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은 2024년부터 임신부 패스트 트랙을 운영 중이다. 임신부와 동반 1인은 대기시간 없이 별도 입장이 가능하고 5% 할인 혜택도 받는다. 처음엔 임산부 배지나 산모수첩 중 하나만 제시하면 입장이 가능했는데, 이게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거래가 되자 지금은 신분증 대조 확인을 하는 식으로 절차가 강화되었다. 이 정도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프리 패스 자체를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한 커뮤니티에서, 자신은 80분 기다렸는데 임신부는 바로 들어가는 게 짜증 난다는 글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걸 언론은 베껴 쓰고 그 기사가 여기저기로 퍼져나가 쓸데없는 토론의 장이 마련된다. 그게 무슨 문제냐며 생각의 확장을 단칼에 끊어버리면 될 일인데, 사람들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성심당이 공공시설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냐부터, 지하철에 임신부 전용 좌석이 있는 건 사회적 활동에 위축되지 말라는 의미라도 있지만 빵 안 먹는다고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지를 모르겠다는 논리까지 등장한다.
이 진지함을 보면서, 강연하며 만났던 이들이 떠올랐다. 나는 지난해에 공정과 정의에 대한 40개의 질문을 담은 <놀이공원 패스트 트랙은 공정할까?>라는 제목의 청소년 책을 출간했다. 중학생 정도를 독자로 여기고 문체를 다듬었지만, 어른들도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주제인지라 어디에서든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가면 보호자들도 함께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질문의 수준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이 문제에 직관적으로 반응한다. 공정하다고. 부연 설명도 비슷하다. 남들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보상받는 건 당연하다며 비행기 일등석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 꼭 언급된다.
본래 글이라는 건 질문을 예상하고 쓰는 것이기에 나는 책에서 이미 상세하게 반론했다. 그건 탑승 순서의 배분일 뿐이지라 돈을 더 낸 사람이 빨리 자리에 착석하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일등석 먼저 태운다고 이코노믹에 앉은 사람들이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일등석 승객은 자신의 시간을 돈으로 사긴 했지만, 내 시간을 뺏은 건 아니다. 단지 나는 그들만큼의 편함이 없었을 뿐이다.
보통은,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생각의 균열을 경험한다. 자유이용권이라는 티켓을 사려고 큰돈을 지불했는데, 더 많은 돈을 낸 사람이 계속 내 시간을 구체적으로 가져간다. 1시간 기다려서 탈 게 10분, 20분이 늘어나는 꼴이니 제한된 운영시간 안에서 자유이용권의 가치는 계속 떨어진다. 패스트 트랙 이용권을 구입한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이용이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자유이용권이라고 하면 안되지 않냐고 하면 꽤 수긍한다. 패스트 트랙이 소비자를 기만하는 거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이들도 많다. 그러면 줄서기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 돈으로 시간을 아끼도록 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묻는다. 빵값의 두배를 계산하면 바로 입장을 시켜주는 시스템을 자본주의사회에서 당연한 거라면서 구축한다고 치자. 대기 줄을 5만원 줄, 2만원 줄, 그리고 0원 줄로 분류해보자. 이를 5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고 물으면, 누구도 쉽게 말을 뱉지 않는다. 돈이면 다 된다는 말을 그래도 사회생활 좀 하다가 체념적으로 뱉는 것이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돈이 최고라고 아이에게 말하는 건 좀 아니라는 눈치다. 우리는 이미 돈을 더 내면 배달도 빨리 오고, 택시도 빨리 호출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법칙으로만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5살에게 어찌 말하겠는가.
팔부 능선을 넘어도 놀이공원 패스트 트랙은 공정하다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공정이라니, 찝찝하다. 차라리, 불공정하지만 그게 자본주의 아니냐고 하면 세상이 씁쓸하다는 걸 함께 공유라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공정이라면, 그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 아닌가. 세상에. 그래서 책이 출간되고 강연을 몇번 다니면서 한 단계 더 설명해야 함을 느꼈다. 모 놀이공원에서는 노조의 반대로 패스트 트랙 도입을 반대했다는 정보도 얻었는데, 평소 노동조합 초청 강연을 종종 가는 나는, 그들은 왜 그랬을까를 토론하곤 했다. 특히 서비스업에 일하며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입시켜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패스트 트랙을 도입하면 기업은 돈을 더 버니까 직원들도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는 말한다. 패스트 트랙 이용자들은 절대로 그것만을 위해 돈을 더 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평소보다 더 강하게 따질 거고 더 무례하게 난동을 피울 거라고. 서비스가 이게 뭐냐면서 직원의 사소한 실수에 트집을 잡을 것이고 조금이라도 대처가 늦으면 상급자 데리고 오라면서 윽박지를 거라고.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붙인다. “남보다 돈을 더 내면, 그냥 그 이유로 말이 심해져요. 그게 사람이에요. 아니, 한국 사람.”
이 이야기를 전하면 끝까지 미동도 하지 않던 이들이 논의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린다. 패스트 트랙에 반대하는 이들을 돈 없는 자들의 자격지심으로 바라보다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하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진상들의 모습 아니었던가. 내가 이런 대우 받을 사람이 아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데 함부로 대하냐 등등의 주장은 흔하고 흔하다. 한국인은 아파트 이름과 평수에 따라 우월감을 차등적으로 느끼면서 남을 열등하게 바라보는 놀라운 사회적 동물 아니었던가.
그런데 놀이공원 패스트 트랙을 차마 공정하다고는 표현하지 말자는 데 이렇게 에너지를 써야 하는 공동체는 많이 씁쓸하다. 몇 단계를 거쳐야 설득이 된다는 건, 뭐가 문제냐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런 사회의 특징이 임신부 패스트 트랙처럼 뭐가 문제냐며 쉽게 넘어가야 할 건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거다. 몇 단계를 거쳐가며 논리를 확장해, 저건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요즘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도 포기할 정도인데 임신했다고 약자로 볼 수 있냐는 전복적인 사고도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에 여성 혐오를 감추고 임신이 벼슬이냐는 속마음을 숨기지만, 말이 길어지니 다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