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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이 국내 250만 관객(10월28일 기준)을 돌파했다. 북미에서도 10월24일 개봉 오프닝 스코어 1725만달러를 기록,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전세계 누적 수익은 1억800만달러를 돌파했다. <귀멸의 칼날>부터 이어진 2025년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은 이제 단발성 흥행을 넘어 하나의 현상과 흐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낯설어 부정하고 싶어도 거스를 수 없는 이 대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야 한다. <체인소 맨>의 원작자 후지모토 다쓰키는 영화를 연상시키는 컷과 장면 연출로 정평이 난 만화가다. <체인소 맨>의 TV시리즈와 극장판에서는 여기에 더해 만화의 컷이 미처 담을 수 없는 ‘영화적인 연출’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 캐릭터에 생명을 부여했다. <체인소 맨>은 그저 유혈이 난무하는, 과격하고 이상한 작품이 아니다. 여기에는 밀도 높은 연출과 완성도 높은 장면들,
[인터뷰] 레제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길,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요시하라 다쓰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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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여행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 사고가 생길지라도 말이다. 남대중 감독의 <퍼스트 라이드>는 오합지졸의 죽마고우 네 사람이 떠난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영화다. 청춘 코미디의 맥락 안에서 관객이 지금껏 봐온 코미디영화의 클리셰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방심은 금물이다. 이들이 돌아올 땐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동도 있다. 현재 군복무 중인 배우 차은우의 첫 주연작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던 남대중 감독의 코미디를 향한 열렬한 애정도 확인할 수 있었던 인터뷰를 전한다. 감독 본인의 성정을 똑 닮은 영화를 내놓았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 자극적인 웃음을 강요하는 소동극이 아니다. 분명 남다른 기획의 시작점이 있었을 것 같다.
몇년 전에 인터넷에서 친구들끼리 여행을 떠나는 영상을 하나 봤다. 다 큰 어른들이 모여서는 여행에 함께하지 못한 친구의 형상을 프린트한 패널을 들고 다니면서 노는 모습을
[인터뷰] “관객이 웃을 때마다 행복하다”, <퍼스트 라이드> 남대중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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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커뮤. 자기가 창작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세계관을 짜나가며 타인과 소통을 이어가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일컫는 용어다. 알 듯 모를 듯한 이 개념을 <호수길><환호성>등으로 일찍이 독립영화 신에서 주목받은 정재훈 감독이 영화화했다. 그의 신작 <에스퍼의 빛>은 청소년들이 자캐커뮤를 바탕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모험을 떠나는 다큐멘터리다. 이들이 출연자로서 또 작가로서 누비는 길은 어느새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우고, 관객은 속칭 개연성의 관습으로부터 이탈하는 세계마저 그저 빛이라 믿으며 따르게 된다. 이 흥미진진한 괴작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재훈 감독이 낯선 영화를 경험하는 나름의 팁을 전했다. “영화는 관객으로부터 완성된다. 그러니 감각을 열어 달라. 우리도 개봉 자체가 모험이다.”
- 청소년 수강 대상의 영화 워크숍에 강사로 참여하며 작품에 착안했다고.
2017, 18년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청소년영화 몇편을 구상 중이었다. 내가 겪은
[인터뷰] 온라인도 물리적 공간이다, <에스퍼의 빛> 정재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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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베트남 공동제작의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가 베트남과 북미에서 개봉을 마친 후 한국 극장가를 찾아온다. 거리의 이발사 환(뚜언 쩐)은 치매에 걸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 레티한(홍 다오)과 호찌민에서 살고 있다. 엄마의 치매 증상이 점점 심해져만 가는데 환 역시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엄마를 온전히 돌볼 수 없다. 환은 엄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국에 사는 이부형제 지환에게 엄마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연출자이면서 동시에 다른 문화를 사려 깊게 관찰하는 수용자이기도 한 모홍진 감독은 양국의 정서가 공명하기를 바라며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둔다. 영화가 베트남에서 상영되는 동안 현지에 체류하며 다양한 반응을 미리 겪고 온 감독에게서는 함께 작업한 사람들을 향한 기쁨과 고마움이 묻어났다.
