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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를 펼쳐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 의구심에 답하듯 227일에 걸친 주인공 파이의 생존기를 140분의 시간으로 압축해낸 무대의 막이 올랐다. 지난 11월 한국에서 초연한 공연 <라이프 오브 파이>의 큰 줄거리는 원작과 같다.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가던 파이는 폭풍으로 인해 조난당하고 227일 만에 홀로 생존한 채 발견된다.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찾아온 보험사 담당자에게 그는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벵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함께 보트에 남아 필사적으로 살아남고자 한 과정을 들려준다.
공연에는 크게 두 공간이 필요하다. 파이가 보험사 담당자에게 증언하는 병실, 동물들과 파이가 공존했던 망망대해 위의 배. 병실의 침대는 파이의 내레이션과 함께 수시로 배로 뒤바뀌며 매끄럽게 시공간을 넘나든다. 원작 소설이 상상의 여지를 불러일으키고 영화가 과거 사건을 이미지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공연은 눈앞의 현실
[culture stage] 라이프 오브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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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중국 영화시장의 성적표가 나왔다. 총 박스오피스는 512억위안(10조5천억원)을 기록했으며, 총 동원 관객수는 12억명에 달한다. 지난해 총수익 425억위안과 비교하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봐도 좋을 수치다. 2025년 중국 극장가는 애니메이션 중심의 편중된 흥행 구조가 두드러졌다. 이는 자국영화의 점유율이 82%에 육박하는, 사실상 자국영화 중심의 시장 체제의 공고화와도 관련이 깊다. 이를테면 중국 고전소설 <봉신연의>를 각색한 자국 애니메이션 <나타2: 마동요해>(이하 <나타2>)가 154억4천만위안의 수익을 기록했다. 설 연휴에 개봉한 <나타2>는 개봉주부터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했고 6월30일까지 장장 5개월간 극장에 걸리며 ‘중국영화 역대 관객수 1위’의 역사를 썼다. A24의 미국 배급까지 확정한 <나타2>는 오직 ‘역대 관객수 1위’의 기록으로만 중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 글로벌 애니
[베이징] 애니메이션 흥행 돌풍, 2025년 중국 영화시장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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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는 시즌1보다 인물의 서사와 경쟁에 임하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보여준다. 백수저 선재 스님과 흑수저 ‘뉴욕으로 간 돼지곰탕’의 대결이 단적인 예다. 경쟁자라기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주목받으며 긍정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반면 백수저 송훈을 향한 흑수저 ‘요리괴물’의 도발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시즌1과 시즌2의 가장 큰 차이는 ‘언더도그’(underdog) 서사의 약화다. 흑수저의 성장 서사보다는 후덕죽, 박효남, 손종원처럼 팀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들의 리더십에 더 집중했다. 반대로 공격적으로 통제적인 태도를 보이는 출연자에게는 ‘무례하다’라는 평가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에도 갈등은 오래 유지되지 않고, 거친 감정은 곧 정리됐다. 물론 이런 리더십 선호는 개인의 미덕을 넘어 갈등과 불안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안정감’을 갈망하게 된 사회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날 선 경쟁보다 조율과 책임을 보여주는 인물이 환영받는
[오수경의 TVIEW]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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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 서울고등법원은 한명의 다큐멘터리스트에게 ‘영화를 찍었다는 이유’로 벌금 200만원의 2심 유죄를 선고하며 1심 판결을 관철했다. 피고인은 <논픽션 다이어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다큐멘터리에 담아온 정윤석 감독이다. 그는 2024년 12·3 비상계엄의 여파로 일어난 2025년 1월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이하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기록하던 중 경찰에 현장 체포됐다. 검찰은 그를 서부지법에 침입하여 난동 부리던 극우 세력들과 공동정범으로 간주해 정식 조사 절차도 없이 기소했고, 법원은 2025년 8월 1일 1심 유죄를 판결했다. 2심 판결은 더 악화했다.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실제 법원 침입자 20명은 감형되거나 집행유예도 받았지만, 정윤석 감독에겐 감형도 선처도 없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정윤석 감독이 “집회 참가자들과 합류하거나 합세하지 않고 동떨어져서 촬영만 했기
