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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열여섯 번째 장편영화 <자유의 언덕>은 2013년 6월 22일부터 7월9일까지 총 13회차에 걸쳐 서울 북촌과 경리단길, 부암동, 건국대 인근, 창덕궁 빨래터 등의 장소에서 촬영됐다. <자유의 언덕>에 대한 문답은 편지 대신 이메일로 오고 갔다.
-주인공인 여행자 모리를 연기한 가세 료 배우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이처럼 한 배우가 영화를 지배하는 경우는 <해변의 여인>의 문숙(고현정) 이후 처음이라고까지 느낍니다. 가세 료가 <자유의 언덕>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그리고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준 영감을 되도록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2012년인지 2013년인지 일본에 갔을 때 잡지 인터뷰를 했는데 가세 료씨가 인터뷰어로 나왔습니다. 인터뷰 초입에 그 사람이 왜 제 영화를 좋아하는지 길게 얘기를 했는데, 그때 그 사람 뺨 전체가 빨개졌습니다. 그렇게 오래 얼굴이 빨개져 있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수줍어서 그
시간이란 틀의 압력이 약해지면 뭐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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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언덕 너머의 나무에게
영화에 등장하진 않지만 모리(가세 료)와 권(서영화)을 따라 언덕을 넘어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너에게 쓴다. 때로 현실 속에 없는 짝을 찾아 떠도는 것 같았던 모리와 권의 목소리에 홀려, 나도 영화 속에 없는 너를 떠올리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 가까운 일본이 아닌 아득히 먼 세계에서 날아온 듯한 모리의 첫 번째 편지가 그랬듯, 혹은 딴 세상으로 모리를 데려가려는 듯한 권의 귀신 울음이 그랬듯 말이야.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들은 무섭거나 슬프기보다 평온했어. 그래서인지 지면과 육신에 정박해 있지 않은 그 목소리들이 나를 어딘가 좋은 곳으로 데려가주길 바랐던 것 같아.
그리하여 닿은 곳이 <자유의 언덕>이라는 영화 속이었고, ‘자유의 언덕’이란 이름의 카페 주변과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무작위로 섞인 시간 속이었고, 그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듯한 북촌 어딘가의 작은 언덕너머였어. 그중 앞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이 작은 은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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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꾸미님에게
이 편지가 느닷없어 보일 줄 잘 압니다. 홍상수 감독의 세계에 편지를 쓰면서 그 수신처를 남자도, 여자도, 담배꽁초도, 오리배도, 남산타워도 아닌 강아지 꾸미님에게 두다니요. 하지만 ‘자유의 언덕’이라는 카페에서 모리(가세 료)씨와 당신의 엄마 영선(문소리)이 처음 만나던 순간,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영선의 적극적인 탐색에 모리씨는 조금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카메라가 살짝 옆으로 움직이자, 당신이 ‘이미 언제나’ 그 자리에서 고요히 모든 걸 지켜본 자처럼 고고하고 심드렁하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당신과 모리씨 사이의 어색한 거리감, 그러나 이상한 온기 같은 것이 흐르고 있어서 이 짧은 순간이 마법 같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던 것 같습니다. 조금은 엉뚱하게 등장해서 남녀간의 교묘하고 어색한 공기를 압도해버리는 당신의 동물적인 투명함을 느끼며, 당신이야말로 ‘자유의 언덕’의 주인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당신의
당신은 늘 그곳에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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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에게
당신이 모리(가세 료)로부터 두터운 편지를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역시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백하건대 저는 당신의 상상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상상 속의 자유가 향하는 방향 또한 확인하였습니다. 좀더 솔직하게 말해서, 당신은 다 나았다고 말했지만 전 아직도 당신이 병마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단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설혹 저의 짐작이 틀렸더라도, 마음 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은 남자 문제 아니면 암 문제, 둘 중 하나라고 상원(김의성)처럼 저 역시 믿고 있어요. 아직도 그때 어학원에서 편지뭉치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 편지들 때문에 우리가 마주한 것이니 한편 그 우연에 감사하기도 합니다. 때로 우연은 기인한 사건을 만들어냅니다. 예측 불가능한 것이 우연의 속성이라지만, 저는 그러한 우연들 역시 다양한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눈앞에서 떨어
우연 속에 가능성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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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에게
사랑하는 여인 권(서영화)을 찾아 방문한 여행자라는 사실 정도가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솔직히 말해 뭘 더 알겠습니까. 그래서 당신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인상적인 장면들에 대해서만 허물없이 몇자 적습니다.
