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①] <지구 최후의 날> <페르소나> <아라비아의 로렌스> 外
장영엽 2018-04-09

<씨네21> 23주년 특집. 레퍼런스 100 1부

<지구 최후의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 감독 로버트 와이즈 / 1951년

외계인과의 조우를 다룬 모든 영화는 이 작품에 얼마간 빚지고 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 <사운드 오브 뮤직>(1965) 등을 연출한 미국 감독 로버트 와이즈가 감독을 맡은 <지구 최후의 날>은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 클라투와 그의 등장으로 혼란에 빠진 지구의 풍경을 조명하는 SF영화다. 인간의 형상을 한 외계인 클라투는 핵무기 개발과 전쟁을 막기 위해 지구를 찾아왔다며 멈추지 않을 경우 지구가 위험에 처할 것을 경고한다. 하지만 외계인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 지구인들은 클라투를 공격하고, 클라투와 함께 지구에 온 장신의 로봇 고트가 엄청난 위력으로 인간들을 무장해제시킨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현실감 넘치는 연출과 매혹적인 외계인 캐릭터, 혁신적인 특수효과는 SF영화에 미온적이던 성인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지구인에 우호적이며, 아이들과 우정을 나누는 외계인 클라투의 존재는 <미지와의 조우>(1977), <E.T.>(1982) 등 스티븐 스필버그의 SF영화에 영향을 미쳤고 한순간 치명적인 병기로 돌변하는 고트는 <아이언 자이언트>(1999), <로보캅>(1987) 등에 영향을 주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인 “클라투 바라다 니크토” (고트의 공격을 멈출 때 사용한다)에 오마주를 바치는 의미로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1983)에 클라투와 바라다, 니크토라는 조연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가장 최근작으로는 외계인의 출현에 혼란스러워하는 세계의 풍경을 다룬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2016)가 이 영화의 영향 아래 있다. 지난 2008년 <지구가 멈추는 날>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된 적이 있다.

<페르소나>

Persona / 감독 잉마르 베리만 / 1966년

“내가 할 수 있는 한 멀리 나아간 작품이었다.” 스웨덴 감독 잉마르 베리만은 <페르소나>를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배우와 그녀의 간병인이 맺는 기묘한 관계를 조명하는 이 영화는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대담하게 해체하고 이를 독창적인 영상으로 구현했다. 두 여성의 얼굴이 하나가 되어가는 <페르소나>의 클라이맥스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특히 두 여성이 느끼는 고통과 유대감에 주목한 <페르소나>는 여성의 심리를 다룬 영화를 언급할 때 자주 거론되곤 한다. 유명 연극배우 엘리자베스가 공연 도중 실어증에 걸린다. 바닷가 마을로 요양을 떠난 엘리자베스의 간호를 맡은 이는 젊은 여성 알마. 그녀는 말하기를 거부하는 엘리자베스에게 연민과 호감을 느끼며 어느덧 자신의 가장 어두운 비밀까지 엘리자베스에게 털어놓는다. 그러나 의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그저 흥미로운 구경거리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알마는 그녀에게 점점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관계의 광폭한 전복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폴 토머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2017)가 즉각적으로 떠오른 독자도 있을 것이다(간호를 즐기는 <팬텀 스레드>의 여자주인공 이름이 알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자아와 페르소나에 대해 고찰하며, 두 여성의 관계에 미스터리한 모호함을 남겨놓는다는 점에서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2014)도 <페르소나>의 계보에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양들의 침묵>(1991)에서 조너선 드미는 한니발과 클라리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조명하며 두 사람의 심리전을 묘사하는데, 클로즈업 촬영의 교본과도 같은 <페르소나>는 분명 중요한 참고자료였을 것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 감독 데이비드 린 / 1962년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광활한 아름다움을 논할 때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빼놓을 수 없다. 마틴 스코시즈,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의 인생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1916년 아랍을 배경으로, 영국 정보국 장교 로렌스의 활약상을 다룬다. 사막에서의 고된 여정과 드라마틱한 승리, 인간적인 고뇌 등 전형적인 영웅의 서사를 취하고 있지만, 영국 감독 데이비드 린이 선보인 독보적인 비주얼과 복합적인 캐릭터로 인해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영화 속 사막의 장엄한 풍경에 매료된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아나킨·루크 스카이워커 부자가 유년 시절을 보낸 타투인 행성을 사막으로 설정하고, 파이잘 왕자 역의 앨릭 기니스를 제다이 기사 오비완 케노비로 캐스팅했다. 웨스 앤더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에서 고글을 쓰고 헬멧 없이 바이크를 타는 로렌스의 모습에 오마주를 바쳤고, 리들리 스콧은 <프로메테우스>(2012)의 주요 캐릭터인 안드로이드 데이빗을 구상하며 아랍인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으로서의 로렌스를 떠올렸다고 한다.

