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모리코네는 음악으로 한 장르의 컨벤션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the Ugly)의 테마다. 방울뱀의 춤이나 시체 위를 맴도는 까마귀 울음, 사막의 황량한 밤에 떠도는 알 수 없는 메아리, 머리 가죽을 벗기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의식, 그 모든 걸 동시에 떠오르게 하는 냉혹하고 비정한 느낌의 이 테마는 바로 마카로니 웨스턴(미국 사람들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부른다)과 동격이다. 또한 마카로니 웨스턴은 이 테마로부터 직접적으로 연상된다. 이 테마의 느낌이 없는 마카로니 웨스턴은 존재하지 않는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이국적인 피리소리, 펜더 트윈 리버브 앰프가 내는 독특한 ‘또요요용’(영어로는 twang) 하는 울림의 전기기타, 민속음악적인 북소리, 그리고 유럽 특유의 풍부한 스트링 오케스트레이션을 혼합하여 이 테마를 탄생시킨다. 거칠고 냉혈적이며 일자무식인 듯한 스트레이트한 음악이지만 몇번을 들으면 이 테마가 얼마나 세련된 편곡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고 결국은 혀를 내두르게 된다. 가히 연금술사의 솜씨다.
이러한 솜씨를 알아보고 채택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혜안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의 ‘마카로니 웨스턴’ 자체가 일종의 연금술사적인 혼융의 결과다. 그가 이 영화를 만들던 시절은 서부영화를 통해 자본주의의 본질을 파헤치려고 노력했고 그 핵심에 있는 ‘미국’이라는 괴물 같은 존재의 촌스러운 힘의 본질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그는 1960년 이후의 뉴 시네마적 정신을 다시 한번 B급 장르의 컨벤션에 잇대어 결국은 영화라는 대중예술이 갖는 본질적인 특징을 영화를 통해 사유한다. 할리우드영화, 특히 서부영화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이분법은 흥행을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분법에서 선은 언제나 영화표를 많이 사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영화가 제시하는 모럴은 결국은 비윤리적인 배경을 바탕에 깔고 있다. 까고 보면 다 장사꾼들만 있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본질이기도 하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서부영화의 이분법을 흔들거나 비웃으면서, 동시에 우스꽝스럽게 확장시켜 강조하면서 결국은 미국을 조롱한다. 그래서 영화는 냉소적이고 거칠며 어둡다.
이번에 다시 발매된 <석양의 무법자> O.S.T는 상당히 가치있는 앨범이다. 하도 테마가 유명하니까 수많은 변종들과 잡스러운 아류들이 판을 치고 있는 터에 진짜 오리지널 녹음의 O.S.T를 접한다는 것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제대로 믹스된 원판의 녹음으로 들을 수 있다. 영감에 가득 차 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멜로디가 샘솟는 젊은 엔니오 모리코네 말이다. 테마음악말고 이 영화에 쓰인 음악 전체를 다 감상하고 조망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테마음악 이외에 잠깐씩 지나가는 음악들도 다 색다른 맛이 있다. 클래식 기타, 나팔 등을 간소하게 사용하여 절제미를 살릴 때도 있고 모리코네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사, 풍부한 감정을 우려낼 때도 있다.
또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코러스’의 적절한 사용이다. 코러스는 보통 웅장한 느낌이나 숭고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모리코네는 마치 영화의 등장인물과도 같은 거친 사내들의 묘한 목소리들을 코러스로 사용하여 숭고함이 배제된 이색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다. 테마의 변주도 재미나다. 다른 분위기의 트랙들 속에서도 처음에 등장했던 인트로의 여러 부분이 커트되어 들어간다. 그래서 테마의 냉혈한 느낌을 부지불식간에 되새기도록 만들고 있다.(굿인터내셔널 발매)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