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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M. 슐츠의 만화 <피넛츠>에 등장하는 스누피는 글 쓰는 비글종 강아지다. 개집 지붕 위에 타자기를 놓고 파지를 동그랗게 뭉쳐서 버리는 스누피의 옆모습은 세상 모든 작가의 마스코트다. 떨어지지 않는 첫 문장, 말 안 듣는 캐릭터, 친구들의 신랄한 험담, 출판사의 거절 편지와 싸우며 스누피는 간혹 입꼬리를 당겨 씩 웃는다. 그리고 “레오(톨스토이)의 심정을 알겠군”이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이 책은 여러 유명 작가들이 보내는 “스누피야, 이렇게 써봐”라는 조언이다. 에드 맥베인, 다니엘 스틸, 잭 캔필드, 레이 브래드버리, 엘모어 레너드, 시드니 셀던 등 서른세명의 작가들이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 유념해야 할 실용적 요령을 충고했다. 각각의 글은 문학론이나 미학을 피력하는 무거운 에세이가 아니라, ‘대화에 녹여내라’, ‘연애소설에서 갈등을 증폭시키는 법’, ‘독자가 건너뛰고 읽을 부분은 아예 쓰지 마라’ 같은 포인트를 지적한다. 제목을 내심 정해두지 않으면 책을 쓸
스누피야, 이렇게 써봐,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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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은 해적이 아니었다. 관습적인 삶을 추구하는 대신 영혼의 자유를 꿈꾸긴 하지만 그는 화가였다. 그리고 그는 가난했다. 약혼자 알리스와 살고 있는 이삭은 살아가기 위해 간판을 그려 먹을 것을 사고, 자신보다 어려운 형편에 처한 동료 화가를 돕기 위해 그의 그림을 사주기도 한다. 선량하고 쾌활한 이삭이지만, 궁핍한 생활과 창작의 고통은 그와 알리스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생계를 위해 그림을 들고 나가 팔려던 이삭은 상상으로 그린 인물이 실존 인물과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배는 안 타봤지만 바다라면 그림이며 옛 문서까지 뭐든 좋아하는 이삭은 그림을 사준 남자가 소개해준 선장의 배를 타게 된다. 며칠 만에 돌아올 수 있을 뿐 아니라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배를 탄 이삭은 배가 향하는 곳이 아메리카이며 쉽게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8세기 파리 뒷골목을 무대로 시작한 <해적 이삭>은 이삭의 행로를 따라 거친 바다로 향한다. 동시에 파리에 홀로 남은 알
해적이 된 전직 화가의 기이한 바다 모험, <해적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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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소설 앞에서 나는 곧잘 노안용 돋보기를 갈구하는 노파가 된다. 글자 너머의 욕망이 당최 보이지 않아 버벅거린다. 그러나 원시(遠視)처럼 게슴츠레하던 내 눈은 <핑퐁>을 통해 장난기 어린 다초점렌즈가 된다. 하나의 주제찾기를 포기하고 생뚱맞은 질문들을 던져보는 것이다. <괴물>에서 포름알데히드로 인해 변종된 물고기는 분명 문명의 희생자인데 왜 ‘악의 축’이 되는 걸까. 괴물이 나타난다면, 에일리언이나 프랑켄슈타인 같은 섬뜩한 모습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모습이 아닐까. <핑퐁>의 왕따소년들처럼, 세계가 “깜박”해버린 존재들이 아닐까. 또는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은 아닐까. 아니, “모두가 미미하고 모두가 위험한 이 세계”에서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괴물이 아닐까.
