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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스토리> O.S.T
2002-08-08

하염없이 직진하는 뉴에이지

데이비드 린치의 그답지 않은 동시에 그다운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에서 또 한번 안젤로 바달라멘티가 음악을 담당했다. 그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특이한 점은 달콤함과 기괴스러움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은 막대사탕처럼 달콤하다. 그 달콤함은 깊은 맛을 내는 그것이 아니라 입에서 살살 녹으며 사라지는, 그리고 이내 특유의 씁쓸한 쇠맛을 혀에 남기는 공장생산사탕의 그것이다. 그 씁쓸함은 달콤함을 즐기는 아이의 혓바닥에 (거의 의식하기 힘들지만) 아주 미세한 정도의 소름을 돋게 한다. 그리고 그 소름이 바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세상을 살아가는 독한 맛이다. 소비사회의 독약맛을 그렇게 무의식중에 길들이며 아이들은 사탕을 빨아먹는다. 그 씁쓸한 쇠맛은 바로 다음에 다시 혀를 적시는 달콤한 사탕의 맛으로 대체된다. 그런 끝없는 대체가 방부제와 설탕과 인공색소로 버무린 막대사탕을 먹는 독한 재미다.

데이비드 린치는 바로 그런 사회 속에서 사는 기쁨과 슬픔과 한마디로 독한 쾌감과 분열을 그리는데, 바달라멘티의 음악이 바로 그 ‘독한 쾌감과 분열’의 정확한 음악적 등가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데이비드 린치라는 곤혹스러운 파트너와 영원한 밀월 속에 있다. <블루 벨벳>의 음울한 푸른빛도 오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트윈픽스>의 그가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우울하고 나른하면서도 살짝살짝 웃는 듯한 음악. 정말로 어찌나 달콤하고 어찌나 씁쓸하던지. 독버섯의 색깔을 지니고 있는 그의 선율이었다.

뉴욕 브루클린 태생의 그는 클래식 교육을 받았지만 젊었을 때 컨트리 뮤지션의 편곡을 담당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독특한 미국적 촌스러움이 배어 있다. 그것이 유머러스하면서도 기괴하다. 미국식 대중문화(자신의 거울)에 대한 애증. 그것 역시 데이비드 린치와 잘 통한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이중성’은 발견하기 힘들다. 제목처럼 스트레이트하다. 바달라멘티의 음악은 뉴에이지풍의 안락의자다. 푹신하게 영상을 감싼다. 때로는 토속적인 느낌의 피리를 써서 미국에 사는 어느 고집스러운 늙은이의 잔디깎는 기계 여행에 느긋한 동반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영화가 그렇듯, 그의 음악도 고집스럽다. 한번 짚은 단순한 장조의 화음을 좀처럼 바꾸지 않고 죽죽 밀어댄다. 마치 그 미국 노인의 소박한 야심처럼 말이다. 그 밑바닥에는 미국 백인들의 살의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노인은 더이상 제 기능을 못하는 기계에는 가차없이 총을 쏴버린다. 음악은 지루하게 길을 가는 1966년산 잔디깎는 기계의 템포로, 좀처럼 모습을 바꾸지 않고 스스로를 점검하면서 하염없이 흐른다. 그래서 O.S.T만 들으면 영화 속에서 들을 때보다 감흥이 좀 덜하다. 늙은 데이비드 린치와 늙은 바달라멘티가 서로 마음을 맞춘다. 여전히 마음은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이 영화에 이 이상의 음악을 바랄 수는 없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