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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경> Jauja
리산드로 알론소 / 아르헨티나, 덴마크, 멕시코, 미국 / 2014년 / 108분 / 월드 시네마 / 드라마
1882년의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원주민들만이 살고 있는 이 거대하고 황량한 미지의 땅에 덴마크 점령군들이 들어와 있다. 장교 군너 딘센은 열다섯살 된 딸을 데리고 막사에서 생활한다. 그녀가 이곳의 유일한 여성이다. 비극은 딸이 젊은 장교와 사랑에 빠져 도망가면서 시작된다. 딸을 잃은 아버지 군너는 병영을 빠져나와 초원과 사막과 황야를 헤매며 딸을 찾으러 돌아다닌다. 어느 날 그는 딸과 함께 도망친 젊은 장교를 발견하지만 그는 이미 원주민에게 당해 죽어가고 있고 딸은 온데간데없다. 군너는 말까지 원주민에게 빼앗겨 걷고 또 걸으며 다시 딸을 찾는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던 그 앞에 털 빠진 개 한 마리가 나타나고 개가 인도하는 곳으로 이끌려간 군너가 중년의 한 여인을 만나게 될 때 <도원경>의 영화적 경이는 정점에 다다른다. 아르헨
당신이 올가을 부산을 찾아야 할 30가지 이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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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축제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2일부터 11일까지 열린다. 축제에 가서는 후회 없이 즐겨야 하는 법. 그렇다면 영화의 축제에서 후회 없이 즐기는 방법은 뭘까. 말하나 마나 잘 보는 거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들을 보아야 잘 보는 것인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올해도 <씨네21>이 각 부문 주요작들을 뽑아 부산영화제 Must List 30을 작성했다. 칸, 베니스, 베를린, 로카르노 주요 영화제의 유명 수상작들에서부터 <씨네21>의 목록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단과 편견의 강추작까지 혹은 울리고 웃기는 대중 극영화에서부터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다큐멘터리와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실험적 미학의 영상 에세이까지. 자, 한편씩 차례차례 기억해두시라. 여기 모인 30개의 목록이 바로 올해 부산을 찾는 당신에게 권하는 우리의 추천서다.
<씨네21> 기자들의 Biff 위시리스트
김성훈
<단신남녀2> 두기봉
<황금시대> 허안화
<카
당신이 올가을 부산을 찾아야 할 30가지 이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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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황금시대> <비긴 어게인> <위크엔드 인 파리> <노예 12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서칭 포 슈가맨> <브레이킹 던 part2> <브레이킹 던 part1> <이클립스> <뉴 문> <트와일라잇> 외 다수
제작
<호우시절> <봄, 눈>
투자
<해안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올드보이> 외 다수
인터뷰 날 한번 잘 잡았다. 9월17일 수입•배급사 판씨네마가 들여온 <비긴 어게인>이 개봉 한달여 만에 관객수 200만명을 돌파했다. 다양성영화가 상업영화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예매율 1위까지 했으니 겹경사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우리 모두 놀라고 있다”라며 활짝 웃어 보인다. “<위크엔드 인 파리>의 린제이 덩컨 같은 느낌?”이라는 사전 정보(?)를 입수하지 않
[STAFF 37.5] 궁금하면 옆길로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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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여자에게 간절한 편지를 보낸다. 편지를 받아든 여자가 계단에서 휘청거리자 편지가 땅에 떨어져버린다. 편지의 순서는 뒤섞이고, 여자는 그중 한장을 빠뜨리고 줍는다. ‘자유의 언덕’이라는 카페에 들어온 여자가 편지를 읽기 시작하고, 뒤엉킨 시간의 편지 내용이 펼쳐진다. 흩어진 편지, 생략된 한장, 낯설어진 시간.
