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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와 충무로를 대표하는 장르영화의 연금술사, <작전명 발키리>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김지운 감독이 만났다. 10월11일 오후 5시30분 해운대 피프빌리지 야외무대. 이동진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오픈토크는 두 사람의 입담을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자리였다.
시작은 지난 밤 함께 한 술자리였다. 김지운 감독이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보드카 마시는 걸 보고 지겨워졌다”며 ‘선방’을 날리자, 브라이언 싱어 감독가 발끈했다. “언제? 내가 먼저 (방에)들어갔다. 김지운 감독이 더 많이 마시지 않았나?(웃음)” 김지운 감독도 물러설 수 없었는지, “사실 내가 마신 건 보드카 닮은 물”이었다고. 두 감독 모두 입담 한번 제대로다.
다소 편안하게 시작한 대화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처음 보았을 때 단순한 반전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러나 복기할수록 그 영화는 굉장히 많은 함의를
슈퍼맨을 포기할 순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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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토에게 가장 주목하고 있는 후배 감독을 얘기해달라고 했더니 단숨에 소이 청이라고 답했다. 물론 그가 제작한 작품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올해 <엑시던트>로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그는 홍콩영화의 밝은 미래라 불러도 좋다. 오래도록 조감독 생활을 한 그는 최근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액션 아시아’상을 수상한 <구교구>(2006), 인기 일본 만화원작을 영화화한 <군계>(2007) 등으로 주목받으며 엽위신 감독과 함께 홍콩영화를 짊어질 젊은 기수로 떠올랐다. 거기에는 <엑시던트>의 시나리오를 쓴 ‘절친’ 작가 제토 캄 유엔도 포함돼 있다. “<열혈청년>(2002)때 제토 캄 유엔을 만났는데 그가 엽위신과 중학교 동창이라 다 함께 친해졌다. 함께 영화 얘기 많이 하는 친구들”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이렇게 이들 세 사람은 현재 홍콩영화계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이름들이다.
<엑시던트>에서 브라이언(고천락)은 교묘
조니 토가 점찍은 홍콩영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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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가장 ‘핫’하고 ‘힙’한 배우들이 부산에 떴다. 테리 콴, 주 슈안, 판 치 웨이, 조셉 창 네 명의 배우는 욘판 감독과 45일간 동고동락하며 찍은 <눈물의 왕자>로 한국의 영화 팬과 만났다. 영화도 영화지만 배우들 간의 연기 대결, 미모 대결이 흥미롭다. 특히 미스 인터내셔널 차이나로 화려하게 데뷔한 주 슈안과 정상급 스타 테리 콴(인터뷰에 참석하지 못한 그녀는 올해 부산 영화제 뉴 커런츠 심사위원이다)의 만남에 눈길이 간다. 영화에서 둘은 공군 장교 선의 아내 핑과 장군의 부인 우-양 역을 맡았다. 주 슈안은 “첫 작품이다 보니 힘든 점도 있었지만 모두들 편하게 해줘서 일한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았다. 테리 콴 선배도 사람이 너무 좋아서 이것저것 연기 지도를 많이 해줬다”며 촬영 당시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했다. 백색테러(1950년대 대만에서 행해진 공산주의자에 대한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등장하는 공군 조종사 선 역의 조셉 창은 인터뷰 내내 과묵한 컨셉으
대만의 가장 빛나는 세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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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날 다리오 아르젠토는 <지알로>의 상영장에 들러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함께 영화를 봤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이름이 스크린에 뜨는 순간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거장에게 바치는, PIFF답게 열렬한 헌사였다. 아르젠토 역시 자신을 향한 부산의 애정을 충분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관객의 수도, 참여도와 열정도 정말 스펙터클한 영화제다. 개막식 때 코스타 가브라스와 입장하면서 그랬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개막식은 처음이라고.(웃음)" 작년 <눈물의 마녀>와 올해 <지알로>를 통해 또다시 전성기의 기운을 되살리고 있는 거장을 만났다.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대부분의 한국 호러영화들이 당신의 영향력 아래 나온 작품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영화를 구체적으로 알진 못하지만 한국 호러영화가 내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건 안다. 한국 감독들이 다른 영화제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더라고.
