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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구석 자리에서 어느 화가와 음악가가 협업을 논하고, 카메라는 공기 중을 떠도는 먼지처럼 자유로이 움직이며 그들의 얼굴을 찍다가 어떠한 충동에라도 매혹된 듯 창문으로 스멀스멀 접근하는데 유리의 경계 너머엔 주택가의 철거 현장이 보인다. 뿌연 창문 뒤로 보이는 건물의 잔해 위로 느닷없는 짙은 군청색의 파도가 넘실거리며 덧대지자, 영화는 빛의 흐름을 따라서 온갖 사람과 동물을 몽타주하더니 이야기의 속내를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의 연결로 이어진다. 지역의 장소성을 부각하거나 연출자의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순간도 없고, 스크린 위에 비치는 부산 지역의 풍경을 이런저런 의미로 조합하여 도출하거나 그 너머의 함의를 내세우려 하지도 않는다. <구름이하는말>은 그저 그 풍경들이 흐르고 보이는 영화의 가시성만을 지속한다. 의미를 생산하기보다, 의미가 발생하기 이전의 상태를 조명하는 것이다. 이는 작금 독립영화의 체제가 상실하고 있던 자유로운 에세이영화의 방법론을 입증하며, 중심으로서
[기획] 자유의 에세이, <구름이하는말>로부터 지역영화란 것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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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퍼의 빛>의 한 장면, 창가에 앉은 외국인 여자아이가 보인다. ‘롤라’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창조한 TRPG(테이블톱 롤플레잉게임) 플레이어의 모습이다. 때마침 뒤편에 놔둔 스마트폰에서 게임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는 알람이 울린다. 아이는 무심한 얼굴로 잠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뒤 다시 책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그는 접속을 거부하고 현실의 무심한 시간에 머문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이 장면은 <에스퍼의 빛>에서 무척이나 미묘한 긴장을 발휘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아이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는 그 순간 영화의 화면은 이중의 구멍으로 열리기 때문이다. <에스퍼의 빛>의 화면에는 플레이어가 지켜보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의 풍경과 그가 현실에서 바라본 창밖의 풍경이 모두 보이지 않는다. 장면 속의 아이는 무언가에 흥미를 잃거나 무언가에 시선을 사로잡히게 되지만, 영화는 독립적으로 펼쳐진 세계의 완성된 풍
[기획] 풍경을 변형시키기, <에스퍼의 빛>이 응답한 영화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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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공개한 2025년 올해의 한국영화 10선에 8편의 독립영화가 이름을 올렸고, 1위 <세계의 주인>은 관객수 18만명을 돌파하고 있으며 <사람과 고기> <여름이 지나가면> <3670> <3학년 2학기> 등의 독립영화가 1만~4만명 안팎의 관객을 모으며 선전했다. 그렇다고 2025년이 한국 독립영화의 성취가 빛난 해로 기록될지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독립영화의 선전은 500만 시장으로 반토막 난 한국 상업영화 시장의 부진에 가려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이든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눈에 먼저 들어오기 마련이고, 영화산업이 침체함에 따라 독립영화의 구조와 인력 상황도 축소할 것이기에 산업부터 챙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법하다.
다만 이러한 주장은 독립영화의 성취를 관객수 등의 정량적 지표에 빗대어 보는 시선의 결과물이다. 그보다 <씨네21>은 올해 공개된 일련의 독립영화들이 제작, 상영 등의
[기획] 대안의 대안으로, 2025년 독립영화가 펼친 제작·배급·상영의 새로운 시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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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차기작 <룩백>의 티저 포스터가 공개되었다. 2026년 개봉예정인 이 작품은 단편만화로 탄생해 애니메이션을 거쳐 실사화된 것이다. 그림이라는 형태로 남아야 그 본질이 전해질 수 있는 이야기라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못내 이 신작을 기대하게 하는 이름이 있다. 연출자가 무려 고레에다 히로카즈지만 지금 언급하고 싶은 이는 주인공 교모토 역을 소화했다는 소문이 무성한 배우 데구치 나쓰키다.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이지만, 공식적인 부인도 없어 모두가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이 캐스팅은 분명 한눈에 이해되는 조합은 아니다. 시부야 거리를 걷다가 기획사 직원의 러브콜을 받고 모델로 데뷔할 만큼 눈에 띄는 비주얼의 소유자가 집 밖을 통 나서지 않는 더벅머리의 만화가 지망생을 연기한다니 말이다.
