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이 창간되고 30년이 흘렀다. 다만 1995년은 <씨네21>만의 생일은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 CJ ENM, 명필름, 싸이더스(당시 우노필름) 등 20~21세기를 거치며 한국 영화산업을 견인했던 이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한국영화의 상징적인 해이기도 하다. <씨네21>은 이 30년의 세월 동안 한주도 거르지 않고 1500권의 주간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1990년대 중후반 영화 문화의 폭발적인 성장과 20세기 중반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기부터 영화 매체의 존재론이 흔들거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씨네21>은 한국영화가 있는 자리라면 어디든 찾아가고, 묻고, 찍고, 써냈다. 30년 동안 <씨네21>이 쌓아온 기록의 (극히) 일부를 1500호 창간 특별호를 맞아 공개한다. 봉준호와 장준환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의 학생으로 인터뷰에 참여하고, 영화진흥위원회와 전주국제영화제 등이 생겨나고, 영화인들이 모여 스크린쿼터 투쟁에 참
[특집] HAPPY BIRTHDAY! - <씨네21>이 기록해온 한국영화 30년사의 장면들
-
<보물섬>에 들어가지 않은 시청자에게 대기업 회장의 손녀 여은남(홍화연)은 멋없는 캐릭터일 수 있다. 숨겨진 정치 비자금을 둘러싼 남자들의 권력 다툼 안에서 멜로를 담당하는 순정적인 여자주인공. 그러나 안에서 보면 다르다. 남자들과 똑같이 욕망하며 어딘가에 묻힌 진실을 손에 쥐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정략결혼의 보호를 거부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동주(박형식)의 수난을 추적하며 아버지(주상욱)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게 10회까지 여은남이 보여준 본모습이다. 그가 이토록 의지력이 강한 인물로 빛날 수 있었던 건 배우 홍화연의 힘이 컸다. 그는 여은남을 “내면에서 몰아치는 소용돌이를 철저하게 숨기는 단단한 인물”로 봤다. “죽은 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새아버지 허일도(이해영)를 포함, 은남이를 정치적 수단으로만 이용하려는 식구들 앞에서 차갑고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잘 웃고 표현도 많이 하는 본래의 자신은 촬영 동안 잠시 접어두었다. 데뷔
[WHO ARE YOU] <보물섬> 홍화연
-
유머, 그리고 꼿꼿함 - <토니 에드만>
- 연기에 관해 말하자면 <토니 에드만>의 잔드라 휠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너무너무 좋았다! <토니 에드만>을 보고 어떻게 저런 배우가 있을 수 있나 싶었다. 그에 관해 더 잘 알고 싶은데 생각보다 잔드라 휠러에 관한 정보나 인터뷰가 한국에 잘 전해져 오질 않는다. 어쨌든 <토니 에드만>을 본 뒤에 잔드라 휠러에게 완전히 사로잡혔다.
- 특히 어떤 부분에 사로잡혔나.
꼽을 수 없다. 영화 전반에 드러난 그의 연기 변화와 흐름이 너무 좋았다. 후반부에 아버지의 권유로 노래할 때, 이네스(잔드라 휠러)가 처음부터 끌고 온 감정이 없었다면 그의 노래가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을 거다. 이네스가 어떤 마음으로 아버지를 견뎠고 어떤 심정으로 그 공간에 있는지를 휠러가 정말 잘 보여줬다.
- 이네스와 아버지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언젠가 화해할 수 있을까. 혹은 절대 만나지 않는 평행
[인터뷰] 속절없이 무너뜨리는 영화 - 배우 전소니의 영화관(觀) ②
-
많은 질문을 건넬 필요가 없었다.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작품들을 다시 찾아보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전소니는 방금 극장에서 나온 관객처럼 영화를 볼 당시 주변의 공기, 풍경, 연쇄적으로 떠올랐던 질문과 기분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과 영화에 관해 종종 적어둔다”는 그는 중간중간 자신의 메모를 들려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의 전소니를 투과해 당도한 영화들, <킬링 디어> <파프리카> <패왕별희> <토니 에드만> <조 블랙의 사랑>은 한층 깊고 다채로워져 있었다.
