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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티 가리는 게 싫다. 사람 같지 않아 보여서.” 설경구만큼 얼굴 꾸미는 데 인색한 배우가 또 있을까. 분장도 5분이면 끝이고 거울도 웬만해선 안 본다. 오죽하면 <실미도> <소원> 때는 맨 얼굴로 촬영했을까. 그러고 보면 설경구는 인위적으로 무엇을 덧대 이미지를 만들기보다는 극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가 아예 그 인물이 돼버리는 식으로 연기에 색을 입혀왔다. 그런 그가 이번엔 장장 5시간이나 분장을 했다. 그것도 새벽 1시부터 얼굴에 본드와 파우더를 겹겹이 칠하는 특수분장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분장하고 촬영을 했더니 나중에는 (어지러워) 땅이 올라오더라. 분장 때문에 두드러기는 나지, 밥은 맘대로 못 먹지. 나중엔 약까지 오르더라.” ‘불편한 일은 안 하면 된다’(<씨네21> 921호)던 설경구를 끝내 거울 앞으로 이끈 건 <나의 독재자>의 김성근이었다.
김성근, 그는 누구인가. 극단 허드렛일 전담에 맡는 역할마다 지나가는 행인이
[설경구] 끝없이 달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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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일이요? 어유, 쟤는 늙지도 않아. (웃음) 엉뚱할 것 같잖아요. 오히려 내가 걱정이었죠. 과연 나를 아버지로 볼까?” 얼핏 봐서는 듬직한 큰 형님과 철없는 막내 동생처럼 보이는 설경구와 박해일이 <나의 독재자>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연을 맺었다.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못 말리는 아버지 김성근과 그런 아버지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아들 김태식이라니. 다소 황당하고 엉뚱한 설정 속에서 두 베테랑 배우는 어떤 조합을 만들어냈을까. 게다가 두 사람이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 궁금증이 더 커진다. 지난봄부터 여름의 초입을 함께 나며 부자지간으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을 두 사람을 영화의 개봉(10월30일)에 앞서 만나 물었다. 도대체 김씨 부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나의 독재자] 呼兄呼弟 呼父呼兄(호형호제 혹은 호부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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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뜻 잠시 휴식하자는 말
속뜻 여기서 살자는 말
주석 회식은 무섭다.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기 때문이다. 소주와 맥주와 양주를 섞어서 만든 폭탄은 메가톤급이어서 방금 먹은 저녁까지 도시락폭탄으로 만든다. 까딱 잘못하면 화장실에 가기도 전에 터져서 부장님 구두를 양변기로 만든다. 밑이 막힌 양변기가 방문 앞에 나란히 늘어서 있다. 먹일 때에는 “술이 들어간다, 쭈욱 쭉 쭉 쭉” 합창을 하더니, 언제까지나 어깨춤을 출 것 같더니, 지금 그녀는 팽개쳐진 부대다. 일차가 끝나고 이차가 끝나고 노래방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한구석에서 조용하다. 그래도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서… 주먹과 가위와 보자기가 흩어질 때는 언젠가 온다.
비밀 연애의 약점은 저런 때 말리지 못한다는 것. 지금 그녀를 업고 가는 그는 잡채를 생각하는 중이다. 그녀의 긴 머리는 당면 가닥 같다. 길고 매끄럽고 윤기가 난다. 쇠고기 조각이 조금, 양파 조각이 조금 묻어 있다. 아까 폭탄의 흔적이다. 머리카락 사이로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잠깐 쉬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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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너무 궁금했다. 우린 개새끼 소새끼 입에 달고 살지만, 정말 사람과 개새끼의 차이는 무엇일까. 개새끼도 먹고 싸고 교미하는 것처럼, 사람도 먹고 싸고 교미하는데. 심지어 개새끼도 아파하고 사랑한다. 사람도 아파하고 사랑한다. 지금까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사람은 웃는데, 개새끼는 못 웃는다는 것이다(물론 개죽이 열외). 하지만 질문은 계속된다. 그러면 왜 사람은 웃을까? 왜 사람만 웃을까? 아직 이 질문에 근본적인 해답은 얻질 못했지만, 어느 정도 근사치에 가까운 깨달음들은 있었노니. 웃음의 핵심은 실수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새끼에겐 그럴듯한 실수가 없다. 개새끼가 지랄하고 넘어지는 건, 엄격한 실수는 아니다. 그건 그냥 개짓이다. 하지만 사람이 지랄하고 넘어지면 그건 실수다. 왜냐하면 그건 개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나. 개에게는 해야 할 짓과 하지 말아야 할 짓이 따로 없기에, 엄격한 의미에서 실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에겐 따라야 할 규칙체계/
[곡사의 아수라장] 시스템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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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블랙: 엔젤 오브 데스> The Woman in Black: Angel of Death
감독 톰 하퍼 / 출연 헬렌 매크로리, 제레미 어바인, 네드 데네히
‘일 마쉬’의 공포가 재현되는 걸까. 2012년 제작된 <우먼 인 블랙>의 속편이다. 전편에서 40년이 지난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2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피해 한 무리의 아이들이 런던에 있는 대저택 ‘일 마쉬’로 오면서 그곳에 잠들어 있던 저주받은 여인을 깨운다는 내용의 스릴러물이다. <워 호스>의 제레미 어바인이 주인공을 맡았다. 내년 1월2일 북미 개봉.
