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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삶이 통속적이므로 상업적 서사도 통속적일 수밖에 없다. 통속적 서사는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의외의 깊이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로 통속적이려면 신선해야 한다. 통속적인 소재는 변질이 쉬워서 생각보다 다루기 어렵다. <설계>는 세상이 돈에 의해 돌아가고 그로 인해 상처받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짜놓은 이야기에 신선함이 부족하다. 부유하게 자란 대학생 세희(신은경)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난다. 게다가 아버지 빚까지 떠안게 되자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렇게 노력해도 세희는 빚의 원금은커녕 이자 갚을 돈도 벌기 힘들다. 결국 세희는 화류계에 입문하고 거기서 큰손 인호(이기영)를 만난다. 사채업자 인호는 세희에게 돈 버는 방법을 하나씩 전수해주고 세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자신을 모욕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설계>에서 ‘설계’는 돈을 뜯어
“사람 위에 돈있고, 돈 위에 사채업자가 있다”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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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아픔을 겪었다는 것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필수적인 것일까. 송지수(김선영)는 그렇다고 믿는 사람인 것 같다. 지수는 누군가와 사랑을 나눌 때마다 그 사람을 잃는다. 그녀는 지금 막 또 한명의 애인을 잃은 참이다. 살인사건과 관련된, 그녀가 마주보기 두려워하는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늘 그녀 주변을 어른거린다. 지수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정신과 의사 준상(홍경인)의 존재를 알게 된다. 준상의 사별한 아내는 괴한에게 강간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호기심이 생긴 지수는 준상이 운영하는 병원을 찾아가기로 한다.
상처 입은 두 남녀의 결합이라는 스토리는 예상 가능하다. 영화는 여기에 지수의 트라우마와 관련된 한 인물을 삽입한다. 그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영화는 지수와 준상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몰두하는데 작위적인 설정과 성급한 관계의 점프 등으로 관객의 집중력을 오래 끌고 가진 못한다. 준상 역시 의사이기 이전에 치료가 시급해 보이는 환자인 탓에 이들을 둘러싼 성적인
상처 입은 두 남녀의 결합 <욕망의 독: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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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시티: 다크히어로의 부활>은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두편에 새로 만든 이야기 두편을 덧붙여 만든 영화다. 씬 시티의 지배자 로어크에게 도전하는 도박사 조니(조셉 고든 레빗), 로어크의 음모로 연인 하티건(브루스 윌리스)을 잃고 복수를 꿈꾸는 스트립댄서 낸시(제시카 알바), 옛 연인 아바(에바 그린)의 유혹에 빠져 위기에 처한 사진가 드와이트(조시 브롤린), 낸시와 드와이트를 돕는 추악한 얼굴의 마브(미키 루크)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원작자 프랭크 밀러가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함께 다시 한번 감독을 맡은 <씬 시티: 다크히어로의 부활>은 겉으로 보기에는 나무랄 데가 없다. 한컷 한컷 향수 광고를 찍듯 공들인 여체(女體)의 관능미, 빗방울처럼 후두둑 떨어지는, 파편처럼 흩어지는 액션. 9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3D 효과를 더한 <씬 시티: 다크히어로의 부활>은 눈을 위한 성찬(盛饌)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제시카 알바의 육체는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9년 만에 돌아온 속편 <씬 시티: 다크히어로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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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지만 가난한 갸리(타히 라힘)는 위험을 감수하고 원자력발전소 직원으로 취직한다. 그의 일상은 이제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이다. 하지만 경력이 오래된 질(올리비에 구르메)이나 토니(데니스 메노체트)는 믿을 만한 선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갸리는 토니의 젊은 애인 카롤(레아 세이두)과 사랑에 빠진다. 갸리와 카롤은 토니의 눈을 피해 그들만의 정사를 벌이곤 한다. 이내 더 큰 문제가 찾아온다. 카롤이 갸리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갸리는 사고로 방사능에 오염된다. 갸리는 카롤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 하지만 카롤은 토니에게로 돌아가 결혼하기로 한다. 갸리는 모든 걸 잃게 될 상황에 놓인다.
<그랜드 센트럴>은 프랑스의 여성감독 레베카 즐로토브스키가 연출했다. 갸리 역은 <예언자>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등으로 이젠 우리에게도 낯익은 배우 타히 라힘이 맡았고, 카롤 역은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등을 통해 잘 알려졌고 지금은 스타의 반열에 오른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치명성 <그랜드 센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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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조국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에 눈물 짓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적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조국의 말과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애쓰며, 고립된 공동체 안에서 어디에도 완벽히 환원되지 않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한다. 박사유 감독과 재일조선인 3세 박돈사 감독의 <60만번의 트라이>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는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2006)를 통해 먼저 소개된 바 있는데 이 영화가 ‘홋카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을 담고 있었다면, <60만번의 트라이>의 중심에는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가 놓여 있다. 2007년, 오사카시가 갑작스럽게 오사카조교 운동장을 시소유지라 주장하며 소송을 걸어오자 재일조선인들을 중심으로 운동장을 지키기 위한 서명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이를 취재했던 박사유 감독의 눈에 우연히 운동장에서 훈련하고 있던 오사카조교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 <60만번의 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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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 이외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들이 정사각형의 폐쇄공간에 모여 살고 있다. 사방을 둘러싼 수십 미터의 벽 뒤엔 끝을 알 수 없는 미로가 펼쳐져 있고 탈출방법은 오직 미로를 빠져나가는 것뿐이다. 이른바 ‘러너’로 뽑힌 아이들이 밤에만 출현하는 정체불명의 괴물 그리버를 피해 조금씩 미로의 지도를 그려나가길 꼬박 3년, 어느 날 기억을 잃은 또 한명의 소년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가 등장하며 상황은 급변한다. 폐쇄공간에 차츰 적응하던 아이들은 이제 탈출이냐 죽음이냐를 선택해야만 한다.
