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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기분이 울적할 때 스스로 내리는 처방전이 있을 것이다. 초콜릿은 가장 오래된, 가장 영험한 처방전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 산책을 하는 사람도 많더라. 일단 집을 나서서 ‘이제, 돌아가자’ 하는 생각이 들 때까지 걷는다.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가장 공들여 선택한 음악 속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애인을 만나기도 한다. 애인의 효용. 아무때나, 별 이유 없이도 불러내 ‘나를 즐겁게 해 봐’ 하고 요구할 수 있다. 어린왕자는 자기 별에서 의자 위치를 옮겨가며 몇 십번이고 해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애용한 처방전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소설도 <BBC> 드라마판도 키라 나이틀리의 영화판도 좋아한다. 블로그에 “오늘 <오만과 편견>을 다시 봤는데”라고 쓰면 친구가 댓글로 “무슨 일 있었어?” 하고 물을 지경이었다. 사실 그렇기도 했고. 소설은 제인 오스틴의 묘사 때문에 좋아하고, 드라마와 영화는 금욕적
[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우울에의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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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정석 지수 ★★★★
조각의 해체 지수 ★★★★★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 가장 피해가 막심했던 예술 장르는 무엇일까. 추측건대 그건 바로 조각이다. 해체와 파괴, 기존 미술의 뒤집기를 선호한 포스트 왕국에 조각이란 제작 방식은 독이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회화는 재료와 화풍을 달리하면 그만이었다. 미디어 아트? 포스트 모더니즘의 선두주자 아닌가. 장소와 이동이 자유로운 설치미술은 회화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유행했다. 조각은 이들 장르의 장점 중 어느 것도 가지지 못했다. 재료와 제작 방식이 한정되어 있으며, 형태가 고전적이라 파격을 꾀하기가 어려웠다. 포스트란 이름 아래 조각이 그 위세를 널리 떨치지 못했던 이유다.
포스트 모더니즘 그 이후를 바라보는 지금, 조각의 과거와 미래를 성찰하는 두 가지 전시가 눈에 띈다. 재밌는 것은 주제와 지향점이 전혀 다른 이 두 전시가 같은 미술관의 두 분관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먼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에서 열리는 <
[전시] 정석을 볼까, 파격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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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 공연별책부록을 만들면서 눈도장을 찍어놓은 작품이다. 제목부터 추리물 냄새가 솔솔 나더니 뒤이어 본 포스터. 총 맞아 깨진 유리(임에 틀림없을) 틈새 사이로 바바리코트와 중절모에 시가를 문 사내, 그리고 금발의 여인이 보인다. 오홋, 필름누아르 같은걸. 그리고 출연 크레딧을 보니 안 보면 후회할 성싶더라. 내가 본 공연은 박정환, 김동화, 오승준이 이끄는 무대였다.
왼쪽에는 재즈를 라이브로 연주할 세션이 자리하고, 오른쪽에는 피아노 한대가, 그 사이에 원형 무대가 있다. 원형 무대는 회전식으로 문 위치가 바뀌면서 여러 장소로 사용된다. 소극장의 협소함과 단순함을 탈피한 탁월한 선택 같다. 또한 푸른빛이 감도는 무대 조명도 긴장감을 부추긴다. 백만장자의 죽음, 그의 유일한 상속녀를 찾는 금발의 비서, 여기에 탐정과 사라진 백만장자 딸의 미묘한 관계까지. 미리 알고 온 대략적인 줄거리 또한 이 뮤지컬이 홍보 카피로 강조한 ‘하드보일드 미스터리’를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그러
[공연이 끝난 뒤] 숨은 보석 오승준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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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카페이자 일본 밴드 휘시만즈의 커뮤니티 공간 ‘공중캠프’가 개관 6주년을 맞이하며 ≪스바라시끄떼 나이스쵸이스 vol.7≫을 선사한다. 어쿠스틱 포크에서 레게, 컨트리, 발라드, 솔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독특한 음악세계를 보여주는 뮤지션 하나레구미가 그 메인이다. 그동안 휘시만즈,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을 통해 명성을 쌓아온 이 뮤지션을 전혀 모른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2007년 그의 첫 내한 공연을 ‘공중캠프’에서 지켜본 초심자로서 한마디 하자면, 오히려 백지 상태에서 그 충만한 리듬과 선율을 느낄 때 환희가 더 컸다.
