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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찬사가 과하지 않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사후 1년 뒤인 1977년에 처음 출간된 책으로, 한평생 쓴 100권이 넘는 책들에 대해서부터 두번의 세계대전과 두 번의 결혼 등 그녀에 대한 시시콜콜한 궁금증을 만족시킬 만하다. 자서전이라 그런지 두 번째 남편과 막 좋아지던 시절에 대한 대목 같은 것은 몹시 간지럽지만, 그래서 더 재밌게 읽힌다. 총 30장이 넘는 사진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도서] 그녀에 대한 시시콜콜한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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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죽은 뒤 사후 출간된 시집으로 유명해진 시인의 친구(이자 소설가)가 술자리에서 말하길, 그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시집에 넣지 않았을 시까지 긁어모아 책을 엮었는데 그 친구가 버렸을 법한 시들이야말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아 괴롭다고 했다. 작가 사후 남은 원고를 마주한 가까운 이들의 딜레마가 그것이다. 작가가 남은 원고에 대해 별말이 없어도 문제이고 말을 해놓았어도 문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남긴 <오리지널 오브 로라> 원고를 ‘폐기하라’는 엄명을 받은 아들 드미트리 나보코프는 이 원고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가 수십년 전 <롤리타> 초고를 소각장으로 향할 운명에서 구해냈던(아버지로부터 가로챘던) 일을 떠올렸다. 카프카가 막스 브로트에게 <변신>과 <성>을 비롯한 이미 출판됐거나 미출간된 걸작들을 파기하라는 임무를 맡긴 것이 (우리에겐 다행스럽게도) 실패했듯이, 어쩌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원고 파기를 부탁하
[도서] 소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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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독립영화
“독립영화를 사랑해달라.”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난 고 이성규 감독의 마지막 말이다. 감독의 뜻을 기리는 특별전이 열린다. 4월4일부터 7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시바, 인생을 던져> <오래된 인력거> 등을 포함한 7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펀딩21’은 3월20일부터 4월3일까지 후원금 모금을 진행한다. 특별전 진행비로 쓰이는 일부를 제외하고 후원금은 모두 유가족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자세한 소식은 http://www.funding21.com에서 확인가능하다.
우리 동네 그 나무도 있을까
서울은 보호하고 있는 나무가 210여 그루나 될 정도로 사연을 가진 나무가 많다. <서울의 나무들>은 서울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 공모에서 선정된 세 번째 전시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나무를 통해 표현한 이장희 작가의 세심한 일러스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서울시 신청사 8층 하늘광장 갤러리에서 3월26일부터 4주간 열리
[culture highway] 내 사랑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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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며 손에 땀을 쥐던 기억이 있다. ‘파란해골 13호’와 일합을 겨루던 ‘태권동자 마루치’의 활약처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도 재미가 있었지만, 이병주의 소설 <마술사>를 각색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허공을 향해 밧줄을 세우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영상 없이 목소리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만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힘.
이런 이야기의 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가가 바로 찰스 디킨스다. 빚을 지고 채무자 감옥에 갇히기까지 한 아버지 때문에 열두살 때 구두약 공장에서 10시간씩 일을 했던 디킨스는 자신이 살던 사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올리버 트위스트>나 <크리스마스 캐럴> 혹은 <위대한 유산>이 시대를 배경으로 개인들의 사연에 치중한 소설이라면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사건 자체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프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프랑스 혁명을 이야기한 디킨스의 시대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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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한병철의 <투명사회>를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제목이 주는 인상만 비슷한 것이 아니고 문제의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철학책을 혼자 힘으로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투명사회>가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고, 대중인문서가 장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단속사회>가 늘어진다고 느낄 수 있다. 사생활이 종말을 고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일에 대한 두 학자의 통찰과 분석을 찬찬히 음미해볼만하다.
[도서] 사생활이 종말을 고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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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오솔길. 문장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 보면, 걸려 넘어지는 문장이 있어. 그 문장 앞에서 넌 작아지지.” 책 속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압도당하는 느낌을, <책섬>에서는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문장 속으로 기어들어갈 만큼 사람이 작아지는 그림. <책섬>은 그림-책이다. 김한민 작가가 ‘책’이라는 동반자에 바치는 헌사이다. 그림과 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작가 특유의 자유로움이 인상적이다.
[도서] ‘책’이라는 동반자에 바치는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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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최승호 시인의 <아메바>로 시작되어 얼마 전 49번째로 박태일의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까지 선보인 ‘문학동네 시인선’의 50호 기념 자선 시집 <영원한 귓속말>이 출간됐다. 49명의 시인들이 각자 자신의 시집에서 한편의 시를 고르고 짧은 산문을 더해 한권이 완성되었으니 시집이면서 시집 그 이상. 산문이라 해도 바로 옆자리의 시와 각운이 맞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게 되는 글모음이기도 하다.
[도서] 시집 그 이상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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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겨울, 저는 몇해 전부터 친구들을 차례로 잃고(그런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울적한 상태였습니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그런 나이’에 접어들어서도 변함없이 왕성하게 세상을 향해 발언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말의 정의>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글을 고쳐 써서 묶은 책이다. 일본에서는 그 이름만 들어도 통용되는 지식인일지라도 한국에서는 각주를 보고도 좀처럼 감을 잡기 어렵기 마련인데, 그런 주변인과의 일화가 꽤 등장한다는 점 때문에 읽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지만, 반전(反戰)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에 대한 철학, 머리에 기형을 갖고 태어났지만 음악적 재능을 꽃피운 아들 히카리와의 일화는 언제 어떤 책에서 읽어도 늘 마음 깊이 와닿는다. 상투적인 찬사지만 사실이 그렇다.
