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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학교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학생의 등에는 꼬집힌 상처가 수도 없고, 휴대폰에는 숙제부터 스포츠음료까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셔틀’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동네에서 다 아는 부잣집 외아들이지만 왜소한 체격에, 사건을 취재하러온 기자들이 “따돌림당하게 생겼잖아”라고 수군거리는 인상. 경찰은 집단 따돌림에 대해 수사를 시작하고 같은 테니스부 소속이던 네 아이를 본격 조사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를 쓴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인 <침묵의 거리에서>는 중학생의 사망사건에 연루된 여러 사람의 상황을 차례로 보여주며 진실에 접근하고자 시도한다. 처음 시신을 발견한 선생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과 죽은 아이의 부모와 친척, 가해자로 몰린 아이들과 그 부모들, 경찰과 검사가 이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오쿠다 히데오의 유머감각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묵직한 분위기에 놀랄지도 모르지만 등장인물 소개
[도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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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엔딩 튤립 비긴
벚꽃 지니 튤립 핀다. 4월에서 5월 사이 튤립 축제들이 잇따라 열린다. 에버랜드 튤립축제(3월21일~4월27일), 신안 튤립축제(4월18~27일), 태안 튤립축제(4월19일~5월18일) 등 튤립의 유혹이 시작됐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뾰족했던 마음도 조금은 둥글어질 터. 힐링이 필요하다면 튤립 꽃축제를 추천한다.
인디 달링의 귀환
7년 만의 컴백이다. 줄리아 하트의 정규 5집 ≪인디 달링을 찾아서≫가 발매된다. 송라이터 정바비의 유머러스한 노래 가사들은 이번에도 인디 음악 팬들을 사로잡을까. <옆집소년효과> <처형 직전의 도스토옙스키> <안경전쟁> 같은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원펀치의 멤버 박성도와 서영호가 각각 <차를 댈 곳>과 <벼락>이란 노래에 리드 보컬로 참여했다. 60분 분량의 음반 메이킹 필름도 DVD로 함께 수록되어 있다.
<레고무비>와 <호빗>이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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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highway] 벚꽃 엔딩 튤립 비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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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기 아키미쓰의 <문신살인사건>은 감탄을 자아내는 트릭과 인상적인 반전, 그리고 들고 다니며 읽기 신경 쓰이는 야릇한 표지로 유명하다.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고 무심코 챙겼다가 다른 승객이 볼세라 앞표지와 뒤표지를 붙여 손에 꼭 쥐고 읽느라 쥐가 날 지경이었는데도 단숨에 완독했던 기억이 난다. <파계 재판>은 그의 법정추리물. 화자는 법조기자이며, 법정에서 거의 모든 일이 벌어진다. 한 남자가 부부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재판장에 선다. 피의자는 사망한 아내쪽과 불륜관계에 있었고, 그 사실을 알아챈 남편을 살해한 뒤 사체 유기, 얼마 뒤에는 그 아내마저 같은 방법으로 죽였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변수는 바로 피의자의 변호사다. 그는 재력을 갖춘 데다 금실 좋고 영민한 아내를 두고 있다. 돈을 아끼지 않고 조사해 검찰쪽과 맹렬히 맞선다.
법정물의 재미는 어쩌면 법의 가혹함에서부터 출발한다. 죄를 지었는지가 아니라 죄를 입증할 수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인상적인 법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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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역시 노래의 적
이적의 소극장 공연이 돌아왔다. 지난해 5집 ≪고독의 의미≫를 발표한 그가 소극장 콘서트로 다시 한번 팬들을 가까이서 만날 예정이다. 빛과 소리가 만나는 작은 공간에서 음악과 함께 고독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싶다면 소극장 안에서 노래하는 적군에게로 가자.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4월4일부터 20일까지.