- 전작 <이공삼칠>이 베트남에서 흥행한 뒤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한국-베트남 공동제작으로 만들어졌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코로나1
[인터뷰] 모두의 새로운 도전,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모홍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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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AGI, 즉 인공일반지능이 10년 안에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했지만, 최근 들어 회의론이 대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AGI는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며, 대신 특정 기능에서 큰 능력을 발휘하는 쪽으로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쪽이 낫다는 견해도 많이 나온다. 이러한 논쟁을 보면서 애초에 AGI, 나아가 ASI, 즉 인간을 훌쩍 능가하는 인공초지능의 개발에 몰두하는 흐름은 일종의 ‘의인관의 오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미국의 경제사상가 소스타인 베블런이 산업혁명 이후 생산의 주역으로 새로이 나타난 기계를 두고 사람들이 범해온 그릇된 이해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은 놀라운 효율성과 힘으로 엄청난 생산성을 발휘하는 기계라는 존재를 두고서 이것이 인간의 신체 작동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인관’(anthropomorphism)의 관점을 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블런에 의하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산업혁명 이후에 나타난 기계는 그
[홍기빈의 클로징] AGI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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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미스러운 스캔들에 휘말려 활동을 중단한 아이돌 스타 은채(조수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랫동안 교류가 없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전해진다. 그가 남긴 것은 출처 모를 빚과 낡은 태권도장뿐. 주변에 떠밀려 계륵 같은 유산을 떠안게 된 은채는, 그곳에서 옛 친구 희찬(김동한)과 재회하며 잠시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펼치기 시작한다. 대부분이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지만 20대라는 어린 나이에 첫 좌절을 맛보기 쉬운 것이 예체능의 길이다. 이에 영화는 각각 대중음악과 체육을 상징하는 두 인물의 재도전을 조명하며 <리플레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아쉽게도 극장용 장편영화보다는 웹드라마 스타일의 설정, 연출, 캐스팅이라는 인상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하며, ‘도전’이라는 교훈과는 반대로 작품 자체는 익숙한 서사와 연출을 ‘리플레이’하는 안전한 길을 택하고 만다.
[리뷰] 어디선가 이미 본 것들만 ‘리플레이’, <리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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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엄마(홍 다오), 그리고 심해지는 발작 증세. 거리의 이발사 환(뚜언 쩐)은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착한 청년이지만, 그가 짊어진 가족의 생계와 병세는 한계에 다다른다. 결국 환은 엄마가 젊은 시절 아버지를 만났던 한국으로 떠나기로 한다. 더 나은 치료, 혹은 잃어버린 가족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절박함과 함께. 지난 8월 베트남에서 개봉해 200만 넘는 관객을 동원한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감독, 배우, 주요 연출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한국과 베트남이 합작한 영화다. 롯데월드나 첫사랑과 같은 상징으로 영화는 ‘코리아 판타지’를 제시하는 한편, 두 베트남 주인공이 처한 질병과 빈곤은 감당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의 연속으로 그려져 관객을 지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은 한국이라는 과거가 아닌 고국이라는 현재에서 계속되어야 한다는 모범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베트남을 위한 서사와 정서를 되찾는다.