하지만 2025년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영화 <올 그린스>를 본 관객이라면 데구치 나쓰키와 교모토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기획] 예상 밖에서 빛나는, 배우 데구치 나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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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때부터 TV드라마에 얼굴을 비춘 소녀가 20살이 되어 말한다. 배우로서 감각을 유지하려면 일상을 소중히 해야 한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매일 학교에 가지 않게 되고부터 감정 기복이 심해졌어요. 교실 자리에 앉으면 강제로 배역과 떨어질 수 있잖아요. 그때 마음을 리셋할 수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2025년 가을 연극 공연을 앞둔 이토 아오이가 한 인터뷰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그러니 성인이 되고나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외출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신경 쓰고 있다는 그는 나름의 지혜로 연기 인생 2기를 열어젖히는 중이다.
이토 아오이가 관객에게 처음 각인된 건 제40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관왕을 차지한 <행복 목욕탕>에 출연하면서다. 그가 성인배우들과 곡진한 케미스트리를 빚을 수 있었던 데는 나카노 료타 감독의 특훈이 한몫했다. 감독은 어머니 역의 배우 미야자와 리에와 딸 역의 이토 아오이가 한달 반가량 메일로 소통하며 하루 일과를 주고받게 했다. 촬영 전부
[기획] 약동하는 근성, 배우 이토 아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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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유타의 얼굴은 신기하다. 좋은 의미에서(positive). 청춘의 무모함과 경쾌함, 발랄함과 귀여움을 담은 얼굴. 하지만 동시에 끝이 안 보이는 바닥에 닿은, 그러니까 세파에 질리도록 시달린 이가 품은 척박함을 뿜어낸다. 이건 단순히 생김새에서 오는 느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때로 아이처럼 장난스럽고, 때로 버려진 짐승처럼 불안한 그 눈빛에서 오는 것일까? 혹은 뿌루퉁한 입과 조심스러운 걸음걸이에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양가적인 얼굴이 그를 여러 영화에 안착시키며 다채로운 순간을 빚어낸다는 점만은 확실한 것 같다.
2026년 1월에 개봉하는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에서 하야시 유타가 연기하는 마모루는 누군가의 집에 도착해 짐을 정리한다. 무거운 공기에 위축돼 터벅터벅 몸을 옮기면서도, 이리저리 뒤적이며 값나가는 물건을 찾는 묘한 몸짓. 그는 별말 하지 않고도 오로지 실루엣을 통해 이 기묘한 순간의 질감을 표현해낸다. 영화
[기획] 까슬하지만 천진하게, 배우 하야시 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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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에서 가부키 명문가의 아들 슌스케 역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고시야마 게이타쓰는 국내 관객에게 새로운 얼굴이다. 하지만 그는 자국인 일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주목받고 있는 신예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이미 10개 이상의 작품에 출연했다. 2026년 1월 국내에서 개봉하는 <마이 선샤인>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2025년 ‘일본 아카데미 신인배우상’, ‘키네마준보 베스트10 신인남우상’ 등을 휩쓸며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2009년생으로 올해 17살. 아이돌 활동도 병행 중인 고시야마는 어쩌면 우리가 ‘소년’이라는 단어에서 기대할 법한 이미지를 가장 정석적으로 체화한 배우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그의 연기는 소년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 가닿곤 한다. <마이 선샤인>에서 타쿠야로 분한 그는, 친구들과 야구를 하다 문득 멈춰 서서 눈 내리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홀연히 궤도를 이탈한
[기획] 말간 소년의 경계 너머, 배우 고시야마 게이타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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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는 20년간 지켜온 철칙이 있었다. 미성년 배우에게 대본을 외우라고 지시하지 않는 것, 웬만해서는 아예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2023년 <괴물>의 촬영장에서 누군가가 이 고집을 꺾어놓았다. 13살 배우 구로카와 소야였다. 여러 매체를 통해 고레에다는 구로카와 소야의 말을 회상했다. “감독님의 대본을 전부 읽고 싶어요. 제 마음이 어디서 움직이는지 느껴보고 싶습니다.”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를 향한 마음이 세상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중인 미나토(구로카와 소야)는 종종 물음을 가장해 절규하는 소년이다. 혼란과 위악이 뒤섞인 인물의 표현법을 배워가면서 구로카와 소야는 감정을 몸의 감각으로 바꾸어 연기해보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조언에 힘입었다. 슬플 때는 목구멍이 조여오고 기쁠 때는 추운 날에도 뱃속이 따뜻해진다고 가만한 자태로 자기 몸을 감각해보던 소년에게 일본 아카데미상은 신인배우상을 안겼다.
