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겉뜻 많이 팔아달라는 주문(注文)
속뜻 많이 팔겠다는 주문(呪文)
주석 사장이 직접 출연해서 자사 상품을 선전하는 광고들이 있다. 제품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목적이라고 하는데, 그보다는 광고비를 절약하려는 의도가 더 커 보이는 B급 광고들이다. 크게 히트한 광고 중에는 우리 “돌침대는 별이 다섯개” 하는 광고도 있다. 좀 험하게 생긴 어른이 나와서 따지듯 말하는데, 예전 버스에서 험한 행상인들이 “여러분 앞에 서있는 이 사람은 큰집에서 오래 살다 와서 별이 주렁주렁~” 뭐 이런 추억의 장면이 떠올라 웃음 짓기도 했더랬다.
또 하나 인상적인 광고가 산수유 광고다. 촌스러운 사장님이 사무실에 앉아서 카메라를 의식하는 게 확연한 각도로 얼굴을 꼬고는 부산 사투리로 말한다.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정력이란 단어를 쓰고 싶은데, 꼭 쓰고는 싶은데, 검열에 걸릴까봐 걱정된다는 게 그 광고에 숨은 메시지다.
‘정말, 엄청,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방법이 없네
-
에피퍼니(epiphany)라고 들어봤는가? 그리스어인데, “드러나다”란 뜻이다. 성서에서는 주님이 그 모습을 인간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강림하심” 정도 되겠다. 좀더 멋진 단어로는 ‘현현’(顯現)이 있다.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다”에 방점이 찍힌 번역어다. 하지만 문학쪽에서의 에피퍼니는 “드러나는 주님”보다는 “그 모습을 본 인간들의 놀라움”에 방점을 맞춘다. 그래서 옛날 옛적 내가 열심히 문학공부를 할 때만 해도 에피퍼니는 깨달음/깨우침(enlightenment) 정도로 배웠다. 그리고 그 깨달음엔 전제조건이 있다. “(큰 사건이 아니라) 사소하고 일상적인 사건들 속에서 깨닫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이어야 한다는 것. 즉, 6•25 전쟁이나 나치 홀로코스트를 통해서 전쟁의 비인간성과 인류애의 소중함을 깨닫는 게 아니라, 저녁 반찬으로 뭘 해먹을까 궁리하다가 쌀통에 쌀이 없는 걸 보고 “아, 내가 쌀도 없는 주제에 반찬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라고 깨닫는
[곡사의 아수라장] 갑자기 나타난 노루와 만나다
-
김태희(왼쪽에서 세 번째) 감독이 배우 박정민과 리지(왼쪽부터)에게 찍어야 할 신을 설명하고 있다.
드라마 마지막 화, 정민의 머리를 자르는 리지.
8월13일 서울시 청파동의 한적한 주택가. 기린픽쳐스가 제작하는 또 다른 6부작 웹드라마 <모모살롱>(감독 김태희/작가 민예지/촬영 조영직) 마지막 촬영현장을 찾았다. <모모살롱>은 동네 1인 미용실을 운영하는 밝고 씩씩한 20대 여자 헤니(리지)와 미용실을 찾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미생 프리퀄>을 연출해 웹드라마가 익숙한 김태희 감독은 “미용실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모모살롱>에서 미용실 주인 헤니 역을 맡은 아이돌그룹 애프터스쿨의 리지와 매번 취업에 떨어지지만 헤니의 응원을 받아 용기를 얻는 창균 역의 배우 박정민의 인터뷰를 덧붙였다. <모모살롱>은 네이버 TV캐스트에 9월2일 첫
[씨네스코프] <모모살롱> 촬영현장
-
우희(천우희, 왼쪽)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재홍(안재홍). 천우희와 안재홍은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윤성호(가운데) 감독은 두 배우에게 테이크마다 설정을 추가로 주문했다. 윤성호 감독과 처음 작업한 천우희는 “설정이 추가될수록 재미있더라” 하고 말하며 만족해했다.
배우 최필립(오른쪽)이 우희의 단골 카페 아르바이트생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그는 윤성호 감독의 전작 <출출한 여자>(2013)에서 최필순 과장 역을 맡았었다. “윤성호 감독이 하루만 시간을 내달라고 해서 출연하게 됐다. (웃음)”는 게 최필립의 설명.