[포커스] 다큐멘터리가 죄가 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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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새삼 범사에 감사한 마음이 차오른다. (<씨네21> 기준) 설문 대상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2025년 올해의 영화로 꼽진 못했지만, 올겨울 짙은 얼룩을 남긴 영화를 한편만 꼽자면 단연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의 <슈퍼 해피 포에버>였다.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이 영화는 잔잔한 파도처럼 1년 내내 주변을 서성거리더니 마침내 국내 개봉한 덕분에 관객들과 함께 이 묘한 상실의 회상을 공유할 수 있었다. 감독 스스로 ‘어슬렁거리는 영화’라고 표현하던데, 이상하게 그 단어마저 참 다정한 울림으로 귓가를 맴돈다. 최근 이른바 뉴 제너레이션으로 불리는 일본의 젊은 감독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솔직히 이런 분류가 개별 영화를 감상하는 데 그다지 유효하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일련의 흐름이 감지되는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순 없다.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2024년 <슈퍼 해피 포에버>를 소개하면서 “하마구치 류스케는 집요함으로, 미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다정의 씨앗, 행복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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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산권 영상미디어 복합문화공간 서부산영 상미디어센터가 문을 열었다. 미디어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서부산권에 균형 있는 미디어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추진된 센터는 영화의전당이 위탁운영하며 전문성과 공공성까지 두루 갖췄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각자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콘텐츠 지원 사업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서부산영상미디어 센터는 콘텐츠가 탄생하는 창작의 순간부터 감상과 비평까지 전 과정을 넓게 다룰 예정이다. 먼저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영상 제작 및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촬영 스튜디오와 1인 미디어실 대여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또 85석 규모의 영화 전용 상영관에서는 예술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테마별 기획전과 관객과의 대화(GV)를 이어가고자 한다. 창작을 독려 하는 공간이 일상이 될 때, 세상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서부산영상미디어센터는 이 질문에 성실히 답할 준비를 마쳤다.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모두의 극장
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영
[ADVERTORIAL] 영화가 모두에게 가까워진다, 서부산영상미디어센터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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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사로잡는 포스터, 소유욕을 부추기는 굿즈, 컨셉이 명확한 이벤트… 개봉 준비를 마친 영화가 관객을 만나기 위해 내놓는 모든 콘텐츠가 홍보·마케팅의 산물이다. 올해의 영화 뒤에는 올해의 홍보·마케팅이 있는 셈이다. 작품의 첫인상을 좌우할 뿐 아니라 N차 관람을 유도하는 기획이 2025년에도 즐비했다. 극장을 잠시 시끌벅적하게, 영화를 다시 이야깃거리로 만들어준 아이디어들의 목록을 펼치며 물어본다. 무엇이 관객의 걸음을 스크린 앞으로 이끌었을까?
올해의 흥행 공약 - <좀비딸>의 <Soda Pop> 챌린지
2025년 한국영화 흥행 1위는 563만 누적 관객수를 쌓은 <좀비딸>이다. 한해의 최고 기록으로는 못내 아쉬운 숫자지만, <좀비딸>은 여름 극장가에서 관객의 선택을 받아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220만명을 훌쩍 뛰어넘는 성과를 얻었다. 마침내 300만명 흥행 공약을 지킬 수 있게 되었을 때, 배우들도 화끈하게 팔을 걷어붙였다
[특집] 굿즈부터 이벤트까지 - 2025년 영화계가 관객을 끌어모은 기억할 만한 극장 밖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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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영화의 부재, 기획형 상업영화의 연이은 실패 등 올해 한국영화의 부진은 애니메이션을 필두로 한 일본영화의 약진과 비교되곤 한다. 한국영화계의 침체는 이견 없는 결과다. 그러나 상업영화 성적 중심의 표면적 분석만으로는 저변의 변화와 돌파구를 가늠하기 어렵다. 흥행작의 관객수가 1천만명 전후를 맴돌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500만명 안팎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신작을 꾸준히 챙겨보는 이들의 수가 반 가까이 줄었다고 거칠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독립예술영화 시장엔 괄목할 만한 변동이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아트하우스의 몰락이 예견되기도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예술영화 시장은 활기를 띠며 수년째 관객몰이 중이다. 그보다 덜할지언정 한국 독립영화 역시 다양성을 확보한 작품과 함께 2024년과 2025년은 다른 관객 양상을 보였다.