2년 후 <국보
[기획] 순수함의 격정, 배우 구로카와 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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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에만 배우 가와이 유미가 출연한 영화 세편이 한국에서 개봉했다. 그가 원톱 주연이라 할 수 있는 <나미비아의 사막>, 삼각관계의 한축이 된 <오늘 하늘이 가장 좋아,라고 아직 말할 수 없는 나는>, 초반부 극중극에 등장하는 <여행과 나날>이 차례로 극장을 밝혔다. 신작의 기세에 힘입어 2026년 1월 내한을 앞둔 그는 일찍이 <썸머 필름을 타고!>의 킥보드 역으로 한국 관객의 눈에 들었다. 친구를 도와 카메라를 잡는 SF 애호가의 활력을 기억한다면 그가 한해 동안 스크린에 줄곧 비춰온 표정이 생경할지도 모르겠다. ‘푸른 봄’이라 미화되는 시절을 비웃듯 웃음기를 걷어낸 가와이 유미의 얼굴들은 욕망의 대상이 되는 와중에도 불안의 주체로 생동했다.
가와이 유미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영화라 칭한 <아미코>의 감독 야마나카 요코와 협업한 작품 <나미비아의 사막>에 그 정수가 묻어 있다. 여기서 가와이 유미가 연기한 여
[기획] 무지의 표정, 미지의 여자, 배우 가와이 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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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마쓰 쇼가 <모범택시3>의 빌런으로 분해 이제훈과 대결하고, 오구리 슌은 <로맨틱 어나니머스>로 한효주와 로맨스를 싹틔운 2025년에 이어 앞으로도 한국 관객에게 일본 배우들의 존재감은 쉽사리 식지 않을 것 같다. 2026년 공개되는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 되나요?>에는 후쿠시 소타가 등장하고, CJ ENM과 닛폰 텔레비전이 공동 제작하는 <메리 베리 러브>에서는 지창욱과 이마다 미오가 협업한다. 디즈니+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2>도 확장된 세계관에 오카다 마사키를 비롯한 일본 배우들이 합류할 것을 알렸다.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얼굴들이 합작의 흐름을 이끌었지만, 앞으로는 어떨까. <씨네21>은 지난해 봄 소라 네오, 야마나카 요코, 고모리 하루카 등 최근 일본영화계의 호응을 이끈 감독들을 호명하며 연출자들부터 조명한 바 있다. 이번에는 배우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던져본다. 그중에서도 남은 2
[기획] 반짝반짝 빛나는 일본영화의 새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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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게시판에 써온 글들이 온라인 세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더니, 이제 그는 판사의 법복을 벗고 드라마작가의 삶을 산다. 에세이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유감> 등을 통해 세상에 불화하는 것들을 명료하게 포착해온 문유석 판사는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악마판사>로 새로운 관점의 법정물을 선보였다. 이번엔 공익 변호사다.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의 라틴어(Pro bono publico)인 <프로보노>는 최연소 부장판사로 올라 대법관까지 꿈꿨지만 한순간에 공익 변호사로 강등된 강다윗(정경호)의 굴곡 어린 여정을 그린다. 공익 변호라는 주제적 울타리는 동물권, 장애인과 청소년, 난민과 이주 여성 등 다양한 범위의 인권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기 충분하다. 하지만 <프로보노>를 통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법리가 채 가리지 못한 감정 어린 문장들이다. 재판정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서글픔과 외로움, 간절함과 초조함을 아는
