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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는 아주 좋은 평론이 실렸더군요. 딱히 내가 어제보다 오늘 더 부패에 정통하게 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기자는 험프리 보가트를 주연으로 염두에 둔다는데 나 또한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예요.”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1939년 2월19일, 편집자 앨프리드 크노프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챈들러의 출간 목록을 찾아보니 여기서 말하는 책은 <빅 슬립>인 모양으로, 이 영화는 1946년에 하워드 혹스 연출, 험프리 보가트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한국에서는 <명탐정 필립>이라고 소개되었던 그 영화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서간집인데, 오고간 편지 모두가 아니라 챈들러가 쓴 편지만을 묶었다. 편지글마다 애초의 편지에는 없었을 스포일러성의 제목이 붙었다는 점은 아쉽지만(마치 업무 메일 같아 보인다- 상대가 제목만 보고도 열어볼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유혹하는 제목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수다쟁이 챈들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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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더불어 20세기 중반 SF의 황금시대 대표 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가 다시 출간되었다. 폴 버호벤 감독이 만든 1997년 영화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소설이 가진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은 이후 많은 SF소설과 영화들에서 차용되었다. 병역이 완전한 시민권을 담보하는 미래 사회에서 외계 종족과 싸우는 주인공들의 전투담이자 성장담. 휴고상 최우수장편상을 받았다.
[도서] 폴 버호벤 감독 영화의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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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천이 초기에 쓴 다섯편의 단편을 모아 작품을 쓴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84년에 출간한 책이다. “설사 말소된 수표라 하더라도, 이십년 전에 쓴 작품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자신에게 얼마나 큰 충격일지 여러분은 아마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고백을 비롯한 긴 작가 서문을 붙여서 소설을 쓰기 시작할 무렵 자신의 미흡했던 점, 등장인물의 생생한 형상화가 미흡한 점 등을 고백하고 있다.
[도서] 작가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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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계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가 지난해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어려서는 쌍둥이처럼 붙어 지냈지만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판이하게 다른 삶을 선택하는 두 형제, 수바시와 우다얀, 그리고 그들 사이의 한 여인 가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소설 초반 저지대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은 마치 두 형제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 강렬하다. 1970년대부터의 인도 정치사의 격변이 70여년의 세월을 두고 펼쳐진다.
[도서] 두 형제 사이의 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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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코뮌이 처절하게 박살난 이래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구호는 선거철에 휘날리는 깃발 이상이 된 적이 없다. 하지만 완전한 자치를 이루며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는 책의 주인공인 스페인 마을 공동체 마리날레다가 바로 그곳이다. 책의 서두는 비장하다. 건설경기 붐을 타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뒤 종래는 막대한 실업자와 자살자들의 연쇄를 낳고 만 스페인 경제의 현실을 묘사한다. 하지만 인구 2700명의 도시 마리날레다는 바깥세상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중이다. 대안공동체라기보다는 유토피아라고 자칭하는 이곳은 급진적인 아나키즘이 현실화된 땅이다.
마리날레다는 아무도 굶어죽지 않는 곳이 되었지만 동시에 아무도 명품백을 갖지 않는 동네가 되었다. 집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집을 소유할 수도 없다. 고립과 자율. 하지만 마을 전체에 무료 무선 인터넷이 깔리면서 달라진 것도 있다. 대도시와 다른 나라가 줄 수 있는 가능성에
[도서] 부디 멈추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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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탑
빅뱅의 탑이라고 부를까 배우 최승현이라고 부를까. 이번에는 그가 전시회의 주인공이 된다. <퍼스트 픽토리얼 레코즈 프롬 탑>(1ST PICTORIAL RECORDS-FROM TOP)이라는 제목의 영상집 발매를 기념하는 전시회 <프롬 탑 엑시비션>(FROM TOP EXHIBITION)이 5월1일부터 4일까지 서울 신사동 호림아트센터 JnB 갤러리에서 열린다. 영상집 촬영은 지난해 12월 뉴욕에서 이루어졌다.
