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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무서운 이야기는 극장 밖에서 들려온다. 그러나 스크린만큼 흉흉한 소문을 먹음직스럽게 차려놓는 장소도 드물다. 정치적 이슈는 그만큼 호러의 신선한 재료가 될 자질을 가졌다. 현실에서 공포를 조장해 세력을 모으려는 수사가 남발될 때, 영화는 그 전략을 차용해 관객을 끌어들인다. 어쩌면 정치인과 영화인은 모두 얼마나 미더운 거짓말을 꾸며낼 수 있을지 궁리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자회사 뉴라인시네마와 더불어 워너브러더스가 구사해온 호러 필모그래피도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한 이래 한결 흥미로워졌다. 1기에 해당하는 2017년 이후 4년간은 <애나벨: 인형의 주인><더 넌><요로나의 저주>등 <컨저링>유니버스 스핀오프들이 차례로 개봉했고, 스티븐 킹 소설 원작 <그것>과 그 속편이 장르 팬을 넘어 대중의 지지를 받아 크게 흥행했다. 반면 당시 풍자적 호러의 선두 주자는 블룸하우스였다. 조던 필의 이름도 하
[특집] 타자화의 핏빛 공포, <컴패니언><씨너스: 죄인들><웨폰>⋯ 2025년 워너브러더스의 호러 필모그래피를 다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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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 무비>부터 <컨저링: 마지막 의식>까지. 워너브러더스는 올해 ‘7편 연속 북미 오프닝 4천만달러 흥행’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 2025년 9월 이미 전세계 박스오피스에서 4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창출했다. 하나의 스튜디오가 이만큼의 기록을 창출한 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영화의 면면이 워너브러더스의 오래된 IP, 오리지널 시나리오, 호러 컬렉션 등으로 저마다 다양한 데다 이들의 총람은 동시대 미국 사회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자리하며 비평적으로도 유효한 시료를 제공했다. 지금 워너브러더스를 움직이는 이들은 누구일까. 워너브러더스의 두 핵심 콤비를 소개한다.
워너브러더스모션픽처그룹(WBMPG)의 공동 의장 겸 CEO - 직관파: 패멀라 앱디 & 마이클 드 루카
경질 위기에서 벗어나다
올해 초만 해도 <버라이어티>등 할리우드 산업지는 물론 <블룸버그><퍽>등 금융지는 일제히 워너브러더스의
[특집] 누가 워너브러더스를 먹여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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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미국 내 최고 흥행작 15위 중 7편이 워너 영화로 채워졌다. 이중 <씨너스: 죄인들>이 일으킨 이변, 예상보다 더 강세를 보인 <웨폰>에 주목해볼 만하다.
<마인크래프트 무비>의 압도적 흥행. 자국보다 해외 흥행이 더 강세였던 <F1 더 무비>가 올해 워너브러더스의 황금 거위로 자리매김해 스튜디오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손실 앞에 ‘영화적 성취’라는 훈장을 달 수 있게 해줬다.
[특집] 마가에 반응하는 워너 영화, 성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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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워너브러더스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대담한 스튜디오가 되었다. 창립 100주년을 넘긴 이 거대 스튜디오는 트럼프 재집권이라는 격동의 시대에 놀라운 선택을 했다. 다른 스튜디오들이 DEI(다양성·평등·포용성) 정책을 후퇴시키고 ‘모든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안전한 콘텐츠에 집중하는 동안, 워너브러더스는 정치적 메시지가 직간접적으로 빛나는 영화들을 연이어 개봉했다. <미키 17><씨너스: 죄인들><슈퍼맨><웨폰><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이 5편의 영화는 저마다 다른 장르와 톤을 가졌지만, 모두 지금 미국이라는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100주년 이후, 새로운 전략의 시작
2023년 칸영화제에서 열린 워너브러더스 100주년 기념 파티는 할리우드 권력의 재각인을 위한 자리였다. 세계적 스타들과 영화산업 최고경영자들이 모인 화려한 행사 뒤에는 CEO 데이비드 재슬러브의 새로운 비전이 있었다. 클래식 할리우드 시
[특집] 마가 시대, 워너브러더스 영화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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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와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시대. 미국영화는 좌우로 요동친다. 일각에서는 보수 이데올로기의 주류화 현상을 분석하는 가운데, 시대의 어둠에 정면으로 맞서는 영화들의 무의식 또한 들끓는 중이다. 그중 2025년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확연한 존재감을 드러낸 워너브러더스의 영화를 중심으로 할리우드가 동시대 미국을 재현하는 방식을 돌아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미키 17>을 시작으로 <씨너스: 죄인들><슈퍼맨><웨폰><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까지, 워너브러더스가 창립 100주년을 넘어 새로운 국면에 선보인 작품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시대를 감지하고 반응한다. 봉준호, 라이언 쿠글러, 제임스 건, 폴 토머스 앤더슨 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작품들이 차지하는 위상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지금 미국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혼란과 분열,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인간성을 응시한다.