왕따소년들은 알고 있다. 삥을 뜯고 린치를 가하는 ‘일진’보다 더 무서운 건 “다수인 척”하는 침묵의 시선임을. 민주주의야말로 피 안 나게 왕따를 제조하
개인의 소중함 깨달은 왕따소년들의 ‘핑퐁’, <핑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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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루헤인은 인간의 어둠을 묘사하는 데 거침이 없는 작가다. 루헤인은 이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화한 <미스틱 리버>나 인상적인 반전으로 한국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살인자들의 섬>에서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상처입고 황폐해진 인간의 내면을 동정없이 그려낸 바 있다. ‘사립탐정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인 <가라, 아이야, 가라>와 <비를 바라는 기도> 또한 ‘현대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결정판’이라는 광고 문구가 과하지 않은 수작들로, 정당함이나 규칙에 아랑곳하지 않는 폭력적인 사립탐정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악에 맞서는 이야기들이다. 사립탐정인 패트릭 켄지의 일인칭시점에서 진행되는데 그에게는 앤지 제나로라는 동료 여탐정이 있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긴밀하다. 30년 만에 나타난 보스턴 연쇄살인범을 잡은 공로로 유명세를 탄 지 2년이 지나, 두 사람은 자기 방 안에서
폭력적인 두 사립탐정, 악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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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작은 섬>은 프랑스 만화가 크리스토프 샤부테가 지은 두편의 만화를 묶은 책이다. <어느 여름날>과 표제작인 <행복의 작은 섬>은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그렸다. 가정의 불화로 조부모 집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하는 소년에게 인생은 ‘모든 것을 일찍 알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어느 여름날>. 강에서 낚시를 하는 할아버지가 마치 강을 길들이듯 낚싯대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소년은, 강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배워간다.
<행복의 작은 섬> 속 소년의 부모는 매일 싸우기만 한다. 엄마는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에 목소리를 높여 트집을 잡고, 아빠는 엄마가 뭐라든 건성으로 듣고 짜증만 낸다. 소년은 부모가 싸우는 날이면 공원으로 가 홀로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시끄러운 집을 도망나온 어느 날, 소년은 공원을 배회하던 허름한 차림의 아저씨가 하모니카를 놓고 간 걸 보고 아저씨에게 가져
삶이 속일지라도, 작은 행복을 찾아보렴, <행복의 작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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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드라마는 드라마였다. 전날 드라마를 본 기쁨이 다음날 친구들과의 수다로 이어지면 곧 끝이었다. 요즘은 드라마를 DVD로 다시 본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 게시판이며 동아리에서 같이 논다. 쾌락의 집단 리플레이 기능. 그리고 이런 변화는 <매거진t> 백은하 편집장이 책머리에 쓴 대로 하자면 “시대는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그 드라마는 시대를 이끈다”.
<매거진t>가 처음으로 펴내는 ‘t mook’ 시리즈로 황인뢰, 노희경, 인정옥, 신정구 4명의 작가 작품론과 인터뷰를 담았는데, 이들은 시청률로는 판단할 수 없는, ‘시대를 이끄는’ 감수성의 전위부대다. 이 책은 그들이 만든 드라마 보기 즐거움의 리플레이를 극단화하는 시도이자 그들의 꾸밈없는 목소리를 담아낸 채집상자다. 눈매 날카롭고 흉내도 잘 내고 우리가 미처 못 본 걸 쏙쏙 끄집어내 어제 본 드라마의 감동을 되새기다 못해 의미까지 부여해서 안겨주는 친구랄까. 김혜리, 백은하 등이 다시 돌려놓는 드라마
놓쳤던 드라마의 즐거움, 리플레이~ <드라마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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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와 돌이켜보면 권태와 허무야말로 이 사회의 특질이었다.” 김영하의 <빛의 제국>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은 이런 일상성의 사회적 특질을 내면화하고 있다. 일상성이란 지루한 반복을 중심원리로 하는데,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가 다시 내일로 이어지는 쳇바퀴를 우리에게 연상시킨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사연 많은 인물들에게도 일상성의 하중은 압도적인 것이어서, 투명한 역사적 신념이라는 것은 과거라는 이름으로 닫혀 있다. 스스로를 끈 떨어진 스파이로 규정하는 김기영은 물론이거니와, 남한에 잔존하고 있는 그의 동료들, 또 아내와 친구들, 심지어는 그들 모두를 실시간으로 탐색하고 있는 국정원의 박철수조차 이 견고한 무의미로부터 도무지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정말 인간이 그렇게 대단한 것 같으냐?” 이 말은 김기영의 부친이 주체사상을 맹목적으로 암송하던 어린 김기영에게 되묻는 말이다. 이 말의 끝에서 그의 부친은 이런 말을 덧붙인다. “큰 물이
이데올로기를 소멸시킨 일상의 역설, <빛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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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프레슬리가 변비에 시달렸다거나 악보를 볼 줄 몰랐다는 일화에는 친숙한 사람이 많지만, 일관된 관점으로 서술된 그의 생애를 읽을 기회는 드물었다. 1997년작인 이 책은 국내에서 처음 출간된 엘비스 프레슬리의 본격적인 전기다. <하워드 휴즈-숨겨진 이야기>의 공동저자인 전기작가 피터 해리 브라운과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기자 팻 H. 브로스키가 썼다. 프레슬리의 친지들이 고인의 사후 인터뷰의 달인이 될 만큼 프레슬리를 회고하고 파헤치는 프로젝트가 많았던 미국 출판계 사정을 고려하면, 두 저자가 충족시켜야 할 기대치는 꽤 높았을 것이다.
