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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미오카 밀러(한국명 김미옥)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왔지만 그 시도는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수십년 전 어린 시절의 기억은 희미하고, 입양 과정에서 남겨진 서류들은 불완전하거나 접근 불가했다. 그런 미오카가 마지막 희망을 품게 된 것은 ‘배냇’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면서였다. 해외 입양인의 뿌리 찾기를 돕는 한국인 여성 모임 배냇은 미오카의 고된 여정에 함께하고, 미오카의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준다. 물론 그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해묵은 서류를 뒤지고 옛 얼굴이 담긴 전단을 돌리는 것 이상의 고난이 그들 앞에 펼쳐진다. 해외 입양 시스템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어두운 현실을 되돌아보는 영화 <케이 넘버>는 한국 문화를 긍정적 뉘앙스로 일컫는 ‘케이’(K)라는 접두어 뒤에 부끄러운 과거의 상징을 더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진실을 대면하게 만든다.
‘케이 넘버’(K-Number)는 한국에서
[리뷰] 지워진 이름과 잃어버린 시간을 향한 담대한 귀환, <케이 넘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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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조국>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정치인’으로 명확히 정의하고자 하는 다큐멘터리다. 2022년 개봉했던 전편 격의 작품 <그대가 조국>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그대가 조국>은 2019년 조국 전 대표의 법무부 장관 취임 전후로 불거졌던 각종 사건을 해부하는 프로파일링 영화에 가까웠다. 조국 전 대표보다는 그 근방에서 사건에 연루됐던 관계자를 취재하며 ‘조국 사태’라는 일련의 사건을 다면적으로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다시 만날, 조국>도 조국 전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에 취임한 뒤 35일여간의 법무부 장관 임기를 마칠 때까지, 조국 본인과 그의 가족에게 뻗쳤던 온갖 폭격의 역사를 제시하며 시작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것은 1부에 불과하다. 이후의 여정은 다르다. <그대가 조국>이 위기를 통과해온 한 인물의 초상에서 그쳤다면, <다시 만날, 조국>은 더 과격하다. 위기를 통과한 그는 더 투쟁적으로
운명과 의지, 시대의 요구 - <그대가 조국> 이후, 다시 찾아온 <다시 만날, 조국>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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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그대가 조국> 이후,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다루는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개봉한다. 제목은 <다시 만날, 조국>이다. 꽤 의미심장하다. 현재 수감 생활 중인 조국 전 대표를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조국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과정부터 조국혁신당을 창당한 과정을 비춘다. 그의 곁에 머무르는 조국혁신당 의원들을 비롯하여 조국 전 대표를 쫓아온 다양한 이들의 인터뷰, 그리고 수감되기 며칠 전 진행된 조국 전 대표의 인터뷰로 영화는 구성된다. 이어지는 <다시 만날, 조국> 리뷰 기사와 함께 다음주 <씨네21>에는 <다시 만날, 조국>의 정윤철, 정상진 감독과 나눈 인터뷰가 수록될 예정이다. 정치·사회의 격변이 일어나고 있는 한가운데, 한 정치인의 일대기는 한국 현대사회의 궤적과 필연적으로 겹쳐 보일 수밖에 없다.
*이어지는 글에서 <그대가 조국&
[커버] 다시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 <다시 만날, 조국>, 시대가 부른 정치인의 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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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만큼 트랜스크로스 지면에 어울리는 인터뷰이가 있을까. 이자람은 소리꾼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횡단(trans- )한다. <심청가>를 시작으로 전통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완창했고 이중 동초제 <춘향가>를 스무살 나이에 8시간 완창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의 아성은 창작 판소리를 통해 견고해졌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과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을 각각 판소리 <사천가>와 <억척가>로 각색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라틴아메리카의 마르케스와 앵글로 아메리카의 헤밍웨이도 이자람의 눈에 들면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와 <노인과 바다>로 환생했다. 이자람은 판소리 이외의 분야를 가로지르는(cross)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소리꾼이기 이전에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유명한 노래 <내 이름(예솔아)>의 ‘예솔이’로 데뷔했던 가수다. 2004년엔 록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를 결성해
[trans x cross] 지금의 내게 필요한 이야기를 찾는다, 창작 판소리 <눈, 눈, 눈> 세계 초연 마친 소리꾼 이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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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속 지킬 박사는 선과 악의 완벽한 분리에 매몰된 19세기의 의학박사다. 모두가 알듯 순수 선과 순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이 실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가 차라리 타임머신을 개발해 구조주의를 알았다면, 선과 악은 이분되지 않고 그 사이엔 동질성을 띠는 차이만 존재한다는 자크 데리다의 차연이론을 접했거나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양분을 지적하는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라도 들춰봤다면 불행은 막았지 싶다.