제임스 대시너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메이즈 러너>는 3부작을 전제로 한 디스토피아 SF 액션이란 점에서 얼핏 <헝거게임> <다이버전트>를 연상시킨다. 결정적 차이는 소녀들의 혁명이 아니라 소년들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는 점인데 딜런 오브라이언, 윌 폴터, 토머스 생스터 등 떠오르는 훈남으로 알차게 채운 캐스팅만 봐도 이 영화의 공략 포인트가 어딘
끝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소년들 <메이즈 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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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유어 달링> Kill Your Darlings
감독 존 크로키다스 / 출연 대니얼 래드클리프, 데인 드한, 벤 포스터, 잭 휴스턴, 마이클 C. 홀, 엘리자베스 올슨 / 수입 (주)수키픽쳐스 / 배급 (주)영화사 진진 / 개봉 10월16일
킬 유어 달링! 도발적인 이 제목은 윌리엄 포크너, 스티븐 킹 등의 작가들이 학생들에게 “글을 쓸 땐 사적인 감정을 제거하라”고 조언한 데서 따왔다. 영화에선 비트 세대의 대표 문학가들과 그들의 뮤즈였던 루시엔 카, 이들의 곁을 맴도는 또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를 암시하는 뜻으로도 쓰였다. <킬 유어 달링>은 1950년대 미국의 저항적인 청춘 문화를 이끈 작가들인 앨런 긴즈버그, 잭 케루악, 윌리엄 버로스의 대학 시절 이야기다. 1944년, 대학에 갓 입학한 앨런 긴즈버그(대니얼 래드클리프)는 묘한 매력으로 사람을 끄는 루시엔 카(데인 드한)와 가까워진다. 앨런과 루시엔은 뜻이 맞는 또 다른 친구들, 잭(잭 휴스턴), 윌
[Coming Soon] 1950년대 미국의 청춘 문화를 이끈 작가들 <킬 유어 달링> Kill Your Dar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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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이제는 거의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같은 화재 경고 표어처럼 흔한 관용구가 되었다. TV드라마와 예능에서도 단골 멘트로 등장한 지 오래됐다. 9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이 삶의 구호는 동일성을 강제하는 전체주의적 체제에 대해 존재와 욕망의 다양성을 대립시키는 꽤나 매력적인 선동이기도 했다.
90년대 풍경은 사뭇 도전적이었다. 동성애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차이의 정치학’을 주창하며 존재를 가시화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이 모든 동일성의 권위를 조롱했으며, ‘취향의 다양성’이란 구호는 단조로운 삶의 밀도에 활기를 부여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흘러, 서로 논쟁을 벌이다 간격이 좁혀지지 않으면 쿨한 표정을 지으며 “취존하시죠”라고 말하게 됐다. 취향을 서로 존중해 입을 다물자는 것이다. 더이상 논쟁을 지속하거나 말마디를 얹으면 눈치 없는 꼰대로 치부되기 일쑤다. 어느덧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당의를 입은 채 ‘다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취향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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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애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누누이 말해왔지만 마이클 더글러스와 맷 데이먼이 출연한 <쇼를 사랑한 남자>는 모처럼 마음에 든 멜로드라마였다. 70년대 미국의 인기 피아니스트 리버라치와 시골 청년 스콧 토슨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권태기를 지나 ‘더럽게’ 이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거였다. 이야기를 굳이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주변인이 오지랖 부리거나 사고 치지 않아서, 출생의 비밀이나 운명의 장난이 끼어들지 않아도 두 사람의 감정과 관계가 변해가는 게 결국 그 둘 때문이라서.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을 둘러싼 현실의 문제들이 점점 뚜렷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에 대한 감정과 관계에 대한 판단 역시 분명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고민할 건 하나다. 나의 사랑으로 무엇을, 혹은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상대의 싫은 버릇을 참아 넘기고, 사소한 무언가를 포기하고, 자잘한 것들을 양보할 수 있다면 아직은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서
[최지은의 TVIEW] 결국 사랑과 이별은 둘 사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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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여자가 남자에게 오럴섹스받는 것을 불편해한다. 하지만 미국영화협회가 편집하도록 한 그 장면은 <찰리 컨트리맨>의 두 캐릭터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 이 사례는 여성들이 섹스를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만드는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찰리 컨트리맨>의 북미 개봉에 즈음해서 에반 레이첼 우드의 SNS에 올라온 말이다. 이제 막 개봉한 신작을 홍보해야 하는 여배우가 난데없이 여성의 성적자율권을 주장하며 불평하다니. 꾸준히 ‘마이웨이’를 걸어온 우드다운 반응이다. <찰리 컨트리맨>에서 우드는 분방한 첼리스트이자 마피아의 매력적인 연인인 개비를 연기한다. 찰리(샤이아 러버프)가 개비에게 한눈에 반해 목숨을 걸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무리한 설정도 짙게 화장한 개비의 눈을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 우드가 가진 특유의 카리스마 덕이다. 하지만 그녀의 카리스마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극
[에반 레이첼 우드] <찰리 컨트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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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라드. 1998년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리버풀에서만 쭉 뛰고 있는 원 클럽 맨. ‘리버풀의 심장’이라 불리는 것도 그래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차범근축구교실 1기로 축구를 시작해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학원 축구선수로 뛴 바 있는 권율은 그의 열렬한 팬이다. “제라드는 물론이고, 지난 시즌을 마치고 고향 덴마크로 돌아간 리버풀 부주장 아게르처럼 팀에 대한 충성이 높은 선수를 존경한다.”