[인터뷰] 아름다운 법정 주문의 주인, <프로보노> 문유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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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재현은 ‘좌빠+자빠’다>라는 글을 다시 찾아 읽었다. 2005년 세밑 <한겨레>에 실린 문화비평가 이재현의 새해맞이 에세이다. 여기서 그는 장구 익히기와 영어 공부를 다짐한다. “제대로 공부해보자고 맘을 먹으면 신이 나서 뇌에서 엔돌핀, 즉 마약이 마구 분비되는 것이다.” 그는 사석에서도 곧잘 늦깎이 공부가 즐겁다 했다. 요즘 내가 그렇다. 2025년 국가기술자격증(2급)을 두개 땄다. 그런다고 당장 뭐가 되진 않지만, 재미가 컸다. 공부라면 학을 뗐던 내가 말이다. 직업상담사 시험장에는 50대들도 여럿이었다. 사회조사분석사 시험장에선 나 빼고 다 2030이었다. 중간자와 최고령자를 오가며 인생의 묘미를 곱씹었다. 시험장인 신도중학교 3학년 1반의 급훈은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그래, 문돌이인 내가 통계수학과 통계분석 프로그램까지 학습한 것도 즐거워서였지. 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 합격자 발표를 기다린다. 삶은 기적인가. 다만 나이 먹으니 착잡한 일도
[김수민의 클로징] 반드시 크게 들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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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화 시나리오작가로 대중으로부터 선망받았던 벤 샌더슨(니컬러스 케이지)은 알코올중독자로 전락하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회사에서까지 퇴출당한 그는 거액의 퇴직금을 받아 라스베이거스로 떠난다. 그곳에서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여자 세라(엘리자베스 슈)를 만나고 서로의 결핍을 단번에 알아본 둘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충동과 중독, 본능적임과 즉흥성, 술과 섹스만이 이들의 여백을 채우고 서로의 경계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정서적 교감은 계속해서 깊어진다. 벤과 세라에게 라스베이거스는 충동과 오감 만족의 도시인 동시에 쉽게 채울 수 없던 공허함을 재차 인식하고 발견하는 공간이다.
니컬러스 케이지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마이크 피기스 감독에게 감독상과 각색상을, 니컬러스 케이지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기며 화려한 도시에 쉽게 희석되지 않는 어둠을 조명했다. 2025년에 다시 만난 이 영화는 다소 원초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알코
[리뷰] 재개봉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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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사별하고 권고사직으로 직장을 잃은 석인(김민종)은 젊은 시절을 보낸 도시 피렌체로 향한다. 그곳에는 세상을 떠난 친구 엔조(해리 벤자민)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의 아내 유정(예지원)이 여전히 일하며 살아간다. 석인은 유정의 집에 머물며 찬란했던 기억이 깃든 도시를 순례하듯 다시 걷는다. 피렌체에서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두오모의 쿠폴라에 오르는 일. 자신을 지탱하던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의 석인은 쉽게 발을 떼지 못하고 근처를 맴돈다. 영화는 친구와 아내의 부재를 애도하는 시간으로 채워가면서 점차 석인 자신에게로 애도의 대상을 옮겨간다. 과거와 작별하고 상실을 받아들이는 중년의 순례길을 담담하게 그린 이 영화는 배우 김민종이 20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작품으로 ‘글로벌 스테이지 할리우드 영화제 2025’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리뷰] 젊음의 파편을 주우며 걷는 기억 순례길, <피렌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