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우리 만화시장이 해적판이라는 적조로 뒤덮여 있던 때가 있었다. 단순한 저작권의 문제가 아니라 무책임한 번역, 제멋대로 권 수 나누기, 여러 만화가의 작품 뒤섞기 등 눈뜨고 볼 수 없는 횡포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러나 그 검붉은 바다 속에서도 반짝이는 진주를 찾아내던 만화 독자들의 노력은 가상했다. 만화가의 이름도 나오지 않고 원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엉터리 제목을 단 작품들을 어떻게 엮어내며 이름 모를 누군가의 팬이 되었고, 출판사에 그 만화가의 책을 펴내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거쳐 우리 독자들로부터 최초로 작가적 아이덴티티를 얻게 된 일본 만화가는 아마도 아다치 미쓰루일 것이다. 정말로 웬만한 그의 만화들은 한두번씩 해적판으로 얼굴을 내밀었고, 많게는 서너개의 다른 제목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 아다치의 옛 만화들이 정식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만화 <미유키>, 그리고 10년 전의 만화 <일곱빛
아다치 미쓰루의 <미유키> <일곱빛깔 무지개>
-
지난 일요일 벽제 국립공원 묘지에서 치러진 김상진 열사 27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창창한 햇빛이 무덤들을 더 유구한 젖무덤으로 봉긋봉긋 도들새김했지만 추모식 내내 강한 바람이 불었다. 소풍 나온 종이컵, 음료수팩, 빈 김밥 도시락곽이 혼미 속을 휩쓸려다녔다.김상진은 1975년 4월11일 서울대 농대 캠퍼스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중 양심선언물을 읽고 할복 자살한 열사다. 당시 4학년. 당황한 당국은 시신을 강제 탈취, 지금의 장소에 서둘러 매장했다.정말 27년 만이군…. 그의 할복 자살 뒤 곧바로 월남이 해방되고, 어둠의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22일 열린 ‘김상진 열사’ 장례식에서 추도시를 읽었고 그렇게 ‘긴조시절’에 걸맞은 시인 데뷔를 한 셈이지만 그의 무덤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안한 건 물론이고, 그때의 슬픔과 열정이 그만큼의 나이를 먹은 모습을 새삼 확인하는 건 스스로 안쓰러운 일이다.추모식을 준비한 김상진 기념사업회는 ‘열사’ 자가 빠
[컬렉터파일] 김상진 27기 추도식에 가다
-
<Release> 펫 샵 보이즈EMI 발매신서사이저팝의 대가로 불리는 펫 샵 보이즈의 여덟번째 정규앨범이 발매되었다.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기타리스트’라고 불리는 전 ‘스미스’(The Smiths) 멤버 자니 마와 함께 작업해서인지, 이번 앨범은 기타팝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유럽에 있는 사람이 미국의 연인을 그리워한다는 첫 싱글 <Home and Dry>와 60년대 팝을 연상시키는 <I Get Along> 등이 담겨 있다. 춤을 춰야 할지 얌전히 앉아 있어야 할지, 안절부절하게 만드는 펫 샵 보이즈의 팝적인 단면을 만끽할 수 있는 앨범.500 Years of Brazil BMG 발매‘브라질의 500년’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브라질 음악의 족적을 선별한 컴필레이션. 알려져 있다시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으며,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의 영향을 받은 브라질의 음악에는, 남미 원주민의 전통에 흑인 특유의 리듬감과 유럽의 음악이 녹아 있다. <
펫 샵 보이즈 / 500 Years of Brazil / 셰릴 크로
-
포크 Big3와 료코의 캠퍼스 콘서트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4월26일, 27일 7시30분/ (주)팀, 가네코프로덕션/ 02-561-4712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팬들의 가슴에는 청바지와 통기타로 자유와 낭만을 노래하던 모습으로 남아 있는 한국의 포크 1세대 트윈폴리오가 한자리에 모인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의 포크 1세대인 모리야마 료코가 함께 무대에 오르며, 26일에는 모리야마 료코, 시라토리 에미코, 야마모토 준코 등 일본의 포크 3인방이 우정출연하기도 한다.벅스 버니 온 브로드웨이 내한공연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 5월4일, 5일 7시30분/ (주)예스컴프로덕션/ 02-783-0114워너가 낳은 세계적인 캐릭터 벅스 버니와 오케스트라를 접목시킨 만화영화 클래식 음악회 <벅스 버니 온 브로드웨이>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온다. 이번 공연에서는 55인조 오케스트라가 로시니, 슈트라우스, 리스트 등 유명한 클래식 소품들을
포크 Big3와 료코의 캠퍼스 콘서트 / 벅스 버니 온 브로드웨이 내한공연
-
-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정재승/ 동아시아 펴냄/ 1만2천원
물리학자가 쓴 과학의 눈으로 영화보기에 관한 책. <할로우맨>에서 케빈 베이컨이 투명인간이 되는 순서의 모순, <페이스 오프>의 피부이식으로 얼굴 바꾸기의 의학적 허점, 고질라 같은 거대동물의 존재 불가능성 등 영화 속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만들어낸 ‘과학적 옥에 티’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3년 전에 펴낸 책의 개정증보판으로, <언브레이커블> <매트릭스> <공각기동대> 등 최근 영화 13편을 더했다.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
