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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구름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서기 2932년. 소년 아르코(오스카 트레사니니)는 날고 싶다. 12살이 되기 전까지는 비행할 수 없대도 말이다. 자신을 뺀 온 가족이 하늘을 누비는 게 부러웠던 그는 모두가 잠든 사이 누나의 날개와 다름없는 무지갯빛 망토를 슬쩍해 창공을 가른다. 얼떨결에 착륙한 땅은 잿빛 기류가 자욱한 2075년의 지구. 부모 대신 어린 동생을 로봇과 공동육아하는 소녀 아이리스(마고 린가드 올드라)가 아르코를 발견하면서부터 둘 사이에 우정이 싹트는데, 수상한 선글라스를 낀 세 남자가 이들을 주시하며 거리를 좁혀온다.
시간 여행, 첨단기술, 기후 재난의 상상력을 친숙한 화법으로 풀어낸 애니메이션 <아르코>는 어린이를 ‘귀엽게’ 그리는 일에 관심이 없다. 보호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때로는 어른들이 내뿜는 위협마저 느끼면서 문제를 대면하는 이들은 미래의 주인이라는 정체성을 자신하듯 늠름하다. 잇따른 이별의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14살에 <모노
[리뷰] 귀엽지 않아서 귀한, 미래의 늠름한 주인들,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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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동물을 사랑하는 메이블은 우리 안에 갇힌 교내 동물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거북이, 개구리, 뱀 등을 책가방 안에 욱여넣어서라도 구출하려 하지만 얼마 안돼 선생님의 눈에 띄어 저지당하기 일쑤다. 지극히 일방적이고 서툰 계획. 그러나 실패할지언정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것은 메이블에게 몹시 익숙한 사랑의 방식이다. 유년 시절 많은 것을 함께한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그와의 오랜 추억이 새겨진 연못가는 이제 제리 시장의 도시개발 계획 아래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연못가에서 같이 놀았던 비버, 노루, 오리, 잠자리들도 터전을 잃었다. 제리 시장으로부터 연못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샘 교수를 찾고, 그가 인간의 의식을 동물 로봇에 옮기는 ‘호핑’ 기술을 발명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메이블의 계획은 더욱 선명해졌다. 호핑 기술을 이용해 비버가 되어 실제 동물 세계에 잠입하는 것. 그리고 비버들을 이끌고 연못을 찾아가 아직 이곳에 많은
[리뷰] 웃은지 오래됐나요? 여러분 여기입니다, <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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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준상, 신성록 배우는 초연에 이어 두 번째로, 박은태 배우는 처음 <스윙 데이즈_암 호명 A>에 합류했다. 작품과 배역 유일형을 선택하도록 이끈 원동력이 있다면.
유준상 삼일절에 결혼해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을 정도로 한국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깊다.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를 처음 무대에 올린 해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다녀왔다. 그날 이 작품의 재연을 곧 올릴 수 있도록 소원을 적고 기부도 하고 왔는데 바람이 이루어져 기쁘다. 유일형의 모델인 유일한 박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중에 유일한 박사에 관련된 책이 세권 정도 출간됐다. 그 책들을 모두 읽으며 유일한 박사의 삶을 면밀히 살피고 연기할수록 더욱 공부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유 박사의 삶이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명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초연 때도 그 마음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일형의 마지막 넘버인 <내가 가야할
