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앙리 조르주 클루조 (Henri Georges Clouzot)

1907-11-20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7.8

기본정보

    }
  • 원어명Henri-Georges Clouzot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07-11-20
  • 사망1977-01-12
  • 성별

소개

대표작 <디아볼릭> <진실>

서스펜스의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히치콕이 당대의 라이벌로 생각했던 사람. 불과 몇시간 차이를 두고 히치콕을 물리치고 <디아볼릭>의 판권을 사들인 사람. 앙리 조르주 클루조는 고상한 취미의 영화들이 칭송받던 전후 프랑스영화계에서 하나의 충격과도 같은 감독이었다.클루조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 우파 정치인의 비서와 신문기자를 거쳐 거의 10년 동안 각본가 생활을 하고 나서야 감독으로 전업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1942년 발표한 <21번가의 살인자 L’ Assassin habite au 21>(1942)는 이전의 비슷한 각본들이 관객들에게 잘 받아들여지는지 실험을 해본 후에야 영화화를 결정한 안전한 데뷔작이었다. 그러나 다음해 나치의 자본이 유입된 <까마귀 Le Corbeau>(1943)는 독이 묻은 편지 뭉치에 의해 온 마을이 공포에 빠지는 박진감 넘치는 사건 전개가 일품이었으나 영화가 풍기는 ‘반프랑스’적인 메시지로 인하여 그를 스캔들로 몰아넣었다. 나치와 프랑스가 각기 다른 이유로 저버린 이 영화는 사실 <21번가의 살인자>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각 인물의 신체적 심리적 그로테스크함을 최대로 살린 스릴러물.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반독일’적인 텍스트로 읽히는 <까마귀>로 인하여 그는 1944년 프랑스영화계에서 완전히 추방당한다.

<제니 라모르 Quai des Orf res>(1947) 같은 소품으로 다시 영화를 시작한 1947년 이후에도 그가 바라보는 삶에 대한 어두운 시각은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미국에서 클루조의 명성은 1950년대에 도래했다. 두명의 남자가 니트로 글리세린 운반이란 목숨을 건 작업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배신과 긴장의 드라마 <공포의 보수 Le Salaire de la peur>(1953)와 <디아볼릭 Diaboliques>(1954)은 그에게 프랑스의 히치콕이라는 타이틀을 선사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1960년 발표된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최고의 작품 <진실 La V it (1960)은 당시 뉴웨이브의 물결에 빠져 있는 젊은 비평가들과 관객의 입맛에 맞게 연출된 영화였으나, 미적지근한 온정주의에 신물나게끔 고안된 그의 영화적 스타일은 사실 그가 당시의 뉴웨이브 강박관념에서 얼마나 벗어나려 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1968년 <죄수 La Prison-niere>(1968)를 끝으로 건강상의 이유로 더이상의 영화 제작을 포기한 후, 그는 사실상의 은거상태에서 1977년 타계했다.

프랑스의 히치콕이란 타이틀과는 달리 그의 작품들은 유머감각이 결여된 가차없는 폭력과 비관적인 세계관이 바탕에 깔린 무거운 그림자 같은 영화들이었다. 프랑스영화가 초현실주의나 누벨바그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그의 스타일과 주제의식들은 프랑스 누아르의 면모를 갖추는 독자적인 것이었고 그가 창조한 서스펜스와 스릴은 지금까지도 관객들을 공략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 영화감독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