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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의 영화는 헨리 폰다와 존 웨인의 이야기다. 정의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용기(주로 헨리 폰다 주연의 작품들), 그리고 희생과 의무를 위한 불굴의 투지(주로 존 웨인 주연의 작품들)들이 전면에 나와 있다. 이런 ‘존 포드의 미덕’을 실현하는 두 남자, 곧 헨리 폰다와 존 웨인의 그림자가 너무 커서, 그의 영화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기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포드의 영화에선 여성 배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고, 또 두 남자 배우처럼 연속하여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도 거의 없다. 단 한명의 예외가 있는데, 그가 바로 모린 오하라다. 포드의 영화에서 다섯번 주연으로 나왔다. 만약 존 포드 영화가 여성의 이야기라면, 그것은 모린 오하라의 이야기다.
존 포드의 여성 스타
모린 오하라와 존 포드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에서 처음 만났다. 소위 ‘포드의 절정기’ 때 발표된 작품이다. 포드는 ‘경이의 연도’로 불리는 1939년에 <역마차>
[한창호의 오! 마돈나] 아일랜드의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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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복식을 앞두고 있던 지난 8월15일 새벽, 청계천 세운상가 안쪽 골목길에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한 무더기 모여 있다. 각목부터 야구방망이까지 각양각색의 몽둥이를 손에 쥔 채 가로등 빛도 닿지 않는 으슥한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는 모양새에 누구라도 흠칫 놀랄 수밖에 없다. 신고가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건만 현장 스탭들의 눈엔 그저 믿음직스러운 정의의 아군일 따름이다. 정두홍 무술감독이 <짝패> 이후 8년 만에 배우로 스크린 앞에 선 <흑산도>의 촬영현장은 액션스쿨을 그대로 옮겨왔다.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현장 PD는 촬영 때마다 최소 열댓명씩 대기 중인 액션스쿨 스턴트맨들 덕분에 웬만한 일로는 시비 붙을 일이 없다며 너스레를 떤다. 아닌 게 아니라 촬영 시작을 알리는 구호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뛰어가는 배우들의 뒷모습에 군기가 바짝 들어 있다. 한껏 집중한 정두홍 감독에게 피해가 갈까 카메라 뒤에서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조심
[씨네스코프] 하원준 감독의 <흑산도>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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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살아 있다: 비밀의 무덤> Night at the Museum: Secret of the Tomb
감독 숀 레비 / 출연 벤 스틸러, 스카일러 지손도, 레벨 윌슨, 로빈 윌리엄스, 벤 킹슬리
뉴욕 박물관의 소심한 야간 경비원 래리(벤 스틸러)가 이번에는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날아간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위인들과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래리와 함께 런던 시내를 휘저을 예정이다. 1, 2편에 이어 숀 레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로빈 윌리엄스의 유작 중 하나다. 12월19일 북미 개봉한다.
[WHAT'S UP] <박물관이 살아 있다: 비밀의 무덤> Night at the Museum: Secret of the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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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타짜-신의 손> 정열의 홍단!
[정훈이 만화] <타짜-신의 손> 정열의 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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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세대의 작가들은 물론 젊은 작가들의 최근 발표작까지 관통하는 한국문학평론집. 3부에 실린 소설가 김소진에 관한 짧은 글은 어디에도 발표된 적 없는 미발표작으로, 찾아 읽어볼 만하다. 4부에는 그가 창비주간논평 등에 써온 문학에 관한 글들과 <씨네21>에 발표한 영화평론 등을 담았다. 문학평론가 황종연은 “겉으로 털털하나 속으로는 끈끈한 문학자의 순정”이라고 정홍수의 글을 추천했다.
[도서] 한국문학평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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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부연하지 않아도, 당신은 이 문장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문학동네 80호>는 ‘4·16 세월호를 생각하다’ 특집을 마련했다. 진은영•박민규, 황정은, 배명훈, 전규찬을 비롯한 시인/소설가/평자들이 세월호에 대해 썼다.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는 진은영 시인의 글 제목을 응시하는 것으로 이 묵직한 독서가 시작된다. ‘그날’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하여.
