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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세 번째 개편을 하는 중입니다
송경원 2026-04-03

아무도 모른다. 아니 표현이 다소 과했다. 거의 모른다. 1년에 1번. 잡지의 창간 기념을 맞아 크고 작은 개편을 한다. 코너를 바꾸고, 새로운 필자도 모시고, 디자인도 이래저래 다듬어본다. 매주 마감하는 주간지의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짬짬이 틈을 내어 회의하고, 시안을 만들고, 다시 엎는 등 추가 노동력을 투입해서 진행 중이다. 하지만 사실은 딱히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 일이다. 물론 연속성을 알아봐주는 정기 구독자도 적지 않지만 매주 이슈와 필요에 따라 잡지를 보는 독자 입장에서는 한권 한권이 독립적이다. 게다가 연중 소폭의 개편과 변화를 주면서 다듬어나가는 편이라 내용의 조정은 충분히 갈음할 수 있다. 말하자면 개편은 일종의 가욋일, 속된 말로 고생을 사서 하는 작업인 셈이다. 그럼에도, 굳이 때맞춰 개편을 거르지 않는 건 일종의 의식에 가깝다. 현재 우리의 위치와 형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점검이라고 해도 좋겠다.

편집장을 맡고 세 번째 개편을 하는 중이다. 첫 개편 땐 의욕은 넘쳤지만 시야가 좁아져 뭐가 뭔지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가버렸다. 다행히 좋은 필자들이 합류해서 매주 읽는 보람이 있었다. 두 번째 개편 때 신경을 쓴 건 비평 지면의 증설이었다. 긴 비평을 소개하는 프런트라인의 필자들이 새롭게 합류했고, 시네마오디세이 코너에서는 1년을 목표로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내건 채 여러 방향으로 돌아오지 않는 신호를 쏘아보내는 중이다. 세 번째 개편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욕심은 줄지 않는데 상황은 점점 열악해진다. 해보고 싶은 건 많지만 매 순간 역량 부족을 절감한다. 능력과 욕망의 괴리로 괴로워하는 나날 자체는 글을 쓰기 시작한 그날부터 하루도 멈춘 적 없으니 익숙하다. 하지만 그게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문제로 확장되는 건 다른 차원이다. 매주 마감한 책을 받아볼 때마다 기분이 널뛴다. 어떤 주는 꽤 근사한 것 같다가, 어떤 주는 부끄럽고 한심하다. 변하지 않는 건 목요일 마감을 마친 뒤 다음주 월요일 회의까지 답 없는 번뇌로 주말을 보낸다는 것 정도다.

세 번째 개편은 서두르지 않고, 조금 다른 사이클로 접근해보기로 결심했다. 우선 새 옷을 갈아입는 기분으로 디자인 개편을 먼저 한다. 목표는 가독성이다. 주간지 중에서도 유난히 활자가 많은 만큼 잘 읽히는 그릇을 먼저 다듬어보겠다. 뉴스, 인터뷰, 특집·기획, 비평, 칼럼·에세이의 다섯 갈래 코너의 구분도 조금 더 분명히 하고, 특히 인터뷰 코너는 신인, 배우와 감독, 스태프, 문화계 인사까지 다시 세분화한다. 개편호 1권에 다 해결하지 않고, 4월 한달에 걸쳐 꾸준히 조정하며 다듬어갈 예정이다. 그 연장으로 지난주와 이번주 2주에 걸쳐 특집 ‘잡지, 안녕하십니까’를 준비했다. 잡지의 특권 중 하나는 답을 내는 게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져 유효한 정보를 모으는 데 있다고 믿는다. 국내 유일 영화 주간지로서 우리가 가진 무기를 최대한 활용해보겠다.

1550호의 <카이에 뒤 시네마> <키네마 준보> <사이트 앤드 사운드 >같은 전통적인 영화잡지에 이어 이번주엔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와 <펀스크린>, 그리고 <뉴요커>에 질문을 던졌다. 그곳의 잡지는 안녕하십니까. 영화비평은 여전히 유효합니까. <뉴요커>의 영화평론가 리처드 브로디의 회신은 영화를 글로 쓴다는 것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준다. 이번주 ‘저널리즘 비평의 오늘, 표현의 빈곤에 대한 진단’을 시도한 이우빈 기자의 글은 이에 대한 <씨네21>나름의 화답이다. 거칠어도 질문과 시도를 멈추지 않겠다. 여전히 길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필요와 쓸모를 증명하며, 나아갈 방향을 타진하려 한다. 때론 느려 보여도 멈추진 않겠다는 각오를 안고. 끊임없이 방향을 수정해나가며. 구불구불 지나온 경로가 언젠가 또 다른 길이 될 때까지. 이번주도 영화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