<괴물>

The Thing / 감독 존 카펜터 / 1982년

슬래셔 장르의 걸작 <할로윈>과 <분노의 13번가>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존 카펜터는 장르영화의 거장이다. 존 카펜터의 1982년작 <괴물>은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잊을 수 없는 몇몇 명장면과 설정으로 후대의 수많은 호러영화에 영감을 주었다. 이 작품은 남극의 탐사기지를 배경으로 정체불명의 괴물과 맞서는 대원들의 사투를 그린다. 밀폐된 공간 속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복제가 가능한 괴물때문에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편집증적인 공포를 유발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헤이트풀 8>(2015)에 <괴물>의 주연배우 커트 러셀을 캐스팅하고 갇힌 공간과 설원, 등장인물간의 불신, 피의 향연을 <괴물>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재구현했다. <인디펜던스 데이>(1996)는 <괴물> 속 외계 생명체의 해부 장면을, <패컬티>(1998)와 <지구가 끝장나는 날>(2013)은 인간임을 증명하는 <괴물>의 그 유명한 혈액 검사 장면을 변주했다.

<공포의 보수>

Le Salaire de la Peur / 감독 앙리 조르주 클루조 / 1953년

“당신보다 더 나은 영화를 만들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공포의 보수>의 리메이크작 <소서러>(1977)의 연출을 맡게 되자,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은 앙리 조르주 클루조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포의 보수>는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영화였다. 돈을 벌기 위해 폭탄이나 다름없는 니트로글리세린을 트럭에 싣고 떠나는 남미 볼리비아의 일용직 노동자들을 조명한 이 영화는 서스펜스 연출의 교과서와도 같다. <공포의 보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덩케르크>의 주요 레퍼런스 영화로 언급하면서 다시금 주목받았다. 따뜻한 커피와 빵을 먹다가 적의 공습으로 한순간에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덩케르크>의 병사들은 클루조 영화의 DNA를 이어받은, 안타까운 운명의 주인공이다. 폭탄이 장착된 버스를 탄 이들의 도심 질주 액션영화 <스피드>(1994) 역시 <공포의 보수>의 영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카사블랑카>

Casablanca / 감독 마이클 커티즈 / 1942년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카사블랑카>는 20세기 할리우드영화의 낭만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이국적인 풍경과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먼으로 대변되는 명배우들의 멜로 연기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이별 장면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카사블랑카에서 술집을 운영하던 미국인 릭은 어느 날 밤 자신의 술집으로 들어온 과거의 사랑, 일사와 재회한다. 하지만 일사에겐 라즐로라는 새로운 연인이 있으며 두 사람은 나치에 투쟁한다는 이유로 쫓기고 있는 상황. 과거에 놓친 사랑을 이루고 싶은 마음과 진정으로 그녀를 위한다면 보내주어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험프리 보가트의 고뇌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카사블랑카>의 영향은 최근 몇년 새 개봉한 할리우드영화에서도 뚜렷하게 엿볼 수 있다. 세바스찬과 미아가 재회하는 <라라랜드>(2016)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카사블랑카>와 비슷한 방식으로 두 사람의 과거를 추억하는 곡이 흐른다. 두 남녀의 안타까운 이별, 세바스찬이 자신의 이름을 딴 바(‘셉스’ . <카사블랑카>에서는 ‘릭스’다)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카사블랑카>와 겹친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얼라이드>(2016)는 아예 <카사블랑카>가 개봉한 시기인 1942년의 모로코 카사블랑카를 작품의 무대로 삼는다. 도시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내는 방식에서 <카사블랑카>의 명백한 영향이 느껴진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은 잉그리드 버그먼을 꼭 닮은 신비로운 이미지의 스웨덴 배우 레베카 퍼거슨을 캐스팅해 그녀에게 일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색자>