-신작의 제목이 무려 &l
내 영화의 고어는 우리의 악몽이다,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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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란 아우디 감독은 연극을 사랑했다. 런던에서 연극배우로 또 연극 연출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이것을 외도로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자신의 첫 영화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비아시아권의 신예를 발굴하기 위해 경쟁부문으로 재탄생한 플래시 포워드 부문에 초대받았다. <프로스트>는 헨릭 입센의 희곡 <절름발이 천사>를 각색해 만든 영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충격이었다. 심리학적으로 여러가지가 뒤섞여 있음은 물론이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신선하다.” 영화는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외동아들 에욜프가 사고로 죽고, 그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 부모 알프레도와 리타의 삶도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게 기본 줄거리다. 연극과 영화는 그 표현의 방식 때문에 똑같은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하더라도 결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입센은 매우 시적인 작가다. “연극에선 시적인 대사가 굉장히 많다. 연극
영상으로 쓴 입센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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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같은 모자(母子)다. 격의가 없다는 게 아니다. 지긋지긋하면서도, 그만큼 서로가 절실하다는 말이다. <새벽의 끝>에서 미성년자 소녀를 뜻하지 않게 임신시킨 아들이 소송 위기에 빠지자, 엄마는 아들을 대신해 돈을 구하러 다닌다. 아들은 그런 엄마가 탐탁지 않다. 죄책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아들은 정말 엄마를 아끼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엄마 역의 와이 잉헝과 아들 역의 추이티엔이 서로 챙겨주는 모습을 보니 영화 속 모자의 그것과 묘하게 겹쳐진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와이 잉헝은 유가량 감독의 영화에 늘 단골로 출연해 날렵한 액션을 선보였던 그 ‘혜영홍’이 맞다. “쇼브라더스의 댄서”였던 그녀가 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은 “스승인 유가량으로부터 무술을 전수받으면서부터”다. 이후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수많은 액션영화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각인시켰다. 특히 <장배>(1980)에서 보여준, 요염하면서도 절도 있는 액션은 묘한 매력을 드러내기도.
엄마처럼, 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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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는 프랑스 리옹의 레드 브릿지에서 벌어지는 10시간 남짓한 사랑이야기다. 감독인 고바야시 마사히로는 27살이 되던 해, 프랑수아 트뤼포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트뤼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리옹은 그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백야>는 20년 전, 그가 만난 리옹을 되새기는 영화다. 혹은 당시 힘겹기만 했던 자신의 사랑을 추억하는 자리다. “프랑스로 간 또 다른 이유는 이별이었다.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나는 돈도 없었고 불안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야 헤어질 수 있을 것 같더라. 여행을 하는데 계속 그녀를 원망하게 되더라.” 그럼에도 결론은 달랐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남자나 여자나 사랑 앞에서 목숨을 거는 건 똑같더라. <백야> 속의 두 남녀에게 그런 깨달음을 투영했다.” 그때 원망했던 그 여자는 두 아이를 낳아준 지금의 아내다.
우연히 만난 남녀 여행객의 만남을 그린다는 점에서 <비포 선라이즈>를 떠올리는 건 당연
프랑스적인, 지극히 프랑스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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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오 아르젠토는 이탈리아 호러의 제왕이다. 팬들이야 잘 알고 있을테지만 아르젠토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그의 경력을 조금 풀어보자. 그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걸작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9) 등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의 각본가로서 영화계에 데뷔했다. 1970년 <수정 깃털의 새>를 내놓으며 이탈리아 호러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열어젖힌 아르젠토는 이후 <딥 레드>(1975) <서스페리아>(1977) <인페르노>(1980) <페노미나>(1985) <오페라>(1987) 같은 작품들을 내놓으며 현대 호러영화의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되기 시작했다. 현대 호러영화의 역사에서 아르젠토 만한 영향력을 가진 감독은 웨스 크레이븐, 조지 로메로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장화, 홍련> <폰>에 영향 준 독보적인 스타일
하지만 아르젠토의 영험한 명성은 19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지의 작
황홀한 공포를 선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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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측에서 다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자비를 들여 부산을 찾는 게스트들이 꽤 된다. <새벽의 끝> 배우들 중 ‘와이 잉헝’이 온다길래 누군가 했다가 깜짝 놀랐다. 과거 홍콩 쇼 브라더스의 전설적 여전사 중 하나였던 혜영홍이었기 때문. 표기법이 ‘후이 잉헝’일 텐데 아무튼. 꼭 참석하고 싶은 나머지 부랴부랴 자비를 들여서라도 온 것. 그래도 GV를 비롯한 공식행사에도 다 참석하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단다. 지난 13년 동안 이렇게 발견 못한 비공식 게스트들이 제법 될 거라 생각하니 참 안타깝다.
[behind PIFF] 비공식 게스트에게도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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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비해 동선이 깔끔해 둘러보기가 편하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신작들이 많이 나와 인상적이다.”
프랑스의 제작사 ‘엘리펀트 필름’의 바이어 조너선 사야다가 아시안필름마켓의 첫날을 둘러본 소감이다. 10월11일 해운대 씨클라우드 호텔에서 ‘제4회 아시안필름마켓’이 개막했다. 오는 14일까지 총 나흘간 열리는 이번 마켓은 ‘비즈니스의 효율성’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조너선 사야다의 말처럼 씨클라우드호텔에서 세일즈와 미팅을 모두 가능하게 해 제작사와 바이어들의 동선을 하나로 통일한 것이다.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온라인 필름 마켓의 론칭도 인상적이다. 홍콩에서 온 한 바이어는 “다른 영화제의 경우 개장된 시간에만 둘러볼 수 있었던 반면, 부산은 온라인으로 영화를 먼저 확인할 수 있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결정도 신중하게 내릴 수 있게 됐다”고 만족했다.