200% 만족!
<K팝스타> 시즌2의 우승자인 악동뮤지션이 1년간의 공백 뒤 데뷔앨범 ≪PLAY≫를 발매했다. 오빠 이찬혁의 독창적인 가사와 동생 이수현의 중독성 강한 음색은 그대로이나, 장르의 폭은 보다 넓어졌다. 소속사 YG의 프로듀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 듯. 타이틀곡 <200%>와 <얼음들>은 악동뮤지션의 다채로운 음악적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는, 서로 전혀 다른 느낌의 곡들이다.
챔스 4강 확정
[culture highway] 사진도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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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연극적인 소설을 꼽는다면 아마도 카슨 매컬러스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대공황 시대인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소도시를 무대로 한 이 소설에는 네명의 개성 있는 인물들이 등장해서 비감한 어조로 각자의 사연을 쏟아놓는다.
당시 찾아보기 힘든 흑인 의사인 코플랜드 박사는 가장 위대한 나라로 자칭하는 미국에서 처참한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인다. “오늘 아침 여기 모인 젊은이들 중에는 교사나 간호사나 우리 민족의 지도자가 될 필요를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절당할 것입니다. … 우리들은 짐승의 일보다 더 쓸모없는 노동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흑인 여러분! 우리들은 궐기하여 다시 완벽해져야 합니다! 우리들은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제이크 블런트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 의사보다 더 드문 존재인 공산주의자(겸 알코올중독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회사들은 사람들의 피를 빨고 뼈를 약하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의지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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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작가 르네 고시니와 협업한 <꼬마 니콜라>의 삽화가 장 자크 상페의 그림과 더불어 그의 삶에 대한 상세한 인터뷰를 만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는(귀엽기도 하지만 주로 말썽을 부리는) 그림을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그리는 이유가 어린시절이 행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불행했던 기억 때문임을 고백하는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진 이후부터는 빨리 걷거나 뛰는 사람만 그린다니까요.”
[도서] 불행했던 어린시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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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세이무어는 1998년, 몬산토사에서 실험용으로 심은 유전자 조작 사탕무를 망친 혐의로 체포되었다. 평생 전원생활, 환경운동, 그리고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생활양식을 널리 알렸던 영국 활동가인 그는 50년대부터 자급자족을 실천하며 살아왔다. <대지의 선물>은 1953년부터 저자가 땅에서 나는 것만으로 먹고살아본 기록이다. 바깥세상과 거래하기 위한 활동(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과의 균형에 대한 고민까지 상세히 담았다.
[도서] 땅에서 나는 것만으로 먹고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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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사실을 남긴다지만 그 기록조차도 사실일까라는 의심은 창작자들에게 좋은 힌트가 되나보다. 인조반정으로 궁에서 쫓겨난 광해군의 유배생활 19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 질문에서 출발하는 팩션이다. 궁 안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별감 진현은 궁녀와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인조의 후궁인 소용 조씨에게 붙잡힌다. 죄를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임무를 받는다. 이야기 전개 속도가 빨라 몰입도가 높다.