제주 4•3사건처럼 오키나와에는 오키나와전(戰) 당시 일본군이 집단자결을 두 섬의 주민에게 강요한 이른바 ‘공사’(共死)가 있었다
[도서] 노작가가 미소로 내미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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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아티스트를 가려라
가수, 배우, 모델, 디자이너, 댄서…. 이번엔 미술가들의 서바이벌 오디션이 시작된다. 한국 현대 미술계를 이끌어갈 15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매주 <ART STAR KOREA>를 통해 경쟁을 펼친다. 3월30일 밤 11시 스토리온 채널에서 첫 방송된다.
영화의 감동을 음악으로
비주얼리스트라고 부를 만한 두 감독의 O.S.T 음반이 나란히 출시되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스티브 매퀸 감독의 <노예 12년>은,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놓치기 아까운 CD들. <겨울왕국>처럼 히트곡이 들어서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남는 잔상을 음악으로 연장시켜 즐기는 일을 도와준다. 특정한 곡이 아니라 앨범 전체로 들어보시길. O.S.T로 들어보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작곡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작품으로, <노예 12년>은 뮤지션 존 레전드의 작품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culture highway] 최고의 아티스트를 가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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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18일 세상을 떠난 독일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생전에 그는 ‘문학의 교황’이라 불렸다. 독일 문단에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나면 그가 내릴 ‘평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이 책에서 폴란드계 유대인인 라이히라니츠키는 개인적 삶의 기록은 물론, 인류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 가운데 하나인 홀로코스트를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증언하고 있다.
[도서]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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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가 남긴 총 518편의 시를 집대성했다. 시어가 깃발이 되어 붉게 나부끼며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다면. 암흑 시대의 시인의 일이 무엇인가 묻는 그의 언어는 여전히 서슬퍼렇다. 시집을 읽는 일이 1970~80년대의 한국사 그 자체로 느껴진다. “…박해의/ 시대의/ 시인의 일 그것은/ 짓눌린 삶으로부터/ 가위눌린 악몽으로부터/ 잠든 마을을 깨우는 일/ 첫닭의 울음소리는 아닐까/ 옛사랑의 무기….” 이번 전집은 각 시의 집필 시기와 제재 등을 고려해 시의 순서를 세심하게 새로 배열했다.
[도서] 암흑 시대의 시인의 일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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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은 넓은 범주에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생태계에 관해. <씨네21> 이번 호에는 다큐멘터리 감독 네명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한때 다큐 채널에 넋을 놓고 시간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시급한 사회적 이슈를 담아내느라 개인적 관심을 심화시킬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큐멘터리영화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논픽션이라는 분야는 대체로 다큐멘터리영화와 비슷한 운명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독일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이름 있는 상도 받고 나아가 한국에 번역 출간된 논픽션 책들을 보면 위대한 복서 이야기(<신데렐라 맨>)나 전후 일본인의 심리(<패배를 껴안고>), 미국에서 낙태를 인정한 판결의 대법관 이야기(<블랙먼, 판사가 되다>) 같은 지식과 재미를 동시에 잡아내는 두툼한 책들이 제법 된다. 한국에서 이런 책들은 흔히 해당 인물의 자서전(대필작가가 쓰는 경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먹지 않고 ‘읽는’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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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들, 스페인 가다
누나 가니 할배 온다. <꽃보다 할배> 시즌2가 3월7일 첫 방송된다. 다시 뭉친 할배들의 첫 번째 여행지는 정열의 나라 스페인이다. 열정이 샘솟아 스페인을 선택했냐고? 아니. 할배들이 다니기에 날씨가 좋아서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누나들 수다보단 할배들 고생이 보는 사람은 더 재밌다.
연애를 영화로 배웠어요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하는 시네마테크KOFA에서 외로운 싱글들의 척박한 가슴에 그린라이트를 켜줄 로맨틱한 영화들을 준비했다. 3월11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그린라이트를 켜라!’ 특별전에서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남자사용설명서> 등 13편의 로맨스영화를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잠들었던 연애 세포를 깨우고 작업 스킬까지 연마해보자. 이번 봄, 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한번 타임슬립
유괴범에게 아이를 잃은 엄마가 아이를 잃기 2주 전으로 돌아간다. 지난 3월3일 첫 방송한 SBS 드라마 &
[culture highway] 할배들, 스페인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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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범죄자를 뒤쫓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나치 전범을 단죄하는 뉘른베르크 법정. 피고인 자리에 선 독일군 최고지휘관들은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을 뿐 결코 불명예스러운 일이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제국총사령관 겸 공군총사령관으로 히틀러에 이어 나치 정권의 2인자였던 헤르만 괴링은 유대인 죄수를 산소통 없이 9000m 상공에 데려가서 몇분 만에 사망하는지 관찰한 인체실험을 지시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내가 신경쓸 만한 일이 아니었다”라고 혐의를 부인한다. 그 과정에서 검찰쪽 증인으로 나온 독일국방과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나치의 모든 연구 작업은 히틀러의 ‘학술고문’에게 승인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비인간적인 인체실험을 승인한 이 학술고문은 클링조르라는 가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소설은 물리학자 출신의 한 미군 장교가 클링조르의 정체를 추적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얼핏 한 조각의 단서를 토대로 범인을 찾는 평범한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불확정성의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