안재홍에게 설정을 주문하고 있는 윤성호 감독. 안재홍은 지난해 겨울 윤성호 감독의 전작 <썸남썸녀>에 출연해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다.
화장실 갔다온 손으로 우희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재홍. 윤성호 감독은 “전작 <출출한 여자>가 연애, 일 등 모든 것에 허기가 찬 여자의 이야기라면 <출중한 여자>는 부족
[씨네스코프] 웹드라마 <출중한 여자> 촬영현장
-
-
[정훈이 만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바다의 전설
[정훈이 만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바다의 전설
-
무대에 불이 켜진다. 짧은 티셔츠에 밑위가 짧은 바지 때문에 배꼽을 드러낸 여자들이 오간다. 한 남자가 그 배꼽들에 홀려 있다. 불이 꺼졌다 켜지자 이번에는 다른 남자가 미술관 근처에 있다. 십대 소년이 그에게 발자크, 베를리오즈, 위고, 뒤마의 얼굴이 새겨진 가면을 내민다. 이렇게 한명씩 등장인물들이 소개되고, 그들은 때로 둘, 혹은 셋, 혹은 넷이 모여 대화를 하고 파티에서 어울린다. 이제 이야기는 언제 시작하지?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는 분량이 길지 않기도 하거니와(149쪽) 각장의 길이가 두어 페이지에 불과해서 여백도 꽤 많다. 하지만 초반에는 책장을 넘기는 데 버퍼링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물이 하나씩 등장하고 퇴장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연극을 보는 듯하고, 번화가의 커피숍에서 창밖 사람들을 응시하는 기분도 든다. 그러고는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말이 오간다.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의미 있는 농담
-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의 유작.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 과정인 ‘클레멘트 코스’가 전세계에 확장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삶의 기반을 잃고 목표 없이 휘청거리는 사람들, 정신적으로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인문학과의 만남은 자신만의 자유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도서] 자신만의 자유를 찾는 계기
-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담긴 <자살의 전설>은 프랑스 메디치상을 비롯해 전세계 12개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11개국에서 ‘올해의 책’에 40회 선정됐다. 하나의 중편과 5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다.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30여년에 걸쳐 이를 아프게 반추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는 마침내 여섯개의 문을 통해 아버지와의 상상 만남을 시도한다.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부재, 아버지와의 휴가, 아버지의 여인, 아버지와의 화해의 과정을 통해서.
[도서] 여섯개의 문
-
세월이 가고 인류 문명이 발달해도 변치 않는 것이 있다. 카카오 재배농민의 열악한 삶도 그중 하나다. 카카오에 얽힌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자 노력한 이 책에는 카카오 원두를 지불 수단으로 사용했던 중앙아시아와 그 기록을 남긴 알렉산더 폰 훔볼트부터 어떻게 유럽이 카카오를 식민지에서 들여오고 소비했는가 등이 실려 있다.
[도서] 변하지 않는 것
-
이 책은 1년에 (일이나 공부와 무관한) 책을 3권 이하로 읽는 독자에게 권할 만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자녀의 독서를 장려한답시고 책상 앞에 앉혀놓는 부모라면 누워서 읽어도 괜찮다는 조언에 귀를 기울여보라. “독서는 마음의 몫이다. 그래서 ‘한번 책을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침식을 잊는다’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기왕에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잊었다면 아예 몸을 잊는 것이 독서의 이상이 아닐까? 물론 가장 편한 자세여야 할 것이다.”
책과 가까운 독자라면 “책을 읽지 않는 ‘독서술’’’이라는 신통방통한 장을 주목할 것. 읽을 책을 선택하는 것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특히 문학에 관해서라면 한번쯤 한 작가의 작품만 읽어보기를 권하는데, 특정 작가와 동시대를 걸으며 함께 나이들어간다면 유행하는 작품만을 따라 읽어서는 맛볼 수 없는 독서의 진면목을 경험하게 된다. 어려운 책을 읽는 ‘독파술’ 대목도 흥미롭다. 글에 비해 내가 너무 무식한가 고민한 적이 있는 숙련된 독자라면, “쓰고
[도서] 누워서 읽어도 괜찮다
-
노무현 시민학교 유정아 교장은 요즘 영화제 준비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다. 노무현 시민학교가 ‘다섯개의 민주주의: 인권, 노동, 정의, 진보, 화해’를 주제로 한 영화제 ‘사람사는 세상 영화축제’를 8월25일부터 29일까지 서울극장에서 연다. 노무현, 바웬사, 링컨, 올로프 팔메, 넬슨 만델라 등 깨어 있는 시민정신을 소중하게 여겼던 다섯 정치인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 <바웬사, 희망의 인간> <킬링 링컨> <올로프 팔메>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이 각각 상영된다(상영 일정은 노무현재단 홈페이지(www.knowhow.or.kr) 참조).
