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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이 주인공인 한국 드라마는 넘친다. 하지만 <아너 : 그녀들의 법정>(이하 <아너>) 같은 드라마는 없었다. 당장 2월 ENA에서 시청자를 만날 이 작품은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로펌 L&J를 베이스캠프 삼은 라영(이나영), 신재(정은채), 현진(이청아)의 분투기다. 20년 지기인 세 변호사는 ‘들어주고(Listen) 함께한다(Join)’는 사명에 걸맞게 범죄에 노출된 여자들의 명예를 되찾아주고자 일한다.
<비밀의 숲> 스핀오프 시리즈 <좋거나 나쁜 동재>로 한 차례 매력적인 법정물을 완성해본 박건호 감독은 원작 스웨덴 드라마를 각색한 <아 너>의 키워드를 “강인함”이라 정의했다. “권력을 휘두를 때의 강인함이 아닌 살아가기 위한 강인함” 말이다. “약자의 편에서 변론하는 직업 특성상 주인공들은 성공보다 실패에 더 익숙하다. 현실을 받아들이되 다시 일어나 싸울 태세를 갖추는 것이 그녀들의 삶이다.” 이는 <
[인터뷰] 생존을 위한 여성들의 강인함, <아너 : 그녀들의 법정> 박건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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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이 입헌군주제 국가라면 우리의 사고방식은 지금과 다르지 않을까. 능력과 경제력을 갖추었음에도 평민일 수 있고, 신분상 가장 높은 왕족이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제약에 부딪힐 수도 있다면 말이다.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은 이러한 입헌군주제 세계관 속에서 각자의 결핍을 지닌 두 남녀가 만나 관계를 맺어가는 이야기다. 아이유 배우가 연기하는 성희주는 대기업 캐슬그룹의 둘째로 뛰어난 역량을 갖췄지만 신분상 평범한 인물이고, 변우석 배우가 분한 이안대군은 왕의 아들이지만 왕이 되지 못한 남자다. 더불어 이 작품은 <폭싹 속았수다> 이후 아이유의 차기작이자, <선재 업고 튀어> 이후 변우석의 행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를 연출한 지 1년이 더 지난 시점에서 <21세기 대군부인>을 차기작으로 결정했다. 이 극본의 어떤 점이 연출자를 끌어당겼을까.
일단 대본이 재밌어서 선택했
[인터뷰] 낯선 설렘이 찾아옵니다, <21세기 대군부인> 박준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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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경성, 수십년간 남문호텔 밖으로 도통 나오질 않는 정화(수지)는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산다. 그는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초상화를 그리는데 이번 그림을 의뢰받은 이는 화가 이호(김선호)다. 정화를 독대하며 이호는 조금씩 그의 비밀을 전해 듣는다. <현혹>은 흡혈귀가 된 정화와 그런 정화를 뮤즈 삼아 화폭에 붓을 올린 이호의 대화를 기점으로 서사를 확장해간다. “<현혹>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영원은 정말 축복인가?’”(한재림) 영생을 사는 존재, 필멸의 생이 그리는 슬픔과 아름다움이 한재림 감독에 의해 섬세하게 조형되었다.
- <현혹>의 원작 웹툰에 관한 첫인상은 어땠나.
원작에 대한 첫인상은 ‘차갑고 고요한데, 자꾸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영원에 대한 욕망과 유한한 존재의 슬픔, 그 사이에서 빚어지는 아름다움과 잔혹함이 담겨 있었다. 삶은 유한하기에 더 눈부시고 예술은 끝이 없을 것처럼 우리를 부른다는 간극 자체가 <
[인터뷰] 영원에 대한 욕망을 탐구하다. <현혹> 한재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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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마다 젊은 연인들로 북적이는 평일 저녁의 연남동. 시폰케이크가 유명하다는 카페에서 안판석 감독을 만났다. 2024년 <졸업>, 2025년 <협상의 기술>에 이어 2026년 <연애박사>방영을 준비 중인 그는 근처 찻집에서 낮 신 촬영을 마치고 온 참이었다. 앉을 데와 마실 것만 있다면 연애 사건의 기승전결이 모두 벌어질 수 있으니 어떤 장면이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대신 확인한 이야기의 큰 줄기는,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명문대 로봇공학 전공 대학원생들의 속타는 로맨스. 30년 넘게 문제 많은 인간들의 세상살이를 TV에 옮겨온 연출자는 20년 만에 드라마판에 돌아온 작가와의 재회를 들려주는 것으로 <연애박사>개론 수업을 시작했다.
