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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부표의 꿈, 문주화 영화평론가의 <지느러미>

<지느러미>

4000km에 달하는 인공 장벽 안에 갇힌 미래의 통일 대한민국을 영화의 시공간으로 상정한 박세영 감독의 <지느러미>는 핏빛으로 얼룩진, 인간과 돌연변이 오메가, 두 종간의 혐오로 오염된 사회를 관측한다. 이는 과거의 원폭 피해와 패전의 기억을 꿈의 형식으로 치환하여 미래로 투사했던 구로사와 아키라의 <>을 불러들인다. 여섯 번째 꿈 ‘붉은 후지산’에서 인간은 지난날의 과오를 고스란히 돌려받은 채 비극을 맞이한다. 후지산과 핵발전소가 연쇄적으로 폭발하고, 붉게 물든 상공 아래 사이렌과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인다. 인류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란, 물결치는 바다 위로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이다. 일곱 번째 꿈 ‘귀곡’은 재난 이후의 상황을 제시한다. 핵 오염으로 인해 출현한 돌연변이 도깨비는 인간의 탐욕이 자신들의 탄생 기원임을 알린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비극을 초래하며, 스스로 지은 과오의 죗값을 치르는 운명 속에 있는 것일까.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대다수의 영화가 머무는 종착지는 대체로 외화면의 현실과 교섭하여 자성을 촉구하는 사회적 캠페인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때로 꿈, 혹은 현실의 먼발치에 우두커니 선 환영의 역할을 자처해온 것 같다. 반면, <지느러미>가 향하는 묵시록적 미래는 인과응보의 서사를 비껴 나간다. 영화는 부모를 잃거나 마땅한 거처를 찾지 못한 인간과 오메가, 다시 말해 씻을 죄가 없는 수진(김푸름)과 미아(연예지) 두 고아가 자신들의 기원과 고향을 탐색하는 이야기다.

감독은 장편 데뷔작 <다섯 번째 흉추>에서 곰팡이의 탄생 설화와 진화 과정을 성찰했다. 염증과 부패를 유발하는 혐오의 물질로 치부되던 세균 덩어리는 실패한 사랑에 몰두한 자들이 남긴 결핍을 양분 삼아 인간의 형상으로 성장한다. 용달차량의 뒷좌석에 무임승차하여 흉추를 훔쳐 자신의 몸에 끼워 넣어 조립하기 전, 곰팡이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자와 시선을 교환한다. 척추뼈를 사이에 둔 불완전한 두 생명체가 손을 맞잡은 채로 서로에게 경멸과 경탄의 눈빛을 보낸다. 이족보행을 갈망했던 곰팡이는 그 꿈을 이뤘을까. 엔딩에서 곰팡이는 인간의 언어로 어느 환자가 자식에게 남긴 편지를 대독한다. 끝내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곰팡이는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지느러미>는 <다섯 번째 흉추>에서 도입했던 실험을 심화하여 확장하는 SF 크리처 로맨스이다. 인간에게는 혐오의 대상이면서, 오메가에겐 존재를 증명하는 유산인 지느러미를 미래 사회의 아브젝트로 제시하고, 이를 쟁취하려는 두 종간의 집착적인 사랑을 그려낸다.

오메가를 통제하고 절약을 실천하여 질서를 구축하려는 파시즘적 지령이 끊임없이 건물의 안팎으로 송출되지만, 메시지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수뇌부의 정체는 좀처럼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체제는 오래전 붕괴되어 ‘오메가 포획’이라는 공허하고 무료한 외침만 도돌이표처럼 재방송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질병과 혐오의 아브젝트인 지느러미를 통해 맹목적인 공포를 부추기는 공무원 집단도 어딘지 허술해 보인다. 두껍게 쌓아올린 시멘트 벽만이 통일 대한민국의 유일한 뼈대이다. 인간과 오메가 두 종족은 모두 아나키적 질서 속에서 생존을 도모한다. 공무원으로 취직한 수진은 오메가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수진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메가를 추적하는 것, 그럼으로써 사회를 정화시키는 데 복무하는 것이다. 반면, 낚시터에서 오메가의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는 미아는, 더 진짜처럼 보이는 실리콘 의족을 고집하며 인간을 열망하는 존재다. 말하자면, 수진과 미아는 오롯이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지느러미와 의족이라는, 자신의 신체와 접속했을 시 부패하고 마는 이물을 꿈꾸는 존재들이다. 탈출한 오메가(고우)는 썩고 있는 지느러미를 수송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미아 아버지의 시체에서 떼어낸 지느러미는 인간처럼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결핍된 두 여성의 허기짐 사이에 놓인다.

