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이다. 모두가 화가 나 있다. 화풀이에 굶주린 사람들은 어떤 이슈가 터져도 순식간에 ‘모세의 기적’속 앞바다마냥 두편으로 쫙 갈라서고 상대를 잡아먹을 기세로 으르렁거린다. 단순한 의견의 대립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희들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라고 외친다. ‘이렇게까지 싸울 일이냐’고 싸움을 말리려는 이들에게는 ‘양비론자여, 그대 이름은 시어머니보다 더 괘씸한 시누이로다’고 더 거친 공격이 들어온다. 여기서 한번 짚어볼 게 있다. 이러한 과열된 분쟁 구도의 상시화로 이익을 보는 이들은 누구인가? 아마도 그 대립 구도를 앞장서서 만드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핵분열의 원리를 생각해보자. 우주에 작동하는 네 가지 힘 중 하나인 ‘강력’(strong force)은 원자핵이 스스로를 견고하게 묶어두려는 힘이다. 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 등의 소립자들은 서로간에 다른 무언가를 (옛날에는 ‘중간자’라고 불렀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강력한 결속을 이룬다. 그런데 외부의 충격 등으로 원자핵의 상태가 불안정해지면서 깨어지면 이 강력한 결속의 힘이 어마어마한 에너지로서 외부로 방출되며, 이를 이용하여 원자폭탄이나 원자로가 작동하게 된다.
비유일 뿐이지만, 사회도 비슷하다. 모든 사회에는 응집력이 존재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성원들 개개인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바에 맞추려고 하는 강력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누구든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문을 떼는 순간부터 이러한 ‘사회화’의 그물 속에서 자라나게 되어 있고, 그렇게 자라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항상 사회의 결속과 단합을 지향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A가 ‘용납될 수 없는 반사회적 행동과 생각’을 저지르고 있다고 B가 지적한다면? 우리는 B의 지휘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A에게 공격을 퍼붓게 되어 있다. 이렇게 사회가 핵분열 상태로 들어가면 사회를 결속하는 힘의 상당 부분은 B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B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되고, 이러한 핵분열 상태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삼게 된다.
모든 사회적 담론은 책에 써 있는 액면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항상 더 나은 사회, 더 자유롭고 평등하며 하나로 어우러지는 사회를 표방한다. 그런데 그 담론들이 책 밖으로 나와 사회 현실로 들어오면 어째서 한결같이 더 많은 ‘적’을 지목하고 더 많은 ‘투쟁’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바뀌는 걸까? 닮은꼴이 있다. 모든 종교들이 하나같이 신의 자비와 평화로운 세상을 외치지만, 전쟁과 대량 학살과 끔찍한 잔혹 행위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어왔다는 것이다. 무수한 이들이 다치고 사회의 분열로 모두가 지쳐가는 가운데 연부역강하는 이들은 양쪽 모두 그 정점에서 싸움을 외치는 이들이다. 의견과 주장의 대립과 논쟁은 소중하게 여길 일이지만, 그것을 명분으로 상대방의 절멸을 외치는 이들이 보인다면 브레히트의 시 구절을 떠올려보아야 한다. “적이 적이라고 외치는 놈, 바로 그놈이 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