- <연애박사>는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2003), <풀하우스>(2004)를 집필한 민효정 작가의 복귀작이다. 그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내가 연출한 드라마가 아주
[인터뷰] 언제나 중요한 것은 개연성이다, <연애박사> 안판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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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1540호에 2026년 개봉예정 영화들을 소개한 데에 이어 화제의 신작 시리즈 소식을 모았다. <씨네21>이 주목한 9편의 드라마 감독들을 만나 작품이 어디쯤 와 있는지 물었다. 배우 아이유와 변우석의 <21세기 대군부인>, 추영우와 김소현의 <연애박사>는 익숙한 듯 낯선 풍경 속에서 풋풋한 로맨스를 지피고 있다. <아너 : 그녀들의 법정>은 여성 범죄 피해자 전문 변호사들, <클라이맥스>는 배우와 검사 부부라는 조합을 내세워 색다른 캐릭터들을 세공 중이다. <유미의 세포들>은 대단원을 맺는 세 번째 시즌으로, <킬러들의 쇼핑몰>은 세계관을 넓히는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오디오 무비를 확장한 스릴러 <리버스>에 더해 각각 현대 판타지 웹소설, 미스터리 시대극 웹툰을 각색한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와 <현혹>도 연내 출격을 예고했다. 9편의 인터뷰와 더불어 2026
[기획] 올해를 책임질 신작 시리즈 어디까지 왔나, 2026년 시리즈 신작 라인업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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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 <어른들은 몰라요>로 가족에게서 등 돌린 아이들의 분투를 담았던 이환 감독이 이번에는 화려한 밤의 세계를 그렸다. <프로젝트 Y>는 평범한 삶을 꿈꿨으나 전 재산을 잃은 미선(한소희)과 도경(전종서)이 암흑세계를 거느리는 토사장(김성철)의 비자금을 훔치려는 석구(이재균)의 계획을 엿듣게 되면서 예고된 난장으로 향한다. 여기에 힙합 뮤지션 그레이가 전작 <발레리나>에 이어 다시 한번 영화음악감독으로 크레딧을 올렸다. 이환 감독과 그레이 음악감독에게서 벼랑 끝에 사는 캐릭터를 따라가는 카메라와 영화음악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았다.
-영화작업을 함께했다. 영화 취향은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른지 궁금하다.
이환 취향이 극명하게 나뉘는 편인데 가족영화는 늘 좋아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나 <스위트 식스틴>이 지금 떠오르는 영화들이다.
