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엄마(홍 다오), 그리고 심해지는 발작 증세. 거리의 이발사 환(뚜언 쩐)은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착한 청년이지만, 그가 짊어진 가족의 생계와 병세는 한계에 다다른다. 결국 환은 엄마가 젊은 시절 아버지를 만났던 한국으로 떠나기로 한다. 더 나은 치료, 혹은 잃어버린 가족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절박함과 함께. 지난 8월 베트남에서 개봉해 200만 넘는 관객을 동원한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감독, 배우, 주요 연출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한국과 베트남이 합작한 영화다. 롯데월드나 첫사랑과 같은 상징으로 영화는 ‘코리아 판타지’를 제시하는 한편, 두 베트남 주인공이 처한 질병과 빈곤은 감당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의 연속으로 그려져 관객을 지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은 한국이라는 과거가 아닌 고국이라는 현재에서 계속되어야 한다는 모범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베트남을 위한 서사와 정서를 되찾는다.
[리뷰] 적당히 치고 빠지는 코리아 판타지,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
<에스퍼의 빛>은 테이블톱 롤플레잉게임(TRPG)을 즐기는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정해진 대본 없이 게임 플레이어들이 가상의 역할을 연기하는 TRPG의 대전제에 따라 <괴력의 아이들><새벽의 파편><기뇌국>의 주인공들은 OA 에스퍼가 제공하는 선택지에 의거한 모험을 떠난다. <에스퍼의 빛>은 청소년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형태든 될 수 있는 세계를 다루며 이들이 직접 자기만의 서사를 써나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이를테면 영화 속 청소년들은 게임 세계에서 특별한 이(異)능력을 부여받는다. 그 이능력은 <엑스맨>의 세계관처럼 플레이어들을 원가정으로부터 유리하는 동시에 절멸 직전인 세계를 구원하도록 만든다. 청소년 플레이어들이 회복하려는 세계의 원점은 우정, 자연, 가상현실 등 제각각이다. 한데 그 바람이 끝내 한 지점으로 수렴할 때, 통상의 영화를 보며 좀처럼 감각하기 어려웠던 낯선 감흥이 관객을
[리뷰] 세계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그럼에도 세계에 빛을 밝히려 할 때, <에스퍼의 빛>
-
<킬리만자로의 표범><하얀 목련><향수><타타타 >…. 장르를 넘나들며 수많은 히트곡을 쓴 작곡가이자 뛰어난 기타리스트 김희갑, 그의 동반자이자 컬래버레이터인 작사가 양인자. <바람이 전하는 말>은 두 사람의 이웃이었던 양희 감독이 10년에 걸쳐 남긴 기록이다. 김희갑, 양인자부터 그들과 협업한 뮤지션, 뮤지컬 음악감독, 음악평론가, 혜은이 팬클럽 회원들까지 다양한 인터뷰이를 경유해 음악인으로서 김희갑의 재능과 태도를 그린다. 인물의 근거리에서 출발한 작품인 만큼 평가와 해석보다는 애정 어린 회고에 무게가 실린다. 반복되는 감탄의 말보다 곡에 사로잡힌 순간을 떠올리며 눈을 빛내는 뮤지션들, 즉흥연주를 하고 소탈하게 웃는 김희갑, 기억을 잃어가는 증상을 차분히 받아들인 채 나란히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 등 서정적인 고백과 여백들이 인상에 남는다. 불후의 명곡을 과거 공연 푸티지와 함께 모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영화의 묘미다.