[도서] ‘4·16 세월호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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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주변에 쌓인 책이야말로 쓸모 있다. 살기 좋은 그 어떤 설계도 무시하고 주변에 책을 쌓아두어야 한다는 것인데,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쓸모 있는 책은 손이 닿는 범위에 놓아둔 책이다”. 책을 “쓴다”는 말은 일단 읽는다는 뜻일 테고 그다음에는 그 책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그 책을 자료로 삼거나 한다는 뜻일 것이다.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은 장서가, 저술가로 불리는 사람들의 지옥이자 천국인 장서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책(짐) 때문에 고생 좀 해본 사람이라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눈물겨운 사연이 한가득이다. 책상 주변에 필요한 책을 쌓아두라는 조언도 일견 그럴듯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책상 옆에 쌓은 책을 다 쓴 뒤 책장에 꽂아두고 다음 필요한 책을 다시 추려와 쌓아놓는 식으로 일을 하는 성인군자는 없다. 쌓아두어야 할 정도, 그러니까 일주일에 예닐곱권 한달에 스무권 정도의 책의 쓸모를 유지하는 나의 집은 거의 쓰레기통이다. 추리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500권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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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전주다. 동네 백반집만 가도 12첩 반상이 깔린다는 전설의 고장 전주(옛날엔 전설이 아니라 진짜였다), 전국에 널린 프랜차이즈도 여기에 발만 들였다 하면 미묘하게 맛있어진다는 신비의 고장 전주. 하지만 그곳에도 맛없는 집은 있었으니… 우리 집이다, 우리 집. 내가 20년 가까이 먹고 살았던 우리 집.
친정은 군산이요 시댁은 광양으로서 민어회나 서대회, 김국 같은 진미가 반찬이었던 엄마는 먹던 가락이 있어 장보기는 잘했지만 음식은 못했다. 그래서 갈치조림 대신 갈치구이를, 계란말이 대신 계란찜을, 닭볶음탕 대신 백숙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복잡한 음식은 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전라도 음식은 불행하게도 콩나물국밥이었다. 우리 집은 일요일 아침마다 삼백집 스타일로 뜨겁게 끓인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스타일만 삼백집. 허영만의 <식객>을 보면 삼백집 콩나물국밥은 국밥 전용으로 담가 2년 이상 숙성한 썰이김치를 넣어야 한다는데, 그런 게 있을 리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그분도 착하게 보이게 만드는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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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24일 일기에 <드래곤 길들이기> 1, 2편과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영화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스토커>(One Hour Photo)의 고독한 사진현상소 직원 싸이는, <인썸니아> <스무치에게 죽음을>의 배역과 더불어 윌리엄스의 3대 악역이다. 아무 특징 없는 외모와 흔해빠진 옷, 교과서적인 말투를 통해 로빈 윌리엄스는 싸이를 철저한 ‘노바디’로 연기한다. 그러나 무색무취한 이 남자의 내면에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로버트 드니로)와 통하는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 에너지를 제어하는 데에 막대한 에너지를 투여한 훌륭한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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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데블로이스 감독은 인터뷰에서 <드래곤 길들이기2>를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의 2편 <제국의 역습>에 비한 적이 있다. 1편의 주제를 심화하고 새로운 캐릭터의 도입으로 이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고통은 체감되길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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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학자 켄 댄시거는 “다큐멘터리가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그 유연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표현을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경계를 넘나들 가능성이 큰 장르다’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실험하는 경계선, 제6회 DMZ국제다큐영화제가 9월17일(수)부터 24일(수)까지 8일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다. 올해는 ‘아시아 다큐의 빛’이라는 슬로건으로 30개국 111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개막작 <울보 권투부>는 일본 내 한인학교 권투부 학생의 이야기다. 정통 다큐멘터리 방식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외 모든 것은 아이들의 땀과 눈물의 진실에 맡긴, 소박한 다큐멘터리다. “타격이 의도한 곳에 정확히 꽂혔을 때 기분이 좋다”라는 권투부 학생의 순수한 에너지가 일본 내에서 차별받는 상황의 답답함을 가뿐히 이긴다.
