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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저녁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특설무대에서 열린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스타들이 포토존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PIFF2009] 포토존 찾기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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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러브> The Fair Love
신연식 | 한국 | 2009 | 115분 | 갈라프레젠테이션
형만은 카메라 수리를 업으로 삼은 50대의 노총각이다. 어느 날, 8년 전 사기를 치고 도망간 친구가 암으로 죽으며 딸 남은을 잘 돌봐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아버지를 읽고, 키우던 고양이마저 죽은 남은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여자다. 조카와 삼촌 같은 사이로 시작한 그들은 점점 자신의 사랑을 합리화시키려 사랑의 정의를 찾아 나선다. 그래도 결국 그들의 나이차는 부담이다. 남은은 형만이 지금보다 더 새로운 사람이길 바라고, 형만은 현실에 안주하기를 원한다.
<페어러브>는 <좋은 배우>로 2005년 부산영화제를 찾았던 신연신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이 175분이란 상영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긴장의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면 <페어러브>는 통속적인 주제를 유쾌하면서도 사려 깊은 태도로 관찰한다. 이들의 사랑은 연애에 서툰 남자와 호기심으로 가
올해의 한국멜로영화로 손색이 없을 작품 <페어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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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역사> Mundane History
아노차 수위차콘퐁 | 타이 | 2009년 | 82분 | 뉴 커런츠
올해 영화제를 찾은 동남아시아 영화의 경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야기를 미시사적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개인을 통해 정치, 역사, 사회 등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타이의 신인 여성감독 아노차 수위차콘퐁의 <우주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침대 신세를 지게 되는 아케. 그런 그를 위해 아케의 아버지는 남자 간호사 ‘펀’을 고용한다. 펀은 아케를 정성껏 돌보지만, 육체를 잃은 상심에 아케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둘의 관계에 주목하자. 극진한 간호에 아케는 자신을 조금씩 내보이기 시작한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는 꿈부터 “몇해 전 암으로 죽은” 엄마, 그리고 “엄격한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까지 말이다. 그를 통해 펀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던 아케 집안의 균
인간 존재론적 사유 <우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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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왓디 방콕> Sawasdee Bangkok
펜엑 라타나루앙, 위시트 사사나티앙, 아딧야 아사랏, 콩데이 자투라나사미 | 태국 | 2009년 | 108분 | 아시아영화의 창
<사왓디 방콕>의 소제목을 붙여보자면 ‘사랑해 방콕’쯤 되겠다. 그렇다. 이건 <사랑해 파리> <뉴욕 아이 러브 유>와 같은 감독들의 도시 프로젝트다. 뉴욕, 파리 프로젝트와 차이가 있다면 도시를 마냥 예찬하지는 않는다는 점. 네 명의 자국 감독들은 태국의 현실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그런데 그게 더 진심처럼 보인달까.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Sightseeing>은 앞을 볼 수 없는 여주인공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역설한다. 겨우 하루를 연명해가는 그녀에게 방콕을 보여주겠다는 천사가 나타난다. 아딧야 아사랏의 <Bangkok Blues>는 삶의 공간으로서의 방콕에 집중한다. 소리 녹음이 취미인 루이스는 외국에서 왔
감독들의 도시 프로젝트, 사랑해 방콕 <사왓디 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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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의 하룻밤> One Night in Supermarket
양칭 | 중국 | 2009년 | 94분 | 아시아영화의 창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한 <슈퍼마켓의 하룻밤>은 중국영화의 또 다른 숨겨진 재능이다. 무협 대작과 지하전영의 극단적 대비 속에서 그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던 중국 대중영화의 신선한 호흡이다. 어쩌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인디 진영의 장르적 모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풋풋한 신인감독답게 초보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제법 감각적 화면과 카메라워크를 보여준다. 우리로 치면 ‘24시간 편의점’이라 할 수 있는, 한 슈퍼마켓에 낯선 침입자가 들이닥친다. 리준웨이와 또 다른 여직원은 곧장 인질이 되고 만다. 허산쉬라는 이 침입자는 3개월 전 복권에 당첨됐다가 그만 가게주인의 실수로 복권 당첨이 무효로 되자, 돈을 되찾기 위해 전기충격기를 들고 온 것이다. 이들은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가게 영업을 대신하게 된다.
