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 축소 위협으로 풍전등화 위기에 처했다. 국민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탈출을 위해 미국과의 경제협상에 안간힘을 썼고, 스크린쿼터 축소는 대미협상 타결을 위한 미끼로 매번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7월에는 한-미투자협정을 진두지휘하던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쪽 입장을 대변하다 영화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얻어맞았다. 미국은 3월31일 한-미 통상협의체회의에서 한국영화를 일정기간 의무상영하도록 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의 내국민대우 규정에 위반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시작으로, 쿼터를 줄여주면 한국의 극장업계에 5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하는 등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던져댔다.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는 “스크린쿼터 현행유지에는 변함없다”는 말을 여러 번 되뇌었지만 영화인들에게 신뢰를 안겨주지 못했다. 여기에 서울시극장협회가 8월18일 스크린쿼터를 현행 146일에서 86일로 줄여달라는 공문을 문화관광부에 보냄에 따라 영화계 안에서도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졌다. 12월1일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전면에 나서고, 국회의원 148명이 스크린쿼터 현행유지 지지 서명을 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전국 극장의 42%가 스크린쿼터를 위반하는 관행은 여전했고,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은 해를 넘겨 계속됐다.
1998년의 영화
멜로 아닌 멜로교본_<8월의 크리스마스>
<접속> <편지>에 이어 <8월의 크리스마스>까지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자 멜로영화 전성기가 다시 찾아왔다는 분석들이 일제히 쏟아졌다. 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의 감성은 분명 달랐다. “시력을 잃어가는 한 사진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영화로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가수 김광석의 영정 사진을 보게 됐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시간은 과연 어떨까 궁금해졌다.” 과장없는 일상의 리듬을 느끼며 삶과 죽음을 가만히 응시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는 감독 스스로 “멜로영화가 아니라”고 했지만, 이후에 나온 멜로영화들이 한번씩은 비교당해야 할 교본이 됐다.
살아 있는 전설의 영화_<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아무도 몰랐다. 1989년,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제치고 황금표범상을 차지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감독 배용균이 누구인지는. 연출부터 미술까지 자신의 30대를 온전히 이 한편의 영화에 쏟아부은 비타협적 은둔자는 1995년 두 번째 영화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을 소리소문없이 완성했지만 “살아서 전설이 된” 그의 영화가 개봉한 건 2년이 지나서였다. “존재하지 않은 시공 속으로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유폐된 사람에 관한 상상”에 관한 그의 영화에 대해 누군가는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평했다. 1990년대 가장 희귀한 영화라고 불러도 무방할 영화.
TREND
공포영화, 심야상영 붐
액션, 코미디, 멜로. 한국영화 3대 장르의 벽을 서울관객 70만명을 앞세운 <여고괴담>이 허물었다. <퇴마록> <조용한 가족> 등 공포 요소를 가미한 영화들도 흥행 호조를 보였다. 심야상영 금지법이 개정되면서 <킹덤>에 이어 공포영화를 앞세운 심야상영이 활기를 띠었다.
충무로 3강 체제
대기업 투자가 중단되면서 위기감에 휩싸였던 충무로에는 새로운 체제가 들어섰다. 토착자본인 시네마서비스, 창투사인 일신창투, 대기업인 삼성영상사업단으로 3분할된 것. 대목에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이들 3강 체제는 제작사 중심이던 충무로를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바꿔놓았다.
일본영화 개방
칸, 베니스, 베를린, 아카데미 수상작과 공동제작 영화에 한해 개방한 일본영화의 파고는 우려한 만큼 크지 않았다.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가 서울관객 6만명선에 그쳤고,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 도 10만명을 채 모으지 못했다. 이로 인해 치솟던 일본영화 수입가가 다소 주춤해졌다.