[인터뷰] 낭만을 찾다,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배우 유준상, 박은태, 신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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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의 제목은 제약회사 유한양행의 창업주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유일한 박사의 회고록으로부터 왔다. 유 박사는 언젠가 미국인들에게 단오라는 아름다운 명절이 조선에 있다며 그날의 풍경을 ‘그네의 날들’(Swing Days)이라고 묘사했다. 유일한의 삶을 모티브로 만든 인물,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의 ‘유일형’에게도 그네는 무척 중요하다. 어린 시절 일형은 친구들과 그네를 타며 오늘의 우정과 내일의 꿈을 나누었다. 하지만 1940년대 식민 치하의 경성. 일형은 허공에 흔들리는 그네를 보며 잘못된 길을 걷는 친구와 민족 말살 통치 앞에 신음하는 동포들을 떠올린다. 숱한 문학작품이 그네를 하늘로 오르고자 하나 땅에 묶일 수밖에 없는 비애로 표상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속 그네의 날들 또한 이상을 향해 발버둥쳐도 결국 현실에 두발을 가둬야 하는 한국인의 설움에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윙 데이즈_암
[커버] 대한독립을 향한 유쾌한 왕복,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배우 유준상, 박은태, 신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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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와 <국화꽃 향기>의 공통점은? 접점이라고는 없이 서로 멀어 보이는 두 한국영화는 모두 김희재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일찍이 충무로에서 활약하기 전부터 그는 만화 스토리작가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시나리오작가 입봉 이후에도 스토리 컨설팅 전문기업 올댓스토리를 설립하고 소설을 출간하는 등 늘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투신했다. 이어 김희재 작가가 도전한 이야기는 뮤지컬이다. 그는 꼬박 3년, 어쩌면 그 이상을 매달려 2024년 11월,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인내의 결실인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의 초연 무대를 올렸다. 그리고 2026년 4월, 초연의 호평에 힘입어 더욱 원숙해진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의 두 번째 시즌을 같은 극장에서 기약 중이다.
- 처음엔 올댓스토리에서 유한양행의 독립운동 콘텐츠 제작을 도우면서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비화를 접했다고.
당시 유한양행의 스토리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진행 중이었다. 유
[trans x cross] 다음 세대를 향해,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김희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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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K팝 차트는 바야흐로 하우스 장르의 시대다. UK 하우스에 기반해 반복적 스윙 리듬을 내세운 키키(KiiiKiii)의 <404 (New Era)>, 하우스 비트에 신스의 경쾌함을 올린 하츠투하츠(Hearts2Hearts)의 <RUDE!>가 유행의 앞자리에 있다. 이 흐름 속 <RUDE!>뮤직비디오의 미니멀한 감성이 무척 반갑다. 더 강한 그루브의 전작 <FOCUS>가 쪼개지는 비트의 속도에 맞춘 카메라 무빙과 컷 편집으로 리듬의 쾌감을 일으키는 테크닉에 몰두했다면, <RUDE!>는 큰 기술적 야망 없이 멤버들의 개성과 퍼포먼스를 자연스레 비춘다.
<RUDE!>에 대한 반가움의 기원을 좇아보자. K팝에 하우스 열풍이 분 기점은 2015년 f(x)의 <4 Walls>와 샤이니의 <View>였다. K팝 신의 자타공인 명곡으로 남은 두곡은 손에 닿을 듯 말 듯한 디프 하우스 장르의 몽롱함을 중추로
[culture music video] 소박하고 정갈한 하우스가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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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영화 <나비잠>, 드라마 <탄금> <멜로무비> <이재, 곧 죽습니다> 등 출연
야구
어릴 때부터 한화 이글스의 팬이었으며 그 구단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크다. 때로 응원팀이 밉더라도 절대 떠날 수는 없다. (웃음) 지지난해부터 한화 이글스의 야구를 오랜만에 행복하게 기쁜 마음으로 보는 중이다.
구두
원래 워커를 좋아했는데, 몇달 전부터 구두의 매력에 푹 빠졌다. 관련 역사를 공부하고 심사숙고해서 사고 싶은 모델을 하나씩 사 모으는 재미로 지낸다.
파스타
예전보다 파스타를 자주 만들어 먹는다. 실수로 많은 양의 파스타 면을 구매해서인데, 연말까지 다 먹기 어려울 것 같다. (웃음) 여러 번 해먹다보니 실력이 점점 는다.