홍상수 영화의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의 선상에서 ‘흐른다’는 인상을 준 적은 없다. 시간의 인과론이나 명확한 선후 관계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최소의 일관된 시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심축이 그의 영화에서는 늘 모호하고(<하하하> <북촌방향>), 나아가는 것 같지만 무언가에 막혀 있거나 제자리다(<밤과낮>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그의 시간관은 줄곧 반복, 폐쇄된 순환 등의 용어로 말해져왔지만, 고정된 시간적 틀을 거부하는 그의 영화들 앞에서 그런 용어는 비평적 무력감에 더 닿아 있다. 더욱이 최근 몇년간
[신 전영객잔] 시간의 틀안에서 틀부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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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 인터뷰에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자신을 ‘이야기보다 캐릭터에 끌리는’ 연출자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의 11번째 영화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린다 린다 린다> <마츠가네 난사사건>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그리고 <마이 백 페이지>로 이어지는 전작들 안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그의 이 말을 가장 정확하게 실천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다마코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집에 틀어박혀 빈둥대면서 ‘어른’이 되기를 잠시 미룬 ‘잉여청춘’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얹혀살고 있는 데 대한 미안함이나 잉여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에 대한 머쓱함을 먹고, 소리치고, 투덜대는 것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그녀는 최근 본 다른 어떤 영화의 캐릭터보다도 매력적이다. 여기에 종잡을 수 없는 다마코를 연기한 마에다 아쓰코가 일본의 정상급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는 사실은 조금 놀랍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사계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무
[야마시타 노부히로] 이런 아버지는 없어, 그러니 위기의식을 갖고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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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석의 봄날이 시작됐다. 상반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의 칠봉이를 연기하며 여성 시청자를 끙끙 앓게 만들었던 유연석이 ‘엄마’와 ‘아빠’가 되어 돌아왔다.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과 영화 <제보자>에서 각각 맡은 역할이다. <꽃보다 청춘>의 자연인 유연석은 마치 칠봉이에게 추진력과 꼼꼼함을 한 스푼씩 끼얹은 것 같다. 어물어물하면서도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느린 말투며, 동료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닳도록 여행 책자를 들여다보는 진득함이며, 동료들의 양말을 손빨래해주는 다정함까지. “무척 사람을 잘 챙기고 세심한 친구다. 얼마 전 아프리카에 갔다 와서는 선물이라며 커피를 안겨주더라.” 유연석의 “오랜 롤모델”이자, <제보자>에 함께 출연한 박해일도 유연석의 다정함에 제대로 마음을 뺏긴 듯했다(박해일이 이 말을 할 때, 유연석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박해일을 바라봤다).
[유연석] 양심에 마음을 뺏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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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이 발동하면 일단 전진할 것. 한번 뛰어든 취재는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말 것. 제보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할 것. 밝혀낸 진실은 세상에 알릴 것. <제보자>에서 박해일이 연기한 윤민철은 이 명령어에 충실한 시사 방송 프로그램 PD다. 뚝심 있는 저널리스트라는 얘기다. 이장환(이경영) 박사와 함께 줄기세포 연구를 해온 연구원 심민호(유연석) 팀장으로부터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다”라는 제보를 받았을 때 증거가 없음에도 앞뒤 돌아보지 않고 취재에 뛰어든 것도 그래서다. 윤민철 캐릭터에 어떤 배우가 어울릴까 떠올렸을 때, 임순례 감독은 “박해일 외엔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산이 한번하고도 반이나 더 바뀌었다. 데뷔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이후 박해일이 임순례 감독과 <제보자>로 재회한 건 무려 14년 만이다. 임순례 감독이 극단 동숭무대 연극 <청춘예찬>을 보고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고등학생
[박해일] 진실을 향해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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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석아, 뒤에 일정 없지? 인터뷰 다 끝나면 내려와. 같이 밥 먹고 가자.” 먼저 인터뷰를 끝낸 박해일이 친근하게 유연석을 불렀다. “네, 형. 먼저 가 계세요.” 유연석도 상냥하게 답했다.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건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가 처음이지만 두 배우는 가늘고 긴 인연을 오래전부터 이어왔다. 유연석은 데뷔 초부터 박해일을 “오랜 롤모델”이라고 얘기해왔고, 두 배우는 <짐승의 끝>과 <늑대소년>에 출연해 각각 조성희 감독과 가까운 사이였다. 두 배우가 사석에서 처음 만난 것도 조성희 감독이 주최한 모임이었다고 한다. 유연석이 “그 자리에 해일이 형도 계시다기에 잘 보이고 싶어서 제가 비싼 재킷까지 입고 갔었어요”라고 말하자 박해일이 장난기 어린 말투로 대꾸한다. “어, 처음 보는 친구가 이상한 가죽잠바 같은 걸 입고 왔더라고.” <제보자>에서도 두 배우는 끈끈한 신뢰로 이어져 있다. 방송국 PD 윤민철(박해일)은 아무런 증거도 없