<백만엔과 벌레녀> O.S.T를 담당한 뮤지션 하라다 이쿠코, 포크 뮤지션 오하타 유이치, 그리고 국내 최초 정통 브라스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와 프로젝트 밴드 가을방학(줄리아하트의 정바비, 브로콜리너마저의 전 보컬 계피가 결성)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킹스턴 루디스카는 11월27일 공연에만, 가을방학은 28일 공연에만
[공연] 모르고 봐도 황홀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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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음악팬이라면 홍대 앞에서 기타 들고 노래하는 여자 중에서 ‘양양’이란 가수를 알고 있을 것이다. 2008년과 2009년에 두장의 EP를 낸 그녀는 사실 2000년에 양윤정이란 본명으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랄 것 같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그녀는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구식의 사랑 노래’를 부른다. 조심스럽고 그래서 애틋하다는 점에서 ‘구식의 사랑 노래’다. 양양의 정규 1집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장필순의 초기 앨범을 듣는 것 같다. 목소리가 닮았다는 것뿐 아니라 소소한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는 정서나 <청춘>이나 <오 사랑이여> 같은 제목이 예스러운 멋, 일종의 풍류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따뜻하다. 그리고 상냥하다. 양양은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쨍한 겨울 오후에 어울리는 음악인데 양양의 목소리와 노랫말은 기쁨의
[음반] 어른의 사랑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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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지산록페스티벌에서 나는 베이스먼트 잭스에게 살해당했다. 런던 출신 2인조 일렉트로니카 밴드가 끝내주는 댄서들을 데리고 무대에 오른 순간부터 내려간 순간까지, 다리의 잔근육 한 줄기 한 줄기가 마모될 때까지 도무지 몸을 멈출 수가 없었다. 분홍신을 신고 발목이 잘릴 때까지 춤추는 무희의 기분이었달까. ≪Scars≫는 진짜로 놀 줄 아는 밴드 베이스먼트 잭스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이다. 사실 2006년에 내놓은 ≪Crazy Itch Radio≫는 좀 실망스러웠는데 이번 앨범은 화끈한 복귀작이다.
특히 첫 싱글로 발표한 <Raindrops>와 오노 요코가 참여한 <Day of the Sunflowers>, 샘 스패로가 특유의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한 목소리를 빌려준 <Feelings Gone>이 노른자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예전의 빅네임 일렉트로니카 밴드가 별로 춤추고 싶지 않은 새 앨범을 내놓을 때마다 ‘새로운 실험’이라 지저귀던 평들이
[음반] 춤을 위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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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음악을 알려준다 지수 ★★★★☆
인터뷰 읽는 재미가 있다 ★★★★
2009년도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 최근 몇년간 혹은 지난 10년간 한국 대중음악계의 이슈를 꼽을 때 ‘인디신의 성장과 약진’을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따지는 건 좀 무의미한 것 같다. 그러니까 이른바 ‘장기하’ 때문이라든가 혹은 EBS의 <헬로루키> 때문이라고 말하긴 망설여진다는 얘기다. 아니, 망설여지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할 순 없다. 왜냐하면 인디신이든 어디든 일종의 ‘성장’이란 게 순식간에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과정과 맥락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
<한국의 인디레이블>은 한국(혹은 홍대 앞) 인디신의 역사를 레이블의 역사로 살펴보는 책이다. 이게 의미있는 이유는 인디신을 산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도이기 때문이고, 또한 커뮤니티와 시장이 뒤섞여 있는 ‘로컬신’을 음악가나 팬이 아님에도