[특집] 정치, 자유 그리고 블록버스터 - 트럼프 행정부와 마가 시대, <미키 17>을 시작으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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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바꾼다. <후광>은 문 앞의 택배를 이전처럼 상자 하나로 여길 수 없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택배 기사 민준(최강현)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지만 경찰서로 달려가게끔 만드는 가족이 간신히 붙여놓은 일상을 찢어버린다. 점성학자(이재용)가 그에게 영국으로 가면 인생이 필 것이라 조언하고 민준은 그 말에 기대를 품는다. <후광>이 ‘아시아의 미래’ 섹션에 초청돼 도쿄에 일찍이 도착한 노영완 감독과 최강현 배우는 생애 첫 영화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후광>으로 맞는 첫 공식 자리라 더욱 떨린다는 둘은, 간절히 찍은 영화 이야기를 하며 어느새 희망을 떠올리던 민준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 현실의 택배 기사와 영화감독인 자신을 반영해 탄생한 시나리오가 아닐까 싶다.
노영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모두가 힘들던 때였다. 많은 이들이 사주나 별자리, 타로 같은 것에 기대곤 했는데, 처음엔 왜 저런 걸 믿
[인터뷰] 보이지 않던 이들의 삶에 촛불 하나를, <후광> 노영완 감독, 최강현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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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보다는 품위를
올해 도쿄국제영화제(이하 도쿄영화제)는 선배 세대에 대한 경의로 막을 올렸다. 개막식 후반, 기모노 차림의 배우 요시나가 사유리가 개막작 <삶을 위한 등반>의 주연배우로 무대에 올라 인사를 전한 뒤 돌연 암전이 찾아왔다. 곧 안도 히로야스 도쿄영화제 위원장이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등장했다. 특별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에게 축하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1957년 데뷔해 <삶을 위한 등반>이 124번째 출연작인 요시나가 사유리는 쇼와·헤이세이·레이와 시대를 잇는 국민 배우로, 여든살이 된 지금까지 주연 자리를 지켜왔다. “앞으로도 계속 영화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는 포부 섞인 그의 소감에 객석에서는 지지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갈 방책을 영화적 유산에서 찾겠다는 영화제의 기조는 개막작 선택에서도 엿보였다. 중견감독 사카모토 준지의 연출작 <삶을 위한 등반>은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다베이 준
[기획] 교류하고 섞이고 풀어내다, 제38회 도쿄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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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취재팀이 부산국제영화제행 KTX 표를 알아보던 지난 9월, 홀로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도쿄국제영화제(이하 도쿄영화제)로부터 초대장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아시아영화와 영화교육, 국제문화교류에 초점을 맞춰 준비 중이라는 내용에 참석을 마다할 수 없었다. 어느새 가을로 접어든 10월27일, 제38회 도쿄국제영화제가 개막했다. 이때만큼은 도쿄의 히비야–유라쿠초–마루노우치–긴자 일대가 멀끔한 직장인들과 자유로운 복장의 영화제 방문객들로 뒤섞인다. 첫날 영화제의 전반전을 전한다. 개막식과 경쟁부문 작품의 현지 반응, 올해의 경향과 주요 프로그램 등을 한데 묶은 현지 리포트가 영화제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또한, 아시아의 주목할 만한 신진감독을 소개하는 ‘아시아의 미래’ 섹션에 초청된 한국영화 두편의 주역과 환담도 가졌다. <후광>의 노영완 감독, 최강현 배우와의 인터뷰는 바로 이번 호에, <내일의 민재>의 박용재 감독, 이레 배우의 이야기는 다
[기획] 당신의 시야를 넓혀줄 작고 개인적인 관점이 이곳에, 제38회 도쿄국제영화제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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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이 차이상쥔 감독의 중국영화 <우리 머리 위의 햇살>속 주연 메이윈을 연기한 배우 신즈레이에게 주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리 머리 위의 햇살>의 촬영감독이 바로 한국인 김현석이란 사실이다. 이로써 김현석 촬영감독은 3대 국제영화제(칸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모두 본상을 거머쥐게 됐다. 그가 촬영한 이창동 감독의 <시>는 2010년 제63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았고, 중국의 대표적 6세대 감독인 왕샤오솨이 감독의 <나의 아들에게>는 2019년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바 있다. 각본상, 배우상을 비롯해 그가 촬영을 맡은 작품이 3대 국제영화제의 주요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이다. 여러 수상 소식의 나열에 다소 멋쩍어하던 그는 “학교 다닐 적에 김홍준 교수님(현 한국영상자료원장)이 ‘연출자나 촬영감독에게 최고의 영예는 감독상이나 촬영상
[기획] 고요한 화면, 3대 국제영화제를 거닌 김현석 촬영감독의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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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아이돌 ‘위클리’ 멤버로 데뷔한 이수진은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2021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의 홍보대사에 위촉되었다. 그리고 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BIAF의 음악심사위원으로 영화제를 다시 찾는다. 넓은 시야로 애니메이션을 통과하는 동안 음악의 자리를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은 그가 그동안 못해봤던 경험이지만, 동시에 음악과 장면이 혼합하는 마법을 목격한 순간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을 생명력 있게 만드는 선율적 조화는 어떻게 발견되는가. 음악심사위원으로서 명료한 눈을 장착한 이수진을 만났다.