‘편의점
중국 대중영화의 신선한 호흡 <슈퍼마켓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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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 박중훈, 장동건, 엄정화, 하지원, 김하늘이 ‘굿 다운로더 캠페인(주최: 영화진흥위원회,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영화인협의회)’ 선포식에 참석했다. 9일 오후 4시 해운대 야외무대는 이들을 보러 온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사회를 맡은 김성주 아나운서는 “영화 산업의 발전을 위해 다함께 의기투합하자는 취지에서 이번 행사가 마련됐다”며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도 다운로드 문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선포식의 의미를 전했다.
이어, 참여한 배우들을 다 모아 CF를 찍으면 100억원이 넘는다고 해서 ‘블록버스터 CF’라는 별명을 얻은 굿 다운로더 캠페인 CF가 전광판으로 상영됐고,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 안성기, 박중훈 굿 다운로더 캠페인 공동위원장이 무대에 올랐다. 안성기는 “이번 일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며 “모든 창작 산업물을 대표해 앞장서서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100억짜리 공짜 CF, 그 화려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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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The Time that Remains
엘리아 슐레이만 |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 2008년 | 109분 | 월드 시네마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됐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거나 쫓겨나거나 도망쳐야 했다. 소수의 사람들은 고향땅에 머물렀지만 일상은 한시도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동시에 감독 엘리아 슐레이만 자신의 이야기다. 데뷔작 <실종의 연대기>(1996)로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신인영화상을, 두 번째 작품 <신의 간섭>(2002)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던 엘리아 슐레이만은 ‘팔레스타인 영화의 자존심’답게 7년 만에 다시한번 팔레스타인 땅이 배경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었다. 역사적 사건에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갔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의 풍자는 여전하다.
부모님 세대의 기억과 감독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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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워터게이트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게 어때요?’” <계엄령>(1973)의 영어 더빙판 작업을 하며 뉴욕에 머물 당시 가진 한 인터뷰에서 코스타 가브라스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한 가지 종류의 영화, 그러니까 그의 대표작인 <Z>(1969) 같은 ‘정치 영화’만을 만들 것을 요구하는데 이는 영화 작업을 하는 데 일종의 ‘압력’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가 불평을 토로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코스타 가브라스는 실은 별 상관없다는 듯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고 마침내는 민감한 정치 문제를 다루는 대중영화를 자신에게 속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그런 유의 영화를 생각하지 않고 그의 영화를 보러가는 관객은 없을 정도가 되었다.
상업영화에서 정치를 말하다
그런데 사정은, 시간을 조금만 되돌아가보면 많이 달랐다. <Z>
시대를 향해 성냥을 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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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영화의 거장이 손자국을 남겼다. 10월9일 오후 2시 해운대 피프 빌리지 야외무대에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핸드 프린팅 행사가 열렸다. 그리스 출신의 코스타 가브라스는 1969년 정치 스릴러 <Z>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남우주연상, 아카데미 외국어작품상 등을 휩쓸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 또다른 대표작으로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의문의 실종>(82),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인 <뮤직박스>(89)등이 있다. 연단에 오른 가브라스 감독은 “지금까지 핸드 프린팅을 한 수많은 거장들과 나란히 하게 되어 영광이다. 젊은이들이 많아서 활력이 넘치는 영화제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코스타 가브라스 핸드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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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바벨탑 이전의 세상에서처럼 인류가 하나의 언어를 구사했다면, 마츠모토 히토시는 웃음으로 세계를 지배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 최고의 코미디언인 그의 두 번째 영화 <심볼>은 언어 이전에 존재하는 웃음을 끌어내는 영화다. 전작 <대일본인>이 일본 밖 관객들에게 다소 난해했다면, 이번에는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보면 알 수 있는 ‘거시기’ 같은 영화인 셈이다. 10일 <심볼> 상영 후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와 기자회견에서 그를 만났다.
-코미디언 출신 영화감독이라는 면에서 기타노 다케시 감독과 비교되는 일이 많은데.
