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공연을 해야 하는데 2월 초까지도 공연장 대관을 잡지 못했습니다. 제가 노리는 공간들은 보통 반년 전이면 예약이 끝나기 때문에 한참 늦은 셈입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조치를 취하지 못한 건 지난해에 공연 에이전시와 계약이 끝나 FA(자유계약선수)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조금 핑계 같네요. 솔직히 말하면, 창작자들이 한번쯤 겪는 ‘할 말 없음’을 겪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쇼를 만드는 일을 자꾸 미루게 되더라고요. 창작자는 결국 자기 이야기 하나를 반복하며 사는 사람들이지요.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 한 문장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내 이야기가 지겹고 우스워지는 때가 옵니다. 이렇게 지친 마음을 치유하겠다는 변명으로 지난 연말에는 공연을 쉬어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그 조금의 여유만으로도 새로 하고 싶은 말이, 이 공연에서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둥실둥실 떠올랐습니다. 이런 힘이 저에게 남아 있다는 것은 조용하지만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걸 공연할 곳은 못 찾았지만요….
처음에 대관 신청을 했던 공간은 전에도 쇼를 만든 적이 있던 공연장이었습니다. 낡았지만 예전 시대의 멋이 남아 있는 이 건물의 느낌을 개인적으로는 좋아했습니다. 여러 추억도 있지만 이곳을 원했던 더 솔직한 이유는 공연이 끝나고 퇴근길에 만난 관객이 해준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좌석도 편하고 소리도 좋아서 사월의 공연이 매번 여기서 열렸으면 좋겠어요!” 김사월 공연을 보는 관객석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저는 정말 알 수 없으니 이런 코멘트 하나에 크게 일렁이는 거지요. 그러나 이곳이 수시 대관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이다음으로 알아본 곳은 언젠가 노래를 해보고 시설이 훌륭하다는 인상을 받은 공연장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있을 장면을 펼치기에 적당한 무대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살짝 아담한 편이기에 3일 공연으로 일정을 수정합니다. 그럼 이제 대관 신청서를 쓰러 가볼까요. 제가 뭐 하는 인간이고 어떤 내용을 꾸릴 것인지 다짐 같은 소개를 합니다. 인디 친구들이 공연 기획을 가끔 결혼식으로 비유하는데요, 공간을 잡고 식순을 구상하고 하객을 모시며 주인공을 준비시킨다는 건 단독 공연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웨딩 플래너 없이 제가 손수 결혼해야 하는 상황이네요. 아니, 제가 저의 웨딩 플래너입니다.
대관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그 와중에도 즐거운 일을 찾고 싶어서 배우 권해효님의 특강에 다녀왔습니다. 강연 무대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함박웃음이 났습니다. 스크린 속에서만 보던 자태와 걸음걸이, 표정이 정말로 살아 움직이는 그를 만나러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강연 주제는 ‘배우라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는 30년간 배우라는 직업으로 살아왔지만 요즘도 아침에 눈을 뜨면 불안하다고, 이 직업은 그런 거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방금까지 큰 미소를 짓고 있던 저였습니다. 단단해 보이는 모습의 예술가가 담담히 불안을 말하는 걸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도 그런 기분이 드신다면 저는 스스로를 덜 미워하며 불안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로부터 며칠 뒤, 연주자들과 헤드 스태프, 각종 감독님들의 일정을 조절해 가며 두 번째로 지원했던 대관 공간과 우리의 스케줄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지원하게 된 공연장 역시 쇼를 만든 적이 있는 곳인데, 약간 추억이 다릅니다. 여기서 저는 처음으로 적자가 나는 공연을 했습니다. 사실 여태껏 적자가 안 나는 게 신기한 공연을 만들어오긴 했습니다. 저의 쇼는 늘 비슷한 수의 관객들이 찾아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늘지도 줄지도 않는 그 사람들이 저를 꼬박꼬박 찾아주셨습니다. 그러니 적자가 났다면 제가 돈을 그냥 많이 쓴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연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은빛 종이로 꽃과 웅덩이 같은 것을 만들어 무대를 채우고, 출연자들에게는 투명한 보석을 붙여 꾸몄습니다. ‘눈물로부터 만들어진 노래들’이라는 컨셉이었습니다. 첫 공연을 마치고 둘째 날 리허설이 시작되기 전, 저는 아무도 없는 그 공연장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어제의 소리와 열기가 지나간, 오늘의 공연을 받아낼 그 무대는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막이 내리고 관객이 떠나가면 이 반짝거리는 미술도 순식간에 철거되겠지요. 그때 이 쇼는 나의 만족을 위해 만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런 상념과 첫 적자를 안겨준 잔인한 곳, 이 공연장에 다시 오고 싶었던 건 그리워할 수 있는 순간을 내 힘으로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릅니다.
권해효 배우는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정확하면 결과는 정확할 수밖에 없다.”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덜 보고 감독의 오케이를 믿는다는 이야기 속에서 꺼낸 말씀이었습니다. 다른 영역의 예술을 하고 있지만 공통되는 느낌이 있어서 이 문장이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결과를 기다리며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화살을 당겨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