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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뫼르스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뫼르스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차모니아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상상력이 부족한 독자라면 그 생김새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기이한 동물들이 겪는 생사를 건 기나긴 모험담을 책으로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여기까지라면 다른 판타지물 사이에서 유독 그가 도드라지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에서 14만부의 판매고를 올린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성공 뒤에는 무엇보다 뫼르스의 유머 감각이 있다. 100살이 채 되지 않은 ‘젊은 공룡’이 겪는 코믹한 모험담은 책을,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들을 매혹시켰다.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은 ‘차모니아 4부작’ 중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선행하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순서, 시리즈의 순서에 역행하는 독서가 되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이 발터 뫼르스의 최고 히트작이라는 사실은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젖먹이 루모는 살아 있는 동물들
타고난 이야기꾼의 최고 히트작,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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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눈앞에는 다섯개의 스위치가 있다. 나를 포함한 다섯명의 동료들은 그 스위치를 한꺼번에 누르도록 명령받았다. 다섯 중 어느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중 하나는 분명히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발판 하나를 밑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그러면 그 위에 동아줄을 목에 매고 눈을 가린 채 서 있던 사형수가 버둥거리며 아래로 떨어지리라. 마지막 생명의 증거인 얼마간의 오물을 바지 사이로 흘린 뒤, 20분 안에 이 세계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는 그 스위치를 누를 자격이 있는 걸까? 과연 인간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걸까?
<교도관 나오키>(원제는 <숲의 나팔꽃>(モリのアサガオ))는 사형 확정수들이 수감되어 있는 구치소에 발령받아온 신참내기다. 사회의 쓰레기라는 범죄자들, 그중에서도 잔인한 방법으로 다수를 살해해 갱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된 사형수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 나오키의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사형수들의 생활을 직접
사형제도에 찍는 의문부호, <교도관 나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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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길모퉁이에서 로큰롤과 맞닥뜨리면 깜짝 놀라잖아. 보통은 그럴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맞닥뜨렸어. 위험한 거지.” 고만고만한 연애담들의 연속처럼 느껴지던 일본 소설들 사이에서 이사카 고타로의 책을 만나는 즐거움은 <사신 치바>에 나오는 구절처럼 아찔함을 동반한다. 이사카 고타로는 <칠드런> 한권만 국내에 소개된 작가지만, 무려 네 차례나 나오키상에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에 ‘이번에는’ 하는 기대심리가 작용한 탓인지 <러시 라이프>(2002), <중력 삐에로>(2003), <사신 치바>(2005)가 각기 다른 출판사의 이름을 업고 일시에 출간되었다.
<러시 라이프>는 도시의 현실과 도시의 전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빈다. 표지 그림인 M. C. 에셔의 ‘상승과 하강’과 똑 닮은 구조로 처음과 끝이 연결되고 각 인물들의 상승과 하강이 역전된다. 무대는 일본 센다이(작가가 살고 있는 곳이다). 연
삶을 아찔하게 버무려내는 감각, 이사카 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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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3>에서 약물에 관한 한 장면. 동료 구출 작전에 뛰어든 톰 크루즈가 고문으로 인사불성이 된 여자요원에게 아드레날린 주사를 놓는다. 그러자 이 약물은 순식간에 그녀를 여전사로 돌변시켜 가공할 파워를 뿜어내게 만든다. 이 육체의 복원 효과는 현란한 액션만큼 인상적이지만 실제 체험은 그닥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멋진 신세계>와 <섬>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는 육체의 환락이 아니라 정신의 해방이란 가능성을 놓고 약물의 세계에 용감하게 파고들었다. 1953년, 사이키델릭이란 용어를 만든 정신과 의사 험프리 오스몬드의 관리 아래 메스칼린을 복용하고 체험한 환각이 시작이었다. 메스칼린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종교 의식에서 사용했던 페요테 선인장의 활성 원소다(당시 이것과 동일한 효과를 내는 약물로 리세르그산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화학적으로 아드레날린에 매우 가까운 것이었다).
헉슬리는 메스칼린을 체험하기 전에 쓴 <멋진 신세계>에선
약물로 꿈꾸는 ‘해탈’ 혁명, <모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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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열심히 공부해 동경하던 명문 메이린칸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를 동경한 이유는 오직 하나, 걸어서 3분이면 등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이 유독 많은 하나는 등굣길에 반쯤 졸며 걷다가 차에 치인다. 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부잣집 도련님 이즈미는 오히려 고급차가 망가졌다며 하나에게 하키부에 나오라고 명령하고, 하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남자 하키부의 유일한 여자 부원이자 골키퍼가 된다. 시작부터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제멋대로 펼쳐지는데, 그게 <극락 청춘 하키부>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하키부라고는 해도 하키를 하는 데 관심이 없는 부잣집 도련님들은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헬키를 타고 놀러가거나 맛있는 음식이나 먹을 뿐이다. 하키부의 홍일점 하나는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여준다는 말에 침을 질질 흘리며 녹아내린다(눈에 커다란 별 모양이 그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강아지 꼬리와 귀가 돋아나 살랑거리며 애교도 부린다). 현실적이기를 포기했으니 상상은 끝없이 이어진다.