=내게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존경하면서도 넘고 싶은 대상이다. 하지만 영화로 봤을때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각자 자기다운 영화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영화적인 부분에선 그리 의식하지 않는다. 기타노 감독이 내게 열 작품 정도 만들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다섯 작품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심볼>은 전작 <대일본
“세상 모든 게 다 ‘거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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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문지 <씨네21>과 디지털콘텐츠 유통업체인 ‘씨네21i’가 마련한 막걸리 파티가 10월9일 오후 8시부터 해운대 씨랜드에서 열렸다. 주최측은 이날 행사에서 합법다운로드 정착을 위해 기여한 작품과 웹하드 업체를 시상했다. 벤티지 홀딩스의 <추격자>와 스폰지ENT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각각 용감한 영화상과 놀라운 영화상에, 스튜디오 느림보의 <똥파리>와 <워낭소리>가 대단한 영화상에 선정됐다. 그룹에이트의 드라마 <탐나는도다>는 탐나는 드라마상을 수상했으며,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와 주식회사 이지원, 소프트라인, 클루넷은 감사패를 받았다.
합법다운로드 기여업체에 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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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개그맨이자, 배우이고, 작가인데다 가수인 이타오 이츠지는 ‘엉뚱함의 제왕’으로 불린다. 생방송 중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 방송사고를 내는가 하면 상식에서 벗어나는 말과 행동은 부지기수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일으키는 사고들이 시청자에게는 웃음 포인트로 꽂힌다는 것이다. 방송시스템의 단정함을 웃음으로 무너뜨린 이타오 이츠지는 일본 방송에서 가장 많은 자유를 부여받은 개그맨일 것이다.
언제나 예상에서 비껴나길 즐겼던 그의 행보는 급기야 영화감독에까지 이르렀다. 첫 연출작인 <탈옥왕>은 제목 그대로 탈옥의 달인이 소재다. 직접 연기에 나선 이타오 이츠지는 특별한 표정과 대사 없이 본연의 모습 그대로 묘한 웃음을 이끌어낸다. 일본 내에서 얼굴만 봐도 웃기는 개그맨으로 통하는 그만의 연기방식이다. 심지어 다른 감독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할 때도 태도는 일관적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에서 주인공 히데오를 연기한 그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한
“연기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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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故 장진영을 위한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그녀를 기리는 추모행사를 열기로 한 것이다. 우선, 장진영의 추모 부스가 해운대 피프 빌리지 내에서 운영된다.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 그녀의 소속사인 예당엔터테인먼트는 장진영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추억하도록 유품들과 사진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시간은 매일 오전10시부터 저녁7시까지다.
지난9일과 10일 해운대 메가박스에서는 그녀의 대표작인 <청연> <싱글즈> <소름>이 상영됐다. 특히 <소름> 상영 전에는 윤종찬, 권칠인, 김해곤, 이정욱 감독 외 감독조합의 감독들과 배우들이 참여해 추모행사를 가지기도. 감독들이 관객들 앞에서 배우 장진영을 회고했고, 준비해 온 추모 동영상을 상영했다. 또, 그녀가 평소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면서 함께 애도했다.
배우 장진영 추모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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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영화를 만들고 11년. <블루 맨션>의 글렌 고에이 감독은 자신의 첫 작품 <영원한 열정> 이후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싱가포르에선 “이런 유의 영화가 투자 받기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는 영화 산업이 제대로 조성되어 있지 않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곤 하는데, <블루 맨션>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블루 맨션>이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냐. 설마!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화냐. 전혀!
어느 재벌의 급작스런 죽음 이후 가족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재벌 회장은 영혼으로 돌아와 갈등을 지켜본다는 게 영화의 기본 줄거리다. “유교 사상”이라는 “아시아적 가치”가 여전히 유효한 사회에서 후계자 문제로 반목하는 형제의 모습이나 가족들 사이의 다툼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이야기인 것이다. 20살에 영국으로 건너가 20년 가까이 그곳에서 살았던 글렌 고에이 감독으로선 더더욱 싱가포르 사회가 답답했을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뿌리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