당신이 술자리에서 서양 친구에게 “당신 처는 정말 훌륭하다”고 거듭 말하면서 “누구라도 이 가정을 파괴하게 놔두어서는 안 된다”고 있지도 않은 심각성을 과장하여 말할 때, 붉어진 당신의 얼굴과 우왕좌왕하는 그 말과 시선과 몸짓과 거기서 느껴지는 상실감은 당신을 조금 우스꽝스럽게 그리고 아주 측은하게 보이게 했습니다. 반면에 상원(김의성)과 함께 술을 마신 뒤 어깨를 겯고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올 때에는 동네의 골목대장들처럼 구는 그 순진한 우정의 행세가 보는 사람까지도 괜히 기분 좋고 으쓱하게 해주었습니다. 물론입니다. 당신의 확고한 성찰도 기억합니다. 영선(문소리)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당신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건 사실 우리의 뇌가 만든 틀
당신은 제게 몰(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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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언덕>의 모리(가세 료)는 일본인입니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은 한국인 권(서영화)입니다. 둘은 2년 전 서울의 한 어학원에서 강사를 하면서 만났습니다. 그때 모리는 권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모리는 일본으로 돌아갔고 권은 몸이 아파 요양을 갔습니다. 하지만 모리가 권을 찾아 다시 북촌에 왔습니다. 그가 권의 집 인근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며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아온 권은 모리가 어학원에 맡겨놓은 편지를 읽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권을 기다리는 동안에 있었던 모리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모리는 몇 사람을 만납니다. 게스트 하우스의 여주인(윤여정), 그녀의 조카 상원(김의성)과는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됩니다. 인근 카페의 여주인 영선(문소리)과는 특히 더 가까워집니다. 모리가 길 잃은 영선의 강아지 꾸미를 찾아주면서 둘의 관계는 더 깊어지는데 모리는 주저하면서도 영선의 쾌활함과 상냥함에 반하게 됩니다. 한편, 모리의
따로 또같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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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뀔 때쯤 홍상수의 영화를 기다리는 건 이제 우리의 어떤 삶의 방식이 되었다. 올가을에는 <자유의 언덕>이라는 홍상수 영화가 온다. 그 <자유의 언덕>에 관한 네개의 편지를 여기 묶었다. 서로 다른 필자가 <자유의 언덕>의 사물과 인물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다. 네개의 편지글을 안내하기 위한 전문이 별도로 있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 읽는 당신이라면 궁금한 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될 거라고 우린 생각하지 않았다. 이 특집 기사는 두 부류의 감상자를 적극 고려했다. 기사를 읽고 궁금증 때문에 극장으로 향할 감상자와 영화를 보고 나와 무언가 풍성한 글을 읽고 싶은 감상자들을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리고 감독 홍상수, 배우 가세 료와 나눈 값진 필담을 덧붙였다. 여러분의 가을을 <자유의 언덕>으로 시작하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당신의 가을과 동행하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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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시양(1987년생)
가까이서 보니 용주보다 훨씬 날카로운 얼굴선을 가졌다. 첫 작품 <야간비행>을 끝내고 살이 많이 빠진 탓이다. “어떻게 해야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을까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힘겹게 계단 하나를 올랐는데 금세 또 계단을 만난 것 같아요. 근데 신기하죠. 연기가, 현장이 너무 재밌어요.” 어디에 몰두해 재미를 느끼면 더 파고드는 성격이라는 그는 “평생 하고 싶은” 즐거움, 연기와 이제 막 만났다.
필모그래피
뮤직비디오 박봄 <You And I>, 드라마 <기분 좋은 날>
<야간비행> 이 장면
포장마차에서 용주가 엄마와 마주 앉았다. 아들의 속내를 전해들은 엄마가 용주에게 전하는 말이 울림을 준다.
이재준(1990년생)
못 알아볼 뻔했다. 짧은 머리에 거뭇한 수염이 난 차가운 얼굴의 기웅을 생각했는데 해사하게 웃는 이재준이다. “실제로 보면 되게 착해 보여요. 온실 속의 화초 같달까.” 감독의 말대로다. 세
<야간비행>의 배우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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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에는 <야간비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줄기차게 말해온 이송희일 감독이 <야간비행>으로 학교 속 폭력의 먹이사슬을 들여다봤다. 그곳의 학교는 폐쇄되어 있고 그 속의 소년들은 모두 다 외롭고 아프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은 모두 잘 살아가고 있을까. 영화 속 소년들을 대신해 누구보다도 그들을 이해하려 애썼을 출연배우 다섯명을 만나보기로 했다. 청춘배우들의 입을 빌려 그들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레 <야간비행>의 아이들도 살아 움직이지 않을까. 이송희일 감독이 전해준 영화에 관한 짧은 코멘터리와 배우 5인방이 꼽은 <야간비행> 명장면도 덧붙인다.
우등생 용주(곽시양)는 같은 반 친구이자 일진인 기웅(이재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다. 이들과 중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기택(최준하)은 반장 성진(김창환) 무리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한편 용주를 마음 깊이 아끼는 준우(이익준)
결핍을 채우는 건 결국 우정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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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시키지 않는다. 본인은 특별히 잘하는 장르는 없다고 겸양을 보이지만 어떤 장르라도 본인의 색으로 소화해버린다. 적어도 오락영화가 지녀야 할 감에 있어서 이만큼 확실히 믿음이 가는 감독도 드물다. <타짜-신의 손>(이하 <타짜2>)으로 돌아온 강형철 감독은 또 한번 본인의 감각을 증명했다. 젊고 새롭게 태어난 <타짜2>에는 강형철 감독 특유의 인장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강형철의 <타짜2>가 장르의 장벽을 넘나들며 잘 만든 오락영화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본다.
