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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에 <Simple Song #3>가 올랐지만, 생방송에 맞춰 원곡의 길이를 수정할 수 없다는 원곡자의 요청에 의해 시상식 당일엔 라이브 무대를 갖지 않았다. 이후 리사이틀 무대 등에서 이 곡을 부른 적 있나.
가사가 참 아름다운 노래인데, 언젠가 이탈리아 공연에서 한번 부른 이후로는 무대에 올린 적이 없다. <Simple Song #3>가 <유스>의 마지막 장면에 쓰였기 때문에 곡 전체의 맥락이 살아나는 노래다. 영화 전체를 상영하고 이 곡을 부르면 모를까. 그저 이 노래만 무대에서 부르자니 음악 안팎의 이야기가 너무 귀중하다. <노팅 힐>에서 애나(줄리아 로버츠)가 말한 “난 그냥 남자에게 사랑을 바라는 평범한 여자다”라는 대사와 통하는 가사가 <Simple Song #3>에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가사 한줄이 그렇게 나의 심금을 울린다. 이건 작가의 비상한 필력이라고밖엔
예술은 마음으로 하는 것, 소프라노 조수미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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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영화 보기를 즐긴다고 들었다. SNS에 영화 감상문도 자주 올리지 않나.
일과가 없는 날엔 두세편도 거뜬히 본다. 지금 거주 중인 리스본 집 근처에 영화관이 있어서 쉬는 날이면 극장을 찾는다. 최근엔 <빙 마리아> 라는 프랑스영화를 보았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찍을 당시 마리아 슈나이더에게 가한 일을 극화한 작품이다. 한국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한국을 찾았을 당시 호텔과 같은 건물에 위치한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전부 보았다. 이번 방한 때도 동일한 극장에서 영화 두편을 관람했다.
- 조수미만의 영화 감상법이 있다면.
영화관 객석이 아닌 감독의 의자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본다. 프레임의 세팅 방식, 배우의 의상과 연기 등에 어떤 디렉션이 담겼을지 끊임없이 고심하는 편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단 한번 관람으로는 영화에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내가 출연한 <유스>를 세번 봤는데, 여전
지금도, 앞으로도, 프리마돈나 조수미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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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는 이름일수록, 일찍이 전설을 쓴 현역일수록 세상은 이들의 비범한 출발과 그들이 헤쳐온 역경에 관심을 기울인다. 일리 있는 접근이지만 이같은 서술은 당장은 액자 속에 박제되길 거부하는 예술가의 이야기를 조로하게 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그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행보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거라면 갈아엎은 길보단 지금 서 있는 황무지와 앞으로 비옥하게 개간할 자갈밭을 조명하길 바란다. 그들에게 필요한 부사는 이미가 아닌 아직이고, 그들을 정의할 시제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소프라노 조수미의 이름과 얼굴, 목소리를 안다. 조수미가 어떻게 성악을 시작했고 어쩌다 서울대학교에서 제적돼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는지를 한번쯤은 TV 토크쇼에서 접했을 것이다. 그가 언제 동양인 최초로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의 주역을 달성했고 세계 7대 콩쿠르를 석권했는지, 어떤 예술가들의 러브콜을 받았는지도 숱한 언론에서 보도한 바 있다. 조수미의 아리아가 흐르는 해외
[인터뷰] 현재진행형 소프라노, 조수미가 매혹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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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소스타인 베블런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이다. 그런데 이 두 천재가 21세기 인류의 경제생활에 대해 완전히 엇갈리는 예견을 내놓은 지점이 있다. 여가와 소비 중 과연 어느 쪽이 늘어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케인스는 자본주의의 비약적인 생산력 증대에 착목했고, 그리하여 자신의 손자손녀 세대인 21세기가 되면 노동시간이 하루 서너 시간으로 단축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인류는 이제 먹고살기 위한 필요에서 해방돼 펑펑 남아도는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최고의 고민거리로 여기며 살아갈 것이라고 보았다. 최근의 경제학자들의 논평에 따르면 케인스가 예측한 자본주의의 생산력 증대는 대략 예측한 대로 들어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대다수의 근로 대중에게 있어 하루의 노동시간이 서너 시간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은 오늘날의 현실에 견주어볼 때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어째서 이런 괴리가 발생한 것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베블런
[홍기빈의 클로징] 케인스가 틀리고 베블런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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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엘리엇 감독의 스톱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정제된 귀여움이나 정갈한 어여쁨보다는 기괴하고 괴랄한, 섬뜩하고 현실적인 분위기를 따른다.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신 어머니, 알코올중독인 아버지와 가난, 뿔뿔이 흩어진 쌍둥이 형제와 오랫동안 곪아온 외로움. <달팽이의 회고록>은 사뭇 불행으로만 채색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작은 틈새로도 빛이 새어든다는 오랜 진실을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어쩌면 달팽이는 껍질 속에 갇힌 게 아니라, 아늑하고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헤어진 쌍둥이 남매의 생애와 삶의 통찰을 다룬다. <달팽이의 회고록> 스토리는 처음 어디서 시작됐나.