홍상수는 우리 영화계의 독보적인 존재다. 대중에게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최근작 <생활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생활세계에 존재하는 뼈아픈 모순들을 캐내는 그의 시선은 누구보다도 날카롭고 철저해왔다. 물론 첫 작품의 심각함이 최근작에 오면 좀 느슨해지긴 하지만 작가적인 추구의 일관성이나 영화 붙이는 스타일의 독특함으로 봐서 그만한 성과를 낸 감독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한국영화계는 그나 배용균 같은 이름을 어, 하는 사이에 어부지리로 얻곤 한다.홍상수는 음악을 쓰는 일에 매우 인색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최근작 <생활의 발견>에는 엔딩 스크롤이 올라갈 때 딱 한곡, 음악이 들어간다. <오! 수정>에서도 여주인공이 풍금으로 치는 <빠삐용>의 테마를 빼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곡은 한곡이다. <강원도의 힘>에서도 영화의 앞뒤에 등장하는 딱 한곡만이 기억에 남는다. 비교적 음악이 많이 등장하는 &l
옥길성 <맨발로 하늘을 걷다>
-
“문학에 시가 있다면, 만화에는 카툰이 있습니다.” 한국만화박물관의 올해 첫 기획전인 ‘카툰 & 카투니스트’전이 오는 6월30일까지 부천종합운동장의 만화박물관 내 기획전시관에서 개최된다. 조관제, 고경일, 강일구 등 현재 국내 카툰계에서 왕성한 활동를 펼치고 있는 만화가 46명이 함께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한국 카툰의 오늘과 미래를 가늠할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카툰’, ‘카툰 펀치’, ‘부산카툰클럽’ 등 주요 카툰 그룹과 개인 창작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스토리만화만을 편식해온 만화독자들은 ‘촌철 살인’이라는 카툰의 참맛을 색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행사기간 내에 예약한 단체 입장객들은 기획전시 작품에 대한 설명회와 ‘카툰 엽서 만들기’ 등의 체험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문의: 032-661-3745(6)초학교법인 스타학원 완결 스기무라 신이치의 개그만화 <초학교 법인 스타 학원>이 21권으로 완결되어 나왔다. <멋지다 마사
카툰 & 카투니스트 전
-
80년대 TV프로그램 중 기억에 남는 것에 <서울국제가요제>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황당한 내용이었는데 미국이나 영국의 팝송이 거의 외국 유행 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에 프랑스나 이탈리아부터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가수들까지 등장해 노래 경연대회를 여는 방식이었다. 물론 각자의 국가에서는 유명했을지 모르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세계 각국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때 들었던 노래 대부분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중 수상후보작에도 못 오른 이탈리아 가수가 부른 ‘스파게티 카넬로니 피자…’라고 부르는 노래는 그 장단의 흥겨움 때문이었는지 아직까지도 가끔씩 흥얼거리며 부르고 있다. 이처럼 특별히 주목받은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기억이 남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한 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라는 단편 작품이다.자유분방한 표현방식이 시도되는 단편애니메이션 상영작 속에서 거의 상업용 재패니메이션
8광년의 진심 <별의 속삭임>
-
<블레이드2>의 사운드트랙은 스코어에 비해 선곡된 음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호러·스릴러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마르코 벨아미트리의 기분 나쁜 스코어도 관객의 기분을 영화 속으로 밀어떨어뜨리는 데 일조하지만, 역시 영화의 분위기를 받쳐주는 건 선곡된 노래들이다. 선곡이라기보다는 영화를 위해 새롭게 재편집되었거나 만들어진 노래들.사운드트랙 프로듀서는 그 유명한 해피 월터즈이다. 그는 이미 <저지먼트 나이트>와 <스폰>에서 독특한 상상력의 프로듀싱으로 명성을 떨친 바 있다. 그의 상상력의 핵심은 ‘장르간의 결합’이다. <저지먼트…>에서는 강력한 스래시풍의 록과 힙합을, <스폰>에서는 일렉트로니카와 역시 강력한 록을 섞어서 나름의 경지를 만들었고, 이번 <블레이드2>에서는 일렉트로니카와 힙합을 섞었다. 해피 월터즈는 꼭 영화음악계의 돈 킹 같다. 이름만 들어도 팬들을 흥분시킬 만한 ‘큰손’들을 어찌도 그렇게 잘 불러낸다
<블레이드2> O.S.T
-
<겨울연가 classics>예당클래식 발매드라마 <겨울연가> 삽입곡들 위주로, 지난 30년간 조용필, 민해경, 양수경 등의 곡을 써온 피아니스트 이호준의 자작곡들을 수록한 음반. <남과 여> <러브스토리> 등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프란시스 레이의 <하얀 연인들>이 눈길을 끈다. <하얀 연인들>은 드라마 <겨울연가>에 삽입돼 큰 인기를 모았으나 시중에서 수록음반을 쉽게 구할 수 없었던 곡. 이 음반에는 <하얀 연인들>을 비롯하여, 피아노와 바이올린 선율이 아름답게 실린 가수 류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My Memory> 등 15곡이 수록돼 있다. CD 안에는 뮤직비디오가 들어 있으며, 전 곡의 악보집이 제공된다.<파리의 보사노바>씨앤엘 뮤직 발매브라질의 음악 보사노바가 형성되기까지는 재즈뿐 아니라 프랑스의 샹송이 큰 영향을 끼쳤다. 1930년대 프랑스의 아티스트들은 브
<겨울연가 classics> / <파리의 보사노바> /
-
장 보드리야르 지음/ 백의 펴냄/ 1만5천원
프랑스의 지성 장 보드리야르가 1979년 출간한 철학 및 문화비평서 <유혹에 대하여>의 한국어 개정판. 보드리야르는 ‘유혹’이라는 개념을 현대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원리로 제시하는데, 그에게 ‘유혹’은 ‘가상의 세계에서 상징적인 방식으로 현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것’을 뜻한다. <유혹에 대하여>는 이 ‘유혹’이라는 개념을 통해 여성성과 남성성, 테크놀로지와 대중매체 등 현대사회의 문화현상을 분석한다.
