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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마코토의 <돌연변이>
2002-08-01

거짓말 vs 거짓말

가슴이 두근두근, 난생처음 제대로 된 거짓말을 해보려고 하는 어린애 앞에서 부모나 선생님이 빙그레 웃고 있다. “너, 거짓말이지.”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그 눈길. 갑자기 머리 뒤가 쭈뼛 서면서, 혹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그 여자애를 좋아하는 것도, 어제 도시락의 당근 반찬을 몰래 버린 것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빨리 딴 생각을 해야 한다. 이젠 생각조차 거짓으로 꾸며야 한다.

어린 시절 한번쯤 해볼 만한 생각. 그런데 이 만화에서는 진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 그것도 단순히 자기 앞의 사람이 거짓말을 꿰뚫어보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 수십 미터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 모두를 읽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선천성 R형 뇌량 변성증의 돌연변이, 통칭 사토라레. 그들은 예외없는 IQ 180 이상의 천재들로, 머릿속의 폭발할 것 같은 강한 정념이 좁은 항아리 밖으로 흘러나오는 물처럼 넘쳐나오게 된다.

내 생각을 숨길 수 없다?

이 얼마나 절망적인 핸디캡인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몰래 마음을 감추는 짓 따위는 할 수 없다. 지하철에서 앞자리의 여자를 보곤 ‘엄청난 가슴이네’라고 생각만 해도 모두가 그를 변태 취급할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의사라면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병의 상태를 숨길 수도 없고, 장기 기사라면 상대에게 모든 수를 읽히고 만다. 통상적인 초능력 만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주변 사람들이 알 수 없도록 그 힘을 숨기고 있다. 그러나 이 만화에서는 그 반대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고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 능력을 모르는 천재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생각을 숨길 수 없다는 노이로제 때문에 최초의 사토라레는 자살해버렸고, 이후 각국 정부가 그 당사자가 사토라레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절대 발설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법률로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전적인 성격 때문에, 이 만화는 사토라레들의 영웅적인 행동보다는 그들의 존재를 숨기기 위한 숨바꼭질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토라레인 물리학도 니시야마의 상사병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가 그와 사랑에 빠진 코마츠의 이야기. 자기 친구를 위협해 난간에서 뛰어내리게 한 녀석을 향해 강렬한 살의를 퍼뜨리고 있는 사토라레를 막는 일. 사토라레끼리 서로 만나 서로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작전들…. 이러한 아슬아슬함이 독자들의 가슴을 쥐기는 하지만, 더욱 강렬한 긴장으로 짜버리지는 않는다. 만화가는 언제나 풍부한 개그터치와 적당한 감동의 결말로 문제의 날카로운 끝을 마모시켜서 내놓는다.

사토라레라는 존재의 철학적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은 현존하는 인간들보다 훨씬 우월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순수한 존재다. 어쩌면 미천한 능력으로 인해 서로 다투고 거짓과 배신을 거듭해야 하는 현재의 인류가 새롭게 진화해갈 방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신인류를 위해 구인류가 총체적인 단합을 하는 행위가 과연 가능할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한 인간을 위해 주변의 사람 모두가 거짓말을 해야 한다니. 일찍이 그러한 단결과 통제가 가능했다면 인류에 전쟁과 범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신인류의 수가 늘어나면 결국 구인류를 미개인 취급하며 지배하려고 들지 않을까? “너희들은 거짓말을 너무 잘해 우리와 함께 사회를 구성할 수 없어. 그래서 너희들을 위한 수용소를 만들어두었으니, 거기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해”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너희들이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어. 너희들은 도태되어야 할 종이야. 우리 생각을 읽을 수 있으니 말 안 해도 잘 알겠지.’

진정한 사변과 철학의 진전은 이러한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이 만화 역시 그 점을 간과하지는 않는다.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하고 사토라레에 대한 현재의 통제에도 불만을 가지고 있는 초보 대책위원이 급한 설사기로 인해 고통받는 사토라레를 미행하면서 깨닫게 된다. 인간은 저처럼 나약하면서도 또 스스로를 사회와 조화시켜 나가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양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환자에게 병의 증상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밖에 없는 의사에게 환자가 몰린다. 아무리 심한 병이라도 그것을 솔직하게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의사 마음속에 있는 “꼭 구하고야 말겠어”라는 의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발한 착상에서부터 시작해, 그 착상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상황 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만화. <돌연변이>는 그 점에 충실하고, 충분히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드래곤 헤드>나 <몬스터>와 같은 만화들이 좀더 극한으로 다가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슬며시 발을 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쩐지 <천재 유교수의 생활>이나 <아기와 나>처럼, 문제를 드러내지만 쉽게 감동과 화해로 이끄는 만화들 쪽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악역은 등장하지만 모두 쉽게 화해한다. 오해만 풀리면 모두 선의를 가진 사람. 과연 인간은 그렇게 믿을 만한 존재일까?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