개인적으로 쌍둥이 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내 주변에 쌍둥이 친구들이 많기도 하고. 이들이 생물학적으로, 정서적으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때 문득 궁금해졌다. 무엇이 그들을 같게 하고, 다르게 할까. 쌍둥이 중 한명이 다른 곳에 살게 되거나 죽게 된다면 남은
낙담에 걸음을 멈추지 않는 법, <달팽이의 회고록> 애덤 엘리엇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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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제작 기간과 7천여개의 오브제, 13만5천장의 캡처. 이젠 다소 흔해진 AI 기술이나 컴퓨터그래픽 없이도 <달팽이의 회고록>은 부지런히 움직인 인간의 손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01. 스톱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 어떻게 컴퓨터그래픽 없이 만들까?
“우리에겐 뛰어난 소품(prop) 아티스트와 세트 제작자, 조각가가 중요한 자산이다. 200명의 캐릭터 베리에이션에 200개의 세트, 7천개가량의 달팽이 구성품을 만드는 데에만 16주가 걸렸다. 그사이에 어떤 컴퓨터그래픽도 더해지지 않았다. 실제로 길버트의 슬픔을 고조시켰던 불들은 노란 셀로판지를 활용한 것이다. 우리는 주로 전통적인 스톱모션 기술들을 선택하는데 먼저 노란색 셀로판지에 노란 불빛을 비춰 진짜 불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때 큰 유리판 위에 카메라가 아래를 향하도록 촬영하면 진짜 움직이는 불처럼 보인다. 하늘 위에 펼쳐지는 구름들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벽화 예술가가 직접 그린
결함과 결핍의 미학 - 애덤 엘리엇 감독이 말하는 <달팽이의 회고록> 제작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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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film was made by human beings.’(이 영화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달팽이의 회고록>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 볼 수 있는 이 문장은 애덤 엘리엇 감독의 많은 것을 상징한다. AI 기술이나 컴퓨터그래픽이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스톱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자부심. 결코 무뎌지지 않는 손가락 끝과 작은 것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카메라 조리개처럼 힘을 주었다 풀기를 반복한 동공의 힘까지. 게다가 주변 사람들의 사연이나 자전적인 시선에서 풀어낸 픽션은 시간과 체력만큼 소모적이다. 몇초 만에 가볍게 무한 생성되는 것과 달리 닳고, 부족하고, 사라진다. <달팽이의 회고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태생적으로 구순구개열을 갖고 태어난 그레이스는 쌍둥이 형제 길버트의 수혈로 간신히 수술에 성공한다. 이들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어진 탯줄처럼 모든 슬픔을 함께 맞닥뜨릴 운명에 있다.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자리도,
‘창작’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치유할까, <달팽이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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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규칙적으로 배송된다. 긴 컨베이어 벨트 위로 일정한 간격을 둔 불행들은 한갓지고 무료해질 때를 잊지 않고 찾아온다. 어쩌다 컨베이어 벨트가 고장나는 날이면 박자를 잃고 한자
