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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은 극장용 국산 로봇애니메이션의 전성기였다. 80년대 초반 초등학교를 다닌 나는 ‘여름방학 특선’이라는 광고문구가 들어간 로봇애니메이션은 한편도 빠짐없이 극장에서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깜빡하고 늦잠을 자는 바람에 선착순 100명에게만 주는 <스페이스 간담 V> 프라모델을 손에 넣지 못해 심통이 났던 기억도 있다. 언젠가는 국산 로봇애니메이션의 계보를 한번 정리해보겠다고 시도한 적도 있는데, 어렴풋한 이미지와 제목만으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찾을 도리가 없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만 했다. <로보트 태권브이>라는 전설적인 하나만 곱씹으며 한국 로봇애니메이션의 역사(그리고 흑역사)를 잊어가는 건 도리가 아니니까 말이다.
다행히 우리도 국산 로봇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되짚는 근사한 역사책을 하나 갖게 됐다. 페니웨이의 <한국 슈퍼 로봇 열전: 태권브이에서 우뢰매까지>는 1968년작 <황금철인>부터
[도서] 한국 로봇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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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영화를 보면 꼭 이런 순간에 괴물이 나타나더라 싶은, ‘평화’라는 말을 그려놓은 것 같은 여름밤의 천변풍경. 출근시간에 늦은 양 빠르게 걷는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로 때릉때릉 자전거가 지나가고, 곳곳의 벤치에는 DMB로 드라마를 보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있고, 배드민턴 코트 구석에는 누가 버리고 간 셔틀콕이 비온 날의 목련처럼 가장자리가 허물어진 채 가만히 누워 있다. 술을 마시던 아저씨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종종 벌어지는데, 들어보면 싸우는지 기분 좋게 흥분한 건지 구분할 수가 없을 때도 있다. 이근화의 새 시집 <차가운 잠>에 실린 <천변 자전거 클럽>은 며칠 전 본 그 장면을 오려낸 것 같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검은 타이츠를 신고 오징어 같은 다리를 구르며 한쪽 귀에서 다른 쪽 귀를 궤뚫고 지나간다 걷는 나는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그 뒤에 사운드트랙처럼 걸려 있는 이런 광경. “삿대질과 멱살잡이의 뒤에는 얼큰한 막걸리 한잔이 숨어 있다 꼭 시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그런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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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영화가 끝난 뒤 관객이 그 순간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방금 이야기를 마무리지은 이 영화에 대해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는 것 아닐까? 영화를 통해 내가 느끼고, 네가 생각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결과적으로 영화와 소통하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그렇게 영화를 두고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누군가의 생각과 경험, 느낌을 품게 된 영화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채 더 값지고 의미있어질 것이다.
2009년부터 꾸준히 관객과 영화와의 소통창구를 열어주었던 CJ CGV 무비꼴라쥬 시네마톡이 그간의 대화들을 정리해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 한편의 영화를 상영한 뒤 감독, 평론가, 배우 혹은 다양한 인사들을 초청해 영화에 대해 웃고 떠들었던 지난 이야기들이 500페이지가 넘는 다소 엄청난(?) 분량에 알차게 담겨 있다. 무비꼴라쥬 개봉작을 평론가와 기자, 감독, 배우들과 감상한 뒤 이야기를 나눴던 시네마톡, 예술을 주제로 한 영화들을 선정해 그 안에 담긴 예술세계에 대
[도서] 영화에게 말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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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목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마음껏 욕망하며 살아보니 괜찮더라는 뜻으로 들렸다. 욕망 그대로의 삶을 선언하는 책들은 차고 넘친다. 어릴 때 여행을 많이 다니라거나, 직장을 때려치우고 도전하라거나 하는 말들이 기쁘게 들리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따로 있다. 어릴 때 여행을 다니는 것도 돈을 벌 능력이 있거나 부모가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만의 일을 하는 것도 그만큼의 능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다. 책을 읽고 나서야 저자의 관점을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 <욕망해도 괜찮아>는 욕망을 감추고 살아야만 하는 사회가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고, 왜 우리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회고담이다.