-영화제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준비는 잘되고 있나.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령 5주기 추도식에 맞춰 5월에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때문에 8월로 연기됐다. 지금은 최종적으로 행사를 점검하고 있다. 빈틈없이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끼리 긴장을 많이 하고 있다
[flash on] 깨어 있는 시민만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
-
8월29일 경찰청 인권센터에서 열리는 제3회 경찰인권영화제는 경찰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시민들에게 한 발짝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기획됐다. 일년마다 바뀌는 센터장직에 올해는 손장목 총경이 선임됐다. 손장목 총경은 경찰대학교 6기로 졸업했고, 런던대학 대학원에서 형사정책학을 전공했다. 제주지방경찰청 홍보담당관, 경기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을 역임했고 현재 경찰청 인권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며 제3회 경찰인권영화제를 이끌고 있다.
-영화제의 세 번째 책임자로서 어떤 변화를 모색했나.
=올해는 경찰관 부문과 시민 부문을 나누어서 작품 접수를 진행했다. 꾸준히 경찰인권아카데미도 진행 중인데 이와 연계한 부대행사를 늘렸다. 8월28일엔 유지나 영화평론가가 ‘영화, 여성 그리고 인권’이라는 주제로, 29일엔 김경형 감독이 ‘영화 속 인권’을 주제로 강의를 한다.
-올해 출품작의 경향은.
=시민들의 참여가 조금 더 활발해졌다. 경찰관들도 지난해까진 개별적으로 작품을 만든 이들이 많았는데 이
[flash on] “과오를 인정하고 거듭나야 한다”
-
※ <모스트 원티드 맨>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올여름, 나는 어딘가 구멍이 나 있는 자전거 타이어 같다. 펌프로 열심히 바람을 집어넣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쭈글쭈글한 상태로 변해 있다. 전부 새고 있는 것 같다. 구멍이 하나뿐이라면 찾아서 메우면 될 테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언제부턴가 타이어에 공기 채우는 일도 그만두고 말았다. 펌프를 움직일 힘도 없다.
시작은 아마도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사고 소식이 더해지고, 더이상 생존자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그 위에 얹히고, 이 모든 일들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소식이 다시 들려오고, 충격이라는 단어를 끝내기도 전에 또 다른 충격이 덮쳐와서 도대체 어떤 일이 더 큰 충격인지도 셈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사건의 갈피를 잡고 싶었지만 사건은 생각보다 거대했고, 배후는 예상외로 많았다. 누가 누구의 배후이고, 누가 누굴 비호하는지는 여전히 정확하지 않지만, 모든 일들은 이미 일
[김중혁의 바디무비] 여름의 한가운데, 뜨거운 운전석에서
-
※7월20일 일기에 <언더 더 스킨>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허큘리스> 시사회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인터스텔라> 예고편을 보았다. 황폐해진 지구를 대체할 인류의 서식지를 찾아 우주로 떠나는 주인공으로 매튜 매커너헤이가 나온다. <싸인> <아폴로 13> <그래비티>에서 본 듯한 예고편의 이미지와 사건은, 소문이 떠들썩했던 것치고 평이했지만 마이클 케인의 대사는 철렁했다. “우리는 이 세계를 구하려는 게 아니다. 이 세계를 떠나려는 것이다.” 놀란은 이번에도 관객에게 독한 선택을 요구할 모양이다.
7/20
<언더 더 스킨>은 배짱이 굉장하다. 무엇보다 영화를 통틀어 관객이 알아볼 만한 유일한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완벽한 진공에 가깝다는 점이 놀랍다. 외계에서 온 인간사냥꾼 로라(스칼렛 요한슨)는 대사와 행위는 있으나, 개성이 텅 비어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외계인’이라는 신원조차 극중에서 한번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투명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