<카우보이 비밥>
내가 좋아하는 0순위 애니메이션. 죽을 때까지 이 순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의 O.S.T도 전부 외우고 다닐 정도로
[LIST] 김재욱이 말하는 요즘 빠진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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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는 ‘사라 킴의 명품 사기극’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수사극이기도 하지만 여성 청년 목가희(신혜선)의 생애사이기도 하다. 드라마를 미스터리 수사극으로만 본다면 사라 킴은 “걘 진짜 난 년”이라는 최채우(배종옥)의 말처럼 영리한 범죄자지만, 목가희를 중심으로 읽는다면 그는 계급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피해자이자 생존자다. 사라 킴의 ‘처음’인 목가희라는 이름도 가짜다. 그는 어쩌다가 목가희가 됐을까? 가방 공장 노동자 김미정(이이담)에게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김미정은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어릴 때 살기 위해 가출한 후 제때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미정을 두고 사라 킴은 “닮았다”라는 말을 한다. 단지 외모가 아닌, 살아온 과정의 닮음을 의미한 것이다. 백화점 명품 매장 직원 목가희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도난 사고가 발생했고, 가난한 그에게 모든 손해가 전가됐다. 잘못이 없어도 시스템의 보호나
[오수경의 TVIEW] 레이디 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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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산업의 지형도가 흔들리고 있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넷플릭스가 워너브러더스를 인수하며 글로벌 미디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파라마운트가 인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스트리밍 시대의 경쟁이 단순한 콘텐츠 경쟁을 넘어 자본과 전략이 얽힌 거대한 산업 재편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콘텐츠 형식에서도 새로운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숏폼 드라마’(숏드라마) 시장에 대한 투자 열기가 빠르게 확산 중이다. 모바일에 최적화된 세로형 콘텐츠는 제작비 대비 회전율이 빠르고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국내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과 플랫폼이 이에 도전 중이고, 최근 유료 구독을 기반으로 한 숏드라마 플랫폼이 신진 콘텐츠 비즈니스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숏드라마 시장 또한 마냥 안심할 순 없다. 틱톡은 2026년 초 미국에서 무료 숏드라마 전용 서비스를 테스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인수전쟁부터 숏드라마 각축전까지, 흔들리는 OTT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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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5일, 주한프랑스대사관이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아 양국의 문화 교류를 위한 연간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창의, 기회, 연대’를 슬로건으로 삼은 이번 기념행사는 양국이 협력해온 역사에 경의를 표하고, 양국 관계의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필리프 베르투 주한프랑스 대사는 “한국과 프랑스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이라며 ‘프랑스 문화 시즌’의 취지를 전했다. 이에 3월부터 12월까지 영화, 공연, 전시, 출판, e스포츠 등 각종 분야에서 다채로운 이벤트가 펼쳐질 예정이다.
3월7일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개막 공연을 시작으로 4월부터는 영화 관련 행사가 펼쳐진다.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7곳의 국내 영화제에서 연중 ‘프랑스 포커스’라는 이름으로 프랑스영화 특별전이 진행된다. 4월24일부터 5월3일까지는 프랑스영화주간이 이어진다. 주한프랑스대사관 주최로 다양한 장르의 미개봉 프랑스영화
[국내뉴스]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 기념 ‘프랑스 문화 시즌’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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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주먹다짐하는 모습이 담긴 20초 분량의 영상이 지난 2월에 공개돼 온라인에서 화제였다. 중국의 미디어 기업 바이트댄스(ByteDance, 字節跳動)의 AI 영상 생성 모델 ‘시댄스 2.0’을 이용해 제작된 영상이다. 주로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활약해온 아일랜드 영화감독 루아이리 로빈슨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상 속에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 이후 같은 영화에 출연한 적 없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가죽 재킷을 입은 채 등장해 건물 옥상에서 콘크리트 먼지를 일으키며 싸운다.