The Searchers / 감독 존 포드 / 1956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신작을 연출하기 전마다 다시 돌려본다고 고백한 영화. 존 포드의 <수색자>는 ‘인디언은 악, 카우보이는 구원자’라는 서부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을 비튼 걸작 서부극이다. 배우 존 웨인이 분한 복수심에 가득 찬 전직 보안관 캐릭터는 강렬한 안티히어로를 등장시키길 원하는 수많은 영화들에 영감이 되었다. <수색자>는 인디언에게 가족을 잃고 복수를 다짐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조카 데비가 인디언에게 유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조카의 흔적을 찾아 10년간 광야를 떠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찾은 조카는 인디언의 아내가 될 운명이다. 미국의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무시무시한 복수의 집념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남자의 초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가 연출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는 <수색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만하다. 서부영화 <매그니피센트 7>(2016)은 “당신은 코만치어를 좀 할 줄 아는군”, “당신도 영어를 좀 할 줄 아는군”이라는 <수색자>의 그 유명한 대사를 차용했다. 타란티노는 <헤이트풀 8>(2015)에서 교수형 집행인 존 루스(커트 러셀)의 말을 통해 “그런 날은 절대 안 올거다”라는 존 웨인의 또 다른 명대사를 재현하기도. 한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위협에서 벗어난 뒤에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 머문다. 이 장면은 <수색자>의 후반부, 조카를 되찾은 다음 귀향했지만, 더이상 자신은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집 안으로 들어가길 망설이는 주인공 에단의 모습과 겹친다.

<서부개척사>

How the West Was Won / 감독 존 포드, 헨리 해서웨이, 존 마셜 / 1962년

SF영화의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분기점과도 같은 영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가 어쩌면 다른 제목을 가질수도 있었다는 점을 알고 있는가. 이 영화의 특수효과를 맡은 더글러스 트럼블에 따르면 제작 단계에서 큐브릭은 이 영화를 <하우 더 유니버스 워즈 원>(How the Universe Was Won)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는 존 포드, 헨리 해서웨이, 존 마셜이 공동 연출을 맡은 영화 <서부개척사>의 원제(How the West Was Won)를 변주한 제목이다. <서부개척사>는 18세기 초 서부로 이주해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가족 3대의 이야기다. 장엄한 서부의 풍경과 생명력 넘치는 인물들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이주민들의 정착 초기부터 남북전쟁에 이르기까지 3부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이 영화는 세대의 영사기를 사용하는 ‘시네라마’ 상영 방식을 취했는데, 극영화로서는 최초였다. <서부개척사>의 이러한 혁신성이야말로 큐브릭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통해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었다고 한다.

<리오 브라보>

Rio Bravo / 감독 하워드 혹스 / 1959년

<리오 브라보>의 영향을 받은 두편의 서부극이 있다. <엘도라도>(1966)와 <리오 로보>(1970)다. 이 두편의 영화 역시 하워드 혹스가 연출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자신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감독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리오 브라보>는 이 지면에 소개하는 레퍼런스 영화 중 단연 특이한 사례로 기억될 듯하다. 이 작품은 텍사스 변방 마을의 보안관 존이 살인범을 체포한 뒤, 총잡이를 고용한 살인범의 형 일행에 맞서 감옥을 지켜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탕한 삶을 살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개과천선한다는 테마, 보안관을 돕는 조력자와 미스터리한 여인과의 로맨스 등 <리오 브라보>의 다양한 영화적 요소들은 하워드 혹스 자신의 영화는 물론이고 후대 감독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작품을 “궁극의 행아웃 무비”라고 말하며, <재키 브라운>(1997)을 연출할 당시 <리오 브라보>의 느긋한 전개 방식을 떠올리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