그레이 음악을 재미있게 사용한 영화가 좋다. 우탱 클랜의 프로듀서 르자(R
[인터뷰] 나만의 농도를 잃지 않으며, <프로젝트 Y> 이환 감독, 그레이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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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춘 감독에게 첫 장편 <슈가>는 반드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1형당뇨병이 있는 그는 2019년,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의 기사를 접했다. 별다른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글은 놀라움으로 이어졌다. 기사에는 1형당뇨병을 진단받은 아들과 같은 환자들을 위해 해외에서만 판매하는 연속혈당측정기를 국내에 들여온 엄마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해당 과정에서 김 대표는 세관 미신고로 관세청에 고발되고, 식약처로부터 의료기기법 위반 조사를 받았다. 기소유예 판결을 받은 뒤에도 1형당뇨인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기기 도입을 추진했고 그 노력은 건강보험 혜택으로까지 이어졌다. 최신춘 감독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규모의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법학 전공자로서 제도의 변화가 어떻게 이뤄졌는지”가 궁금했다. 주저 없이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네이버 카페(1형당뇨인과 가족의 모임 슈거트리)를 통해 김미영 대표에게 쪽지를 보
[인터뷰] 꿈과 소명의 이름으로, <슈가> 최신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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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애폴리스. 코언 형제의 <파고>의 도시. 어리석음의 눈덩이가 설원 위를 굴러가는 동안 아무래도 가장 멋졌던 건 임신한 경찰관 마지(프랜시스 맥도먼드)였다. 2026년, 다시 미니애폴리스. 이제는 러네이 니콜 굿의 도시. 37살 여성, 시인이자 레즈비언, 세 아이의 엄마,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세관집행국(ICE) 요원 조너선 E. 로스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현대영화가 진실의 다각성을 섬세하게 다루고자 천착할 때 현실은 그보다 훨씬 잔혹한 편집점으로 대중을 시험한다. 지난 주말엔 전세계 SNS 사용자들에겐 핸드폰으로 촬영된 미니애폴리스 도로 위의 상황이 다른 사람, 다른 각도, 다른 시점에서 담긴 파편화된 푸티지로 당도했다.
첫 번째 영상. 전경 숏. ICE 요원들이 앞뒤로 러네이의 차에 접근하며 누군가는 내리라고 하고 누군가는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러네이의 차는 멈춰 서 있다가 요원 한 사람이 창문 열린 운전석 안쪽으로 손을 뻗어 차를 붙잡자, 뒤로 후진했다가 도로
[김소미의 편애의 말들] 아임 낫 매드 앳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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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이야기 속 인물들이나 그걸 창조하고 연출하고 연기하는 이들에게 열광하지는 않았다. 이야기가 당연히도 현실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현실을 진단하고 바꾸는 힘은 허구에 기댈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현실에 근거를 둔 분석과 대안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 내 소싯적 가치관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고교 시절 국어 선생님은 어느 날 나를 불러 소설을 한번 써보라고 말씀하셨다. 작문 숙제로 낸 수학여행의 기행문을 읽어보시고 내게 ‘스토리 텔러’적인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셨던가 보다. 지금의 학급 학생 수에 비해 적어도 두배에서 세배까지는 되었으니 그걸 다 읽어보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을 거다. 그중에 자질이 있어 보이는 아이를 골라, 따로 불러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게 어지간한 애정과 소명의식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지금도 여긴다. 아니 그 선생님의 당시 나이보다 훨씬 더 먹은 지금의 나이기에 더욱더 감사
[정준희의 클로징] 12월3일이 바꿔놓은 나, 그 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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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공중도시 라퓨타가 다시 하늘로 떠오른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 장편애니메이션이자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 세계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다. 국내에서 2004년 개봉해 큰 사랑을 받았던 <천공의 성 라퓨타>가 22년 만에 한국 관객을 다시 만난다. 지브리 세계의 원형을 담은 모험 판타지의 클래식을 스크린에서 감상할 기회다. 하늘을 나는 도시와 고대문명, 소년과 소녀의 모험이라는 설정은 이후 작품들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며 지브리 특유의 세계관을 만들어간다. 모험과 성장, 자연과 인간의 관계로 서사를 확장하는 지브리의 뿌리가 이 영화에 있다.
