 남자였다(창정씨, 욕 아니에요). 조금 저렴한 느낌의 외모가 아쉬웠지만 그가 구사하는 저렴한 개그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나는 한번 까이고도 그를 잊지 못하고 다시 연락을 시도했
[김은형의 아저씨의 맛] 싼티의 무한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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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이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내쫓긴 것이다. 4년 전 그는 마이스페이스에 “한국이 싫다”, “한국인들은 내가 하는 수준 낮은 랩을 잘한다고 칭찬한다. 정말 멍청하다”는 등의 글을 올렸고, 누군가에 의해 들춰진 이 글이 인터넷의 황색 저널리즘을 통해 퍼지면서 사태는 커졌다. 그런데 정말 죄인처럼 출국해야만 할 정도로 박재범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그의 글에 대한 비난을 거칠게 요약한다면 ‘그렇게 한국이 싫으면 한국을 떠나라’는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다. 사실 한국에 와서 인기를 얻었으면서도 한국을 비난하는 건 점잖은 일이 아니다. 게다가 랩을 못 알아들으면서 칭찬한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기분 나쁘다. 그런데 그 글은 그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에 쓰여졌다. 그는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근황을 얘기하면서 연습생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관해 이런저런 불평을 했을 것이고, 그 와중에 그런 말이 튀어나온 것일 게다.
그래서 박재범을 ‘용
[오픈칼럼] 옹졸한 ‘국가적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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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의 한국영화가 2009년 여름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름은 끝났으나 두 영화를 향한 사람들의 애정은 아직 식지 않은 것 같다. 평문을 작성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다. 다만 그 영화들이 남긴 어떤 잔상을 말하고 싶다.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계산된 기획, 관습적 요소들의 재배치라는 예상 가능한 말들을 뚫고 돌출하는 이미지들. 이 영화들이 사적으로 오래 기억된다면 대중적 성공의 지표들이 아니라 그들 때문일 것이다.
해변의 아이는 무슨 놀이를 벌인 걸까
먼저 <해운대>의 마지막 시퀀스에 나오는 쓰나미 이후의 해변장면. 몇 차례의 쓰나미로 초토화한 해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화염에 그을린 듯 시커멓게 변한 건물의 잔해들, 무질서하게 솟아오른 철근과 버팀목들의 기괴한 형상, 그들 사이를 서성이는 왜소한 인간 군상들. 이 장면이 잘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SF적인 전쟁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거대한 해일이 밀려왔던 게 아니라 누군가 이 도시를 불태운 것 같다
[전영객잔] 상실의 순간, 쾌락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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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다른 여자를 구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내 아내가 죽는다면? <조용한 혼돈>은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우리 앞에 던지면서 시작된다. 회사 중역 피에트로(난니 모레티)는 별장 근처 해변에서 동생과 한가롭게 공놀이를 하던 중 익사 직전의 여자들을 발견하고 구해준다. 피에트로와 동생은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여자들을 구조했지만 고맙다는 말은커녕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다. 동생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별장으로 돌아온 피에트로는 상상도 못한 상황에 직면한다. 그는 별장 앞마당에 널브러진 아내의 시신과 울고 있는 어린 딸을 발견한다. 시신 주위로 내팽개쳐진 메론 조각들은 이 비극적인 현장에 기이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그의 아내는 메론이 담긴 쟁반을 들고 느닷없이 이층에서 투신한 걸까? 누군가를 구하는 공덕을 쌓았지만 정작 아내 곁을 지키지 못한 남편의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함이란 어느 정도일까? 짧은 순간 우리는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읽기] 그는 정글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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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두가 평생의 사랑을 첫눈에 알아보는 건 아니다. 그 첫밤은 종말의 기운이 감돌았던 90년대 중반이었다. 갓 산 피아노 CD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인간의 목소리 같기도 한. 창문을 닫았다. 다시 CD를 재생했다. 소리는 가시지 않았다. 다른 방에서 TV를 틀고 있나 확인했다. 모두 꺼져 있다. 수수께끼 같은 그 소리는 가시지 않았다. 디스크 오류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다른 CD를 틀었다. 우습게도 그게 이후 10년간 이어진 클래식과의 단절의 시작이었고, 그 음반이 무엇이고 연주자가 누구였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유명한 글렌 굴드의 허밍 소리와 무식하고 우스꽝스러운 첫 조우를 하긴 했지만,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미치게 된 진짜 계기는 로잘린 투렉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심코 CD를 틀어놓았는데, 곡이 너무 아름다워서 책을 덮고 음반이 끝날 때까지 꼼짝도 않았다. 눈앞에 우주가 펼쳐지는데 책이 무슨 상관이랴. 내가 생각했던 바흐
[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나의 ‘굴드’베르크 변주곡 편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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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있다. 패션지에서나 보이던 말이 요새는 일상어가 됐다. 드라마 <스타일> 덕이다. 이 단어에 크게 불만은 없다. 엣지하다를 완벽하게 대체할 만한 한국말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엣지하다는 예리하다와 세련되다와 날카롭다와 감각있다와 남다르다라는 표현을 셰이커에 넣고 흔든 뒤 유리잔에 부어놓은 칵테일 같다. 엣지있다는 그냥 엣지있는 것이다. <씨네21>에 한번 써볼까 싶다가도 “쿠엔틴 타란티노의 엣지있는 연출…”까지 쓰고나면 목덜미가 살살 간지럽다.