[도서] 언니네 이발관 1집, 어떻게 만들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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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 고양이 카페에서 입양 관련 글을 보고 화가 치솟았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그 여자는 앞으로 시집도 가야 하니 키우던 고양이를 보내고 싶다 했다. 참을 수가 없어 댓글을 달았다. 대학원도 졸업하고 시집도 잘 가셔서 어디 한번 잘 살아보시라 했다. 괜한 참견을 한 것 같아 잠깐 망설였지만 후회는 없다. 대학을 졸업해서, 남자친구가 싫어해서, 시집을 가야 해서, 이사를 가야 해서, 사람들은 몇년을 키운 동물을 길로 내몰거나 보호소에 위탁한다. 이건 생명경시 풍조를 넘어선 총체적 인간성 말살 현상이다. 이게 아우슈비츠가 아니면 뭐가 아우슈비츠겠는가.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는 일본 동물보호활동가인 고마다 사에가 전국 유기동물 보호소를 돌며 찍은 사진집이다. 책의 첫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책에 실린 사진 속 동물들은 더이상 이 세상에 없다.’ 일본의 보호소에서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시간은 3일이다. 3일이 지나면 동물들은 가스실에서 고통스
[도서] 이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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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상문화연구의 생산적인 담론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가 <아시아 영화의 근대성과 지정학적 미학>을 펴냈다. 2006년 출간한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 이후 두 번째다. 한국·일본·싱가포르·중국·말레이시아·필리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필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책은 크게 두장으로 나뉜다. “1부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 이론”은 일종의 개괄적 연구서들이다. “민족, 자본, 국제성, 세계화와 연관된 동아시아 스크린 문화의 복잡한 동학의 한축을 보여준다”(김소영).
양식적 계보에 관심이 있다면 스티븐 티오가 밝히는 오즈 야스지로와 왕가위 영화의 공간적 상관성에 관한 글을, 차이밍량 영화의 여성과 도시에 관심이 있다면 펑핀치아의 글을 읽으면 좋겠다. “2부 아시아 웨스턴”은 말 그대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웨스턴을 교차시켜 읽어낸다. 한국에 만주 웨스턴이 있지만, 인도에는 커리 웨스턴, 방글라데시에는 방글라데시 웨스턴,
[도서] 아시아 영화의 오늘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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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파삭 늙었는 줄 알았는데 이제 열여덟밖에 안됐구나.”
‘어른’이 듣기엔 한대 쥐어박았으면 딱 좋겠는 얼토당토않은 신세 한탄이지만, 허언이라고 낙인찍을 수는 없다. 청소년 소설인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의 두 주인공 중 하나인 강호의 선배가 하는 저 말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부류’의 삶이라고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은근히 드러낸다. 2009년 제3회 블루픽션상을 받은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는 청춘물을 읽는 즐거움을 일깨운다.
주강호는 흔히 말하는 문제아다. 아버지가 처음 보는 아줌마를 세 번째 엄마라고 집에 들이자 집을 나왔다. 여동생이 마음에 걸리지만 어쩔 수 없다. 주유소에서 먹고 자며 학교에 가고 아르바이트를 하면 아버지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돈도 벌 수 있다. 현재 그에게 가장 절실한 소원은 오토바이를 사는 것이다. 강호의 반에 이도윤이 전학을 오면서 평온한(?) 그의 일상에 변수가 생긴다. 초
[한국 소설 품는 밤] “이 슬픔을 알랑가 모르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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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이 추운데 왜 하필 북유럽이냐는 염려는 한귀로. 헬싱키, 스톡홀름, 코펜하겐, 이렇게 딱 대표 도시만 추렸으니 그닥 문제될 것도 없었다. 그깟 도시의 추위쯤! 도시는 늘 쾌적한 빌딩과 따뜻한 온기를 제공해줄 현대인의 맞춤형 주거지가 아니었던가. 결론은 도시건 뭐건 겨울은 결코 여행자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북유럽의 겨울해는 살인적으로 짧았다. 내 기준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해볼까 하는 오후 4시(안다, 내가 좀 늦다), 이곳의 인간들은 집에 갈 채비를 완벽히 마쳤다. 북유럽 감성의 시크한 숍들에는 어김없이 ‘주중 12~4시, 토요일 12~2시, 일요일은 휴무’라는 상상도 못할 짧은 오픈시간이 정갈하게도 적혀 있었다.
