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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정치다. FTA 문제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노무현 FTA는 좋은 FTA이고, 이명박 FTA는 나쁜 FTA’라는 주장을 펴는 일은 어불성설일뿐더러 위험하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파 신자유주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좌파 신자유주의로 갈 위험을 경고한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보수진영 못지않은 ‘웃기(지도 않)는 짓’ 580종 퍼레이드를 보여주고 있는 와중에 4월11일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진보진영의 정치인들과 진보를 자처하는 유권자들이 갖고 있는 ‘진보’라는 개념에 대한 가치판단이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매일의 뉴스를 봐야 하는 상황만으로 충분히 골치아픈데,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먹고살 궁리가 더해진다. 이번 총선과 나아가 대선이 유권자의 ‘먹고사니즘’이 이념과 계급을 뛰어넘은 환상의 응집력을 보였던 지난 대선의 판박이가 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아니, 근본적
[도서] 먹고사니즘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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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안 좋은 상황에서조차 잘도 적응한다. 사랑받을 타이밍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보다 얻어맞을 타이밍을 알아챌 수 있는 쪽을 선호하게 된다. 적응이란 그런 것. 그래서 게을러진다. 혹은 두려워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사라 베이크웰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기 시작한 이유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커닝해볼까 하는 꼼수였는데 이게 웬걸. 생각했던 것과 내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단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몽테뉴와 그의 주저인 <수상록>을 다룬 책이다. <수상록>을 읽어주는 책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몽테뉴는 어떻게 살았기에 <수상록>을 썼을까”를 말한다(책을 1/3쯤 읽고 나서야 <수상록>을 읽어주는 책이 필요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데, <수상록>은 살인무기로 써도 될 정도로 두껍다는 압박이 있으나 알랭 드 보통을 비롯한 현대 에세이스트들의 고조할아버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평범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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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은 온통 녹색이었다. 걸프전쟁 말이다. <CNN>을 통해 방송된 야간폭격장면은 이후 전쟁영화의 표현양식을 바꾸었다. 전쟁은 게임에 가까워졌다. 무한히. 피와 살을 전시할 수밖에 없었던 베트남 전쟁의 시각적 충격이 반전운동으로 이어졌다면 녹색 화면에서 작게 반짝이는 섬광은 마치 그게 인간의 죽음이 아닌 0과 1의 디지털 세상에 속한 듯 느끼게 만들었다. 미국 <CBS> 온라인 뉴스의 과학기술 전문기자인 피터 노왁이 쓴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는 그 녹색 화면을 다름 아닌 패리스 힐튼의 섹스비디오 유출사건과 연관짓는 데서 출발한다. 패리스 힐튼 섹스비디오에 나오는 속살은 화사한 분홍색이 아니라 온통 에메랄드빛. 야간투시기법으로 촬영된 화면이 부르는 기시감. 단순한 호기심은 파고들수록 소비재 전반에 대한 통찰로 이어져서, 비닐봉지부터 헤어스프레이, 비타민, 구글 어스까지 군에서 출발한 기술에 기반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포르노산업
[도서] 섹스와 전쟁, 손에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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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역시 누군가 24세 넘은 아줌마나 아저씨가 필요해.”