<욕망해도 괜찮아>는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창비 사이트에서 연재한 <색, 계>라는 칼럼을 묶은 것이다. 언제나 ‘색’을 갈구하지만, 또 언제나 ‘계’의 영역에서 색을 향한 욕망을 감추고 살
[도서] 계를 넘어 색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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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인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잠깐, 정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인이 한 말도 아니다. 프랑스의 파리 정치대학과 파리 공립경영대학원 MBA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프레데릭 마르텔이 쓴 <메인스트림>은 오늘날 국경을 넘어 소비되는 수많은 문화 ‘상품’, 하나같이 ‘미국과 같은’ 메인스트림 문화를 만들고자 애쓰는 이들에 관한 방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였다. 미국 할리우드의 사례를 분석하는 데서 시작해 발리우드로, 아프리카로, 그리고 아랍세계의 메인스트림으로 등극한 알자지라로 확장되는 화두 그 자체다. 한국은 여기서 한류의 맹아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의 성공사례를 통해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들여다본다. 566쪽에 달하는 이 책에서 한국이 중점적으로 거론되는 대목은 20여쪽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서 한국 대중문화산업의 성공 전략과 스크린쿼터는 제3자의 눈으로 분석된다. 예컨대 놀랄 정도로 젊은 배우들에 대한 경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지만 스크린쿼터 축소의 내막에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문화로 밥벌이하는 이에게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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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가토는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것을 뜻하는 음악 용어다. 권여선이 15년 만에 내놓은 장편 <레가토>는 사라진 여자 오정연에 대한 기억을 찾고자 과거 30여년의 이야기를 쉼없이 이어간다. 이야기는 1980년 광주항쟁 때 돌연 자취를 감춘 오정연의 행방을 그녀의 동생 하연이 30년이 지난 뒤에야 좇으며 시작된다. 그녀의 행방에 대한 첫 단서는 오정연이 사라졌던 30여년 전 존재했던 전통연구회 서클 카타콤에 있다. 표면적으론 전통연구회이지만 독재타도를 외치던 젊은이들이 모였던 그곳에 주인공 박인하와 사라진 여자 오정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난 뒤 당시 서클의 회장이던 박인하는 의원이 되었고 그를 따르던 선후배들도 모두 한자리씩 하며 옛 기억은 그저 추억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하연이 등장해 오정연에 대한 수소문을 하면서 그들은 과거의 기억을 다시 맞춰보기 시작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들이 맞춰본 기억의 조각들은 ‘레가토’란 용어처럼 부드럽게 이어지
[도서] 아팠던 시간을 위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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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라고 시작하는 얘기를 꺼냈다가 그 시점이 무려 15년쯤 전이었다는 사실에 당황할 때가 있다. 피터 러브시에 대해 설명하려다 보니 그렇다. 옛날에, 그러니까 15년쯤 전에 가장 좋아하던 미스터리 작가 중 하나가 바로 피터 러브시였다. 해외여행을 갔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갓 발간된 <블러드하운드> 하드커버를 사온 기억이 선명하다. 무용한 개인적 추억담까지 꺼내가며 옛날 운운하는 까닭은 새로 출간된 <다이아몬드 원맨쇼>를 읽다가 그 올드패션드함에 웃음이 나서다. 한국에서 이제 출간되었다고 해도 1992년 책이다. 지금 와 읽으면 70년대 소설 같이 멀어 보인다. 팬암항공기니 하는 추억의 고유명사들이 등장해서만은 아니다. 572쪽인 이 책의 사건 진행속도는 더디기 짝이 없다. 그것도 이유가 있다. 허리가 50인치라는 피터 다이아몬드가 주인공이니 빨리 움직이기란 불가능하다.
<다이아몬드 원맨쇼>는 피터 러브시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두 번째 책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그 올드패션드함에 웃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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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목이 NG다. 혁명을 기도하라니. 너무 노골적이고 선동적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집어드는 걸 망설일 필요는 없다.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유신론자건 무신론자건 혁명에 관심이 있건 없건 모두가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니까.
<혁명을 기도하라>는 예수의 생애를 더듬으면서 대한민국의 기독교 문화가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지를 고발한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선 ‘혁명의 예언자’ 예수의 삶을 훑는다.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얘기 아니냐고?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오해하고 있었던 이야기, 현대적으로 재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를 알기 쉽게 들려주는 게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이를테면 예수가 몸소 무소유를 실천하며 사적 소유의 철폐를 외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목. “예수는 자기 시대의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우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통찰하고 있었다. 예수는 그것을 ‘맘몬’ 즉 재물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6장 24절을
[도서] 예수 같은 지도자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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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자체가 도시로 화(化)했다고(도시가 르네상스로 화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일컬어지는 피렌체에 가면서 목표를 딱 두 가지 세웠었다. 미켈란젤로와 프레스코화. 미켈란젤로로 따지면 결국 바티칸에 가서야 “다 보았다”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지만 프레스코화는 역시 피렌체였다. 지금은 산 마르코 미술관이 된 산 마르코 수도원에는 집회실과 승방에 프레스코화가 그려졌다. 방이 아니라 무대, 그림이 아니라 태초에 있었던 말. 산 마르코 미술관 2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돌계단을 오르자 계단 위 벽에 프라 안젤리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수태고지>가 드러났다. 도판으로 숱하게 봤는데 불가사의할 정도로 실물이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면 그 주제부터가 불가사의 아닌가.