一求二無
3월29일, 드디어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했다. 임창용 선수의 복귀로, ‘되는 집’ 모드로 한국시리즈 4연패를 노리는 삼성 라이온즈는 과연 목표 달성에 성공할까? 4강 재진입을 노리는 롯데 자이언츠의 성적은? 새 구장에 입성한 기아 타이거즈와 FA로 선수를 보강한 한화는 어떤 성적을 거둘까? 박병호와 최정 중 올 시즌 최강타자는 누가 될까? 잠실 라이벌 LG와 두산 중 우세는 어느 팀으로 기울까? 올해는 금, 토, 일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면 월요일에 경기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피고, 지고, 잠들고
미나리하우스는 작가들이 상주하며 작업할 수 있는
[culture highway] 적은 역시 노래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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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만 했다 하면 ‘불법’ 딱지를 붙이는 한국에서, 최근 사용자쪽의 무기로 가장 자주 동원되는 것은 손해배상가압류다. 손해배상가압류는 미래를 저당잡는다. 오늘은 물론 내일도 모레도 죽도록 빚만 갚을 게 아니라면 조용히 있어, 라는 경고. 먹고살기 위해 무릅써야 하는 일들은 그렇게 날로 늘어갔다. 중앙대가 휴가도 없이 일해야 했던 청소 노조원들에게 노래 1회, 구호 1회, 대자보 1장당 100만원을 내라고 했던 일을 기억하는지. 두산에 인수된 중앙대에서 진중권 교수의 재임용 탈락을 필두로 학과 구조 조정을 비롯한 이슈를 위해 싸우다 퇴학당한 노영수의 <기업가의 방문>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묶은 <안녕들 하십니까?>가 출간되었다. 인간적인 삶과 돈 중 후자가 압도적 우위에 놓이는 현실에 대한 현장보고서들. 얼마 전 삼성이 대학총장추천제를 하겠다고 했다가 무효화한 일도 여기서 특별히 다른 일이 아니다. 기업의 논리로 학교가, 사회가 돌아갈 때 벌어지는 일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우리보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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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으로 즐겨보던 개 매디의 사진이 책으로 묶여나왔다. 사진을 찍은 테론 험프리는 할아버지의 죽음과 여자친구와의 이별이 부추긴 무모한 여행의 동반자로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만난 개 매디를 선택했다. 그리고 1년 동안 미국을 떠돌고 사진을 찍었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험프리가 쓴 ‘dog’를 ‘애완견’이라고 번역했다는 것이다. 개는 개고 친구는 친구다. 아직 그 존재에 ‘애완’이라는 표현을 더하지 않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게 아쉽다.
[도서] 무모한 여행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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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생물학자 마크 넬리슨이 쓴 알기 쉬운 다윈의 이론. 시시콜콜한 사례들을 통해 다윈을 알기 쉽게 전하는 필자의 재치가 돋보인다. 이기심과 협동 중 어느 쪽이 이득일까? 회의 시간에 팔짱을 끼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사랑에 취한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사랑에 대해(심지어 모성애에 대해서조차도) 약간은 냉정한 분석이 뒤따르지만 행동에 깔린 유전자의 원칙을 무시하기란 불가능하다.
