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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박이 2013년 11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창비 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한 만화 모음으로, 선거철이면 화살처럼 쏟아지는 “경상도, 도대체 왜 그러냐?”라는 질문에 대한 경상도 토박이 김수박 작가의 대답이다. 유머감각으로 버무려낸 작가의 1980년대 유년 시절, 먹고살기에 바빴던 경상도의 풍경을 감상하다보면 오랜 반목의 뿌리를 더듬어낼 수 있다. 작가는 지역감정을 부인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개인의 역사를 통해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을 독자에게 전달하려 할 뿐이다.
[도서] “경상도, 도대체 왜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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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청년 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 파트리크 모디아노는 이 작품에서 15년, 혹은 20년, 아니 그 이상이거나 그 이하이거나에 상관없이 ‘시간이 멸해버린 나보다 더 많은 나를’ 찾아 나서고 있다. 비록 이제는 사라져버렸지만 화자와 등장인물들의 추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발베르 학교를 배경으로 지나간 세월을 이야기한다.
[도서] 작가의 청년 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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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시인의 말에 따르면 “돈이 자본주의의 꽃이라면, 시는 인간 정신 혹은 인간 언어의 꽃이다”.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돈 詩>는 같이 피는 법이 별로 많지 않아 보이는 두 꽃을 나란히 꽂아두고 완상하는 글모음이다. 문정희 시인의 <성공시대>는 이렇게 흐른다. “어떻게 하지? 나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 대형냉장고에 가득한 음식/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상표들/사방에 행복은 흔하기도 하지. (후략)” 약간의 돈으로 맛볼 수 있는 행복의 감정. 시인은 성공하고 말았다 웃으며 덧붙인다. “이제 시만 폐업하면 불행 끝.” 뭐든 손닿는 데 있는 세상에서 돈이 되지 않는 어떤 것을 사랑하여 겪는 어려움. 시뿐 아니라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문제이겠으나 천양희 시인은 시가 저축이라며 운을 뗀다. “시를 쓰니 세상에 빚 갚는 것이고/ 의지할 시를 자식처럼 키우니 저축 아닌가.”
고은 시인의 <재회>라는 시는 돈의 근본적 성
[도서] 돈도 쓰고 시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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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제한상영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자가당착>)가 7월10일 대법원으로부터 제한상영가 최종 취소 판정을 받았다. <자가당착>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두 차례(2011년 6월14일, 2012년 9월22일)나 제한상영가를 받았고 여기에 불복한 감독은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2013년 5월10일)한 바 있다. 그 뒤 영등위는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등법원에 이어 대법원 상고까지 이어갔으나 결국 패소했다. 김선 감독은 <자가당착>의 제한상영가 등급은 취소됐을지 몰라도 제한상영가를 둘러싼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최종 승소한 소감부터 물어야겠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씁쓸하다. 대법원 판결 이유도 고등법원과 같은데 당연한 싸움을 2년간 끌었다. 영등위에 분노가 치민다. 영등위가 대법원 상고까지 하는 걸 보면서 상영 금지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정치 풍자를 두려
[flash on] 이겼지만 계속 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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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감독은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독립장편영화 <고갈>(2008) 조감독과 <똥파리>(2008) 제작부를 거친 뒤 단편 <얼어붙은 땅>(2010)으로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에 초청됐던 그는 이후 <밤벌레>(2012), <도시의 밤>(2012) 등을 만들며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다. 그의 첫 번째 장편 <거인>은 바로 그 지난 시간들을 결산하는 듯한 느낌의 영화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은 이제 드디어 치유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탕웨이의 남편’이기도 한 김태용 감독과 동명이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시민평론가상과 올해의 배우상(최우식)을 수상하며 작품 그 자체로 더 각인된 것은 물론이다.
-<거인>은 거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룹홈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때 겪었던 일들이 주요한 모티브가 됐다. 처음에는 그를 둘러
[flash on] 눈높이 낮추고 책임감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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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4년째 ‘1일 1초’ 비디오를 찍고 있다. 휴대전화기로 매일 찍은 동영상 중에서 오늘을 가장 잘 보여주는 ‘1초’를 선정한 다음 그걸 이어 붙이는 방식이다. 별것 아닌 영상들이다. 사람을 찍을 때도 있고, 하늘을 찍을 때도 있고, 바람이나 빗줄기를 찍을 때도 있다. 별거 아닌 영상들이지만 1년이 365초로 간략하게 압축된다. 10년쯤 찍은 다음 3650초를 한꺼번에 이어서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겐 지루한 예술영화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10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동영상 일기장 같을 것이다.