[리뷰] 적당히 치고 빠지는 코리아 판타지,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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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퍼의 빛>은 테이블톱 롤플레잉게임(TRPG)을 즐기는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정해진 대본 없이 게임 플레이어들이 가상의 역할을 연기하는 TRPG의 대전제에 따라 <괴력의 아이들><새벽의 파편><기뇌국>의 주인공들은 OA 에스퍼가 제공하는 선택지에 의거한 모험을 떠난다. <에스퍼의 빛>은 청소년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형태든 될 수 있는 세계를 다루며 이들이 직접 자기만의 서사를 써나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이를테면 영화 속 청소년들은 게임 세계에서 특별한 이(異)능력을 부여받는다. 그 이능력은 <엑스맨>의 세계관처럼 플레이어들을 원가정으로부터 유리하는 동시에 절멸 직전인 세계를 구원하도록 만든다. 청소년 플레이어들이 회복하려는 세계의 원점은 우정, 자연, 가상현실 등 제각각이다. 한데 그 바람이 끝내 한 지점으로 수렴할 때, 통상의 영화를 보며 좀처럼 감각하기 어려웠던 낯선 감흥이 관객을
[리뷰] 세계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그럼에도 세계에 빛을 밝히려 할 때, <에스퍼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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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표범><하얀 목련><향수><타타타 >…. 장르를 넘나들며 수많은 히트곡을 쓴 작곡가이자 뛰어난 기타리스트 김희갑, 그의 동반자이자 컬래버레이터인 작사가 양인자. <바람이 전하는 말>은 두 사람의 이웃이었던 양희 감독이 10년에 걸쳐 남긴 기록이다. 김희갑, 양인자부터 그들과 협업한 뮤지션, 뮤지컬 음악감독, 음악평론가, 혜은이 팬클럽 회원들까지 다양한 인터뷰이를 경유해 음악인으로서 김희갑의 재능과 태도를 그린다. 인물의 근거리에서 출발한 작품인 만큼 평가와 해석보다는 애정 어린 회고에 무게가 실린다. 반복되는 감탄의 말보다 곡에 사로잡힌 순간을 떠올리며 눈을 빛내는 뮤지션들, 즉흥연주를 하고 소탈하게 웃는 김희갑, 기억을 잃어가는 증상을 차분히 받아들인 채 나란히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 등 서정적인 고백과 여백들이 인상에 남는다. 불후의 명곡을 과거 공연 푸티지와 함께 모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영화의 묘미다.
[리뷰] 10년의 서정적인 기록, <바람이 전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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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2월13일 일본군에 함락당한 난징은 생지옥이 된다. 일본군은 중국군의 사기를 꺾으려는 목적으로 학살을 저지르고 사진으로 기록하려고 한다. 길상 사진관의 집배원 쑤류창(류호연)은 우연히 일본군의 종군 사진사 이토 히데오(히라시마 다이치)에게 조수로 발탁된다. 그는 지하에 숨은 사진관 사장 진천종(왕효)에게 필름현상을 배우며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쑤류창은 필름을 인화하다가 학살 현장이 담긴 필름 원본을 발견한다. <난징사진관>은 <고주일척>을 감독한 신오 감독의 신작으로 중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반인륜적 범죄인 난징대학살을 스펙터클로도, 민족주의 프로파간다로도 소비하지 않으려는 절제가 돋보인다. 대신 역사적 참상을 알리려는 소시민의 휴머니즘에 주목해 공감대를 불러오는 데에는 성공하나, 영화가 여러 유명한 전쟁영화의 장점을 고스란히 가져온 패치워크 같다는 인상을 남긴다.
[리뷰]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비극 재현, 딱 거기까지, <난징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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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 시골에 있는 한 병원. 흉기에 찔린 은서(김정민)가 실린 하얀 차가 도착한다. 경찰 현주(이정은)는 정황을 파악하려고 차를 운전한 도경(정려원)의 진술을 듣는다. 친언니도 아닌 은서를 언니라 부르는 등 그녀의 진술은 심정적인 혼란으로 가득해 앞뒤가 맞지 않다. 현주는 그 진술에 숨은 진실을 찾아야 한다. <하얀 차를 탄 여자>는 드라마 <검사외전 ><로스쿨>을 공동 연출한 고혜진 감독의 데뷔작으로,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을 수상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오마주한 소품에서 드러나듯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장르적 재미가 탄탄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장르적인 장치로 가정폭력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여성의 마음을 섬세히 그려내는 미덕이 돋보인다. 이야기에 비해 평면적인 연출이 아쉬움을 남기나 두 주연의 호연이 단점을 상쇄한다.