이야기는 광산에서 일하는 소년 파즈(다나카 마유미)와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 시타(요코자와 게이코)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시타가 지닌 비행석은 중력을 거스르는 힘을 가진 결정체로 전설로만 전해지던 공중도시 라퓨타를 찾는 열쇠다. 비밀 요원 무스카와 군대, 공중 해적 도라 일당은 각자의 목적을 품고 비행석을
[리뷰] 재개봉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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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일을 사랑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미라(최지우)에게 회사를 뛰쳐나갈 일이 생긴다. 12살 아들 동명(고동하)이 1형당뇨 판정을 받은 것. 하루에도 수십번 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측정해야 하는 현실에 고통스러워하던 중에 해외 사이트에서 채혈이 필요 없는 연속혈당측정기를 발견한다. 혁신적인 의료 기기 덕분에 삶이 한결 나아지자 미라는 다른 1형당뇨 환자들을 위해 자기 이름으로 기기를 구매한다. 한편 관세청은 미허가 의료 기기가 국내에 대량 유입되자 주문자를 주시하기 시작한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슈가>는 균형점을 찾기 위한 연출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1형당뇨에 대한 인식 개선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골몰하지 않고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굴곡을 집중해서 그려낸다. 당사자인 동명의 일상과 꿈도 함께 넣은 점 역시 인상적이다.
[리뷰] 해야 할 말이 신중한 이야기를 타고 퍼진다, <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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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여의고 큰아버지(라즈 바바르)에게 길러진 마나브(샨타누 마헤슈와리)는 뮤지션을 꿈꾸는 청년이다. 조카가 집안 사업을 잇길 바라는 큰아버지와 갈등을 빚던 마나브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시미(아브니트 카우르)와 베트남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한 자화상에 매혹되고, 작가인 린(카응안)과 사랑에 빠진다. 잠깐 인도로 돌아간 사이 린과 연락이 끊기자 마나브는 린을 찾아 베트남 각지를 헤맨다. <러브 인 베트남>은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밝히지만, 소설에서 몇 설정과 상징적 장면을 빌려올 뿐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을 따른다. 인물의 심경을 직설하는 음악과 관광지를 배경 삼는 화려한 화면, 과한 플래시백과 교차편집은 연출적 특징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인물과 사건을 특정한 의도에 맞추어 극화하는 과정에서 다소 억지스러운 굴곡들이 발생한다. 풍경과 가무를 보는 재미는 있다.
[리뷰] 어쩌면 ‘러브’보다 ‘베트남’을 찍는 게 더 중요했던, <러브 인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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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스미노 요루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타인의 감정을 눈으로 볼 수 있는 5명의 고교생이 주인공인 판타지 로맨스다. 이들은 각기 다른 형태로 타인의 마음을 인식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는데 이는 오히려 서로간에 상처를 남기고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절묘한 비율로 조율한 연출은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 판타지가 주는 기발함과 새로움은 유지하되 장난기가 서사를 압도하지 않도록 절제된 톤을 끝까지 이어간다. 결국 직시할 것은 타인의 마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청소년의 이야기지만 타인과 자신 사이에서 한번쯤 흔들려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명할 수 있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빛나는 비주얼과 안정적인 연기 역시 인물들의 감정선을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리뷰] 현실과 판타지를 절묘한 비율로 배합하다, <나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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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으시네요. 검사 결과, 자궁내막증보다 갱년기에 들어섰습니다.” 다행히 질환은 피해갔다지만 갱년기에 들어섰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은 수민(김영선)은 자신이 아직 마흔일곱밖에 되지 않았다고 응수한다. 그러나 그의 당혹감을 일체 신경 쓰지 않는 의사는 “정년기”라는 무딘 답만을 돌려줄 뿐이다. 이후로 수민의 삶의 온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감정이 오락가락하고, 평소와 같은 남편의 말도 날카롭게 들린다. 영화는 갱년기 여성을 일컫는 조롱 섞인 멸칭부터 이들을 더 이상 ‘쓸모 있는 여자’로 취급하지 않는 구시대적 인식까지 중년기를 침입한 성차별을 낱낱이 고백한다. 수민과 그의 친구 은영(전현숙), 현(유담연)의 삶을 빌려 생애주기에 걸친 사회 전반의 차별을 담아내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다만 모든 불합리를 구두와 서술로 풀어내는 과정이 다소 느슨하게 느껴지고 사회적 변혁을 바라는 방향보다 개인사 토로에 가까워 아쉬움을 남긴다.
[리뷰] 생애주기에 깃든 구시대적 성차별을 우정의 얼굴로 뻗어낸다, <나는 갱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