또한, 올해 처음으로 시도되는 ‘EAVE Ties That Bind’를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유럽
깔끔한 동선, 편리한 온라인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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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지수 ★★★★
스펙터클 지수 ★★★★
단단한 무대가 물줄기로 화해 나룻배를 실어나르는가 하면, 앙상한 시체 같은 촛대들이 번쩍이면서 수면 아래서 솟아오른다. 거울 저편에 그림자처럼 스며든 팬텀이 크리스틴을 이끌고 거울 속 세계로 사라지고, 라울을 겨냥한 팬텀의 지팡이에서 불꽃이 터져 폭발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공연 예술이 구현하기 불가능할 법한 현란한 무대 장치로 한수 먹고 들어가는 공연이다. 특히, 오프닝. <The Phantom of the Opera>가 심장이 터질 듯 연주되는 가운데 힘없이 쓰러져 있던 샹들리에가 스르륵 천장까지 떠오르는 장면에선 탄성이 절로 나온다. 팬텀을, 라울을, 크리스틴을 한국어로 연기한다는 건 분명 오리지널의 매력을 얼마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지만, 원작의 화려함은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 그 유명한 뮤지컬 넘버 <The Phantom of the Opera>의 압도적인 화음을, 가사의 뜻을 음미하면
[공연] 말이 필요없는 화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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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웹툰의 시작은 제목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장면이다. 중학교 졸업식, 벚꽃이 흩날리는 핑크빛 배경을 뒤로하고 잘생긴 남자주인공은 어여쁜 여학생에게 고백을 하는 듯하다. 여자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런데 주인공이 내뱉는 말은 “…네 수영복이 갖고 싶어”였다. 순수한 아이들의 풋풋한 연애를 기대했던 독자들에겐 충격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수영복 마니아라니… 이런 만화 따위 19금이어야 하지 않을까?
<두근두근두근거려>는 <삼봉이발소> <3단합체 김창남>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하일권 작가의 작품이다. 전작부터 이어지는 독특한 설정은 여전하다. 외모 바이러스를 치유하는 이발사, 인간형 로봇과 사랑에 빠진 왕따, 이번엔 ‘수영복을 입은 여자’가 아니라 ‘수영복’을 좋아하는 여장남자 수구 선수가 등장한다. 주인공 ‘배수구’는 휴대폰 카메라로 수영장 안을 몰래 찍다가 수구부 코치인 채민준 선생에게 딱 걸리고 만다. 수구부를 만들고 싶었지만 선수
[스크롤 잇] 수영복을 사랑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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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만나요.” 부산국제영화제가 다가오면 으레 하는 인사다. 그런데, 부산 가서 무슨 일들 하시는가. 회 먹고 바다 보고 술 마시다 보니(혹은 술 마시고 술 마시고 술 마시고…) 어느새 폐막식이더라는 영화제 괴담은 새롭지도 않다. 결국 중요한 건 자투리 시간 활용일 텐데, 마침 영화제 장소와도 가깝고 취지에도 맞는 전시가 있어 소개한다. <일본영화촬영감독협회(JSC) 부산 사진전>은 일본의 촬영감독 10명의 카메라에 담긴 부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다. <요시노 이발관>의 우에노 쇼고, 이치가와 준·히가시 요이치와 같은 일본 거장감독들의 파트너 가와카미 고이치, 미이케 다카시 감독과 여러 작품을 함께한 다나카 가즈시게 촬영감독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08년 부산영화제를 찾은 이 10명의 촬영감독은 부산영상위원회의 제안을 받아 평범한 부산의 아파트, 지붕, 골목길을 각자의 개성에 버무려 재단해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부산의 풍경들이 얻은 서
[전시] 영화처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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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발매된 도나웨일의 1집은 꽤 깔끔한 사운드와 정서로 주목받은 앨범이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이다. 1집에서 로하게 들렸던 감성이 세련되게 다듬어진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밴드와 팬들 모두 납득할 만한 수준의 변화일 것이다. 특히 마시멜로처럼 말랑하면서도 탄력있는 멜로디의 <도레미>와 스산한 가을바람에 떨리는 가슴을 대변하는 것 같은 <스노우 드립>의 아득함, <Bye Bye Waltz>의 아기자기함과 불현듯 삽입된 파도소리가 인상 깊을 것이다. 물론 도나웨일이 한국 인디의 바로미터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들로부터 한국 인디, 혹은 한국 록의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이 앨범은 듣기 좋다. 믹싱이 어떻네, 사운드가 어떻네, 음질이 어떻네 같은 딴생각을 안 하게 된다. 멜로디에 집중하게 되고 노랫말을 살피게 된다. 감상적인 밴드 음악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성취는 드물 것이다. 곧 겨울이
[음반] 위로가 되어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