[리뷰] 이쯤이면 히가시노 K-고 차가운 추리에 담은 뜨거운 연대, <하얀 차를 탄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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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제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에서 먼저 관객을 만난 <생명의 은인>은 서로를 ‘생명의 은인’으로 삼은 두 여자를 따라간다. 먼저 구원자를 찾아 나선 건 병세가 악화돼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은숙(송선미). 그는 자립 지원금 500만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정(김푸름)에게 자신이 오래전 화재 사고에서 세정을 구했다고 말하며 뒤늦은 보상을 요구한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진실은 안갯속인 가운데 각자의 이유로 돈이 절실한 그들은 뜻밖의 동고동락을 경험한다. 방미리 감독은 세정과 은숙 사이의 긴장감과 해소 과정을 밀도 높게 묘사할 뿐 아니라 영화가 일종의 추리극이자 로드무비로서 재미를 갖출 수 있도록 리듬감 있는 전개를 택했다. 여정이 다소 급작스럽게 마무리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지만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대목의 여운 또한 진하게 남는다.
[리뷰] 상실마저 삶의 일부로 매만지는 다정한 손길, <생명의 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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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첫해이자 변화의 물결이 시작되던 2001년.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 경환(심현서)이 대구로 전학해온다. 취향을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 때문에 자신을 숨기던 경환에게 재민(현우석)이 마음을 열고, 두 소년은 그룹 글로브의 음악을 듣는 5분의 시간을 공유하며 가까워진다. 경환이 재민에게 비밀을 털어놓은 후 이들은 새 국면을 맞는다. 영화는 인터넷과 MP3, 일본 노래를 매개로 서로의 세계를 잠시 엿보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404 Still Remain’으로 사람과 장소는 사라져도 그때의 감정은 남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404 Not Found가 아닌 데서 오는 안도감, 그리고 5분처럼 짧았던 그 시절이 여전히 기억에서 재생된다는 위안의 메시지. 노래 한곡의 재생 시간만큼 5분 동안 펼쳐지는 결말의 힘이 크다.
[리뷰] 5분의 노래 5분의 엔딩 그리고 404 Still Remain, <너와 나의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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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선희, 그림 그리는 준상 그리고 시를 쓰는 지봄.” 무척이나 가뿐한 영화의 시놉시스처럼, <구름이하는말>은 정말 구름의 자유로운 모양새를 이야기로 치환한 듯한 작품이다. 부산에 있는 작은 카페 ‘매일이다르다’에선 곧 2인조 밴드 ‘현수와 선희’의 작은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이에 준상(이시오)은 공연의 포스터를 그리게 되고, 선희(배선희)는 노래를 준비한다. 이 과정에 청중으로 참여했던 지봄(이지봄)은 선희의 곡에 가사를 붙이게 된다. 재개발로 인해 정든 집을 떠나야 하는 지봄에게 이 일은 꽤 기분 좋은 전환의 계기가 된다. 이렇게 창작의 맥락과 협업으로 자연스레 얽혀가는 많은 이의 모습이 차근차근 포개어진다. 가까운 곳에 사는 이들이 서로의 옷깃을 스치며 살짝 만났다가 헤어지고, 각자의 일상을 사는 느슨한 군상극이다. 여기엔 지나치게 예술 작업을 지나치게 우상화하는 과잉의 터치도 없고, 감정의 골을 억지로 뽑아내려는 드라마타이즈의 압박도 없다. <구름이하
[리뷰] 구름의 테두리처럼 자유롭고 흐릿하게 뻗쳤다가, 모였다가, <구름이하는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