한국경쟁부문 상영작인 <쿼바디스>는 극영화적 요소와 다큐멘터리를 뒤섞는 최근의 다큐멘터리 경향을 고스란히 따르며 기독교 세습의 비리를
[영화제] 다큐 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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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가을로 시작한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듯 여행 가방이 펼쳐져 있고 다마코(마에다 아쓰코)는 방에 엎어져 자고 있다. 아버지(간 스온)가 방문을 두드려도 다마코는 쉽게 일어나질 않는다. 일어난다고 해도 그녀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올때까지도 다마코의 생활은 변함이 없다. 참다 못한 아버지가 대학까지 나온 애가 왜 이러고 있느냐며 딱 한번 화를 내지만, 다마코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할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다마코는 그렇게 그녀만의 ‘모리토리엄’ 시기에 머물러 있다. 혼자 사는 아버지에게 만나는 사람이 생기자 다마코에게도 서서히, 아주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라토리엄이 다마코의 한 시기라는 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모라토리엄은 흔히 채무자의 법적인 지불이행 유예를 말한다). 무언가 유예되고 중지되고 지연되어 있는 시기라는 뜻일 것이다. 그녀가 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영화가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일화는 거의 없다
유예되고 중지되고 지연되어 있는 시기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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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브라이언(샘 클라플린)은 초자연적 현상을 연구하는 조셉 교수(야레드 해리스)의 촬영조수로 일하기로 한다. 그런데 유령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 중인 실험의 정체라는 것이 신비에 싸인 소녀 제인(올리비아 쿡)을 이용하는 것임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제인을 감금한 것도 모자라 잔인하게 괴롭히는 실험 과정을 가까이 지켜보며 브라이언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챈다.
<쿼런틴2: 죽음의 공항> 등을 연출했던 존 포그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콰이어트 원>은 오컬트 공포물의 여러 요소들을 빼곡히 심어놓은 작품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연약한 소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연현상들, 사악한 광기에 사로잡힌 남자, 고대로부터 이어진 악령의 존재, 어김없이 찾아오는 마지막 반전 같은 것들 말이다. 이처럼 여러 요소들을 한데 모았지만 문제는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식상한 소재를 상투적으로 엮어냈다는 것이다. 후반부 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오컬트 공포물 <콰이어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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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명의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사랑과 평화의 이야기.’ 시나리오작가 마티(콜린 파렐)는 이러한 황당한 설정 외에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배우 지망생 빌리(샘 록웰)는 친구의 시나리오를 위해 신문에 광고를 내서 사이코패스들을 불러모은다. 한편 빌리는 동료 한스(크리스토퍼 워컨)와 함께 반려견을 훔쳐 보상금을 타내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과 마티는 범죄조직의 보스 찰리(우디 해럴슨)의 강아지 시추를 훔쳐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하려다 도리어 그에게 쫓기는 신세가 돼 서부의 사막으로 도주한다.
영화 <세븐 싸이코패스>는 갱스터, 웨스턴, 스릴러, 총격액션 등 상상 가능한 액션 장르들의 온갖 법칙이 뒤섞인 유쾌한 코미디영화다. 감독 마틴 맥도나는 반전과 평화, 신과 인간의 구원, 천국과 지옥에 대한 사변 등 할리우드 액션영화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요소들을 뒤섞어 오묘한 액션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 곳곳에 마틴 스코시즈, 쿠엔틴 타란티노, 기타노 다케시의 잔향
액션 장르들의 온갖 법칙이 뒤섞인 코미디 영화 <세븐 싸이코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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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표지의 오렌지색과 브라질 옐로를 깐깐하게 구분하고 항상 머리를 동여맨 채 일만 하는 패션 에디터 알리스(비르지니 에피라). 누가 봐도 워커홀릭인 그녀는 서른아홉, 딸을 둔 싱글이다. 열아홉의 발타자르(피에르 니네이)와 엮인 것도 실수로 놓고 간 USB 때문이지 연애는 아니다. 그런데 다시 일이 문제다. 다음 편집장 자리를 놓고, 알리스의 경쟁자 리즈는 자유분방한 매력을 뽐내며 상사들의 눈에 드는데, 일만 하는 그녀는 이제 고루한 구식으로 취급된다. 위기감을 느낀 알리스는 오직 이미지 쇄신을 위해 스무살 연하의 발타자르와 연애를 시작한다.
<서른아홉, 열아홉>은 칙릿 소설에서 볼 법한 구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서른아홉 패션 에디터가 열아홉 대학생을 만나 오랜 솔로 생활을 청산한다는 식. 그러나 영화는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아닌, 알리스가 처한 서른아홉 현실에 무게를 둔다. 거울을 보며 잔주름을 세고 어린 딸이 알려준 가수의 이름을
스무살 연하와 연애를 시작하다 <서른아홉, 열아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