멀티플렉스 시대 개막
300억원을 쏟아부은 멀티플렉스 CGV강변11의 파급효과는 컸다. 대한, 단성사, 피카디리 등 종로 빅3도 스크린 수를 늘리고 개보수에 나서는 등 극장가가 들썩였다. 500개 이하로 줄어들었던 스크린 수도 증가세로 돌아서기 시작했고, 관객 수도 따라 늘었다.
김기영, 유영길 타계
1960년대와 19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주인공들이 잇따라 세상을 떴다. “이번엔 진짜로 새 영화 만든다. 이번엔 최고로 만든다”며 호탕하게 웃다 허망하게 세상을 등진 김기영 감독이기에, <8월의 크리스마스> 개봉을 맞지도 못하고 눈을 감은 유영길 촬영감독이기에, 남은 자들의 슬픔은 더욱 컸다.
1998년 흥행 5걸
(당해 개봉작, 서울 기준, 단위: 명)
1. <타이타닉> 197만1780
2. <아마겟돈> 117만252
3. <뮬란> 77만1194
4. <약속> 66만1174
5. <여고괴담> 62만1032
NUMBER
47 한국영화 제작편수
25.1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24 전년대비 비디오 시장 매출 하락률(%)
5 남기남 감독의 <천년환생> 하루 평균 관객 수
67,970,860,000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가져간 연간 총수익(원)
4000 <처녀들의 저녁식사> 애니메이션 예고편 제작에 들어간 셀 장수(장)
CHARACTER
빨간색이 어울리는 그녀_<미술관 옆 동물원> 춘희
다슬이도 아니고, 다림이도 아니고. 심은하에게 춘희라는 이름이 주어지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춘희라는 이 여자, 다소곳하지도 않았다. 맛난 음식 보면 인디언 괴성을 지르고, 발바닥 문질러 방청소하고, 물을 마실 때 병째 들고 원샷까지 하다니. “짝사랑 전문이었다”는 이정향 감독의 판박이 캐릭터 춘희는 그러나 심은하에겐 더없는 축복이었고, 더 나아가 한국영화에도 가뭄 끝에 내린 단비 같은 존재였다. “시나리오를 덮는 순간 관객 30만명은 들겠다”고 이정향 감독이 확신했던 건, 춘희라는 캐릭터를 향한 관객의 환호를 미리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 말, 말
“대기업이나 금융자본이나 돈 안 되면 언제든지 떠날 사람이다. 좋은 메이저가 나오려면 아무래도 영화인 중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강우석 감독, 삼성·일신·시네마서비스 3강 체제가 정착될 것 같으냐고 묻자)
“옛날에는 누가 같이 영화하자고 하면 ‘내가 뭐 하우스 보이냐. 딴 데 가서 알아봐’ 그랬지만, 이젠 안 그러겠다는 거다. 목적은 편수에 있다. 편수가 더 나온다면 뭐든지 다 하겠다는 거다.”(이태원)
“괜찮아요. 등짝 크기만 보고도 누군지 다 알던데, 뭐.”(김혜수, 안성기와 함께 <씨네21> 창간 3주년 기념표지에 등만 나와 기분 나쁘지 않았느냐고 묻자)
“리얼리티란 없다. 각자가 바라보는 리얼리티일 뿐이다. 둘이서 같은 컵을 놓고 천년 동안 얘기해도 둘이 보는 컵은 다를 수밖에 없다.”(홍상수 감독)
“처음엔 선배들이 전화해서 (스크린쿼터) 집회 안 나오면 영화사에서 캐스팅 안 하기로 했다고 협박해서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어요.”(고소영, 이젠 의식화가 됐다며)
“돈이 없어서 세트짓는 거 포기하고 양계장에서 찍었잖아요.”(남기남 감독, <천년환생> 제작 에피소드)
PEOPLE
흥행되는 작가감독 등장이오_김지운