막무가내 코믹 상상, <극락 청춘 하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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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처럼 소비되곤 하는 예술작품에 순위를 매긴다면, 구스타프 클림트는 단연 수위를 차지할 것이다. 특정 화풍에 엄격하게 규정되어지지 않은데다가 묘한 매력으로 감상자를 빨아들이는 클림트의 그림은, 그래서 미술사 책보다는 오히려 개인 블로그나 미니홈피에서 만나는 것이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다. <클림트>는 이름 그대로 그에 관한 소설이다. 책이 따라가는 시선은 가장 오랫동안 그를 곁에서 지켜왔던 에밀리 플뢰게의 것이다. 2차대전을 피해 클림트와 주로 시간을 보냈던 아터 호숫가로 피난 온 에밀리 플뢰게는 인생의 말년을 앞두고 그녀의 인생을 지배했던 클림트를 추억한다. 수많은 여자와 자유로운 연애관계를 이어온 클림트와, 그를 사랑한다고 깨닫는 순간부터 그의 존재가 평생의 마음앓이가 될 것을 예감한 플뢰게의 관계는 시작부터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었다. 열두살 어린 나이에 제자와 스승으로 만난 에밀리 플뢰게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로뎅-카미유 관계처럼 극적이지도,
여러 색깔로 채색된 그 사랑, 소설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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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사라졌던 ‘월가의 전설의 사나이’라고 불리던 남자가 일본에 돌아와, 일본의 재생을 외치며 원대한 계획을 시작한다. 정말 만화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주인공이 거의 슈퍼히어로급의 경제 동물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DAWN>은 대단히 리얼한 경제 전쟁의 실상을 그리고 있다.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이면에서 어떤 더러운 짓들이 태연히 벌어지는지도 폭로한다.
야하기 타츠히코는 강력하게 외친다. 미국에 복수하겠다고.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미국의 호경기는 아시아 경제를 날려버린 돈이 흘러들어간 덕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요하며 모든 국가를 같은 무대에 올린 채 금융전쟁이 시작되었고,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금융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것이 결정되었지만, 일본의 정치가들은 거기에 동조했다. 하지만 일본인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야 하고, 반드시 일본의 형태를 바꾸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농업회사를 세우고, 미
경제를 움직이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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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은 와인 고수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칸자키 시즈쿠는 국제적인 와인 평론가 칸자키 유타카의 하나뿐인 아들. 그는 와인 고수가 되도록 키워진 인물이지만 단 한번도 와인을 마셔본 적은 없다. 그가 받은 교육은 뜰에 있는 허브에 산딸기에 산사나무, 아카시아 같은 꽃 냄새, 연필과 허리띠, 모닥불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와인을 마시고 양조장의 이름을 외우는 훈련을 제외한 와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영재교육처럼 받은 것.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칸자키는 아버지 집으로 가는데, 아버지의 유언이 특이하다. 아버지가 소장한 20억엔 상당의 와인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사망 1주일 전 양자로 입적한 유명한 와인 평론가인 토미네 잇세와 대결을 펼쳐, 아버지가 고른 12병의 위대한 와인과 그 정점에 있는 ‘신의 물방울’이라는 1병의 와인이 묘사된 말만으로 정확히 몇년에 만든 어떤 와인인지 알아맞혀야 하기 때문이다.
<신의 물방울>은 칸자키가 와인
술술 넘어가는 와인 이야기, <신의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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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만큼 쓰임새가 많은 직업도 없는 것 같다. 좋은 책(대본)을 늘 가까이, 그것도 통째로 외우니 독서량이 풍부하며, 좋은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아니 대화가 되며, 끼가 있으니 술자리가 즐거우며, 의상과 분장까지 직접 해결하니 재주가 있다. 여기에 글재주까지 있다면 그건 참 불공평하다. 벌써 게임 끝이다. 오지혜 얘기다. <한겨레21>에 그미(그녀의 멋스런 표현)의 인터뷰가 나올 때마다 허겁지겁 읽던 기억이 난다.
좋은 인터뷰에는 이런 전제가 따라야 할 것 같다. 사람의 목적지는 사람이라는. 그래서 인터뷰는 까다롭다. 글만 잘 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간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통찰력도 있어야 하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 자리를 끌고 가는 재치, 무엇보다 그 사람의 역사를 채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마지막 게 안 돼 인터뷰어는 늘 긴장과 복통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그러니 배우 인터뷰에 관해서라면, 배우의 역사를 두루 꿰고 있는 오지혜와
검색으로도 알 수 없는 딴따라 이야기, <딴따라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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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더풀 아메리카’라는 제목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계의 ‘기준’으로 군림하는 초강대국 미국에 ‘원더풀’이란 수사는 식상할 뿐 아니라, 불쾌하다. 그러나 ‘미 역사상 가장 특별했던 시대에 대한 비공식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린 <원더풀 아메리카>를 읽어가다보면, 1920년대의 미국에 붙일 수사는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1929년 주식대폭락까지 20년대 미국은 잘 꾸며진 박람회의 풍경처럼 과거와 미래를 망라하는 미국의 전경을 세밀화로 그려놓은 느낌이다. 에이즈도, 9·11도 없었지만 20년대 미국에는 빨갱이 사냥과 부동산 투기, 대량생산과 과대 소비, 대통령 하딩의 스캔들과 마피아 등 ‘미국적’이라고 부를 만한 모든 것이 이미 존재했다. 아니 바로 20년대에 완성됐다.