<유혹에 대하여>
-
<공명> 콘서트
한전아츠풀센터/ 4월19일 8시, 20일 7시/ 한전아츠풀센터 공연기획팀/ 02-3486-0145
우리 전통음악을 재구성하여 다양하고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젊은 창작 타악그룹 ‘공명’의 콘서트. 타악그룹 ‘공명’의 가장 큰 강점은 타악기와 관악기를 자유롭게 배합해 신비한 소리와 음악을 들려준다는 점이다. 직접 고안, 제작한 대나무악기인 ‘공명’은 30cm부터 1m까지 다양한 크기의 대나무통을 두드려 리듬감 넘치는 선율을 만들어낸다. ‘공명’과 다른 관악기와 타악기 등의 앙상블도 시도한다.
전인권, 강산에, 윤도현밴드 - <진품명품 2002투어>
대구 컨벤션센터/ 4월20일(토) 4시, 7시30분/ (재)아름다운재단, (재)한국여성재단/ 02-654-2889
전인권, 강산에, 윤도현밴드 등 80년대 이후 한국 록을 대표하는 세명의 로커들이 모이는 합동 콘서트. ‘진품명품’ 콘서트는 록의 정신에 부합하는 사회성 있는 메시지를 매년
<공명> 콘서트 & <진품명품 2002투어>
-
고1 때 청계천 헌 책방 거리를 자전거 타고 쏘다니며 ‘나까마’(이 책방에서 구입한 책을 저 책방에 팔며 차액을 남기는 짓) 노릇을 꽤 열심히 했던 탓에 지금도 종로통 같은데 드문드문 남아 있는 헌 책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헌 책방에는 이른바 ‘원서’들도 있다. <펜트하우스> <플레이보이>가 주종이지만 그 속에 미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흑인운동 관련, 아메리카 인디언 관련 책들도 ‘폐기처분’ 도장이 찍힌 채 섞여 있다. 이런 책들을 어떻게 싸게 사느냐. 우선 <펜트하우스>를 ‘주요하게’ 들고 ‘관련’ 책들을 ‘아무렇지 않게’ 든다. 그리고 하나씩 내밀며 “얼마요?” 하고 묻는다. 주인은 <펜트하우스>에 눈을 반짝이며 “2천원”, 그리고 나머지 책은 흥미없다는 듯 “한꺼번에 천원” 그런다. 그러면 나는 <펜트하우스>를 도로 꼽고 나머지 책값을 지불하고 나온다. 물론 그것도 옛날이다. 청계전 헌 책방들은 일제시대 때 출간된 문학작
문지사 <세계도해대백과사전>
-
10대 위주의 댄스음악만이 TV를 주요 매개로 팔려나가고, 대형도매상이 음반유통의 선진화를 가로막고 있으며, 시장의 대부분을 소수 ‘메이저’ 기획사가 지배하고 있음에도 항상 구조적 불안정성에 시달리는 곳. <글로벌, 로컬, 한국의 음악산업>(신현준 지음/ 한나래 펴냄)이 묘사하는 한국 음악산업의 모습이다. 이 책이 처음한 말한 건 아니다. 한국 음악산업의 기형성과 비건강성은 언론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꾸준히 언급돼왔다. 하지만 현상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정도의 내용만을 담았던 그동안의 문제제기와 달리 <글로벌…>은 전 지구적 네트워크의 일부로서의 한국 음악산업의 실체를 파헤친다.정치경제학이라는 본체에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통해 빚어낸 다양한 이론이라는 도구를 끼워가며 한국의 음악산업을 세세하게 분해하려는 이 책은 한국의 음악산업을 분석하기 위해 ‘지구화/국지화’ 또는 ‘글로벌/로컬’이라는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제 공고해지는
<글로벌, 로컬, 한국의 음악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