[도서] 광해군의 유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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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학교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학생의 등에는 꼬집힌 상처가 수도 없고, 휴대폰에는 숙제부터 스포츠음료까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셔틀’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동네에서 다 아는 부잣집 외아들이지만 왜소한 체격에, 사건을 취재하러온 기자들이 “따돌림당하게 생겼잖아”라고 수군거리는 인상. 경찰은 집단 따돌림에 대해 수사를 시작하고 같은 테니스부 소속이던 네 아이를 본격 조사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를 쓴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인 <침묵의 거리에서>는 중학생의 사망사건에 연루된 여러 사람의 상황을 차례로 보여주며 진실에 접근하고자 시도한다. 처음 시신을 발견한 선생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과 죽은 아이의 부모와 친척, 가해자로 몰린 아이들과 그 부모들, 경찰과 검사가 이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오쿠다 히데오의 유머감각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묵직한 분위기에 놀랄지도 모르지만 등장인물 소개
[도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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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엔딩 튤립 비긴
벚꽃 지니 튤립 핀다. 4월에서 5월 사이 튤립 축제들이 잇따라 열린다. 에버랜드 튤립축제(3월21일~4월27일), 신안 튤립축제(4월18~27일), 태안 튤립축제(4월19일~5월18일) 등 튤립의 유혹이 시작됐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뾰족했던 마음도 조금은 둥글어질 터. 힐링이 필요하다면 튤립 꽃축제를 추천한다.
인디 달링의 귀환
7년 만의 컴백이다. 줄리아 하트의 정규 5집 ≪인디 달링을 찾아서≫가 발매된다. 송라이터 정바비의 유머러스한 노래 가사들은 이번에도 인디 음악 팬들을 사로잡을까. <옆집소년효과> <처형 직전의 도스토옙스키> <안경전쟁> 같은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원펀치의 멤버 박성도와 서영호가 각각 <차를 댈 곳>과 <벼락>이란 노래에 리드 보컬로 참여했다. 60분 분량의 음반 메이킹 필름도 DVD로 함께 수록되어 있다.
<레고무비>와 <호빗>이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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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highway] 벚꽃 엔딩 튤립 비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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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기 아키미쓰의 <문신살인사건>은 감탄을 자아내는 트릭과 인상적인 반전, 그리고 들고 다니며 읽기 신경 쓰이는 야릇한 표지로 유명하다.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고 무심코 챙겼다가 다른 승객이 볼세라 앞표지와 뒤표지를 붙여 손에 꼭 쥐고 읽느라 쥐가 날 지경이었는데도 단숨에 완독했던 기억이 난다. <파계 재판>은 그의 법정추리물. 화자는 법조기자이며, 법정에서 거의 모든 일이 벌어진다. 한 남자가 부부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재판장에 선다. 피의자는 사망한 아내쪽과 불륜관계에 있었고, 그 사실을 알아챈 남편을 살해한 뒤 사체 유기, 얼마 뒤에는 그 아내마저 같은 방법으로 죽였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변수는 바로 피의자의 변호사다. 그는 재력을 갖춘 데다 금실 좋고 영민한 아내를 두고 있다. 돈을 아끼지 않고 조사해 검찰쪽과 맹렬히 맞선다.
법정물의 재미는 어쩌면 법의 가혹함에서부터 출발한다. 죄를 지었는지가 아니라 죄를 입증할 수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인상적인 법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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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역시 노래의 적
이적의 소극장 공연이 돌아왔다. 지난해 5집 ≪고독의 의미≫를 발표한 그가 소극장 콘서트로 다시 한번 팬들을 가까이서 만날 예정이다. 빛과 소리가 만나는 작은 공간에서 음악과 함께 고독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싶다면 소극장 안에서 노래하는 적군에게로 가자.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4월4일부터 20일까지.
一求二無
3월29일, 드디어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했다. 임창용 선수의 복귀로, ‘되는 집’ 모드로 한국시리즈 4연패를 노리는 삼성 라이온즈는 과연 목표 달성에 성공할까? 4강 재진입을 노리는 롯데 자이언츠의 성적은? 새 구장에 입성한 기아 타이거즈와 FA로 선수를 보강한 한화는 어떤 성적을 거둘까? 박병호와 최정 중 올 시즌 최강타자는 누가 될까? 잠실 라이벌 LG와 두산 중 우세는 어느 팀으로 기울까? 올해는 금, 토, 일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면 월요일에 경기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피고, 지고, 잠들고
미나리하우스는 작가들이 상주하며 작업할 수 있는
[culture highway] 적은 역시 노래의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