-2편이 나오기까지 8년이 걸렸다. 전작의 흥행은 물론이고 스타일이 워낙 명확해 부담이 적지 않았을 텐데 <타짜2>의 연출을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
=딱히 말 못할 우여곡절을 거치진 않았다. 처음 <타짜>를 봤을 때부터 시리즈로 만들어져야 할 영화라고 생각했고 기회가 된다면 그중 한편을 맡아보고 싶었다. <과속스캔들> 끝날 무렵부터 이안나
3편 감독님, 고생 좀 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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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고 등장할 것 같았던 이하늬가 흰색 단화를 신고 사뿐사뿐 걸어왔다. “하이힐은 불편해서 못 신어요.” 그렇게 말하는 이하늬의 왼쪽 뺨에 보조개가 팼다. 굳이 힐에 의존할 필요 없는 173cm의 키. “어릴 적부터 한번도 작아본 적이 없어서” 되레 아담한 것들에 끌린다는 이하늬는 섹시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다. <타짜>가 개봉한 2006년에 미스코리아 왕관을 쓴 이하늬는 호피무늬 수영복을 입고 화려한 미소를 지으며 강렬하게 등장했다. 20대 초•중반의 나이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성적인 시선”이 힘들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조차도 긍정적으로 바꾸어 받아들일 수 있는 내공이 쌓였다. “가만히 있어도 야하니까 붙는 옷 입지 말라던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섹시하다는 말은 건강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 것 같다고. 이젠, 꽃이 가장 붉게 물들었을 때, 석류가 가장 잘 익었을 때를 표현하는 말이 섹시하다는
꽃보다 멋진 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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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면 듣는 사람뿐 아니라 말하는 사람도 지치는 법이다. 언론시사회가 끝난 뒤 신세경은 이틀 동안 기자들과 마주 앉아 영화 얘기를 해야 했다. 그 두 번째 날의 늦은 오후 신세경을 만났다. 비축해둔 힘이 바닥나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애정이 큰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하니까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아요. 안 그래도 오늘 밝아 보인다는 얘기 엄청 들었는데, 이제 그만 가라앉혀야 되나? (웃음)” 2년 전 <알투비: 리턴 투 베이스> 때 보았던 신세경의 두눈은 ‘휴식이 필요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사이 그녀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난 걸까. “그때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였어요. 나를 지탱해주는 받침대가 점점 사라져서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요만큼밖에 남지 않은 기분이었달까. 지금은 다시 지반을 단단하게 다져놨어요. 그리고 다시는 그 지반을 뺏기고 싶지 않아요.” 조그만 입술을 야무지게 달싹이며 지금의 행복을 지키고 싶다고 말하는 신세
첫사랑 혹은 영원한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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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높아진 기대는 어느새 다음 이야기의 등장을 가로막는 벽이 되었다. 최동훈 감독의 <타짜> 이후 무려 8년, <타짜-신의 손>으로 돌아온 <타짜> 속편은 좋든 싫든 전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새롭게 메가폰을 잡은 강형철 감독은 전작의 눈치를 보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경쾌하게 자신의 길을 가며 또 다른 방식의 <타짜>를 선보인다. 제작과정에 있었던 자잘한 에피소드부터 궁금한 장면까지 강형철 감독에게 물었다. 꽃의 전쟁의 주역인 신세경, 이하늬 두 여배우의 솔직한 심경도 함께 전한다. 타짜 vs 타짜, 누가 더 낫냐는 비교가 무의미한 또 다른 재미를 만끽하시라.
앞서 간 이의 흔적이 길잡이가 될 것인지 장벽이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뒤따르는 사람의 태도에 달렸다. <타짜-신의 손>(이하 <타짜2>)의 제작 소식이 들려왔을 때 기대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당연한 일이다. 뛰어난 전작은 관객의
새 판은 새 감독이, 오락영화 타짜들의 바통 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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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몬스터> <표적> <사도> <기술자들>
2013 <은밀하게 위대하게> <소원>
2012 <이웃사람> <공모자들> <간첩> <타워>
2011 <써니>
2010 <파괴된 사나이>
연희동 주택가에 자리잡은 특수분장업체 ‘제페토’는 분주하다. 맞다, 회사 이름 제페토는 동화 속 피노키오를 만든 바로 그 아저씨 이름이다. 공교롭게도 추석 시즌에 맞붙게 된 <두근두근 내 인생>과 <타짜-신의 손> 모두 윤황직 실장의 작품들이다. 그는 <두근두근 내 인생>을 진행하면서 할리우드의 그렉 캐놈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았다. <드라큘라>(1992),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 이상 공동수상)를 비롯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로 아카데미 분장상을 수상한 그렉 캐놈은 ‘얼굴’
[STAFF 37.5] 기술보다 캐릭터가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