[도서] 행동에 깔린 유전자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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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찬사가 과하지 않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사후 1년 뒤인 1977년에 처음 출간된 책으로, 한평생 쓴 100권이 넘는 책들에 대해서부터 두번의 세계대전과 두 번의 결혼 등 그녀에 대한 시시콜콜한 궁금증을 만족시킬 만하다. 자서전이라 그런지 두 번째 남편과 막 좋아지던 시절에 대한 대목 같은 것은 몹시 간지럽지만, 그래서 더 재밌게 읽힌다. 총 30장이 넘는 사진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도서] 그녀에 대한 시시콜콜한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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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죽은 뒤 사후 출간된 시집으로 유명해진 시인의 친구(이자 소설가)가 술자리에서 말하길, 그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시집에 넣지 않았을 시까지 긁어모아 책을 엮었는데 그 친구가 버렸을 법한 시들이야말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아 괴롭다고 했다. 작가 사후 남은 원고를 마주한 가까운 이들의 딜레마가 그것이다. 작가가 남은 원고에 대해 별말이 없어도 문제이고 말을 해놓았어도 문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남긴 <오리지널 오브 로라> 원고를 ‘폐기하라’는 엄명을 받은 아들 드미트리 나보코프는 이 원고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가 수십년 전 <롤리타> 초고를 소각장으로 향할 운명에서 구해냈던(아버지로부터 가로챘던) 일을 떠올렸다. 카프카가 막스 브로트에게 <변신>과 <성>을 비롯한 이미 출판됐거나 미출간된 걸작들을 파기하라는 임무를 맡긴 것이 (우리에겐 다행스럽게도) 실패했듯이, 어쩌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원고 파기를 부탁하
[도서] 소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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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독립영화
“독립영화를 사랑해달라.”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난 고 이성규 감독의 마지막 말이다. 감독의 뜻을 기리는 특별전이 열린다. 4월4일부터 7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시바, 인생을 던져> <오래된 인력거> 등을 포함한 7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펀딩21’은 3월20일부터 4월3일까지 후원금 모금을 진행한다. 특별전 진행비로 쓰이는 일부를 제외하고 후원금은 모두 유가족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자세한 소식은 http://www.funding21.com에서 확인가능하다.
우리 동네 그 나무도 있을까
서울은 보호하고 있는 나무가 210여 그루나 될 정도로 사연을 가진 나무가 많다. <서울의 나무들>은 서울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 공모에서 선정된 세 번째 전시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나무를 통해 표현한 이장희 작가의 세심한 일러스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서울시 신청사 8층 하늘광장 갤러리에서 3월26일부터 4주간 열리
[culture highway] 내 사랑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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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며 손에 땀을 쥐던 기억이 있다. ‘파란해골 13호’와 일합을 겨루던 ‘태권동자 마루치’의 활약처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도 재미가 있었지만, 이병주의 소설 <마술사>를 각색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허공을 향해 밧줄을 세우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영상 없이 목소리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만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힘.
이런 이야기의 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가가 바로 찰스 디킨스다. 빚을 지고 채무자 감옥에 갇히기까지 한 아버지 때문에 열두살 때 구두약 공장에서 10시간씩 일을 했던 디킨스는 자신이 살던 사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올리버 트위스트>나 <크리스마스 캐럴> 혹은 <위대한 유산>이 시대를 배경으로 개인들의 사연에 치중한 소설이라면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사건 자체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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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프랑스 혁명을 이야기한 디킨스의 시대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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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한병철의 <투명사회>를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제목이 주는 인상만 비슷한 것이 아니고 문제의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철학책을 혼자 힘으로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투명사회>가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고, 대중인문서가 장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단속사회>가 늘어진다고 느낄 수 있다. 사생활이 종말을 고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일에 대한 두 학자의 통찰과 분석을 찬찬히 음미해볼만하다.
[도서] 사생활이 종말을 고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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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오솔길. 문장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 보면, 걸려 넘어지는 문장이 있어. 그 문장 앞에서 넌 작아지지.” 책 속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압도당하는 느낌을, <책섬>에서는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문장 속으로 기어들어갈 만큼 사람이 작아지는 그림. <책섬>은 그림-책이다. 김한민 작가가 ‘책’이라는 동반자에 바치는 헌사이다. 그림과 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작가 특유의 자유로움이 인상적이다.
[도서] ‘책’이라는 동반자에 바치는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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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최승호 시인의 <아메바>로 시작되어 얼마 전 49번째로 박태일의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까지 선보인 ‘문학동네 시인선’의 50호 기념 자선 시집 <영원한 귓속말>이 출간됐다. 49명의 시인들이 각자 자신의 시집에서 한편의 시를 고르고 짧은 산문을 더해 한권이 완성되었으니 시집이면서 시집 그 이상. 산문이라 해도 바로 옆자리의 시와 각운이 맞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게 되는 글모음이기도 하다.
[도서] 시집 그 이상의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