‘수태고지’는 기독교 회화에서 가장 인기있는 주제 중 하나다. 라틴어로 쓰인 성경만이 존재하던 시절에 화가는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 대중에 전달하는 역할이었고, 당연히 스토리텔링의 시각화를 위한 다양한 상징이 등장했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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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두 가지 점에서 놀라운데, 하나는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다는 점(400페이지가 넘는다)이고 다음으로는 표지의 ‘K·POP’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크게 인쇄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최근의 아이돌 그룹만 다루지 않는다. 제목과의 연관성을 생각할 때 1990년대가 비중있게 다뤄질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People Who Make K-POP’이란 영문 제목이 힌트를 준다. <K·POP 세계를 홀리다>는 21세기의 한국 팝을 말하기 위해 과감하게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다음 천천히 내려오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니 당연히 두꺼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두께에 비해 각 항목들이 빡빡한 건 아니다. 연대기로 나뉜 각 장은 당대에 활동하던 음악가들과 대표 앨범을 다루는데, 그 내용은 금방 읽을 수 있을 만큼 압축적이다. 저자 김학선의 말대로 이 책은 ‘일종의 안내서’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인지 등장하는 음악가들의 면면이 다양하다는 장
[도서] 한국 대중음악을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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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여섯잔 정도 마시고 난 뒤에는 동생에게 전화하는 것이 괜찮은 생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소설의 첫 문장이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웰스 타워의 단편집 <유린되고 타버린 모든 것>에 실린 <삶에서 한 걸음 물러서기>의 첫 문장은 알코올 기운 묻어나는 목소리로 “왜, 그런 거 있잖아?” 하듯 동생과의 불편한 관계를 은근한 듯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세살 어린 남동생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들. 예컨대 동생은 형이 함께 춤을 추었다는 이유만으로 꼬여낸 여자아이와 키스까지 해놓고는 잔뜩 실망한 뒤 몇년이나 지나서 별볼일 없는 경험이었음을 토로했다. 마흔살 언저리에 다다른 형제의 간극은 더욱 벌어졌다. 그래도 “나는 스티븐을 사랑한다”. 살아 있는 유일한 가족이니까. 행간에는 ‘나’의 저돌성과 무신경함이 묻어난다. “몇년 동안 나는 부동산 투자로 꽤 돈을 벌었다. 그리고 왜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그것 때문에 스티븐은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그저 덤덤하게 바라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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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란 <E.T.>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영화란 외계에서 온 것과 같은 새로운 매체라는 것입니다.”(이명세 감독)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수없이 많은 대중에게 내 일기장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것, 또는 끊임없이 연애편지를 보내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송해성 감독)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예술대학 마스터클래스 강의 내용이 <연출 수업>이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임권택, 정지영, 김홍준, 이현승, 권칠인, 한지승, 김대승, 정윤철, 이충렬, 양익준, 배창호, 김유진, 이명세, 강우석, 김영빈, 김의석, 장현수, 송해성, 류승완, 조진규, 이정범. 총 21명의 영화감독들의 육성이 이 두권의 책에 담겼다. 그런데 <연출 수업>을 통해 대단한 연출 비법을 전수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 곤란하다. 겉보기엔 그렇지 않지만(책 표지도 영화과 교재처럼 투박하고 책 자체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연출
[도서] 영화를 향한 사랑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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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에 실린 사진을 보자. 처음에는 어떤 노년의 부인이 웃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턱 아래쪽이 제거되고 얼굴 하단이 홀쭉해지면서 그런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일흔살이 되기 직전에 에버트는 갑상선암에 걸렸고 세 차례의 수술 끝에 입으로는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할 수 없게 됐다. 에버트가 심각한 병에 걸렸고 그 때문에 은퇴했다고 몇년 전에 들었다. 하지만 2012년 4월26일 현재에도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에버트는 하루 전인 25일에 존 쿠색이 주연을 맡은 <더 레이븐: 에드가 앨런 포의 사라진 5일>에 관하여 리뷰를 쓰고 별 두개를 주었다. 그는 영화에 관한 글을 멈추지 않고 있다.
<로저 에버트: 어둠 속에서 빛을 보다>는 그의 자서전이다. 그러고보니 영화평론가의 자서전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한 필자는 이 책의 서평을 쓰며 “에버트보다 훨씬 더 자기도취적이고 준유명인사인 평론가 폴린 카엘조차도 감히 자기
[도서]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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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Y_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는 수도 없다. 뒷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경위는 기자, 경찰, 검찰, (정신과)의사들을 통해서였다. 직접 “내가 만났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그 직종에서 돌고 도는 도시전설 같은 것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건으로 특종을 했던 신문사 입사 동기가 들려준, 너무 끔찍해서 있는 그대로 말해줄 수 없다며 머리 다리 다 잘라 잔뜩 토막친 이야기조차 잔인했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교도관은 한동안 곡기를 끊었다던가. 그로부터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Y_의 이름은 과거가 되었다. 새로운 연쇄살인자들이 등장했다. 이제 연쇄살인이니 프로파일링이니 하는 단어들은 일간지 사회면에서 자주 출몰한다.
‘그들’. ‘그들’은 어떤 이들일까. 양육환경에 대한 분석을 대표적으로, ‘그들’을 어떤 범주로 묶고 한정하려는 움직임을 볼 때면 그건 그저 인간의 바람이 아닐까 궁금해진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 ‘그들’은 그렇게 되었고, 나는 그렇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사이코패스의 마음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