스티븐 제라드가 ‘일편단심 리버풀’인 것처럼 <명량>에서 권율이 연기한 이회 역시 ‘일편단심 아버지 이순신’이다. 정쟁을 일삼는 조정과 임금 때문에 갖은 고초를 겪고도 위기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전장에 나가려는 아버지 이순신(최민식)을 믿고 따르는 아들. 그런 아버지에게 “왜 싸우시려는 겁니까?”라고 묻고 또 묻는 혈기왕성한 청년. 부상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지 못하는 바람에 뭍에서 전쟁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백성.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권율은 지금이 아니면 이
[권율] <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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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4 <만일의 세계> <마녀> <미성년> <거인> <서울연애>
2013 <어떤 시선> <우리 선희>
2012 <레몬타임> <동면의 소녀> <졸업여행>
2010 <여행>
“가까이 오지 마. 찌를 거야.” <마녀>의 세영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두를 찌른다. 그녀를 캐스팅한 유영선 감독에게 배우 박주희의 첫인상은 차갑고 날카로운 바늘 같았다. 사실 이전 작품 속 그녀는 병역거부자를 사랑하는 순정녀이거나 단정한 교복을 입은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직장 상사를 괴롭히는 ‘사이코’ 라니. “역할을 맡으면 비슷한 작품을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하는 편이다.” 이러한 노력이 장편 데뷔작이자 공포영화인 <마녀>를 능숙하게 소화한 힘이지 않았을까. 박주희는 <서울집>으로 제30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연기상을, <만일의 세계>
[who are you]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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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4일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로 약 1개월 빠른 시작을 알렸던 미국 여름 극장가는 지난 9월1일 노동절을 끝으로 장장 5개월에 걸친 시즌을 마감했다. 과연 2014년 여름 극장가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일까. 우선 올여름은 혹독했다. <아이언맨3>와 <슈퍼배드2> 등이 개봉한 지난해에 비해 대형 블록버스터 속편의 개봉이 적었던 올해는 수익 면에서 15% 이상 감소했으며, 판매된 티켓은 지난 20년 중에서 최저를 기록했다. 1억달러 고지를 넘은 영화들도 지난해 19편에 비해 올해는 14편에 그쳤다. 특히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고도 미국 내 흥행에 참패한 톰 크루즈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개봉한 7월은 최악이었다. 지난해에 비해 30% 이상 수익이 감소했으며, 이중 가장 중요한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7월4∼6일) 박스오피스는 지난해에 비해 무려 45%나 하락했다. 7월 말부터 순차적으로 개봉한 <루시>와 <가디언즈
[뉴욕] 혹독했던 여름, 그래도 승자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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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에서는 문래창작촌 예술가를 대상으로 포트폴리오 제작 워크숍을 개최한다. 9월부터 12월까지 4기로 나누어 진행된다. 수강생 모집기간은 8월18일(월)부터 9월11일(목)까지. 신청서를 작성한 뒤 담당자의 이메일(yonsyons@sfac.or.kr)을 통해 접수하면 된다. 신청서 양식에 관해서는 담당자에게 문의(yonsyons@sfac.or.kr, 02-2676-4300).
*2014년 CJ E&M 버터플라이 프로젝트 공모전이 열린다. 역량 있는 신인감독의 데뷔를 돕는 ‘버터플라이 프로젝트’는 올해부터 장르와 예산 규모에 제한 없이 신인감독의 참신한 도전, 예민한 감성, 생생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발한다. 자세한 공모요강 및 지원방법은 홈페이지(http://www.cjenm.com/butterfly/butterfly.html) 참조. 접수 기간은 10월20~27일이다.
*아시아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마켓, ‘인천 다큐멘터리 포트 2014’에
[소식] 2014년 CJ E&M 버터플라이 프로젝트 공모전이 열린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