이 무의미한 가정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단점과 통한다. <지킬 앤 하이드> 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설정을 동일하게 가져와 지난 20년간 흥행 불패를 기록해왔다. 한데 이 작품이 필멸을 향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남성) 인간을 향한 개탄과 이를 3시간 내내 연기하는 배우를 향한 경탄 외에 2025년의 관객에게 어떤 새로운 감흥을 남길 수 있을까. 지킬을 사
[culture stage]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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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미 시게히코 지음 임재철 옮김 이리에 데쓰로 해설 문학과지성사 펴냄
하스미 시게히코는 한국에서는 영화비평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불문학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제국의 음모>는 일본에서 1991년에 처음으로 간행된 책으로, 본문 110여쪽의 가벼운 분량이지만 내용은 1852년부터 1870년까지 프랑스 ‘제2제정기’를 다루기 때문에 그간 하스미의 국내 출간작을 읽어온 독자에게도 낯선 도전이 될 책이다. 영화비평가 이리에 데쓰로의 해설을 빌리면 <제국의 음모>는 ‘막심 뒤 캉론’이라는 부제가 붙은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과 <보바리 부인론>과 연결되는 ‘제2제정기 시리즈’로 느슨하게 묶일 수도 있다. 영화평론가 임재철이 번역했고 상세한 ‘옮긴이의 말’을 더했다. 한국에도 출간된 하스미의 소설 <백작부인>의 문체를 느낄 수 있는, 어렵고 복잡하지만 경쾌한 글이다. ‘모노가타리’(이야기)의 형식을 띤 역사 다시
[culture book] 제국의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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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약한영웅 Class> 시리즈, <환상연가>, <블랙의 신부>, <연애혁명> 등 출연
팝핀 댄스 배틀
유튜브에서 팝핀 댄스 배틀을 즐겨본다. 특정 채널을 찾는 편은 아니고 최신순으로 검색해서 순차대로 본다. 댄서 각각의 팝핀 스타일이나 무대 위에서의 아슬아슬한 신경전, 배틀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환호 등 현장감 넘치는 모습을 볼 때 희열을 느낀다. 영상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며 감탄한다.
위켄드 <Die For You>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아 하루에 한번은 꼭듣는 노래. 노래의 무드가 너무 좋다. 아무 생각 들지 않고 멍때리게 만드는 노래에 엄청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Die For You> 가 그렇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FPS 게임
이건 취미가 아니라 내 특기다. 정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웃음) 하나를 꼽자면 <헬 렛 루즈>
[LIST] 박지훈이 말하는 요즘 빠져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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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의 장미>
넷플릭스 / 감독 요시무라 아이 / 한국어 더빙 성우 서혜정, 윤성혜, 엄상현, 양석정, 홍범기, 성완경 / 공개 4월30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휘황찬란한 팬서비스 다발을 움켜쥐면 허술한 뮤지컬의 가시가 아프게 찔러댄다
1972년 이케다 리요코의 펜 끝에서 시작해 일본 NTV 애니메이션과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무대를 거친 반세기의 문화현상, <베르사유의 장미>가 2025년 디지털 캔버스에 재탄생했다. 마리 앙투아 네트와 그의 여성 호위 기사 오스칼 프랑수아 드 자르제가 프랑스대혁명 속에서 사랑의 결단을 내린다. 지난 1월 일본 개봉 후 한국 넷플릭스에 공개된 <베르사유의 장미>는 다카라즈카 뮤지컬 버전에 기반한 극장판으로, 매체간 횡단의 시도가 품은 빛과 그림자 모두 적나라하다. 오스칼의 탐미적 재구성, 원작의 상징적 대사인 “두려워하지 마”를 그대로 구현한 베드신, 일명 ‘비디오판’으로 불린 35년 전
[OTT리뷰] <베르사유의 장미> <스타워즈: 언더월드 이야기> <신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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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임무대(Impossible Mission Force, IMF). 에단 헌트(톰 크루즈)를 비롯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IMF 요원들은 누구도 달성이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끝내 성취하며 미국과 세계의 평화를 30년째 지켜내는 중이다. 연작이 개봉할 때마다 이들이 수행하는 또 다른 미션은 방한이다.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의 주역들이 개봉을 맞아 어김없이 한국을 찾았다. 12회 내한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톰 크루즈, 그와 아홉 차례 협업하며 여섯번 한국을 찾은 크리스토퍼 매쿼리 감독을 비롯해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의 주역 헤일리 앳웰, 사이먼 페그, 폼 클레멘티에프, 그레그 타잔 데이비스가 5월8일 서울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톰 크루즈가 이날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특권’이다. 그는 흥미로운 영화를 제작해 전세계의 관객을 즐겁게 만드는 일이 자신이 지닌 더 없는 특권이라고 강조했다. “4살 무
[씨네스코프] 나이, 아니 인간의 한계도 넘어서는 액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프레스 콘퍼런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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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이민재)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수영 실력을 지녔다. 그가 바다를 빠르게 가를 수 있었던건 발에 돋아난 물갈퀴 덕이다. 우주는 석영(효우) 외엔 누구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말한 적이 없다. 특출난 실력으로 고향을 떠나 선수 생활을 하던 우주는 점점 성적이 떨어지자 복잡한 심정을 안고 다시 고향을 찾는다. 2018년 영화 <살아남은 아이>로 데뷔한 뒤 배우 이민재는 영화 <전, 란>, 드라마 <치얼업> <일타스캔들> <약한영웅 Class 2>를 거쳐 <보이 인 더 풀>의 우주로 분했다. 연기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작품과 거리두기를 할 줄 아는 그에게선 신인답지 않은 미더움이 느껴진다.