참고문헌을 포함해 787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객관성과 방대한 리서치를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300명이 넘는 관련자를 인터뷰하고 프레슬리의 의료 기록을 포함해 10년간 수집한 자료를 종합했다고 장담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연보, 디스코그래피, 영화와 TV 출연작 목록, 동시대 음악인들에 대한 소개까지 망라한 부록은 매우
로큰롤 스타의 로큰롤 생애, <엘비스, 끝나지 않은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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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오는 섹스를 머리로만 알고 있다. 프랑스에서 정신분석을 배운 그는 프로이트와 라캉에 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순결하기 그지없는 그의 몸은 여자를 모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꿈속에서 남근의 상징물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지만 뮈오는 숫총각이다. 지독한 근시, 못생긴 얼굴. <D의 콤플렉스>는 딱할 정도로 강렬한 기사도 정신에 휩싸인 뮈오의 이야기이다.
마흔살 뮈오는 11년 만에 프랑스에서 중국으로 귀국했다. 스무살 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접하고 열렬한 숭배에 빠진 그는 파리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프로이트 뮈오’라는 별명을 얻는다. 중국 최초의 정신분석가 뮈오가 다시 찾은 중국은 그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기차를 타고 여행하던 그는 아가씨의 발인 줄 알고 빗자루의 손잡이를 어루만지다 흥분해 슈트케이스를 잃어버린다. 이야기는 현재와 가까운 과거, 그리고 뮈오의 내밀한 생각을 오가며 뮈오가 고행에 가까운 여정을 계속하는 이유를
프로이드 추종자의 중국 순회 정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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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술과 개 같은 싸움의 연속일 뿐인 삶이라 해도 죽음보다는 낫다. 아니, 난 영웅이 아니다. 뭐라 해도 그건 변함없다. 그저 골디를 쉽게 잊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을 뿐이다. … 목소리와 맛을 느낄 거고, 그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건 나뿐이었음을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이미 영화화되어 개봉된 <씬 시티>의 원작 코믹스 <씬 시티>가 국내 출간되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기시감을 넘어 코믹스와 똑같은 영화장면들이 선명한 총소리, 거리의 소음과 함께 머릿속에 공명한다. 1권 <하드 굿바이>는 지옥같이 더운 밤, 하룻밤을 같이 지낸 아름다운 여인 골디가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 마빈의 이야기다. 마빈은 골디의 복수를 위해 거리로 나서고, 악의 사슬 꼭대기에 로크 추기경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희거나 검은 바탕에 거친 펜터치로 그려진 남자들이 주먹을 주고받거나 총알을 난사하면 사람들이 입이나 몸에서 검은색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지나칠 정도
강렬한 흑백의 누아르 세계, <씬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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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필자는 그동안 중국 저자가 집필한 교양서를 불신해왔다. 불신의 까닭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촌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특정 주제에 관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인구 대국에 합당하기라도 하듯 지면에 쏟아부어놓는다. 글투는 또 왜 그렇게 지식 계몽의 일념에 불타는지. 이 책 <몸: 욕망과 지혜의 문화 사전>은 그런 불신을 어느 정도 삭감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머리, 머리카락, 얼굴, 눈썹, 눈, 눈빛, 코, 냄새, 체취, 귀, 입, 혀, 피부, 목, 어깨, 유방, 허리, 배꼽, 배, 섹스, 등, 엉덩이, 팔, 손, 다리, 무릎, 발, 뼈. 실로 우리 몸 구석구석에 관한 이야기의 성찬이다. 이런 신체 부위 각각에 관한 동서고금의 이야기를 넘나드는 종횡무진성이 이 책의 큰 특징이다. 이를테면 “가지 끝에 매달린 붉은 장미 같은 그녀의 입술이 여름 날 그윽한 꽃향기 속에서 입맞춤을 한다”는 셰익스피어의 표현과, 중국 서진시대 시인 좌사의 “짙은 연지 붉은 입술에 넘친다