[제보자] 믿고 따르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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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뜻 ‘밀당’의 노하우를 집약한 가르침
속뜻 ‘열려라 참깨’의 21세기 버전
주석 원래는 아이폰의 잠금화면을 여는 안내문이었다. ‘열려면 미끄러지게 만드시오.’(slide to unlock) 말이 길어서 번역자가 꾀를 낸 모양이다. ‘밀어서 여시오’가 더 짧은 말이지만, ‘lock’의 어감이 딱딱하니까 ‘잠금’이란 답답한 말을 고른 거겠지. ‘잠금’에는 ‘찰칵!’ 하는 소리가 들어 있으니까(‘ㅈㄱ’을 세게 발음하면 ‘ㅊㅋ’이 된다). 이렇게 해서 ‘unlock’은 ‘잠금해제’가 되었다. 누군가 화장실의 여닫이문에 달린 미닫이 잠금장치 옆에 ‘밀어서 잠금해제’란 글자를 적어 넣었다. 그 사진이 인터넷에 회자되자 밀어서 잠금해제할 수 있는 모든 사진이 뒤이어 올라왔다. 이 사진들에서는 아이폰 바탕화면에 깔면 앞의 말과 ‘밀어서 잠금해제’란 뒤의 말이 깔끔하게 이어져 문장이 완성된다. 이 진화과정을 되짚어보자.
처음에는 말놀이 차원의 사진들이 대세를 이루었다. 물놀이 사진에 붙인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밀어서 잠금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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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히어런트 바이스> Inherent Vice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 / 출연 리즈 위더스푼, 와킨 피닉스, 지나 말론, 사샤 피어터스, 조시 브롤린
약물에 절어 사는 탐정 래리(와킨 피닉스)는 갑작스레 사라진 전 여자친구를 찾아나선다.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범죄 미스터리물로 토머스 핀천의 탐정소설이 원작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이 <마스터> 이후 2년 만에 내놓는 신작으로 와킨 피닉스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12월12일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인히어런트 바이스> Inherent 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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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루시> 온통 잡초밭
[정훈이 만화] <루시> 온통 잡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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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훌륭한 목수인 줄 알고 결혼했고 별스럽게 아름다워질 정원인 줄 알고 손바닥만한 땅에 매달렸으니,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예전의 남편은 그저 목수가 되고 싶어 하는 성실한 남자였고 마당은 대한민국 시골 어디에나 있는 그냥 작은 땅뙈기였다.” 그렇게 7년을 살아낸 기억, 기록이다. 비우는 삶이 좋다며, 서울에 생업을 두고 종종 내려가는 지방의 삶을 예찬하는 책이 넘쳐나는 요즘, 진귀한 투박함이 빛난다.
[도서] 농촌에서의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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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준비하면 영화제를 더 즐길 수 있다. 무슨 영화를 볼지는 해마다 달라지지만, 어디서 잘지, 뭘 먹을지, 매진된 표는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같은 노하우는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말에 표가 없다며 쉽게 부산행을 포기한 사람이라면 ‘취소표 구하기’ 노하우를 전수받으시라. 19년째 영화제를 다니고 있다는 필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영화제 준비하기를 담은 책이다.
[도서] 영화제 준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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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은 거대한 마술상자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그곳에서 나오는 물건을 짐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공장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고, 그러니 언젠가부터 물건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아니지, 이제 공장들 태반은 외국에 있다.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완제품만이 우리 앞에 놓인다. 소설가 김중혁은 그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 과정은 물건의 이력을 알아내는 과정이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이제 한국에서는 명을 다해가는 몇몇 제조업의 초상을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종이, 콘돔, 브래지어, 간장, 가방, 지구본, 초콜릿, 도자기, 엘피, 악기, 화장품, 맥주, 라면…. 여기에 김중혁 자신의 ‘글 공장’도 들어간다. 영화를 많이 보는 건 물론 <씨네21>에 ‘김중혁의 바디무비’를 연재중인 그는 “원고량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는, 영화 대사를 패러디한 재치 있는 삽화를 넣기도 했다. 물샐 틈 없는 기술을 자랑하는 콘돔 이야기는 신기하고, 공장 직원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물건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