- 다섯 작품을 고르는 데 얼마나 걸렸나.
10분 정도? 사실 인생 영화를 물어보는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속상하다. 좋아하는 영화들 중에서 한두편만 꼽기가 어려워서인데, 그 어려워하는 시간이 꽤 쌓이다보니 어차피 바뀔 거라는 전제로 그때그때 떠오르는 작품을 답하곤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중간에
[인터뷰] 속절없이 무너뜨리는 영화 - 배우 전소니의 영화관(觀) ①
-
-
불완전해서 아름다운 인간 - <바빌론> <파벨만스>
- 자연스럽게 <바빌론>으로 넘어갔다. 온갖 오물 범벅 속에서 영화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 40시간 근로제가 업계 전반에 정착하기 전, 그날 방영본을 그날 촬영하던 옛 생각도 했다.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거였다면 대체 그때는 왜…. (웃음) 하지만 누군가는 치열하게 작품을 만들어간 과거를 또렷이 기억한다. 양가적인 마음이 든다. 영원할 줄 알았던 세상의 법칙은 너무 쉽게 변하지만, 그때의 난장판이 없었다면 지금도 없다. 넬리(마고 로비)가 촬영장에서 겪는 좌충우돌이나 촬영장에 나비가 날아드는 장면에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다. 적어도 현장에서 나비가 우연히 포착된 순간은 어떤 인공지능도 만들어낼 수 없으니 말이다.
- 촬영 현장 자체가 통제 밖 사건의 연속 아닌가. 예술이 갖는 최선의 아름다움이 우연을 통해 완성된다고 믿나.
믿는다. 그리고 변수가 존재하
[인터뷰]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 – 배우 이준혁의 영화관(觀) ②
-
그럴 줄 알았다. 분명 ‘영화란 무엇인가’에 해당하는 다섯 작품을 보내달라고 부탁했건만 인터뷰 전날 이준혁으로부터 열 작품이 도착했다. 두배에 달하는 목록을 보고 참 그답다 싶었다. 많이 알려진 대로 배우 이준혁은 영화 보기를 사랑한다. 지난 몇년간 이준혁의 시네필리아를 지켜보면 이따금 그가 영화를 사랑하다 못해 두팔 걷어붙이고 영화 사이에서 중매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는 어제 본 영화가 좋았으면 어떻게든 남에게 소개하려 하고, 꼭 만나보라는 투로 이 영화의 장점을 곁들인다.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영화를 엮어내며 영화끼리의 만남을 주선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어질 대화도 마찬가지다. <가타카>와 <아노라>, 니콜 키드먼과 마동석은 어떻게 어울릴까. 전혀 다른 작품, 배우도 영화에 대한 이준혁의 순정이면 절로 궁합이 점지된다.
-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만 해보자.
각 잡고 이야기하려니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의 목록은 직감으로 떠올
[인터뷰]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 – 배우 이준혁의 영화관(觀) ①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파벨만스>에서 말했듯 인생과 영화는 다르다. 비루한 오늘은 촬영으로 보정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끊어진 인연은 편집으로 이어 붙일 수 없다. 연기와 연출은 살다 보면 언젠가 들통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랑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어떤 이들은 영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인생도 영화와 같기를 바란다. 급기야 경애의 대상에 사로잡혀 직접 카메라를 들거나 카메라에 찍히는 일까지 불사한다. 그러다 운이 나쁘면 영화에 관한 글을 쓰게 될 수도 있다.