<지느러미>

영화는 두 여성의 얼굴을 숏으로 반복적으로 연결하면서, 제도적 통제로 분리된 두 시공간을 접착하며 둘의 간격을 좁힌다. 부족한 수돗물로 설거지를 마친 수진이 고된 얼굴로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 낚시터의 음악이 숏 안으로 틈입한다. 수진은 리액션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마치 시점숏처럼 삽입된 다음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낚시터에서 엎드려 잠을 자는 미아의 얼굴이다. 미아의 얼굴 옆으로 파도가 넘실댄다. 이후, 수진은 오메가 체포 현장에서 미아를 훔쳐보고, 그녀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클로즈업으로 둘의 얼굴을 오가며 다시 중첩시킨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거친 말을 들은 수진은 지친 얼굴로 화면의 중앙으로 걸어 들어온다. 거울(혹은 유리) 앞에 선 수진의 얼굴이 희뿌옇게 두개로 맺힌다. 마찬가지로 이어지는 시점숏에서, 낚시터의 미아가 등장하고 다음 숏에서 수진은 낚시터로 이동해 있다. 마침내 한 공간 안에 있게 된 두 여인의 얼굴이 하나의 이미지로 중첩되어 포개어지고, 그 위로 파도가 조용히 물결친다. 수진은 이루지 못했던 잠에 빠져든다. 수진은 무슨 꿈을 꾸었을까. 그녀는 꿈속에서 등에 지느러미를 단 채로 풍족한 물속을 유영하는 오메가라도 된 것은 아닐까. 영화는 숏의 조합으로 인간의 발과 오메가의 지느러미, 다시 말해 다른 종의 신체 일부를 소지하여 한 몸체를 이루려는 두 사람의 뒤틀린 열망을 실현하려 한다.

감독의 단편 <괴인의 정체>에는 단서를 미끼로 협잡을 벌여, 여인의 혀를 뽑아 입에 문 까마귀가 등장한다. 하나를 쟁취하면 다른 하나를 상대에게 헌납해야 하는 물물교환의 법칙이 작용하는 세계. 박세영의 세계 안에서의 사랑이란, 이물을 자신의 육체에 접착시켜 일시적 점유를 이룸과 동시에, 염증과 부패를 떠안으며 자신의 고유성을 스스로 타락시키는 행위로 귀결된다. <다섯 번째 흉추>의 종반부에서 운전기사의 뼛조각을 자신에게 이식하기를 망설이던 곰팡이의 몸짓은,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시선으로 응시하고 잠시나마 죽음을 유예하려 한 휴머니스트의 선택은 아니었을까. 지느러미라는 아브젝트에 매혹되어 자신의 것으로 끝내 회수하고 만 수진의 외마디 비명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포상금을 획득하게 된 기쁨의 환희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썩어 짓이겨진 지느러미를 마침내 손에 넣고서, 영원히 잃어버린 오메가의 육체를 그리워하는 깊은 상실의 탄식일 것이다. 영화는 엔딩에서 부표처럼 대양 위를 떠다니는 오메가의 시체를 비춘다. 인간의 발을 갖기를 꿈꾸며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가짜 발을 부착했던 오메가 미아는 가라앉지도, 그렇다고 지느러미로 자유롭게 헤엄치지도 못한 채 대양을 유랑한다. 청력을 상실한 수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미아를 그리워하며 벽 너머의 수평선 어딘가를 응시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여정을 실패로 치부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판단일 것이다. <지느러미>는 영토를 잃고 추방당한 자들이 자신만의 작은 영토, 부표에 기대어 수평선과 지평선 사이를 떠다니며 새로운 기원을 세우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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