몇번을 읽었는지 셀 수 없지만 읽을 때마다 다른 대목에서 웃게 되는 강경옥의 <17세의 나레이션>인데 이번에는 방학 때 함께 놀러가기로 한 고등학생들의 대화에서 빵 터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17살 때, 35살까지 살고 나면 모든 게 너무 다 정해져버려서 인생이 지겨워질 거라고 생각했고 그쯤에는 죽는 게 좋겠다고 결론냈었다. 선생님들이(생각해보면 당시 신생학교 선생이었던 그들 태반이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우리를 아련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너희는 아무것도 안 해도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할 때 코웃음쳤고 “공부만 하면 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줄 아냐”는 훈계를 끔찍하게 경멸했었다. <17세의 나레이션>의 주인공 세영이는 상담에 응해준 대학생 오빠에게 털어놓는다. “17살도 세상은 살기 힘들어요.”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애틋한 연애물이었지만 <17세의 나레이션>은 국산 청소년 소설이 부재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17살도 세상은 살기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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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책은 길고도 다채로운 변천사를 가졌다. 90년대 초반에는 <세계를 간다> 시리즈가 바이블이었다. 일본 책을 중역했네 지도가 안 맞네 해도 대안이 없었다. 90년대 중반이 지나 배낭여행이 활성화되면서 가이드북이 하나씩 늘었고 2000년대는 여행에세이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직장에 사표를 쓰고 1년쯤 살다온 런던, 뉴욕, 파리 이야기라든가 하루에 1달러로 생활하는 타이, 베트남, 인도 이야기라든가 쇼핑을 위해 떠난 도쿄, 홍콩, 뉴욕 체류기라든가. 워낙 책이 많이 나오니 읽을 만큼 읽었다고 생각해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 한 여행에세이라는 장르는 늘 봄볕 드는 양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게 된다.
<열대식당>은 타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에서 먹은 이야기를 모았다. 매연 그득한 길거리에서 사먹는 화려한 맛(달고 시고 매운)의 한 접시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그 후끈한 공기까지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순전히 먹기 위해 방문
[도서] 떠나려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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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은 고유명사였지만 일반명사화되었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왓슨 역할이라고 하면 비중있는 조연이라는 뜻도 되고,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주인공인 남자 탐정과 공수관계를 형성하며 유사 연애를 지속하는 캐릭터라는 뜻도 되고, 탐정의 천재성을 기록하는 화자라는 뜻도 된다. 하지만 스릴러/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에게는 왓슨이 필요없다. 주인공의 파트너는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데 그 파트너가 죽는 일도 있으며 대개의 경우 그는 ‘고독한 이리’다. 그는 불행한 과거사(특히 부모에 얽힌)로 번민하고, 헤어진 여자를 못 잊고, 술을 고래처럼 마신다. 그의 능력은 인정받기보다는 질시와 모함의 대상이 되며 묘하게 섹시한 구석이 있어 멀쩡한 여자들이 기꺼이 그의 품에 안긴다. 노르웨이의 소설가이자 뮤지션이자 저널리스트이며 경제학자이기도 한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도 그런 ‘고독한 이리’과다. <스노우맨>은 9권까지 나온 이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인데 데니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이 남자 섹시하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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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퀴즈. 답을 맞혀보시라. 스티브 부세미가 순진남으로 등장함. 영어 원제와 한국 개봉명의 느낌이 180도 가깝게 차이남. 스칼렛 요한슨이 주인공 친구로 나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에 만들어졌음. ‘발칙한’, ‘소녀’, ‘성장’ 같은 태그를 달고 다니는 <주노>의 언니인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원작 <고스트 월드>의 대니얼 클로즈의 2010년작 그래픽 노블 <윌슨>이 출간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하릴없이 동네 ‘죽순이’로 시간을 보내며 투덜거리고 스토킹하고 섹스하던, 가짜에 대한 예민한 감식안을 지닌 두 소녀 이니드와 레베카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윌슨>의 주인공 윌슨은 아저씨이긴 해도 소녀들의 도플갱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한 페이지에 하나의 에피소드, 하지만 첫장부터 끝장까지 이어지는 내러티브. <윌슨>의 첫화 ‘우애’의 첫 대사는 “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인데 페이지 마지막 칸에 가면 윌슨은 분노하