1920년대를 다르게 말하자면, ‘현대’의 틀이 잡힌 시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욕망을 원초적으로 억압하는 금주법이 실행되어 마피아가 거대 조직으로
혼돈과 가능성의 20년대 미국 관찰기, <원더풀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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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무라카미는 이 글을 쓴 사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은 책 제목만큼이나 사실과 픽션을 혼동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겪었다고 전해 들었을 법한 도시의 전설들을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편들로 엮어냈다. <우연한 여행자>는 ‘무라카미’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미국 체류 중 재즈클럽에서 토미 플래너건의 라이브 연주를 듣다가 실망한 ‘나’는, 두곡을 신청한다면, 이라는 상상을 하며 듣고 싶은 곡을 마음속에 그린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두곡을 생각했을 뿐이건만 공교롭게도 플래너건은 그 두곡을 이어 연주한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재즈 곡 가운데서, 무대의 마지막에 이 두곡이 잇따라 연주될 확률’이 <도쿄기담집>에 실린 이야기들의 공통점이다. 무의식이 실제 사건으로 벌어지는, 간절함이 낳는 기이한 동시성은 <하나레이 만>에서도 일어난다. 하와이 하나레이 만에서 서핑을 하다가 상어에 오른쪽 다리를
일상에 존재하는 작은 균열, <도쿄기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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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초기 대표작인 <뉴욕 3부작> 중 첫 번째 에피소드 <유리의 도시>가 그래픽 노블로 다시 태어났다. 세상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어버린 한 남자가 살아가는, 미로와 같은 도시로서의 뉴욕이 종이 위에서 그림으로 그려지고, (소설에서) 선택된 언어들로 되살아난다. 만화가로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쥐>의 아트 슈피겔만이 기획에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뉴욕에 사는 소설가 퀸은 아내와 아이를 잃고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탐정소설을 쓴다. 퀸은 한밤중에 폴 오스터라는 이름의 탐정을 찾는, 잘못 걸린 전화를 받는데, 반복되는 잘못 걸린 전화에 그는 폴 오스터라는 사립탐정인 척하고 의뢰인을 만나 사건을 맡게 된다.
폴 오스터의 원작은 폴 카라식과 데이비드 마추켈리에 의해 해체되고 다시 쌓아올려지는 듯한 변신을 통해 그래픽 노블 <유리의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사각형의 프레임은 창문, 감옥의 문, 도시의 구역, 빙고판으로
거대한 도시, 혼란의 신화, <유리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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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트렌드’라고 제목에 썼지만, 일본 대중문화에 관한 책이다. 대부분의 글은 <씨네21>과 웹진 <채널 예스> 등에 실었던 원고를 손본 것이다. 기본적으로 저자의 글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묘사’이고 즐거움의 공유가 목표다. 문화상품 몇개를 접해보고는 일본 대중문화가 한 덩어리로 뛰어나다거나 형편없다고 단정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저자는, 자신이 재미있게 본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를 소개하고 그들이 일본사회의 무엇을 말하는지, 나아가 인간과 세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해설한다.
선별된 작가들은 익히 알려진 스타들이다. 우라사와 나오키, 이토 준지, 사사키 노리코, 히로카네 겐시, 오토모 가쓰히로, 안노 히데아키, 이누도 잇신, 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 후카사쿠 긴지의 작업이 작품론과 작가론을 넘나드는 37편의 글로 다루어졌다. 특히 저자가 직접 인터뷰한 적 있는 이누도 잇신, 구로사와 기요시, 이와이 순지 등의 감독론은 명쾌하고 정확하다
일본 대중 문화랑 놀자, <컬처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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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는 지난 5년간 다양한 국적의 학자들이 참여했던 국제 심포지엄의 성과물로, 아시아 영상문화를 통해 아시아를 횡단하려는 혹은 횡단 가능성을 찾으려고 시도하는 연구서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실린 총 18편의 논문들이 관심을 두는 건 하나의 특정한 텍스트에 대한 분석 작업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통과 관계이다. 이를테면 그간의 아시아영화에 대한 연구는 오리엔탈리즘적 접근 혹은 민족주의적 접근에 한정된 경향이 있었다. 국가 혹은 민족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던 기존의 연구들은 최근 증가하고 있는 국가와 민족을 가로지르는 문화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제목에서도 암시되었던 바, ‘트랜스’(trans)다. 물론 여기서 ‘트랜스’는 그저 넘어서기의 의미가 아니라 “경계, 균열, 주변부, 이산적인 ‘제3의 공간’을 의미”하며, “존재의 다른 상태로의 전이”를 뜻한다.
이 책은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
아시아적 영상문화 공동체의 발견,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