[리뷰] 10년의 서정적인 기록, <바람이 전하는 말>
-
1937년 12월13일 일본군에 함락당한 난징은 생지옥이 된다. 일본군은 중국군의 사기를 꺾으려는 목적으로 학살을 저지르고 사진으로 기록하려고 한다. 길상 사진관의 집배원 쑤류창(류호연)은 우연히 일본군의 종군 사진사 이토 히데오(히라시마 다이치)에게 조수로 발탁된다. 그는 지하에 숨은 사진관 사장 진천종(왕효)에게 필름현상을 배우며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쑤류창은 필름을 인화하다가 학살 현장이 담긴 필름 원본을 발견한다. <난징사진관>은 <고주일척>을 감독한 신오 감독의 신작으로 중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반인륜적 범죄인 난징대학살을 스펙터클로도, 민족주의 프로파간다로도 소비하지 않으려는 절제가 돋보인다. 대신 역사적 참상을 알리려는 소시민의 휴머니즘에 주목해 공감대를 불러오는 데에는 성공하나, 영화가 여러 유명한 전쟁영화의 장점을 고스란히 가져온 패치워크 같다는 인상을 남긴다.
[리뷰]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비극 재현, 딱 거기까지, <난징사진관>
-
-
외진 시골에 있는 한 병원. 흉기에 찔린 은서(김정민)가 실린 하얀 차가 도착한다. 경찰 현주(이정은)는 정황을 파악하려고 차를 운전한 도경(정려원)의 진술을 듣는다. 친언니도 아닌 은서를 언니라 부르는 등 그녀의 진술은 심정적인 혼란으로 가득해 앞뒤가 맞지 않다. 현주는 그 진술에 숨은 진실을 찾아야 한다. <하얀 차를 탄 여자>는 드라마 <검사외전 ><로스쿨>을 공동 연출한 고혜진 감독의 데뷔작으로,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을 수상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오마주한 소품에서 드러나듯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장르적 재미가 탄탄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장르적인 장치로 가정폭력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여성의 마음을 섬세히 그려내는 미덕이 돋보인다. 이야기에 비해 평면적인 연출이 아쉬움을 남기나 두 주연의 호연이 단점을 상쇄한다.
[리뷰] 이쯤이면 히가시노 K-고 차가운 추리에 담은 뜨거운 연대, <하얀 차를 탄 여자>
-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제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에서 먼저 관객을 만난 <생명의 은인>은 서로를 ‘생명의 은인’으로 삼은 두 여자를 따라간다. 먼저 구원자를 찾아 나선 건 병세가 악화돼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은숙(송선미). 그는 자립 지원금 500만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정(김푸름)에게 자신이 오래전 화재 사고에서 세정을 구했다고 말하며 뒤늦은 보상을 요구한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진실은 안갯속인 가운데 각자의 이유로 돈이 절실한 그들은 뜻밖의 동고동락을 경험한다. 방미리 감독은 세정과 은숙 사이의 긴장감과 해소 과정을 밀도 높게 묘사할 뿐 아니라 영화가 일종의 추리극이자 로드무비로서 재미를 갖출 수 있도록 리듬감 있는 전개를 택했다. 여정이 다소 급작스럽게 마무리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지만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대목의 여운 또한 진하게 남는다.
[리뷰] 상실마저 삶의 일부로 매만지는 다정한 손길, <생명의 은인>
-
21세기의 첫해이자 변화의 물결이 시작되던 2001년.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 경환(심현서)이 대구로 전학해온다. 취향을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 때문에 자신을 숨기던 경환에게 재민(현우석)이 마음을 열고, 두 소년은 그룹 글로브의 음악을 듣는 5분의 시간을 공유하며 가까워진다. 경환이 재민에게 비밀을 털어놓은 후 이들은 새 국면을 맞는다. 영화는 인터넷과 MP3, 일본 노래를 매개로 서로의 세계를 잠시 엿보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404 Still Remain’으로 사람과 장소는 사라져도 그때의 감정은 남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404 Not Found가 아닌 데서 오는 안도감, 그리고 5분처럼 짧았던 그 시절이 여전히 기억에서 재생된다는 위안의 메시지. 노래 한곡의 재생 시간만큼 5분 동안 펼쳐지는 결말의 힘이 크다.
