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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이후의 부산영화제에도 쏠쏠한 재미는 있다. 12일 월요일, 피프빌리지에서는 두 차례의 ‘아주담담’ 행사가 열린다. 오후 3시30분에 열리는 ‘최선의 동료들’에서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생인 허진호, 류장하, 최동훈, 황규덕 감독이 모여 영화아카데미에서 수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이어 6시에는 ‘한국영화 속 B급’을 주제로 한 아주담담이 열린다. <죽이러 갑니다>의 박수영 감독을 비롯해 여명준, 홍동명, 조은경 등 <환상기담 - 묘>를 공동연출한 3명의 감독이 등장할 계획이다.
아카데미 졸업생들의 ‘담담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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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포워드 감독 프레젠테이션이 11일 오전 11시 신세계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렸다. 그동안 뉴 커런츠 섹션을 통해 아시아 지역의 신인 감독 발굴에 힘썼던 영화제는 올해부터 비아시아권의 신예 발굴에도 힘쓸 예정이다. 경쟁 부문으로 옷을 갈아입은 플래시 포워드 섹션에 초대된 작품은 총 11편. 그중 두 명이 사정상 불참했고 9명이 참석했다. <프로스트>의 페란 아우디, <루퍼트와 에버트>의 자이다 베르그로트, <시카고 하이츠>의 대니얼 니어링, <우주 비행사>의 수산나 니키아렐리, <이동 영화관>의 티투스 문티안, <외톨이>의 레넨 쇼르, <마그마>의 피에르 비누르, <미스 키키>의 호콘 리우, <원점>의 파벨 보로브스키 이상 9명이다. 플래시 포워드 부문 수상작에게는 2만 달러의 상금이 수여된다.
플래시 포워드 아홉 감독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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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샤인 보이> The Sunshine Boy
프리드릭 토르 프리드릭슨 | 아이슬란드 | 2009년 | 103분 | 와이드앵글
켈리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손을 산만하게 움직이고, 혀를 자주 빼 문다. 가끔 이상한 소리도 낸다. 켈리는 자폐아다. 그럼에도 켈리의 가족에게는 ‘선샤인 보이’다. 부모로선 자식의 병이 꼭 제 탓 같을 수밖에 없다.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았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된 바 없는 자폐증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은 더할 것이다. 더군다나 자폐아는 의사소통의 문제로 혼자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자폐증을 연구하는 많은 이들은 의사소통의 수단을 찾아내 증상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 일례로 훈련센터 HALO에서는 말하지 못하는(혹은 말할 의지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문자를 활용해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켈리의 어머니도 희망을 품고 아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러 나선다. 그 희망의 기록이 바로 다큐멘터리
아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 <선샤인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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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서쪽이다> Eden is West
코스타 가브라스 |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 2008년 | 111분 | 월드시네마
코스타 가브라스의 이름으로부터 우리가 떠올리는 건 ‘정치영화’다. 그리스 출신의 이 거장은 <Z> <계엄령> <의문의 실종> <뮤직박스> 같은 영화들을 통해 유럽과 남미 현대사의 숨겨진 이면들을 스크린에 옮겨왔다. 그의 최근작이자 베니스 영화제 경쟁작인 <낙원은 서쪽이다>는 현대 유럽의 가장 첨예한 문제인 ‘불법 체류’를 이야기하는 로드 무비다. 그리스인 주인공 엘리아스는 파리로 가기위해 돈을 주고 밀항선에 오른다. 하지만 경찰선이 다가오자 무작정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만다. 친구와 헤어진 그는 ‘에덴’이라 불리는 나체촌 리조트에서 영국 여자를 만나고, 남프랑스에서는 촌부의 일을 돕고, 마음 좋은 독일인 트럭운전사들의 차를 얻어타는 등 유럽을 가로지르며 파리로 조금씩 향한다.