[WHAT'S UP] <우먼 인 블랙: 엔젤 오브 데스> The Woman in Black: Angel of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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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피는 못 속여
[정훈이 만화]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피는 못 속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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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태풍이 상륙했다. 중국 투자배급사 러스잉예가 10월21일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한국 무일영화사(대표 최광석)와 함께 ‘한•중 감사의 밤’ 행사를 열고, 한•중 공동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러스잉예는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 ‘LeTV’를 운영하고 있는 동시에 중국 전역 108개 도시에 1200여개 스크린을 가지고 있는 중국 최대 온•오프라인 플랫폼 회사다. 한국에서 극장 개봉한 장이모 감독의 신작 <5일의 마중>과 올해 여름 시장에서 20억위안(3472억원)을 벌어들인 <소시대>(감독 궈징밍) 등 매년 약 15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는 제작사이기도 하다. 러스잉예 장자오 대표는 “<5일의 마중> 개봉도 했고, 한국 감독을 비롯해 투자배급사를 만날 목적으로 서울을 찾았다”고 출장 목적을 밝혔다.
-매년 제작 편수가 얼마나 되나.
=올해는 15편 제작했다. 내년에는 20편 정도다. 경쟁사에 비해 많은 편이다. 그중 한편만 대표인 내가 직접 진행한다
[flash on] 좋은 영화가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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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브뤼게만은 독일 포츠담 바벨스베르크콘래드울프 영화학교에서 연출을 공부했다. 데뷔작 <아홉개의 신>(2006)으로 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독일영화전망 부문에 진출했고, 2012년에 만든 트렌디한 코미디영화 <무브>로 상업영화쪽에도 소질을 보였다. 제6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각본상과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에도 초청된 신작 <거룩한 소녀 마리아>의 시나리오는 여동생 안나 브뤼게만과 함께 썼다. 남매는 뮌헨, 남아프리카, 독일 남부의 작은 시골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여동생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고 들었다.
=함께 줄거리를 생각해내고 인물을 만들었다. 대사는 대부분 내가 썼다. 작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처음 아이디어는 추운 겨울날 베를린에서 자전거를 타다 생각났다.
-광신적 신앙을 가진 부모와 자녀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이유는 뭔가.
=세계 어느 곳에나 자녀를 엄하
[flash on] 영화는 질문을 던지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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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족구왕>에는 난데없이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 몇 군데 있다. 혼자 ‘풉!’ 하고 웃었는데, 과연 웃긴 장면인지는 잘 모르겠다. 텔레비전으로 다운받아서 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웃음을 확인할 길이 없었고,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게 이런 걸 확인하는 맛이지!) 감독이 코미디를 작정하고 넣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첫 번째 장면은 ‘가위바위보 뺨 때리기’ 장면이다. 여주인공 안나는 주인공 만섭에게 가위바위보 게임을 제안하고, 자신이 이기자마자 만섭의 뺨을 후려친다. 얼마 전 유행했다는 ‘가위바위보 뺨 때리기 게임’인데 급작스러운 장면이기도 하고, 뺨 때리기의 강도가 워낙 세서 ‘이건 뭐지’ 싶었다. 몇 차례 뺨을 때린 안나는 “나 졸라 나쁜 년이니까 좋아하지 마”라는 대사를 남기고 홀연히 자리를 떠난다. 혼자 남은 만섭이 갑자기 재채기를 하는데 그 장면이 너무 웃겨서,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감독의 연출이었을까, 아니면 배우의 애드리브였을까.
재채기란 과연
[김중혁의 바디무비] 어이쿠! (쿨룩) (콜록) (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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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의 ‘스포일러후드’입니다.
3D, 4DX만 ‘몰입형 영화’(immersive cinema)가 아니다.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장소를 팝업 시네마로 바꾸고 한발 나아가 퍼포먼스 체험까지 더하는 게릴라 상영이 2000년대 후반부터 해외에서 인기다. 심지어 <쇼생크 탈출>을 교도소로 꾸민 폐교에서 재소자용 옷을 입고 관람하기도 한다. 영화제가 한창인 부산 거리를 걷다가 상상했다. 가령 <국제시장>을 국제시장에서, <머니볼>을 사직구장에서,<메트로폴리스>를 옛 제분공장에서, <르 아브르>를 중앙부두에서 상영하면 어떨까? 사진은 2007년 런던 브리지 아래서 진행된 <파라노이드 파크> 상영.