독립영화부터 살펴보자. 매년 달라진 경향을 짚기 어려울 만큼 독립영화는 다양한 주제를 포괄한다. 그럼에도 올해는
[특집] 독립예술영화의 저변 확대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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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드물게도 봉준호와 박찬욱 두 거장 감독이 모두 작품을 공개한 이례적인 해였지만, 이들도 극장가 침체의 파도를 피해갈 수는 <미키 17><세계의 주인>없었다. 에드워드 애슈턴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풍자적인 노동·계급·차별의 관점이 녹아들며 호기심을 이끌었다. 할리우드 파업 등으로 개봉이 두 차례 연기됐기에 <미키 17>에 대한 전세계적 기대와 관심은 계속해 올랐다. 심지어 대선 레이스 중 도널드 트럼프가 경미한 총상을 입은 사건이 마샬(마크 러펄로)의 처지와 겹치면서 전세계적 우경화와 독재자를 지목한다는 분석도 두루 받았다(당시 탄핵 정국에 접어든 한국은 더더욱 작품을 기민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높았던 탓일까. 흥행 속도는 가파르게 더뎌지면서 국내 누적 관객수 301만명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7천만달러(약 1038억원) 규모의 손실이 예상되었다. 대한민
[특집] 거장의 귀환, 중견감독의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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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극장가에서 애니메이션 다음으로 이목을 끈 장르는 국산 코미디다. 한국영화 누적 관객수 톱5 중 <야당>과 <어쩔수가없다>를 제외한 세편이 정통 코미디로 분류된다. 인기 웹툰을 각색한 <좀비딸>, 5년 만의 속편으로 돌아온 <히트맨2>, 조폭 코미디 계보를 잇는 <보스>가 각각 563만, 254만, 243만 관객을 모았다. 세 작품은 각각 여름 성수기, 설 연휴, 추석 연휴를 맞아 개봉했다. 극장이 북적이는 시즌에 경쟁작들을 제치고 선택받은 것이다.
특히 <엑시트> <파일럿>으로 대중적 호감을 적립해온 배우 조정석이 <인질>로 준수한 연출력을 선보인 필감성 감독과 협업한 <좀비딸>은 <전지적 독자 시점>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등의 대작들 틈에서 손익분기점의 2배가 넘는 스코어를 수확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선전한 <범죄도시> 시리즈나
[특집] 그나마 웃었다, 국산 코미디와 외화 호러의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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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해외영화 박스오피스 1, 2, 3위가 모두 애니메이션이었던 이래로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의 강세는 이어지고 있다(12월23일 기준). 2025년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박스오피스 1위 <주토피아 2>, 2위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5위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으로 톱5의 과반수를 애니메이션이 차지했다. 세 작품 중 가장 마지막으로 개봉한 <주토피아 2>는 개봉 14일차에 400만명을 모객하며 최단 기간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고 올해 유일하게 누적 관객수 600만명을 돌파했다. 원작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가뿐히 뛰어넘고 전 세대로부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압도적 존재감을 입증한 재패니메이션 IP 또한 고공 행진했다. 개봉 당일 오전까지 사전예매량 90만장을 넘긴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누적 관객수 568만명을 달성하며 여름 시장의 가시적인 구원투수로 떠올랐다. 영화산업에서 재패니메
[특집] (해외) 애니메이션이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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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화는 정치적이다.”(Tout film est politique) 장뤼크 고다르의 전언은 2025년에도 전 세계 영화 시장을 격발한다. 스크린이 극장 바깥의 세계를 비추는 창이라면 영화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역동적 현상, 정치를 자연히 화면 안으로 끌고 들어올 수밖에 없다. 올해의 해외영화 1위 폴 토머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3위 라이언 쿠글러의 <씨너스: 죄인들>, 5위 자파르 파나히의 <그저 사고였을 뿐>은 모두 정치적 신념이 생존의 의제가 된 시대의 저항 방식을 장르영화의 외피 아래에서 모색한다. 1930년대 미국(<씨너스: 죄인들>)과 2020년대 미국(<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엔 여전히 구조적 인종차별이 만연하고, 동시대 미국과 동시대 이란(<그저 사고였을 뿐>)에선 파시즘적 망령이 헤게모니를 쟁취한 후 약자 시민을 향해 폭력을 휘두른다. 이에 시민들은 술집(<
[특집] 올해의 해외영화 6-10위 – 정치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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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영화 1위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비바 라 레볼루시옹!”(¡Viva la Revolución!) 우경화의 혼돈 속에서 혁명을 부르짖게 만든 최전선의 시네마.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올해의 해외영화 1위에 올랐다. 영화는 “2025년 현재의 정치 현실을 긴급하게 경각하는 충격파”(정재현)로서 폴 토머스 앤더슨이 오랫동안 파헤쳐온 미국 신화의 암부를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까발린다. 숀 펜이 캐리커처한 록조 대령과 그가 소속되길 꿈꾸는 백인 엘리트 극우 집단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은 “성기와 총기의 조우로 다시 쓰는 당대의 미국”(이보라)으로서 미국 주류사회에 뿌리내린 백인우월주의의 전형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는 팻(리어나도 디캐프리오)에서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로 대물림되는 혁명 정신과 윌라를 둘러싼 출생의 비밀은 “나와 나를 낳아준 부모의 역사에 냉소와 조롱을 날릴 수 있는 부끄러운 특권”(문주화)을 길어내고, 퍼피디아(테야나 테
[특집] 2025 올해의 해외영화 1-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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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5 BEST MOVIE – 해외영화 베스트5
[특집] 2025 BEST MOVIE – 해외영화 베스트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