리에 쌓여버린 우편물처럼 한꺼번에 꾸역꾸역 밀려온다. 그레이스와 길버트의 컨베이어 벨트는 어린 시절 일찍이 고장났다. 이란성쌍둥이 형제인 둘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의 서툰 관심을 받으며 자랐다. 구순구개열을 갖고 태어난 그레이스는 또래 아이들로부터 짓궂은 괴롭힘을 받았고, 그걸 지켜본 길버트는 악을 쓰고 형제를 위해 싸웠다.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쌍둥이는 엄마 뱃속부터 함께해온 시간이 무색하게 각기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어 이별을 맞이한다. 속도를 늦추지 않는 불행들이 쌍둥이에게 도달할 때마다 그레이스와 길버트는 숨 쉴 틈조차 없이 오롯이 혼자, 속절없이 모든 것을 감내한다. 애덤 엘리엇 감독이 그려낸 세계관은 기괴한 방식으로 농담적이고 장난스럽지만 동시에 음울하고 현실적
[기획] 오늘은 잠시 불행할지라도, <달팽이의 회고록> 애덤 엘리엇 감독 인터뷰부터 제작 비하인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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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주의로
전주영화제가 6편의 다큐멘터리를 한데 모아 ‘다시, 민주주의로’ 향하는 길목을 안내한다. 2024년 12월3일 이후 대한민국이 입은 내상과 유사한 혼란을 앞서 겪었거나 지금도 겪고 있는 세계 곳곳이 상영작들에 담겨 있다. 2021년 트럼프 탄핵에 찬성표를 던지며 당원들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힌 하원의원 애덤 킨징어를 조명한 <마지막 공화당원>, 2022년 두테르테 다음을 뽑는 대선을 앞두고 펼쳐진 민중운동을 포착한 <필리핀 민주주의의 불씨>, 2023년 의회·대법원 점거 사건 전후의 정치 지형을 탐구한 <브라질 대선의 기록>과 같이 각국이 통과한 비교적 최근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작품에 특히 주목할 만하다. <슬로바키아의 희망, 주자나 차푸토바> <노르웨이식 데모크레이지> <수단, 우리를 기억해 줘> 또한 혐오에 맞서는 힘의 양식을 숙고하게 한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6월 이후를 상상해보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주요 특별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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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티넨탈 ’25> - 개막작
라두 주데/루마니아, 스위스, 룩셈부르크, 브라질, 영국/2025년/109분
오늘도 우리의 도시는 조용히 사람을 청소 중일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시켜? 당대 유럽 감독 중 세계 앞에 가장 격분한 인물일 라두 주데는 충격으로 일갈하는 새 풍자극을 통해 이 질문을 대신한다. 재개발이 한창인 루마니아의 도시 클루지, 법학자 오르솔야(에스터 톰파)는 실직 후 집행관으로 일한다. 그의 새 임무는 독일 부동산 기업이 사들여 콘티넨털이란 이름의 부티크 호텔로 재건축 예정인 낡은 아파트를 철거하는 것이다. 그곳 지하실에는 한 남성 노숙인이 산다. 오르솔야는 곧 자신이 퇴거시킨 이가 자살한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유로파 51>(1952, 아들의 자살 이후 자선 활동을 시작한 여성을 그렸다)을 비튼 <콘티넨탈 ’ 25>는 신자유주의적 횡포 앞에 공모자로 전락한 이가 펼치는 참회의 발라드다. 오르솔야가 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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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6에 달린 동그라미가 영사기마냥 돌아간다. 필름만 있다면 언제든 굴러가겠다는 이 든든한 모양새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의 포스터를 채웠다. 올해도 달릴 준비를 마친 전주영화제가 오는 4월30일부터 5월9일까지 열린다. 57개국 224편의 영화 중 개·폐막작을 비롯한 프로그래머 추천작과 <씨네21>이 주목한 작품을 더해 총 10편의 프리뷰를 전한다.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균형을 고려해 선정했으며, 국적과 테마도 다채로울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화두, 독립영화라는 실천을 묻는 특별전들의 면면도 덧붙인다. ‘선 넘는 영화제’를 지향해온 전주의 향취가 짙게 밴 이 영화들을 환영해주시길 바란다.