다수의 <씨네21> 기자들이 입사 전 최종 면접에서 선배 기자들로부터 농담 삼아 받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시네필인가요?” 입사 전에도 입사 후에도 기자들이 이 질문에 선뜻 답하기 주저하는 이유는 답변자 자신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만났기 때문이다. 그중 다수는 영화계 내부에 있다. 좋아하는 대상이 일이 되어도, 그들은 영화를 애호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바쁜 촬영 스케줄에도 하루
[기획] 영화가 좋아서, <씨네21>이 좋아서 – 배우 이준혁과 전소니가 들려주는 영화를 애정한다는 것
-
“특수효과는 <쉬리>의 또 다른 열쇠가 될 거라 생각했다. 총격전에서 벌어지는 스파크 하나에도 정두환 기사님과 엄청나게 많은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만 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예를 들어 어떤 총기가 어떤 포지션에 있을 때 어떤 색깔, 어떤 모양으로 불꽃이 튀는지 계속해서 확인했다. 거의 과학 실험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쉬리>의 특수효과는 한국영화사에서 터닝 포인트에 가까웠다. 이를 기점으로 전문화된 특수효과의 기틀이 만들어졌다.”
“도심 총격전은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당시 한두명이 총격전을 벌이는 촬영은 있었지만 이렇게 수십명이 나선 적은 많지 않아서 미리 공지한 내용을 모르는 시민들이 긴급하게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난리도 아니었다. (웃음) 게다가 소리도 얼마나 현실적이고 우렁찬가. 지금이라면 SNS를 통해 영화 촬영이라는 것을 바로 알았겠지만 그땐 그게 어려웠다.”
“명현이 총구를 겨누기 전에 스타디움 복도에서 총을 들고 시민들에게 비
[기획] 이 장면이 완성되기까지 - 강제규 감독이 말하는 <쉬리> 비하인드 더 신
-
- 개봉 26년 만에 재개봉을 한다. 그동안 온라인에서 <쉬리>를 보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역사가 워낙 길다. 오래전 삼성영상사업단이 영화사업과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를 철수하면서 삼성영상사업단이 투자배급을 맡았던 <쉬리>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담당자가 없어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거다. <쉬리>가 1999년 개봉하고 난 뒤 VOD 서비스나 OTT 플랫폼에서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판권을 가진 주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내게도 슬픈 일이었다. 방안을 모색하며 1년, 2년 시간이 흐르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여러 채널을 통해 계속 수소문했지만 정확한 정보를 얻기 힘들고 핑퐁 게임처럼 다른 곳, 다른 부서로 보내질 뿐이었다. 도돌이표처럼 돌고 돌다가 마지막으로 이런 콘텐츠를 관리하는 상대측 변호사와 연락이 닿게 되어 함께 협의를 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작품이 극장에서 빛을 볼
[인터뷰] <쉬리>는 달랐다 - 26년 만에 극장을 찾은 <쉬리> 강제규 감독
-
뉴 밀레니엄을 코앞에 둔 1999년. 기대와 설렘, 음모와 루머가 희한하게 뒤섞이던 시절, 한반도 분단의 비애와 현실성 높은 총격전은 당시 <타이타닉>이 가지고 있던 최대 관객수 226만명의 기록을 경신하며 621만명이라는 최종 성적을 거둔다. 희망, 가능성, 기대 등등 <쉬리>를 대체할 단어는 오직 그런 것들이었다. 한국영화가 나아갈 방향의 지표이자 새로운 기준점. 한국영화가 <쉬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은 진부한 문장처럼 들리지만 엄연한 역사적 증언이자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기록이다. 영화 제작 방식, 투자 규모, 스토리 전개 방식, 배우 활용법, 아트 프로덕션, 촬영, 특수효과, 무술 디자인, 음악, 장르성 등 실제로 <쉬리> 영향권에 들지 않은 영역을 사실상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가히 전설적인 결실이지만 애석하게도 <쉬리>를 온라인상에서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 복잡한 이해관계의 틀에서 벗어나지