[도서] 위대한 피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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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고민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고 내게는 하나보다는 무한대에 가까운 고민이 있는데 그중 으뜸은 게으름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고 했으니까 고민이라고 부르짖어봐야 목만 아프나 게으름은 아무래도 순전히 내 탓인 것 같아서다. 자기 관리에 능하고 부지런하고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으뜸 신붓감이 되고 싶은데 현실은 시궁창! 엄밀히 말해 치명적으로 게으르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매주 잡지 한권씩을 만들고, 한때 ‘알바고양이 다혜뽕’이라고 불릴 정도로(<알바고양이 유키뽕>이라는 일본 만화에서 따왔다) 각종 아르바이트 귀신으로 살았고, 한달에 읽는 책이나 보는 공연, 듣는 음악, 만나는 사람 수 등 뭘로 보나 ‘게으른’ 사람이라고 치부하기엔 다이어리가 심하게 빽빽하니까. 바로 거기에 함정이 있다. 나는 정말 해야 한다고 지난 몇년간 생각한 딱 한 가지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을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 스스로 해야 한다고 다짐한 그 일로부터 도망칠 수만 있다면 달까지 다리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게으름,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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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욕은 무엇이든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승부욕. 19세기 후반 혜성같이 나타나 기막힌 SF소설들을 쓴 H. G. 웰스를 이기겠다는 결의. 한 사내가 웰스에게 자신의 소설을 들고 가서 평을 청한다. 웰스의 <타임머신>을 오마주한 소설로 2000년, 로봇이 사람보다 더 막강한 종족이 되어 사람과 로봇이 서로 싸운다는 설정. SF 장르엔 흔한 얘기로 잘만 썼으면 대박일 텐데 안타깝게도 사내의 소설은 조잡하고 웰스는 퇴짜를 놓는다. 그러자 상처받은 남자는 소설로는 졌어도 현실에선 이긴다고 큰소리친다. 방법은 자본주의. 남자는 런던에서 시간여행을 시켜준다며 사업을 시작한다. 탐험가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시간의 틈새를 발견했다, 크로노틸루스라는 시간열차를 타고 가면 된다 어쩐다. 사실은 조잡한 세트장을 하나 만들어놓고 미리 고용한 뜨내기들을 분장시켜 대충 싸움을 붙여놓은 다음 손님들을 부르는 것. 사업은 대박난다. 비뚤어진 방식이긴 하나, 어쨌건 웰스에게 충격을 선사하는 데
[도서] 시간여행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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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참 재미없다. 프랜차이즈 전성시대인지라 동네마다 지하철역이 있는 사거리 풍경은 붕어빵처럼 찍어낸 듯 똑같고, 젊은 배우와 가수들의 얼굴은 무엇의 전성시대 때문인지 모르지만 엇비슷한 인상이고, 사람들의 고민 역시 다채로운 것과 거리가 멀어서 돈만 있으면 뭐든 해결될 것 같은데 내가 가진 돈은 충분치 않다는 것으로 수렴된다.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을 알아보는 기준은 무조건 돈이다. <시크릿 가든>의 말을 빌리면 “키 크고 돈 많고 잘생기면 다 오빠”다. 며칠 전에 옛날 드라마들 얘기를 나누다, 그때 그 남자들 지금 세상이었으면 주인공 절대 못했겠다며 웃은 적도 있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채시라는 끝내 배운 남자 박상원이 아닌 빨치산 최재성을 선택했고,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이 서 있던 자리는 배운 남자 박상원 곁이 아닌 결국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질 최민수 곁이었다. TV 앞에 앉아서 엄마와 딸이 “저러면 안돼”라고 입으로 합창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그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오빠,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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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소룡 워너비의 이야기. 시작은 어디선가 본 듯한 시끌벅적한 소년 성장담. 깡촌 동천읍에 사는 삼촌은 액션스타 이소룡을 동경해서 매일같이 무술을 연마한다. 건달이 삼촌에게 겁을 주려고 콜라병으로 배를 긁었는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병원에 실려갔다는 식의 뻥튀기 일화들이 이어진다. 삼촌은 이소룡이 다 못 찍고 죽은 유작 <사망유희> 오디션을 꿈꾸지만, 희망은 어이없이 좌절되고, 그 빈자리에 삼청교육대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소박한 외피를 후다닥 벗고 꿈틀거리는 생살을 드러낸다. 이야기 하나, 으악 소리 한번 내고 바로 죽는다는 뜻의 으악새 배우로 활동하며 왕가슴 미녀배우를 사랑하는 삼촌과 영화계. 이야기 둘,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 중산층으로 자리잡은 변호사와 직장인 조카 형제. 이야기 셋, 정치판과 손잡고 동천읍 조직폭력계를 장악한 조카의 친구 종태. 이 굵직한 세 이야기가 서로 꼬이면서 7080 한국 현대사의 줄기를 만든다.