*이어지는 글에서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소개가 계속됩니다.
[기획] 올해도 전주는 영화처럼 -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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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시엘 성이 무너지는 악몽에서 깨어난 쥬쥬(박선영). 평화롭기만 하던 선샤인빌에 무언가 불길한 일이 닥쳐올 것만 같은 예감에 휩싸인다. 친구들을 만나 잠시 기분을 추스르지만, 이내 포악해진 식물들이 마을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마법의 힘으로 식물들을 물리친 쥬쥬는 이번 사건이 앞으로 펼쳐질 일들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쥬쥬는 친구들과 함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하나씩 헤쳐나간다. 선과 악의 균형을 지켜온 별의 보석, 쥬비쥬들이 든든한 조력자로 함께한다. <시크릿쥬쥬 마법의 하모니>는 K마법공주물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시크릿쥬쥬가 13년 만에 선보이는 첫 극장 개봉작이다. 선샤인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소동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TV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모든 사건이 마법의 하모니로 손쉽게 해결되는 단순한 전개가 시청층을 어린이로 한정 짓는다.
[리뷰] K마법공주물의 아이콘, <시크릿 쥬쥬 마법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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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세라 스누크)가 누군가의 무덤 앞에서 자신이 키우던 달팽이 실비아에게 살아온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이야기인즉슨 지금은 외톨이 신세인 그레이스에게도 아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자신과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 오빠 길버트(코디 스밋맥피)인데,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서로 떨어져 살게 된 뒤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다. 둘째는 새로운 동네에서 만난 이웃 핑키(재키 위버)다. 핑키는 괴짜지만 그레이스를 아끼는 마음만큼은 따뜻하다. 그레이스는 실비아에게 둘에 관한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스스로를 자신이 만든 달팽이 요새에 가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달팽이의 회고록>은 스톱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대가 애덤 엘리엇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에게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제에서 두 번째 대상의 영예를 안겼다. 8년간의 수공예 작업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특유의 생동감 있는 질감을 만끽할 수 있다.
[리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진심 어린 뒤돌아보기, <달팽이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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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천재 작곡가 모리스 라벨(라파엘 페르소나)은 발레리나 이다(잔 발리바)에게 발레곡을 청탁받는다. 원래 스페인 작곡가 이삭 알베니스의 <이베리아 조곡>을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편곡하기로 했으나 저작권 문제가 생긴다. 마감은 겨우 2주 남짓 남았고 라벨은 신곡을 써야만 한다. <볼레로: 불멸의 선율>은 <코코 샤넬> <마담 보바리> 등 문제작을 만든 안 퐁텐의 신작으로 라벨 탄생 150주년에 맞추어 제작되었다. 이야기는 라벨이 <볼레로>를 작곡하는 과정을 담은 1부와 정신질환으로 창작의 동력을 잃은 말년을 담은 2부로 나뉜다. 감독은 라벨의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에 집중해 예술과 육체, 전쟁과 근대화 등 다양한 주제를 펼친다. 에로티시즘을 그리기 위한 방편으로 <마담 보바리>를 오마주한 설정도 인상적이다. 세밀한 고증과 알렉상드르 타로의 연주, 라파엘 페르소나의 호연이 돋보임에도 구심점 없는 산만한 전개가 아쉬움을
[리뷰] 플로베르의 소설을 읽는 듯한 도전적 해석과 세밀한 디테일, <볼레로: 불멸의 선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