<낙
‘불법 체류’를 이야기하는 로드 무비 <낙원은 서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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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비행사 Cosmonaut
수산나 니키아렐리 | 이탈리아 | 2009년 | 87분 | 플래시 포워드
지금 세대가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세계 최초로 생명체와 인간을 우주로 쏘아올린 국가는 소비에트 연방이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어디냐고? 지금은 러시아로 알려져 있는 부패한 석유 강국 말이다. 이탈리아 영화 <우주비행사>는 소비에트와 미국의 우주 진출 경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와 60년대 초를 배경으로, 15살의 어린 공산당원 소녀 루치아나의 성장을 다루는 경쾌한 코미디 영화다. 아버지의 염원을 이어 적극적인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는 루치아나는 간질병에 시달리는 오빠 아르투로와 함께 소비에트 연방의 우주 진출에 열광한다. 그녀에게 세계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은 일생일대의 영웅이다. 하지만 사춘기 소녀의 정치적 신념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하필 엄마는 우파 부르주아 계부와 결혼해 루치아나의 신경을 건드리고, 로마청년공산당에도 여성차별적인 망나니들만 가득하다(80
새로운 이탈리아 여성 감독의 소박하고 반가운 데뷔작 <우주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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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Yang Yang
쳉유치에 | 대만 | 2009 |112분 | 아시아영화의 창
프랑스인 아빠와 대만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양양은 불어를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는 대만인이 아니다. <양양>은 다문화 사회의 대만을 청춘영화적인 화법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어디서나 ‘인형’으로 불리는 양양의 외모는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거나 갈등을 일으킨다. 육상부 남자선배는 그녀와 외국 포르노 주인공의 얼굴을 동일시하려 하고, 연예기획사의 매니저는 그녀를 완벽한 프랑스인으로 포장하려 한다. 대만인인 새 아빠와 그의 딸을 동생으로 맞은 양양은 가족 안에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육상부 라이벌이기도 한 동생 샤오루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양양에게 관심을 보이자 가시를 내뱉는다. “언니라고 하지 마, 넌 내 언니처럼 보이지 않아.” 영화는 경계에선 이방인의 좌절과 성장을 섬세한 연출로 그려낸다. 선이 뚜렷한 사건은 없지만 배우 산드린 핀나가 연기하는 양양의 감정적 갈등은 인물의 표정과 사소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대만 사회의 단면 <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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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안개> Night and Fog
허안화 | 홍콩 | 2009년 | 122분 | 아시아영화의 창
‘두기봉 특별전’을 통해서만 임달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허안화의 ‘천수위’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밤과 안개>에서도 그의 정신분열적인 연기를 볼 수 있다. 전편인 <천수위의 낮과 밤>은 올해 홍콩금상장영화제에서 최우수감독상(허안화), 여우주연상(포기정), 여우조연상(진려운)을 수상하며 허안화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시켜줬는데, 속편인 <천수위의 밤과 안개>(원제)는 1편과 무관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중국에서 온 웡히우링(장정초)과 리삼(임달화) 부부는 홍콩의 재개발 지역인 천수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다. 의처증이 심한 리삼은 사사건건 아내를 들볶고 때린다. 참다 못 한 웡히우링은 결국 두 딸과 여성복지시설에 몸을 의탁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찾아와서 마치 다른 사람처럼 금방 사과하며 마음을 고쳐먹은 듯하다가도
허안화의 ‘천수위’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밤과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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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조직인지 이젠 꽤 알려져 있다고 자신하지만, 한편으로 필자는 ‘필름 아카이브(Film Archive)’의 중요성에 대한 국내의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지 않나 생각할 때가 많다. 혹시나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다는 가정 하에 영상자료원에 대한 소개로 시작할까 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수집, 보존, 연구하고 또 전시, 상영, 발간하는 기관이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각 영화제의 회고전 부문에서 영상자료원의 활동반경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번 1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 회고전 섹션에서 선보이는 발굴작 <분례기>(1971)와 디지털 복원작 <검은 머리>(1964)는 바로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영상자료원의 역할과 기대치 그리고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일 것이다.
위장 수출 논란 거친 뒤 힘들게 되찾은 <분례기>
유현목 감독의 1970년대 문예영화 <분례기>는 2007년
한국 고전, 녹물 벗고 새 생명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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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와 충무로를 대표하는 장르영화의 연금술사, <작전명 발키리>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김지운 감독이 만났다. 10월11일 오후 5시30분 해운대 피프빌리지 야외무대. 이동진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오픈토크는 두 사람의 입담을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자리였다.
시작은 지난 밤 함께 한 술자리였다. 김지운 감독이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보드카 마시는 걸 보고 지겨워졌다”며 ‘선방’을 날리자, 브라이언 싱어 감독가 발끈했다. “언제? 내가 먼저 (방에)들어갔다. 김지운 감독이 더 많이 마시지 않았나?(웃음)” 김지운 감독도 물러설 수 없었는지, “사실 내가 마신 건 보드카 닮은 물”이었다고. 두 감독 모두 입담 한번 제대로다.
다소 편안하게 시작한 대화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처음 보았을 때 단순한 반전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러나 복기할수록 그 영화는 굉장히 많은 함의를
슈퍼맨을 포기할 순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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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토에게 가장 주목하고 있는 후배 감독을 얘기해달라고 했더니 단숨에 소이 청이라고 답했다. 물론 그가 제작한 작품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올해 <엑시던트>로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그는 홍콩영화의 밝은 미래라 불러도 좋다. 오래도록 조감독 생활을 한 그는 최근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액션 아시아’상을 수상한 <구교구>(2006), 인기 일본 만화원작을 영화화한 <군계>(2007) 등으로 주목받으며 엽위신 감독과 함께 홍콩영화를 짊어질 젊은 기수로 떠올랐다. 거기에는 <엑시던트>의 시나리오를 쓴 ‘절친’ 작가 제토 캄 유엔도 포함돼 있다. “<열혈청년>(2002)때 제토 캄 유엔을 만났는데 그가 엽위신과 중학교 동창이라 다 함께 친해졌다. 함께 영화 얘기 많이 하는 친구들”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이렇게 이들 세 사람은 현재 홍콩영화계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이름들이다.