[리뷰] 5분의 노래 5분의 엔딩 그리고 404 Still Remain, <너와 나의 5분>
-
“노래하는 선희, 그림 그리는 준상 그리고 시를 쓰는 지봄.” 무척이나 가뿐한 영화의 시놉시스처럼, <구름이하는말>은 정말 구름의 자유로운 모양새를 이야기로 치환한 듯한 작품이다. 부산에 있는 작은 카페 ‘매일이다르다’에선 곧 2인조 밴드 ‘현수와 선희’의 작은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이에 준상(이시오)은 공연의 포스터를 그리게 되고, 선희(배선희)는 노래를 준비한다. 이 과정에 청중으로 참여했던 지봄(이지봄)은 선희의 곡에 가사를 붙이게 된다. 재개발로 인해 정든 집을 떠나야 하는 지봄에게 이 일은 꽤 기분 좋은 전환의 계기가 된다. 이렇게 창작의 맥락과 협업으로 자연스레 얽혀가는 많은 이의 모습이 차근차근 포개어진다. 가까운 곳에 사는 이들이 서로의 옷깃을 스치며 살짝 만났다가 헤어지고, 각자의 일상을 사는 느슨한 군상극이다. 여기엔 지나치게 예술 작업을 지나치게 우상화하는 과잉의 터치도 없고, 감정의 골을 억지로 뽑아내려는 드라마타이즈의 압박도 없다. <구름이하
[리뷰] 구름의 테두리처럼 자유롭고 흐릿하게 뻗쳤다가, 모였다가, <구름이하는말>
-
테디(제시 플레먼스)는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들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고 믿는다. 돌보는 벌집에서 일벌들이 떠나고, 엄마는 임상시험 부작용으로 수년간 입원해 있다. 직장 동료는 일하다 다치고도 보상은커녕 페널티를 받는다. 벌과 인간을 겹쳐보고 두종이 외계인 탓에 위기에 처했다고 믿은 테디는, 사촌동생 돈(에이든 델비스)과 함께 몸을 단련하고 이론을 학습하며 지구를 구할 계획을 세운다. 호일 슈트와 복면으로 무장한 두 사람은 외계인으로 의심되는 미셸(에마 스톤)을 납치해 지하실에 감금하고선 협상을 시도한다. 미셸은 테디가 근무하는 바이오기업, 벌집 군집붕괴현상의 주범으로 추정되는 살충제 제조사이자 엄마가 의식을 잃게 만든 바로 그 회사의 CEO다. 추궁하는 테디와 부정하는 미셸 사이에서 돈은 혼란스럽다.
알려져 있듯 <부고니아>는 장준환 감독의 2003년작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일단 본래 아이디어부터 란티모스의 언어로 재현되기에 적합했고,
[리뷰] 더는 가엾지 않은 자멸의 종에게, <부고니아>
-
재민(현우석)은 글로브의 <FACES PLACES>를 좋아한다. “Best of my life”을 되뇌는 노래 가사처럼, 그는 17살인 지금이 인생 최고의 날들로 기억되리라고 직감한다. 자신의 취향을 이해하고, 그 세계를 넓혀주는 전학생 경환(심현서)과 이어폰을 나눠 낄 때만큼은 전에 없던 평화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영화 <아이를 위한 아이> <힘을 낼 시간> 등을 지나오며 위태로운 소년의 초상을 여러 번 덧칠해온 배우 현우석은 그 순간을 숙면에 빗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물도 이런 관계에서만큼은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차기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에서도 교복을 입는다는 그는 현우석의 소년이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느냐는 물음에 엷은 미소로 말을 아꼈다.
- <아이를 위한 아이> <돌핀> <힘을 낼 시간>에서와 달리 <너와 나의 5분>에서 비로소 사사로운 학창 시절의 풍경
[인터뷰] 자극과 안정 사이의 순수, <너와 나의 5분> 배우 현우석
-
경환(심현서)은 글로브의 <DEPARTURES>를 좋아한다. “사진 속 두 사람”을 그리는 노래 가사처럼, 그는 전학 간 학교에서 어른이 되어도 바래지 않을 추억을 현상한다. 그 장면을 함께 채운 이는 우정 이상의 애착을 느끼게 하는 짝꿍 재민(현우석). 그래서 경환에게는 재민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쌓여간다.