1일 1초 프로젝트는 독창적인 기획은 아니다. 누가 제일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고, 나 역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1초씩 찍고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계속 찍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1초로 영상을 만드니까 나는 0.5초로 해볼까 아니면 좀더 길게 2초로 해볼까’ 처음엔 고민을 했는데, 결론은 역
[김중혁의 바디무비] 순간에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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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소년’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세상이 해리 포터군을 잊을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느니, ‘머글’스러운 근면성으로 다양한 작품과 인물에 투신하는 편을 선택했다. 그간의 부지런한 여정이 있었기에 <킬 유어 달링>의 1940년대 컬럼비아 대학의 풍경이 환기하는 호그와트의 추억은, 관객에게 실소 대신 감회 어린 미소를 자아낸다. 아이비리그풍으로 차려입고 뿔테 안경을 쓴 래드클리프, 고풍스런 기숙사, 도서관의 금서 구역에 잠입하기 위한 소동, 그리고 무엇보다 동성애와 문학적 이상이라는 마법으로 이루어진 비밀스런 세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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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보이후드>가 일으킨 선풍이 영화 자체의 특별함보다 제작 방식의 희소성에 기대고 있다는 불평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보이후드>가 ‘태도 점수’를 빼면 남는 게 없는 평이한 드라마라는 감상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가령 메이슨(엘라 콜트레인) 역에 연령대가 다른 여러 명의 배우를 캐스팅해 통상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처음은 체험, 두 번째는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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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시온의 이전 영화들과 가깝고도 먼 묘한 매력의 영화다. 야쿠자 보스 무토(구니무라 준)는 출소가 다가온 아내를 위해 딸 미츠코(니카이도 후미)를 영화에 데뷔시키려 한다. 하지만 제멋대로에다 연기력도 엉망인 딸로 인해 촬영은 번번이 무산되고, 무토는 직접 영화 제작에 나서려 한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만년 감독 지망생 코지(호시노 겐)가 이끄는 ‘퍽 보머스’에 연출을 맡긴다. 그들에게 인위적인 연출이란 없다. 그렇게 무토파와 그들의 라이벌 이케가미파의 결전을 실시간으로 담는 액션영화 촬영이 시작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킬 빌>(2003)을 시작하며 ‘후카사쿠 긴지 감독에게 바친다’고 했다. <지옥이 뭐가 나빠> 또한 그를 ‘계승’하는 것 같다. 영화 제목이 뜰 때 흘러나오는 오프닝 음악도 바로 후카사쿠 긴지의 <의리 없는 전쟁>(1973) 테마곡이며, 영화에 등장하는 파출소의 이름도 무려 ‘후카사쿠 파출소’다. 한편으로 <지옥이 뭐가
소노 시온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지옥이 뭐가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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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의 내레이션이 2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썼던 편지를 들려준다. ‘신’을 찾아 무녀가 된 옛 연인에게, 남자는 당시의 결정이 회피였다고 이른다. 그리고 이제 그녀가 말했던 신보다 더 구체성 있는 ‘새로운 신’을 찾아내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렇게 남자는 홀로 내면의 여행을 시작한다. 신을 찾아 떠나는 그의 여정은 근대의 산업발전 모순과 연관돼 있고, 때론 숭고한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 느껴진다.
다큐멘터리 <철의 꿈>은 연인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에서 시작해 바다라는 공간을 두고 펼쳐지는 영적인 흐름, 근대의 역사 탐구에 이르는 거대한 연결고리를 잇는 일종의 에세이 필름이다. 주인공이 처음 당도한 장소는 한국 최고(最古)의 암각화가 수몰된 울산의 산기슭이다. 바위에 새겨진 고래잡이 벽화는 댐건설로 물에 잠긴 상태다. 이렇듯 산업이 앗아간 유산은 고래의 이미지로 바뀌고, 이후 동굴의 모습과 흡사해 보이는 조선소에서 태어나는 선박의
두려운 것을 바라보는 용기 <철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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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를 비롯해 말하는 기관차들이 살고 있는 소도어섬. 철도가 없었던 옛날, 용맹했던 고드레드왕은 백성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드레드왕의 황금왕관은 도둑맞았고 그가 살았던 울프스테드 성터는 현재 소도어 백작의 땅이 되었다. 세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소도어 백작은 성 재건 계획을 세운다. 토마스와 친구들은 성 재건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러던 중 소도어 백작이 초기 증기기관차인 스티븐을 데리고 온다.
영국의 목사 윌버트 오드리가 홍역으로 고생하는 아들을 위해 시작한 기차 이야기는 1945년 책으로 출판된 뒤 1984년 TV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전세계 130여국에서 방영되었다. 극장용 영화는 2000년 <토마스와 마법기차>를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만들어져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토마스와 친구들: 잃어버린 왕관>도 어린이들을 위한 교훈적인 내용이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토마스는 스티븐한테 당신도 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거짓말을 한다. 자신도 쓸모
어린이들을 위한 교훈 <토마스와 친구들: 잃어버린 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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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로버트 드니로)의 신뢰를 받고 있는 킬러 잭(존 쿠색)은 이상한 임무를 맡는다.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검은색 가방 하나와 함께 시골 모텔의 13호실을 찾아가라는 것이다. 쉬워보이는 임무이지만 한 가지 조건이 더 주어진다. 가방을 절대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 그렇게 잭은 찝찝한 기분을 안고 모텔로 향하는데 일은 삐걱대기 시작한다. 다른 킬러가 가방을 노리는 것은 물론, 의문의 여인이 자신을 구해달라는 등 변수가 속출하는 것이다.