- 2021년 BIAF 홍보대사 위촉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음악 심사를 맡게 되었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너무 신기했다. 처음 제안을 받자마자 든 생각은 “너무 재밌겠다! 빨리 하고 싶다!”였다. 물론 고민도 있었다. 내가 애니메이션 음악을 전문으로 다루는 종사자가 아니어서 심사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생각했는데, 대중의 시선에서 바라
[인터뷰] 넓은 시야로 애니메이션을 통과하다, 제27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음악심사위원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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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성장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시리즈는 주인공 오마에 쿠미코가 고등학교 취주악부에 들어가 유포니엄을 담당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학원물이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학교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면서도 친구들과의 들쑥날쑥한 우정, 목표를 향한 뜨거운 열의, 이유 없이 삐거덕거리는 마음, 합주의 아름다움 등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오마에 쿠미코가 고등학교에 갓 입학해 3학년이 되기까지 장장 10여년의 시간 동안 그의 곁엔 구로사와 도모요가 있었다. 2000년 아역배우로 시작해 이제 데뷔 25주년을 맞이한 그는 여전히 새로운 일에 설레하면서도 이야기가 간직한 사건과 정서, 인물의 굴곡을 노련하게 이해한다. <울려라! 유포니엄>이 걸어온 시간만큼 구로사와 도모요의 시간도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에서 오마에 쿠미코를 연기한 시간이 장장 10년이다. 이젠 구로사와 도모요에게 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는데.
[인터뷰] 세계관이 완성되는 듯한 느낌, <울려라! 유포니엄> 성우 구로사와 도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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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애니메이터로 입사해 <인어공주><미녀와 야수>에 참여한 브렌다 채프먼 감독은 <라이온 킹>의 스토리 슈퍼바이저로서 애니 어워즈(Annie Awards)에서 스토리 부문을 수상했다. 무려 할리우드 여성 최초의 기록이다. 실제로 그는 많은 ‘최초’를 지녔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이적해 연출한 <이집트 왕자>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중 여성감독이 제작한 최초 장편애니메이션이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선 <메리다와 마법의 숲>으로 ‘프린세스 문법’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공주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올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 심사위원장에 선정된 브렌다 채프먼 감독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짚으며 애니메이션이 지녀야 할 미덕과 태도를 돌아봤다. 그가 몸소 쌓아온 시간들은 새로운 세대의 창작자들에게 전유되고 있다.
- 올해 BIAF의 심사위원장으로 선정되었다. 이전부터
[인터뷰] 공감은 캐릭터가 지닌 결핍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제27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장 브렌다 채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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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튀는 상상력으로부터 탄생한 이야기들의 광장. 제27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이 지난 10월23일부터 닷새 동안 즐거운 축제를 갈무리했다. BIAF는 올해에도 다양한 국가의 작품을 관객에게 소개하고, 애니메이션의 유동적인 스펙트럼과 대중적인 변모성을 증명했다. 올해 수상작은 서정성이 높은 작품들로 채워졌다. 먼저 장편 대상을 수상한 마일리스 바야데, 리안 조 한 공동연출의 <리틀 아멜리>는 시적 표현과 인간 생애의 보편적 감정을 표현했다. 올해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집트 왕자><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브렌다 채프먼 감독은 “이야기, 색감, 디자인, 음악이 정교하게 어우러져 어린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심사평을 남겼다. 이어 단편 대상은 조슬린 샤를 감독의 <신 은 기괴하다>가 수상했다. “독창적인 시각 스타일과 당찬 스토리텔링이 용맹하게 시선을 빼앗는다”는 평이 이어졌다.
올해 BIAF의 역동적인 애니메이션 흐름을
[기획] 애니메이션 낙원, 제27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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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희: The Adventure of 3 Joys>(이하 <삼희>)는 문혜인 감독이 주연 ‘혜림’으로 출연하며 창작력의 자장을 확고히 다진 작품이다. 독립영화 배우인 혜림은 수중촬영의 트라우마로 심리적 고통을 겪은 뒤, 경기도 양주로 이사해 새로운 일상을 맞이한다. 이 와중에 우연히 마주한 ‘삼희아파트’를 보고서 자신을 ‘삼희’로 여기고, 삼희로서 타인들을 만나며 정체성의 변화를 꾀한다. 실제 광양 출신이자 <삼희>에도 광양이 등장하는 만큼 이번 남도영화제의 경험은 문혜인 감독에게 더더욱 특별했다.
- 아무래도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내 삶이 영화의 요소로 활용된 것은 맞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사고를 겪고 지친 뒤 양주에 살기 시작했다. 다만 영화의 전체는 완전한 픽션이다. 내가 자신을 회복하려던 때, 글쓰기가 고통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보고 <삼희>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인터뷰] 풍선 같은 정체성, <삼희: The Adventure of 3 Joys> 문혜인 감독 겸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