수많은 이야기꾼 가운
[도서] 액션배우 7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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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의 마지막 소설집이란다. 한국 문학의 대모, 소설의 고향, 칭찬은 차고도 넘치니 여기서는 소설집에 실린 몇몇 문장들을 소개할까 한다.
“정욕과 물욕이 비기고 텅 비는 걸 느꼈죠.”(2009년작 <빨갱이 바이러스>) 느지막이 남편을 떠나보낸 뒤, 큰손자의 젊은 영어선생에게 끌리는 여자. 그녀는 장례식장에서조차 저를 달래는 영어선생의 손길을 즐긴다. 60대 중반에 다시 찾아온 욕정. 하지만 영어선생이 사업자금을 빌려달라고 하자, 욕정은 순식간에 수그러지고 현실로 컴백한다.
“80년대 대학 들어간 애가 세상이야 어찌 돌아가든 알 바 아니라는 듯이 공부만 팠다는 건, 제 보기에는 인간성이 의심스러워요.”(1993년작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내 아들은 80년에 대학생되어 데모하다 그만 죽고 말았다. 그런데 형님 아들은 무사히 대학 졸업하고 취직도 잘했다. 나는 형님 앞에서 인간성 운운하며 죽은 아들을 치켜세운다. 부모답게 허영심을 채우고픈 욕심
[도서] 리얼리티 바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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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만 들어도 몸이 “드러눕는다”로 반응한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일은 크나큰 모험이다. 읽고 나면 (누가 들을세라) 작게 한숨지으며 드러눕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후기 작품들은. 그는 단정지었다. “사람들 사이에는 다리가 없다.” 사교의 기술이 나날이 늘어가는 직장생활 11년차의 나를 보고 있자면 <행인>의 이런 문장이 자막처럼 머릿속을 흐른다. “손님들은 웃는 기술을 어디서 배워왔는지 멋들어지게 웃었다.” 중년이 된 선배의 가난한 룸펜 친구들(의심할 바 없이 글쓰는 사람들이다) 얘기를 하염없이 듣던 날도 나쓰메 소세키가 생각났다. 그는 실제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렵게 한 부탁인 줄은 알지만 지금은 빌려줄 돈이 없네. 가계비도 모자랄 지경이니 오죽하겠나. (중략) 지갑을 보니 1엔이 있으니 이걸로 술이라도 마시고 집주인을 퇴치하게.”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에 대한 이근화의 시 <유리문 안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계절은 다시 가고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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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전생에 죄지은 사람이라 했다. 글을 쓸 여건이 안돼도 기어이 쓰고야 마는 작가 일반의 습성을 가리킨 말이리라. 그런데 한유주의 신작은, 글쓰기 자체에 대해 머뭇거린다. 소설의 역사가 이토록 길고 작품들이 박물관의 유물들처럼 쌓여 있는 마당에, 새롭게 뭔가를 쓴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질문. “베끼고 베껴지는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 그래서 작가는 본인이 영향을 받았을 고전들, 서사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자연사 박물관>은, 극장 주위에서 만난 두 남자의 이야기인 베른하르트의 단편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새로 쓴다. 원작에선 이름 없던 남자 둘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그들의 가족사를 상상한다. 또 숙부의 겉옷에 대한 몽상에 잠기는 <머리에 총을>은, 자살한 숙부의 비옷에 대한 베른하르트의 단편 <비옷>을 떠오르게 한다.
미래는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소설은 산뜻하고 경쾌한 톤을 잃지 않지만 속내는 울
[도서] 소설은 죽고 나는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