All That Heaven Allows / 감독 더글러스 서크 / 1955년

멜로드라마의 거장, 독일 감독 더글러스 서크는 리얼리즘에 기반한 사회비판적 멜로드라마를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은 계급과 보수적인 사회분위기를 넘어선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룬다.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키우는 여성 캐리는 정원사 론과 사랑에 빠지는데, 캐리의 두 아이를 비롯한 주변의 반대가 심상치 않다. 안온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삶과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의 초상은 토드 헤인즈, 루카 구아다니노 등의 감독에게 영향을 주었다. 더글러스 서크에 바치는 오마주로 <파 프롬 헤븐>(2002)을 만든 토드 헤인즈는 더글러스 서크 영화의 그림 같은 프로덕션 디자인과 컬러풀한 색채를 자신의 영화에 반영했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재벌 가문의 며느리 엠마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을 다룬 <아이 엠 러브>(2009)를 연출할 당시 더글러스 서크로부터 배운 점이 많다고 언급했다.

<11인의 카우보이>

Cowboys / 감독 마크 라이델 / 1972년

어른과 아이가 우연한 연유로 동행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수많은 영화들이 있다. 서부극 장르에서는 <11인의 카우보이>가 떠오른다. 모두가 금을 찾아 떠난 서부의 한 마을, 일손이 부족한 목장주는 소년과 아이들을 카우보이로 고용한다. 존 웨인이 연기하는 이 목장주는 말 타는 법은 물론이고 어떻게 자신을 지켜야 하는지도 가르치는 좋은 어른이다. 하지만 그는 악당들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그가 카우보이로 키워낸 아이들이 악당을 물리치고 소떼를 되찾는다. 최근작 중에서는 <로건>(2017)이 <11인의 카우보이>의 영향 아래 있다. 자신의 힘을 다해 소녀를 지킨 뒤, 쓸쓸히 퇴장하는 울버린의 모습은 <11인의 카우보이> 속 존 웨인의 캐릭터와 닮았다. 헨리 해서웨이의 <진정한 용기>(1969)라는 더욱 직접적인 레퍼런스가 있지만, 14살 소녀가 어른의 복수를 대신한다는 점에서 코언 형제의 서부극 <더 브레이브>(2010)도 떠오른다.

<플레이타임>

Playtime / 감독 자크 타티 / 1967년

레인코트에 파이프를 물고, 비스듬하게 모자를 쓴 남자 윌로씨는 프랑스 감독 자크 타티의 영화적 분신이었다. 어린아이 같은 천진무구함으로 어디를 가든 소동을 몰고 다니는 윌로씨는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사고뭉치였다. 그런 윌로씨가 등장하는 타티의 영화, <플레이타임>은 현대적인 도시 파리를 유랑하는 윌로씨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모더니즘과 인간의 충돌을 통해 현대사회를 성찰하는 타티의 <플레이타임>은 결코 가볍기만 한 영화가 아니다. 미국 감독 웨스 앤더슨은 자크 타티의 열렬한 지지자다. 모든 것이 직선으로 구획된 <플레이타임>의 공간은 프로덕션 디자인에 완벽을 기하는 웨스 앤더슨에게 흥미로운 레퍼런스가 되었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터미널>(2004)을 통해 타티에게 오마주를 바쳤다. 최첨단 설비를 갖춘 오를리공항에 도착한 윌로씨의 모습을 다룬 <플레이타임>의 오프닝 신은 뉴욕 JFK공항에 도착한 톰 행크스의 모습을 통해 재구현된다.

<12명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en / 감독 시드니 루멧 / 1957년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마지막 1%의 가능성을 믿고, 그로부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적을 이끌어내는 인물. 이처럼 극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를 떠올릴 때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 중 하나다.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소년의 유죄 여부를 가리는 12명의 배심원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이성과 논리로 배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드는 ‘8번 배심원’, 헨리 폰다의 연기가 압권이었던 작품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스파이 브릿지>(2015)다. 소련 스파이의 변호를 맡아 ‘꼼수’를 쓰지 않고 오로지 이성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며, 세간의 편견을 실력으로 극복하려 하는 미국 변호사 도노반(톰 행크스)은 명백한 헨리 폰다의 재현이다. 해병대 내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조명한 법정영화, <어 퓨 굿 맨>(1992)도 진실과 정의에 대한 강렬한 논쟁이 오가는 법정 신이 이 영화와 유사하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