종횡무진, 동서고금의 몸 이야기, <몸: 욕망과 지혜의 문화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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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눈의 작은 곰이 입에 돈을 물고 있다. 작은 곰은 여고생에게 앙탈을 부리며 옷을 벗은 모습을 보여달라고 한다. 상반신을 벗은 모습까지 2만엔. “자는 건… 절대 안 돼!” 소녀의 말에 곰은 눈물을 흘리며 입에 문 돈을 흔들어댄다. 소녀는 앙증맞은 곰이 너무 귀여워 끝까지 거절하지 못한다. 이 상황의 배경은 이렇다. 서기 2050년경, 일본의 의료 기술은 눈부신 진보를 거듭, 귀여운 동물에게 자신의 뇌를 이식하는 것이 유행하게 됐다. 여성을 꼬시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도시는 헌팅을 목적으로 하는 귀여운 동물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최강여고생 마이>는 기발한 상상력과 대담한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는 단편만화집이다. 99편의 단편만화들 중에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도 있고 독립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여고생을 대상으로 한 성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풀어놓은 것들이다. 만화에 등장하는 아줌마가 대충대충 그은 선으로 적당하게 그려버린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적 상상과 엉뚱 유머의 99가지 조합, <최강여고생 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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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항상 부모님이 마련해준 직업을 택할 선택권이 있었다. 나는 교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고, 클로드 샤브롤은 약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프랑수아에게는 가질 만한 직업이 달리 없었다. 부분적으로는 그래서 그는 그 많은 에너지를 가질 수 있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동년배인 시나리오 작가 클로드 드 지브레는 트뤼포에 대한 다큐멘터리영화 <도둑맞은 초상화>(1993)에서 그렇게 말한다. 지브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트뤼포는 영화로서의 삶 혹은 (오직) 영화로 수렴되는 삶을 열렬히 살다간 인물이었다. 이건 “인생, 그것은 스크린이었다”라고 말한 트뤼포 자신도 인정하는 바였을 것이다. 그의 삶이란 영화에 바쳐지는 것이었고 영화 같은 플롯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결국에는 자신이 만드는 영화와 소통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는 역사상 가장 영화적인 인간이었던 그의 삶을 따라가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르주 투비아나(미
오직 영화로 수렴되는 트뤼포의 일대기, <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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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은 밥에 관한 열아홉 가지 이야기를 모은 코믹 무크집이다. <BOB>에서 밥이라는 것은, 쌀밥을 뜻하는 데 국한된 게 아니라 인간이 생존을 위해 섭취하는 것들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맘마>는 루이라는 남자와 루이에게 ‘맘마’를 주는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8년 전부터 같이 살아온 두 사람, 루이는 그녀에게 성인 대접을 받고 싶다. 얼마 전에 애인과 헤어진 그녀를 위로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고 하지만 그녀는 한사코 그를 내칠 뿐이다. 이 기이한 관계의 진실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드러나는데, “나는 그녀의 밥, 그녀는 나의 밥”이라는 말에 함축된, 밥으로 상징되는 관계의 속성이 재미있다. <BOB>의 기획에 참여한 만화평론가 박인하는 여는 글에서 만화의 유통 구조와 도제식 창작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하며 “무크지와 같은 게릴라전이 의미있다고 본다. 지금처럼 주전선(잡지, 연재 시스템)이 붕괴되어 있는 상황에서 서사만화에 힘을
열아홉 ’밥’ 맛을 보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