10/13
<보이후드>는 2002년부터 2013년까지 해마다 늦여름 즈음 텍사스주에 사는 소년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와 가족들을 방문한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동시에 모든 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이게, 다예요? 이게, 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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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9일부터 11월3일까지, 이화여대 ECC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개최된다. 건축과 영화의 만남을 테마로 6회째를 맞은 이번 영화제는 영화 상영 외에도 호스트아키텍트 포럼 등 여러 부대행사가 함께 진행된다. 삶의 기본 조건인 ‘거주’의 문제를 소개하고, 더 좋은 거주법을 모색하며, 도시와 환경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삶의 조건으로서의 건축을 생각하는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건물’이다. 이 포괄적 주제를 두고 ‘만약 건물이 말을 한다면’이라는 흥미로운 부제와 함께, 이와 관련된 여러 소주제를 선정해 총 21편의 영화들을 소개한다.
개막작 <문화의 전당 3D>는 “만일 건물이 말을 한다면,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건넬까”란 질문에 답하는 감독들의 이야기를 모은 3D다큐멘터리다. 빔 벤더스, 마이클 매드슨, 로버트 레드퍼드, 카림 아이누즈 등 6인의 감독들이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러시아국립도서관, 노르웨이 할덴 교도소, 캘리포니아 소크 연구소, 오슬로
[영화제] 건물이 우리에게 말을 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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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기독교계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란 어떤 인물일까. 목사이기도 한 김상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제자 옥한흠>이 질문의 답을 줄 듯하다. 영화는 배우 성유리의 내레이션을 바탕으로 고(故) 옥한흠 목사의 일대기를 시간 순서에 따라 풀어간다. 옥한흠 목사는 신도들에게 기독교적 삶을 가르치는 ‘제자훈련’에 평생을 바쳤다. 그가 9명의 제자들과 시작한 모임은 훗날 신도 수가 약 10만명인 서울 ‘사랑의 교회’로 성장한다. 문제는 낮은 곳에 임해야 할 교회가 대형화될수록 복음마저 왜곡될 수 있다는 것. 그는 기독교의 세속화를 비판하며 한국교회갱신운동을 펼치다 2010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영화를 구성하는 것은 흑백사진과 기록영상, 주변인의 인터뷰 등 전형적인 전기다큐멘터리의 요소들이다. 평범한 전개방식과 더불어 종교적 배경지식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불친절함이 개신교와 무관한 관객에게 지루함을 안길 수 있다. 그래도 유명 종교인을 클로즈업하면서 ‘과도한 찬양’
기독교의 세속화를 비판하다 <제자 옥한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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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용강성의 허름한 집, 파리한 얼굴의 여자가 목을 매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귀임 할머니(이옥희)가 자살하려는 손녀 향옥(조안)을 발견해 가까스로 그녀의 목숨을 구한다. 할머니는 향옥에게 “한국에서 있었던 일은 다 잊어버려”라고 말한다. 하지만 할머니 자신도 위안부 시절의 기억 때문에 여전히 괴로워한다. <소리굽쇠>는 재중 위안부였던 귀임 할머니의 과거 회상과 향옥이 한국에서 겪은 사건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가며 진행한다. “저는 한국이 좋습니다”라고 서툴게 말했던 향옥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고 하면, <소리굽쇠>를 다큐멘터리라고 오해할지 모른다. <소리굽쇠>는 배우와 전 스탭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흔치 않은 극영화다. 그동안 다큐멘터리영화들이 위안부의 역사를 진술하고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면 <소리굽쇠>는 위안부 할머니의 트라우마를 극적으로 생생하게 재현하고 향옥이라는 인물을 통해 위안부 다음
위안부 문제를 다음 세대로 확장하다 <소리굽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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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마(페넬로페 크루즈)는 옛 친구의 전화를 받고 사라예보를 찾는다. 그리고 시작되는 30년 전의 이야기. 1984년 사라예보를 여행하고 있던 젬마는 미국인 사진작가 디에고(에밀 허시)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와 결혼한다. 세월이 흘러 젬마와 디에고는 내전 중인 사라예보를 찾는다. 그리고 이방인인 그들에게도, 전쟁은 깊은 상흔을 남긴다. 30년 전에 시작된 사랑과 그 사랑이 남긴 아이, 전쟁과 세월의 폐허에 묻은 비밀. 대하 멜로드라마라고 불러도 좋을 스토리를 품은 <투와이스 본>은 서로만 있다면 무엇도 바라지 않았을 연인의 비극을 들려주는 영화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 사이로, 그에 비하면 사소하지만 하찮다 말할 수 없을 러브스토리를 누벼넣는다. 익숙한 방식이다. ‘사라예보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알려진, 함께 탈출하다 사살된 연인의 사진처럼,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논설과 분석보다 가슴을 울린다. 누구도 겪어선 안 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라고.
진
‘사라예보의 로미오와 줄리엣’ <투와이스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