해당 영상이 온라인에서 이목을 끌자 할리우드영화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영화협회는 “미 저작권 작품을 대규모로 무단 사용했다”라고 비판했고 디즈니,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 등 대형 스튜디오들은 AI 회사측에 저작물 사용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으며, 미국 배우조합은 “예술가들의 생계를 저해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포커스] AI 제작 영상 ‘시댄스 쇼크’ 과장된 것일지도, 시댄스 2.0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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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네. 늦은 저녁 도시락 사러 가는 길, 내리는 비를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말이 입 밖으로 나왔는지, 혼자 속으로 삼켰는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봄을 맞이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린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언제부터가 봄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선이 있다. 입춘의 절기도, 따뜻해진 기온도, 달력의 날짜도 아니다. 비가 내릴 때 땅에서 알싸한 봄 내음이 올라오면 비로소 봄의 한가운데 당도했음을 실감한다. 논리나 이론, 숫자가 아니라 감각으로 맞이하는 계절의 변화.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유독 비에 젖은 흙냄새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흙 속 미생물과 물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화학물질의 냄새를 맡는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물가를 쉽게 찾아 생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솔직히 딱히 궁금하지도,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직 흙냄새가 주는 안정감이 그저 땅의 기운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봄의 흙냄새에는 겨우내 오래 묵은 온기가 함께 묻어난다고 말하고 싶다. 조금 더 포근하고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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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박정민)은 마지막에 살 방도를 묻는다. 관객은 그 유언을 조 과장(조인성)을 통해 전해 듣는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지인이 이 대목을 두고 재미난 해석을 하나 건넸다. 요지는 이렇다. 박건의 말이 채선화(신세경)와 함께 더 살고 싶어서 나온 고백이 아니라,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이 공포에 떠밀려 그저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내뱉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총에 잔뜩 맞았으니 아프기도 할 테고….” 그 자리에서는 다들 피식 웃고 넘겼다. 나도 웃었다. 너무 단순하고, 그래서 더 엉뚱하게 들렸으니까.
그런데 웃음이 가라앉고 나니 질문이 바뀌었다. 이 해석은 왜 즉각 ‘말이 안된다’고 치부되었을까. 동시에 왜 누군가는 하필 그런 가설을 떠올렸을까. 어쩌면 <휴민트>가 그런 엉뚱함을 허용할 만큼, 한 가지 장르 규칙으로는 단단히 묶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대사 하나가 아니라, 영화 전체가 어떤 야심으로 장르를 끌어다 섞었고
[비평] 블라디보스토크, 잃어버린 편도 티켓, 이병현 평론가의 <휴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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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뛰어내린 다음날 밤, 컴퓨터 앞에 앉은 나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 첫 번째 책은 억압받은 자들이 해방되듯, 혈전이 풀어지듯 내 몸에서 흘러나와 탄생했다. (…) 낱말이 있었고 내 몸이 있었다. 나는 내 살갗을 뚫고 그 안을 볼 수 있었다. 몸속에 있는 것을 꺼내 글로 써냈다. 책이 탄생할 때까지. 내 살갗이 괴성의 노래를 만들어낼 때까지.” (<물의 연대기>)
<물의 연대기>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이 장면으로부터 시작하고 싶다. 리디아가 컴퓨터 앞에 앉아 내달리듯 키보드를 두드리는 장면. 달리는 기차에서 몸을 던지는 심정으로 무언가를 써내려가다 보면 안쪽으로, 더 깊은 안쪽으로 파고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인다. 거기에 내가 쓰고 싶은 것이 있고, 거의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 잡는 순간 잡히는 건 오히려 내쪽이고 결국 모든 것이 파괴되어버릴 거라는 예감 속에서, 쓰기. 계속 쓰기. 그건 뭔가를 낳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리디아가 낳았
[비평] 자기를 쓰는 여자의 초상, 김예솔비 평론가의 <물의 연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