- 실제로 수영을 즐기나.
= 물을 좋아한다. 어릴 때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땄다. 수영을 전문적으로 배운 건 <보이 인더 풀>을 준비하면서부터다. 한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다이빙까지 배웠고 선생님이 “수영
[WHO ARE YOU] '보이 인 더 풀' 이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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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보유한 미디어 플랫폼인 로쿠가 라이브 TV 스트리밍 서비스인 프렌들리 TV(Frndly TV)를 약 1억 8500만달러(약 2500억원)에 인수했다. 이같은 인수합병은 이전에도 없지 않았다. 파라마운트는 2019년 플루토TV를 약 3억4천만달러 에, 폭스는 2020년 투비를 약 4억4천만달러 에, 컴캐스트는 같은 해 수모를 약 1억달러에 인수했다. 로쿠 또한 이전에 스트리밍 기업 퀴비를 인수한 후 로쿠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리브랜딩해 주목받은 바 있다. 이들은 모두 독립 패스트(FAST) 서비스를 통해 콘텐츠 유통 구조를 넓히며 광고 수익을 극대화 했고 콘텐츠 전략의 유연성까지 확보했다. 그뿐만 아니라 경쟁자 플랫폼 내부로 들어가 생태계를 확장하는 동시에 플랫폼 경쟁을 하지 않고도 콘텐츠 중심의 확산 전략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로쿠와 프렌들리 TV 플랫폼은 한국의 독자들에겐 친숙하지 않겠지만, 이들의 인수합병은 미국 미디어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로쿠의 프렌들리 TV 인수는 무얼 시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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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중앙과 롯데컬처웍스가 지난 5월8일 영화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병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합병의 주요 목적은 차별화된 상영 환경을 구축하고, 한국 영화시장에 안정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것이다. 또한 경쟁력 있는 콘텐츠 확보를 통해 침체된 영화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관객들에게 향상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중앙그룹 관계자는 “최근 극장 업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과도한 투자로 인한 비효율도 존재했다”라며 “이번 합병은 위기를 돌파하고,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시너지를 불러일으킬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극장 수 확장보다는 특별관 등 극장의 본질적 경쟁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중복 상영관을 해소해 다양한 영화 편성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롯데그룹 관계자 역시 “영화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이번 합병을 추진했다”며, “양사가 보유한 콘텐츠와 인프라를 활용해 중복 비용을 줄이고, 시너지를 극대화해
주요 영화관의 합병, 극장에는 어떤 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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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을 보며 21세기 초반을 지배한 이 위력적인 히어로 프랜차이즈를 떠나보낼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마블 영화와 작별을 고하는 마음으로 ‘나의 <보이후드>를 떠나보내며’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아 글도 썼다. 물론 그 후로도 마블 영화가 나오는 대로 직업적 의무감에 체크는 했지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한 가지 예상 못했던 건 속도다. 예고된 몰락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가라앉을 줄은 몰랐다. 마치 잘못된 시대에 표류한 것 마냥 길을 잃은 행보를 보며 새삼 영화와 시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피어난다.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21세기 영화산업의 산물이다. 안정적인 속편을 갈망하는 할리우드 프랜차이즈는 CG라는 선택지를 만나 새로운 이야기 창고를 발굴하기에 이른다. 기존의 기술로 구현하기 힘들었던 만화적 상상력은 컴퓨터그래픽의 ‘그리는 영화’의 시대가 도래하여 비로소 빛을 얻었다. 이후 이 안정적인 모델이 예상하지 못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Not Super, Not Giving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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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경험의 시작과 끝에는 항상 어떤 구멍들이 함께한다. 세계의 빛은 카메라 렌즈의 구멍 속으로 들어와 이미지로 전환되고, 그 이미지는 다시 영사기의 구멍을 통과해 스크린에 투사되거나 모니터에 출력된다. 영화 이미지는 그것이 생성되는 장소가 어디건 간에 최종적으로 관객의 안구를 통과해 인간의 신체적 감각으로 수용된다. 영화적 경험은 기계적 구멍과 신체적 구멍의 연쇄 또는 결합을 통한 이미지의 지각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혹여 구멍이라는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창, 틀, 문, 거울과 같은 오래된 비유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영화에 관한 그 비유들은 영화가 다른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멍에 관한 비유는 영화가 매개하는 두 세계 사이의 균형의 불안정성을 시사한다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트루먼 쇼>는 동명의 리얼리티 TV쇼가 여러 기계적 구멍과 신체적 구멍의 연쇄와 결합으로 이루어
[이도훈의 영화의 검은 구멍] 영화적 구멍이 만들어갈 새로운 세계의 지평, 영화 매체의 균열과 연약함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