로버트 드니로와 존 쿠색의 호흡으로 눈길을 끄는 <룸13>은 다음 사건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빠른 전개와 몇 차례의 반전이 있는 범죄물이다.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가방의 내용물을 볼 수 없다는 규칙이다. 혼자 있는 방에서 가방 한번 열어보는 게 어려울 리 없지만 잭은 이상할 정도로 명령을 따르며 의외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깡패들의 침입과 경찰의 수사라는 위기 속에서도 끝내 가방을 열지 않아 극의 긴장과 관객의 궁금증을 극대화하
로버트 드니로와 존 쿠색의 연기 대결 <룸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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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낮은 어디로 가요?” 아이가 묻자 아빠가 답한다. “잠을 자겠지.” 아이가 다시 묻는다. “그러면 달은 낮에 어디로 가요?” 아빠는 달이 지구 주변을 돈다고 답하지만, 달에 사는 달사람은 혜성을 타고 지구에 온다. 달을 정복하고 싶은 대통령은 달사람을 체포하려 하고, 천재 발명가 반센 박사는 대통령을 위해 로켓을 만들라는 요청을 받는다. 우주정복을 꿈꾸는 대통령과 달로 돌아가고 싶은 달사람은 모두 반센 박사의 로켓이 필요하다. 한편 매일 밤 달사람을 보며 잠들던 아이들은 달사람이 사라지자 잠을 자지 못한다.
캐릭터의 털 한올까지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해내는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이 유행인 요즘 슈테판 셰슈 감독의 <달사람>은 정반대의 길을 간다. <달사람>은 다락방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손때 묻은 동화책에 가깝다. 파란 윤곽선의 거친 묘사가 전부인 달사람은 마치 사인펜으로 스케치만 끝낸 그림책에서 튀어나온 듯 단순하다. 대신 어두운 숲을 몽환적
손때 묻은 동화책 같은 애니메이션 <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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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초 준가족은 카자흐족을 학살한다. 사르타이(아실칸 톨예포프)의 부모도 준가족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성인이 된 사르타이는 복수를 꿈꾸지만 라킴잔이 이끄는 카자흐족은 더이상 준가족과의 분란을 원치 않는다. 사르타이는 콜란(쿠랄라이 아나베코바)과 타이마스(아얀 유텝버겐)와 함께 젊은 카자흐인을 모아 준가족에 대항하려고 한다. 그를 곁에서 지켜보던 라킴잔의 딸 제레(알리야 아누아르베크)는 사르타이와 사랑에 빠진다.
감독 아칸 사타예브의 <1000: 최후의 전사들>은 카자흐스탄의 아니라카이 전투를 소재로 한 액션활극영화다. 국내외에서 ‘카자흐스탄판 <300>’이라는 카피가 심심찮게 쓰인다. 하지만 <300>과 <1000: 최후의 전사들>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눈에 띄는 영화다. 전자가 300명이 1만명을 무찌르는 화려한 전투 장면에 중점을 둔다면 후자는 사르타이라는 한명의 영웅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1000: 최후의 전사들
‘카자흐스탄판 <300>’ <1000: 최후의 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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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국에서 가장 이름난 동화작가였던 토미 웅거러. 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동화 작가라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조롱과 냉소를 퍼붓는 록스타가 연상된다. 단지 외모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동 도서에 금기시된 것들을 깨려고 시도해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는 박쥐, 문어, 뱀 등 ‘비호감’ 동물들을 동화 속 주인공으로 적극 캐스팅했다. 당대의 가수들처럼 그 역시 혁명가였다. 1960년대 가수들이 록으로 한 것을 그는 아동 도서로 그리했다. 최고의 위치에 있던 그가 돌연 종적을 감춘다. 20여년 뒤인 2008년. 대중의 기억 속에서 멀어진 그가 동화작가로 다시 돌아온다. 감독은 그의 퇴장과 복귀의 미스터리에 대한 궁금증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에 착수한다.
다큐멘터리는 토미 웅거러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펼쳐놓는 데 주력한다. 그 가운데 굵직한 세계사가 뭉텅뭉텅 잡힌다. 웅거러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위치한 알자스 지방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하의 폭압적인 상황을 체험한다. 독일과 프랑스
동화 작가 토미 웅거러의 삶 <토미 웅거러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