[기획] 대한민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1999년 극장가의 뉴 스탠더드, <쉬리>
-
소녀와 로봇의 만남. 얼핏 유아용 애니메이션의 평화로운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미스터 로봇>은 전작 <파닥파닥>의 서늘함을 갱신한 이대희 감독의 현실성 높은 잔혹 동화로 조형돼 있다.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화된 근미래. 최첨단 기술과 인공지능의 결합으로 이목을 이끈 로봇 맥스는 K-로봇 인더스트리 쇼케이스 현장에서 돌연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키고, 이에 혼수상태에 빠졌던 로봇 관리대 대원 한태평은 자신이 로봇의 몸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편 K-로봇 인더스트리의 부사장 강민은 형을 향한 오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조카 나나의 생명을 위협한다.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미스터 로봇>은 많은 것을 증명한다. 시의성 높은 윤리의식 문제와 명확한 권선징악은 안정적인 몰입을 이끌고,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 설정과 다소 수위가 높은 장면들은 애니메이션의 입체성을 더한다. <미스터 로봇>이 실험하고 축적하고 이뤄낸 것들을 들여다보기 위해 이대희
[인터뷰] 서늘하고 현실적인, 숨 가쁘도록 생생한, <미스터 로봇> 이대희 감독
-
아마도 가장 좁은 땅 위에서 가장 조용히 치러지는 스포츠가 아닐까. 조훈현과 이창호, 두 바둑 천재가 치러온 명경기가 30여년 만에 재현된다. 바둑 신동으로 불리던 이창호(유아인)의 실력을 일찌감치 알아본 뒤 조훈현(이병헌)은 그를 직접 자신의 집에 데려와 수제자로 키운다. 조훈현 국수의 공격적인 기풍과 다르게 이창호 국수는 묵묵히 자신의 것을 지키는 방식을 고수하고 1990년, 제29기 최고위전 결승에서 조훈현을 상대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다. 김형주 감독은 사제지간인 동시에 수십년간 수백번의 대국을 치른 조훈현 국수, 이창호 국수의 이야기에 매료돼 이들의 서사를 영화 <승부>에 담았다. 침묵 속에서 치열하게 펼쳐지는 천재들의 수싸움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 바둑에 대해 잘 알고 있나.
전혀 모른다. (웃음) 바둑 소재의 영화를 연출해놓고 민망한 대답이긴 한데, 솔직히 잘 모른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조훈현 국수, 이창호 국수가 사제지간이라는 정
[인터뷰] 정석대로, 성심과 신의를 다하여, <승부> 김형주 감독
-
<씨네21> 30주년 창간특집호 1500호의 주인공은 <폭싹 속았수다> 아이유. 사진팀, 취재팀, 디자인팀 모두가 오랫동안 뜨거운 논의를 거쳤지만 아쉽게도 지면에 오르지 못한 B컷을 공개한다. 스튜디오에 봄을 몰고 온 아이유의 표정을 마음껏 반기길.
[B컷] 커버 <폭싹 속았수다> 아이유 비하인드 화보
-
- <폭싹 속았수다>에는 얄궂은 인물은 있을지언정 악역은 없어요. 금명이를 몰아세웠던 영범의 어머니 부용(강명주)도 그 이후의 노년기를 보여주면서 연민과 이해의 기회를 주고요. 상길(최대훈) 또한 애순네 집안과 연결되면서 이면을 보여줍니다. 애순이와 금명이가 되었던 사람으로서 이런 지점을 어떻게 바라보았나요.
이런 너그러움이 사실은 정말 현실적인 것 같아요. 임상춘 작가님 글은 무척 동화 같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이에요. 동화와 현실을 오가면서 사람의 마음을 홍야 홍야 녹여버리시잖아요. (웃음) 저는 개인적으로 상길에게 이해의 기회가 가는 건 처음에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여쭤봤어요. 우리가 상길이도 이해해야 할까요? 하고요. 대본의 모든 부분을 납득하고 싶었거든요. 그러자 감독님께 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우리가 상길이를 두고 ‘짜잔! 사실 상길이는 좋은 사람이었답니다!’ 하는 게 아니에요. 상길이는 탈바꿈되지 않아요. 그보다는 과거부터 쌓여온 자
[인터뷰] 충실한 이해의 말들, <폭싹 속았수다> 아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