시크하다는 엣지있다보다 훨씬 먼저 패션지에 등장했던 표현이다. 이건 사실 한국어로 대체가 가능하다. 세련되다라고 말해도 별 차이는 없다. 종종 ‘시크 스타일’이라는 말도 안되는 표현이 사용될 때도 있다. 시크는 특정한 스타일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세련된 스타일을 의미하는 거다. 이를테면 그 사람 옷차림이 꽤 시크한데? 이건 가능하다. 그 사람은 시크 스타일이야. 말도 안된다. 신조어라고 해도 이런 식은 곤란하다.
[오픈칼럼] 이 죽일놈의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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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디지털영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하는데 솔직히 개인적으로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보수적인 칸영화제에서조차 디지털영화를 경쟁부문에서 트는 걸 보면 이 매체가 작가주의 영화의 복음이 될 가능성은 예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주류에서 어떻게 디지털 매체를 활용할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어느 쪽으로나 만드는 입장에서 과거보다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누구나 영화를 찍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게 내가 좋아했던 20세기의 영화와 비슷한 레일을 탈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뒤통수나 손발뿐 아니라 솥을 찍는 카메라
지난 8월19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시네마디지털서울 2009’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정리해볼 기회를 가졌다. 내가 속한 심사위원단인, 국내외 비평가들이 주는 블루 카멜레온상은 리우지아인 감독의 <옥스하이드2>에 주어졌다. 이 영화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장성한
[김영진의 점프 컷] 무심한 앵글이 낳은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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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일본으로 나를 찾아온 이명세 감독은 아이처럼 웃으면서 “너한테 주는 선물이야”라고 말하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시나리오를 건넸다. 물론 내가 명세 형을 존경하고 작품세계를 좋아하지만 그의 전작들인 <남자는 괴로워>(1995)와 <지독한 사랑>(1996)이 차례로 흥행에 실패한 것을 떠올려보면 ‘이런 선물 굳이 안 줘도 되는데’하는 생각도 들었다. (웃음) 이걸 선물이라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농담처럼 하면서 어쨌건 고마운 마음으로 읽었다. 오랜 세월 형, 동생 사이로 영화를 함께한 사람으로서 감히 명세 형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그는 배우의 개성을 굉장히 인정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감독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확실한 색깔과 라인이 있다. 배우는 그 라인을 잘 따라가면 되는데 그걸 그저 또 따라가기만 하면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걸 따라가는 가운데 자기 것을 지켜내야 한다. 그게 이명세의 영화에서 캐릭터가 차지하는 미묘한 자
[박중훈 스토리 17] 신창원 잡으러 각목 들고 출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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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유재석과 MBC 아나운서 나경은 부부가 결혼 1년 2개월 만에 아빠 엄마가 된다.
유재석의 소속사인 디초콜릿이앤티에프는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나경은 아나운서는 임신 3개월 째 접어들고 있으며 아이와 엄마 모두 건강한 상태라고 전했다.