취향도 유전되는 것일까. 영화광이었던 아버지 덕에 김지운 감독은 유년 시절 은막에 묻혀 살았다. 10년 넘게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그저 가까운 친구들 재밌게 해주려고 쓴” <조용한 가족> 시나리오가 제1회 <씨네21> 시나리오 공모전에 덜컥 당선됐고, 1년이 지나 그는 서울에서만 40만명 가까운 관객을 끌어당긴 흥행감독이 됐다. “시나리오 마감 하루 전 디스켓이 망가져 서둘러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는 그가 혹시 잠이라도 들었다면, 독특한 코믹잔혹극 <조용한 가족>과의 조우는 기약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오기민표 영화를 아시나요?_오기민
<여고괴담>의 흥행 뒤에 오기민 프로듀서가 있었다.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을 소재로 쓴 시나리오 초고를 들고 대기업과 영화사를 전전했던 그는 “유치하다”는 답변만을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감독 섭외부터 개봉까지 실질적인 <여고괴담>의 제작기간이 반년도 걸리지 않았던 데는 어쩌면 그의 확신에 찬 추진력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첫 번째 영화 <이방인>의 흥행참패를 만회한 그는 이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고양이를 부탁해> <장화, 홍련> <고독이 몸부림칠 때> 등을 내놓았는데, 흥행에선 부침이 있었지만 매번 독특한 취향을 드러내며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다.
월력
1월 IMF 체제 돌입, 썰렁한 극장가에서 <편지> <킹덤>만이 살아남아 <서곡>, 배우 오디션 때 기부금 200만원 요구해 말썽
2월 아시아 경제위기 여파로 할리우드 해외 세일즈 어려움 <접속>, 돌비 서라운드 방식으로 비디오 출시 서울극장, 멀티플렉스처럼 <타이타닉> 4개관에서 시간차 상영하겠다고
3월 씨네2000, 신씨네, 한맥엔터테인먼트의 강남 이주. 충무로 시대는 끝나는가 배창호 <정>, 김성수 <태양은 없다> 제작준비 <세븐틴> 총제작비 20% 공모주 모집
4월 <투캅스3>, 최대 규모인 전국 80개 극장에서 동시개봉 삼성영상사업단, 16편에 180억원 제작투자 확정 정부와 새정치국민회의, 200억원대 영화전문투자조합 만들겠다고
5월 비아그라 불티나게 판매 심형래의 <용가리> 제작발표회 한국코닥, <씨네21> 제1회 이스트만 단편영화지원 당선작 발표
6월 <물위의 하룻밤> 이승희 반라 차림의 전광판 광고 물의. 이후 전광판도 심의 대상으로 추가 1960년대 최고스타 김진규 별세
7월 문화영화 사라지다 10만원 비디오영화제 1주년 연극연출가 출신 장진 감독의 <기막힌 사내들> 촬영 종료 여당 새정치국민회의, 완전등급제·영화진흥위원회 신설·영화진흥기금 조성안 담은 영화진흥법 개정안 발표
8월 강우석 감독의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흥행 부진 <아마겟돈>, 할리우드 여름 시즌 박스오피스 1위 <퇴마록>, 개봉 첫주 전국에서 45만3천명 끌어모아 박스오피스 기록 경신
9월 문성근, 명계남, 이창동 아이찜 시나리오 창작기금 1억원 조성 구로사와 아키라 타계 영파여중 김종현 교사,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 제작, 상영으로 학교 징계위원회 회부
10월 스폰서 구하지 못해 대종상 이듬해로 연기 <월간조선>, 최장집 교수를 빨갱이로 낙인찍다
11월 태원엔터테인먼트, <산전수전> 촬영 중에 감독 교체 정부 산하 규제개혁위원회, 완전등급제 도입과 등급외 전용관 허용 주장 제1회 퀴어영화제 개막, 6천여명 관객몰이 <이재수의 난>, 조명 크레인 무너지는 사고로 스탭 2명 목숨 잃어
12월 <스크림>, 2년 동안 4차례 수입심의 끝에 겨우 통과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국정조사하기로 삼성영상사업단 해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