<엑시던트>에서 브라이언(고천락)은 교묘
조니 토가 점찍은 홍콩영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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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가장 ‘핫’하고 ‘힙’한 배우들이 부산에 떴다. 테리 콴, 주 슈안, 판 치 웨이, 조셉 창 네 명의 배우는 욘판 감독과 45일간 동고동락하며 찍은 <눈물의 왕자>로 한국의 영화 팬과 만났다. 영화도 영화지만 배우들 간의 연기 대결, 미모 대결이 흥미롭다. 특히 미스 인터내셔널 차이나로 화려하게 데뷔한 주 슈안과 정상급 스타 테리 콴(인터뷰에 참석하지 못한 그녀는 올해 부산 영화제 뉴 커런츠 심사위원이다)의 만남에 눈길이 간다. 영화에서 둘은 공군 장교 선의 아내 핑과 장군의 부인 우-양 역을 맡았다. 주 슈안은 “첫 작품이다 보니 힘든 점도 있었지만 모두들 편하게 해줘서 일한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았다. 테리 콴 선배도 사람이 너무 좋아서 이것저것 연기 지도를 많이 해줬다”며 촬영 당시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했다. 백색테러(1950년대 대만에서 행해진 공산주의자에 대한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등장하는 공군 조종사 선 역의 조셉 창은 인터뷰 내내 과묵한 컨셉으
대만의 가장 빛나는 세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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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날 다리오 아르젠토는 <지알로>의 상영장에 들러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함께 영화를 봤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이름이 스크린에 뜨는 순간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거장에게 바치는, PIFF답게 열렬한 헌사였다. 아르젠토 역시 자신을 향한 부산의 애정을 충분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관객의 수도, 참여도와 열정도 정말 스펙터클한 영화제다. 개막식 때 코스타 가브라스와 입장하면서 그랬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개막식은 처음이라고.(웃음)" 작년 <눈물의 마녀>와 올해 <지알로>를 통해 또다시 전성기의 기운을 되살리고 있는 거장을 만났다.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대부분의 한국 호러영화들이 당신의 영향력 아래 나온 작품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영화를 구체적으로 알진 못하지만 한국 호러영화가 내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건 안다. 한국 감독들이 다른 영화제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더라고.
-신작의 제목이 무려 &l
내 영화의 고어는 우리의 악몽이다,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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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란 아우디 감독은 연극을 사랑했다. 런던에서 연극배우로 또 연극 연출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이것을 외도로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자신의 첫 영화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비아시아권의 신예를 발굴하기 위해 경쟁부문으로 재탄생한 플래시 포워드 부문에 초대받았다. <프로스트>는 헨릭 입센의 희곡 <절름발이 천사>를 각색해 만든 영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충격이었다. 심리학적으로 여러가지가 뒤섞여 있음은 물론이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신선하다.” 영화는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외동아들 에욜프가 사고로 죽고, 그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 부모 알프레도와 리타의 삶도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게 기본 줄거리다. 연극과 영화는 그 표현의 방식 때문에 똑같은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하더라도 결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입센은 매우 시적인 작가다. “연극에선 시적인 대사가 굉장히 많다. 연극
영상으로 쓴 입센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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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같은 모자(母子)다. 격의가 없다는 게 아니다. 지긋지긋하면서도, 그만큼 서로가 절실하다는 말이다. <새벽의 끝>에서 미성년자 소녀를 뜻하지 않게 임신시킨 아들이 소송 위기에 빠지자, 엄마는 아들을 대신해 돈을 구하러 다닌다. 아들은 그런 엄마가 탐탁지 않다. 죄책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아들은 정말 엄마를 아끼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엄마 역의 와이 잉헝과 아들 역의 추이티엔이 서로 챙겨주는 모습을 보니 영화 속 모자의 그것과 묘하게 겹쳐진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와이 잉헝은 유가량 감독의 영화에 늘 단골로 출연해 날렵한 액션을 선보였던 그 ‘혜영홍’이 맞다. “쇼브라더스의 댄서”였던 그녀가 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은 “스승인 유가량으로부터 무술을 전수받으면서부터”다. 이후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수많은 액션영화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각인시켰다. 특히 <장배>(1980)에서 보여준, 요염하면서도 절도 있는 액션은 묘한 매력을 드러내기도.
엄마처럼, 아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