또한 소속사측은 “임신 초기 단계라 외부에 알려지는 게 조심스러운 시기여서 가족들 외에는 임신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며 “나경은 아나운서는 현재 안정을 취하고 있으며 유재석을 비롯해 부모님들도 너무 좋아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MC 유재석, 아빠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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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막 끝내고 루게릭 환자 역을 제안받았을 때 배우 김명민은 "절대 못한다, 죽으라는 얘기냐"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랬던 그가 몸무게 20㎏을 빼고 앙상하게 뼈가 드러난 몸으로 루게릭 환자 종우가 되어 돌아왔다. '목숨 걸고 했다'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니다.영화 '내사랑 내곁에'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는 뺀 몸무게의 절반 정도를 회복했지만, 여전히 정상은 아닌 몸이었다.못 한다고 했다가 왜 루게릭 환자 역을 결국 맡았는지가 무엇보다 궁금했다. 그는 "술자리에서 만났다면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한참을 고민했다."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운명이었다는 말밖에 없을 것 같아요. 무언가를 얻으려고 손을 뻗는다고 다 내 것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아무리 도망가려고 발버둥을 쳐도 결국 나를 옭아매는 게 있어요. 어떤 일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매일 같이 그 일을 하면 죽는 악몽을 꿔요
김명민 "발버둥쳤지만 종우 역은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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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올해 대종상 영화제에 '해운대', '마더' 등 한국 영화 54편이 출품됐다고 영화제 집행위원회가 16일 밝혔다.집행위원회는 이날 오후 여의도 KT웨딩컨벤션 3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예심(9월22일~10월9일)과 본심(10월26~11월6일)을 거쳐 오는 11월 6일 제46회 대종상 시상식을 개최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시상식은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ㆍ여주연상, 촬영상, 조명상 등 모두 28개 부문에 대한 시상이 진행된다.영화 각 분야의 전문가 10명가량이 예심과 본심의 심사를 맡는다. 본심에서는 전문심사위원들 외에도 일반심사위원 50명이 일부 심사 과정에 참가한다. 18세 이상의 성인 남녀로 구성되는 일반 심사위원단은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남녀 주연, 남녀 조연, 신인상 부문의 심사에만 참여하게 된다.신우철 집행위원장은 "원로영화인들과 젊은 영화인들 간 소통의 장으로써 대종상 영화제가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대종상 시상식
올해 대종상에 한국영화 54편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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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영화 '해운대'로 1천만이 본 영화의 주연배우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하지원은 그간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해왔다.2000년 영화 데뷔 후 코미디 '색즉시공', '내 사랑 싸가지', 액션물인 '형사:Duelist', 공포물 '가위', '폰' 등 다양한 장르에 출연하면서 에어로빅 강사, 검객, 복서 등 다채로운 역할을 소화했다.오는 24일 개봉하는 그의 13번째 장편 영화 '내사랑 내곁에'는 본격적인 멜로물이다. 하지원은 여기서 루게릭 병에 걸린 남편 종우(김명민)를 성심껏 간호하는 '장례지도사' 지수 역을 맡았다.그는 1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연기를 위해 7년간 길러온 머리카락을 자르고, 실제 염습까지 배웠다고 말했다. 결혼만 3번 한 곡절 많은 인생이지만 밝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지수를 보다 잘 표현해보고 싶어서였다."지수는 사연 많은 여자인 것 같지만, 의외로 발랄하고, 소녀 같은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긴 머
하지원 "'내사랑 내곁에'는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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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최강희 주연의 '애자'가 2주째 주말 예매 점유율 1위를 지켰다.17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9일 개봉한 '애자'는 25.1%의 점유율로 1위를 고수했다.최근 완결판을 선보인 '국가대표'가 15.7%의 점유율로 2위를 차지했으며 이번 주 개봉하는 제라드 버틀러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어글리 트루스'(11.8%)가 3위에 올랐다.인도영화 '블랙'(6.7%), 박진표 감독의 신작 '내사랑 내곁에'(6.68%), '이태원 살인사건'(5.9%)이 그 뒤를 이었다.'S 러버', '하쉬 타임', '산타렐라 패밀리', '하바나 블루스', '미래를 걷는 소녀' 등 6편이 이번 주 개봉한다.최근 2년간 상영된 중국영화 15편을 소개하는 '2009 중국영화제'가 18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다.buff27@yna.co.kr(끝)<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저작권자(c)연
<주말영화> '애자' 예매율 2주째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