어떻게 온 여행인데! 마감을 끝내고 좀비처럼 달려온 10시간 비행이었다. 지는 해의 바짓가랑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가 떠 있는 동안에 충실하면 되리라 거듭 다짐했다. 그나마 여행 날짜의 중간에 낀 스톡홀름은 괜찮은 편이었다.
[오픈칼럼] 잔인한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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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영화는 역시 뉴욕 길거리에서 끝도 없이 떠드는 ‘수다의 맛’이다.
<멜린다 멜린다> 이후 4년 넘게 유럽을 헤매다 다시 돌아온 뉴욕에서 이번엔 염세적 절망을 지혜로 위장한 채 사는 고집불통 노인을 만들었다. <왓에버 웍스>(Whatever Works, 2009)에서 보리스(래리 데이비드)는 말발, 글발 끝내주는 교수였지만 불만과 불안으로 똘똘 뭉친 나머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못한다. 자살을 시도해도 하필이면 남의 지붕 차양막으로 떨어져 죽지도 못한 채 평생 다리를 절뚝이게 되고 인생의 대부분을 카페에서 남의 탓, 세상 탓을 하는 데 쓴다. 걸핏하면 화면 밖 관객에게까지 대화를 시도하는(거기 팝콘 드시는 분 말입니다, 식의 화면을 초월한 대사는 한때 우디 앨런 영화에서 종종 보였다) 보리스는 보면 볼수록 우디 앨런의 도플 갱어다.
팥죽색 면 티셔츠와 체크 반바지를 입고 점퍼를 걸치는(버튼다운 셔츠와 치노 팬츠는 아니지만) ‘아메리칸 캐주얼’의
[그 액세서리] 우디 앨런이 아냐, 안경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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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니 르콩트의 <여행자>를 보고 스스로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김소영 감독의 <나무없는 산>에 대해 아쉬움을 적은 적이 있던 터라 이 영화에 별다른 불만이 없을뿐더러 꽤 감동을 받은 자산에게 놀랐다. 물론 <나무없는 산>이 못 만들었다는 게 아니다. 그 영화에도 충분히 감응했지만 뭔가 더 보여줄 것이 있는 상태에서 끝났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몇달 전 이 칼럼에서 나는 그 영화가 고양이나 탈진 비슷한 경험에 관객을 이르게 하기 위해 조금 더 밀어붙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오픈 엔딩이라고 해도 그 미덕은 이미 오래전에 숱한 영화들에서 비슷하게 소진한 상투형이 될 위험은 없는 것인가, 라고 질문했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여행자>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게 될 줄 스스로 예상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진희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에 버려지고 거기 적응할 즈음 프랑스 사람들에게 입양된다.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김영진의 점프 컷] 무섭고도 슬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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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행복합니다>는 가상의 꿈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는 남자의 이야기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 도박에 빠진 형에게 온갖 스트레스를 받던 주인공 만수는 상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알프스 산맥의 어느 자락, 부모님이 경영하는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미녀들과 함께 부유함을 즐기는 것이 그의 상상이다. 만수를 연기하는 배우가 현빈이라고 했을 때, 이런 과대망상은 현빈을 새삼스럽게 환기시킨다. 만수가 꿈꾸는 삶은 영락없이 ‘삼식이’의 삶이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꿈같던 남자를 연기한 배우가 모든 사람들의 악몽을 연기한 것이다. 그런데 현빈에게는 그 간극을 메우는 또 다른 결이 있다. 능력있는 드라마 PD지만, 일상적인 무게에 짓눌려 있던 <그들이 사는 세상>의 지오, 거친 운명을 살다가 처참히 죽어간 <친구, 우리들의 전설>의 동수. 순서상 가장 먼저 촬영한 <나는 행복합니다>가 뒤늦게 개봉한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지난 1년 동안 그처럼 다양한
[현빈] 만수와의 접점 위해 정신병동에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