거기에 먼저 귀 기울인 배우 심현서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데뷔해 단편 <유월>(2018)로 영화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적이 있다. 자유로이 춤추던 어린이는 사랑에 아파할 줄 아는 소년으로 자라 첫 장편영화 주연이라는 기회를 잡았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안다는 신예는 “성인이 되기 전에 이런 일을 경험할 줄 몰랐다”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 오랜 사랑을 받은 단편 <유월>의 주인공이 이렇게 자랐다니 반갑다. 작품이 얻은 호응을 기억하고 있나.
촬영할 당시에만 해도 내가 배우라는 의식이 별로 없었다. 영화
[인터뷰] 내 마음에 꽂아둔 책갈피들, <너와 나의 5분> 배우 심현서
-
<소년탐정 김전일> 대 <명탐정 코난>. <슬램덩크> 대 <드래곤볼>. <이누야샤> 대 <원피스>. 전자만 고르는 소년과 후자만 고르는 소년은 서로 맞는 게 하나도 없다며 투닥거리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다. 각 만화의 매력을 견주며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서로밖에 없음을.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 <피터팬의 꿈>(2020)으로 주목받은 엄하늘 감독의 첫 장편 <너와 나의 5분>은 그런 간극을 파고든다. 평상시엔 흐릿하다가도 단숨에 선명해지는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건져내기 위해서다. 밤이 깊을수록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2001년 대구 수성구라는 배경도 아이들의 뒤를 받친다.
그 앞에 선 배우 심현서와 현우석은 촬영 전부터 사투리 수업을 들으며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들이 연기한 경환과 재민 또한 일본 가요를 매개로 친구가 되었다. 익숙한 말씨에서 벗어나며 거리를 좁힌 두 사람은
[커버] 소년들의 시간, <너와 나의 5분> 배우 심현서, 현우석
-
성우. 영화 <연의 편지><드래곤 길들이기><퇴마록><극장판 원피스 스탬피드>등 목소리 출연
<F1 더 무비>
주인공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를 보면서 내가 앞으로 따라가야 할 길, 내가 닮아가고 싶은 모습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리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슬램덩크>
한마디면 된다. 인생의 교본. (웃음) 내 유튜브 채널 <남도형의 블루클럽>에서도 <슬램덩크>를 입 아프게 찬양한 영상이 있다.
NC 다이노스
(인터뷰 일자 기준으로) 내일모레 시구 갈 예정이다. 야구에 진심이 된 지 꽤 오래되어서, 매일매일 감독의 마음으로 보고 있다. 모두가 열성을 다해 기도 중이다.
<Hello Mr. My Yesterday>
명탐정 코난 10기 한국판 오프닝곡이다. 최근 커버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LIST] 남도형이 말하는 요즘 빠져있는 것들의 목록
-
할리우드 스타들의 수백억원짜리 저택들과 수만명에 이르는 노숙인들의 텐트촌이 공존하는 도시, 로스앤젤레스. <굿 포춘>은 야심차게 이 ‘천사들의 도시’를 영화 전면에 내세운다. <굿 포춘>은 신임 천사 가브리엘(키아누 리브스)이 서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두 사람의 인생을 맞바꾸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판타지 코미디로, 화려한 배우진과 함께 기그 이코노미와 노동유연화라는 동시대적 주제를 다룬다. 가브리엘은 교통사고를 낼 뻔한 이들을 보호하는 단순한 업무를 맡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차에서 숙식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아르지(아지즈 안사리)의 삶을 보게 된다. 아르지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지만 일을 할수록 점점 가난해진다. 반면 제프(세스 로건)는 성공한 벤처 투자자다. 접점이 없던 두 사람의 인생은 제프가 심부름 앱으로 일일 도우미를 구하면서 교차한다.
영화는 아르지의 일상을 통해 길거리의 타코 노점, 고깃집들이 자리한 한인타운의 상점가 풍경, 노동자들이
[LA] LA 겉핥기의 매력, 화제작 <굿 포춘>공개… 확실한 매력만큼 아쉬움도 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