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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논객’으로 주목받았던 한윤형이 이제 20대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의 또래들, 후배들에게 달라진 것은 많지 않아 보인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그는 20대의 문제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그들의 부모 세대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적나라하게 요약한다면 ‘집값’은 높이고 ‘사람값’은 낮추는 체제를 운용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 체제를 지지해왔던 중산층 자신들의 자녀조차 월급으론 독립을 꿈꾸지 못하게 된 ‘멋진 신세계’다.”
[도서]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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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있게, 능청맞게 이야기를 풀어갈 줄 아는 이기호의 새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키득거릴 준비를 하고 맞이해야 하는 책인데, 이번에도 그의 감각은 여전하다. 제11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을 비롯한 여덟편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내겐 너무 윤리적인 팬티 한 장>과 같은 제목짓기로 읽는 이를 유혹하는 기술 역시 여전한 듯하다.
[도서] 제목으로 유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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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와 호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미스터리에서는 사건의 해결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역할을 하는 일이 많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소설 속에서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지만 이야기 속 탐정(역할의 인물)과 책 밖 독자는 그 죽음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을 얻고, 나아가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다. 호러에서는 어떤 죽음도 결국 숙명일 수밖에 없음을 모두가 납득해야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니 사건의 해결은 즉, 이야기를 영원히 여는 역할을 한다. 죽음은 진행 중이다. 아무도 도망갈 수 없다. 공포영화의 엔딩장면이 되살아난다, 혹은 다시 활동을 개시하는 악당인 이유는 간신히 살아남은 주인공에 대한 위협보다는 안심하는 관객을 위협하기 위해서다.
소네 게이스케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치매 노모를 돌보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환갑 즈음의 남자와, 사라진 애인 때문에 폭력조직에 상시적으로 위협받는 형사와, 거액의 빚을 진 뒤 출장 매춘업소에서 일하게
[도서] 현실은 밤그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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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악동 신드롬
그들이 한국에 없는 동안에도 그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악동뮤지션의 새 자작곡 <아이 러브 유>(I Love You)가 4월24일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차지했다. SBS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 O.S.T에 수록된 이 곡은 악동뮤지션만의 귀엽고 사랑스런 멜로디에 재기발랄한 가사가 더해진 사랑노래다. 악동 멤버 이수현이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배우 이현우가 뮤직비디오에 흔쾌히 출연했다는 후문. 이래저래 여기저기 악동 홀릭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이토록 영화적인 미술 작품이라니. 영화처럼 하나의 장면 속에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는 미술 작품들을 조명하는 전시 <미장센: 연출된 장면들>이 6월2일까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다. 벨라스케스의 명화 <시녀들>을 재해석한 이브 수스만|루퍼스 코퍼레이션의 영상 작품부터 “사진 한장짜리 영화”라 불리는 그레고리 크루드슨의 작품까지, 미장센이 돋보이는 국내외 작
[culture highway] 멈추지 않는 악동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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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거의’ 하지 않게 되고 결국 ‘아예’ 하지 않게 되는 데는 두번의 선거면 족했다. 지난해 총선이 전자, 대선이 후자였다. 트위터를 하면서 평소 오프라인으로 어울리지 않던 사람들을 팔로윙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게 큰 착각임을 새삼, 그러나 절실히 깨달아서다. 트위터로 말을 트게 된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유형의 사람들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던 것뿐이었다. 얼굴을 몰라도 성향은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그 의견이 정말 세상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일. 1분도 쉬지 않고 세상의 흐름에 발맞추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트위터 이용자들의 흔한 착각. <의도적 눈감기>에는 이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비유가 등장한다. “나이가 들수록 같은 경험, 같은 친구, 같은 생각들이 더 많이 축적되고 강물은 더 빠르고 더 거침없이 흐르게 된다. 저항은 점점 더 줄어든다. 저항이 없을 때는 쉽고 편안하고 확신이 선다. 그러나 동시에 강바닥의 옆면, 즉 강둑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차라리 모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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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3분의 1가량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쓰였다. <로미오와 줄리엣>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그의 이 ‘이탈리아 희곡’들을 두고 오랜 세월 비평가들은 작가가 이탈리아에 가보지도 않고 책상 앞에 앉아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단언한다. 셰익스피어 연구가였던 리처드 폴 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이탈리아 장소들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해석해 들려준다.
[도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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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배수아, 등단 20주년 그리고 2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폐관을 앞둔 서울의 유일무이한 오디오 극장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는 스물아홉살의 김아야미를 내세워 기억과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권말에는 소설가 김사과의 <꿈, 기록>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김사과가 쓴 <꿈, 기록>은 ‘한국어 산문 문학이 주는 최상의 엔터테인먼트’라고 이 책을 권하는 추천사이자 ‘지연과 반복과 몰입이 가져다주는 쾌락’이라는 감탄어린 리뷰.
[도서] 기억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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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세 번째 책이 나왔다. 복잡한 현대예술사를 총체적으로 정리하면서,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과 철학 개념을 풀이하고 있다. <씨네21>에 연재되었던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를 읽었다면 더 잘 읽힐 책. 전후 예술계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주요 비평가들의 평론을 중심으로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의 바탕에 깔린 사유를 명료하게 드러냄으로써 현대예술의 지형도를 한눈에 파악하도록 돕는다.
[도서] 현대예술의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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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진짜 취향은 ‘남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누가 뭐라 하든 나에게 좋은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는 단호한 김경의 이러한 말에 동의한다면 좋아할 책이고 동의하는 대신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운운하며 토를 단다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을 책이다. 하지만 취향을 떠나 손에 잡으면 글에 쏙 빨려들게 만드는 맛이 있다.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는 <뷰티풀 몬스터>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의 저자이자 전직 패션지 피처에디터이며 몇주 전까지 <씨네21>의 ‘쏘왓’ 지면에 칼럼을 연재한 김경의 새 산문집이다. 여러 시기에 걸쳐 쓴 글을 새로 손보아 실었다는데, 모두 한달 전에 쓴 글처럼 가깝게 읽힌다. 사랑, 패션, 라이프스타일, 사람, 사회라는 다섯 가지 큰 주제 아래 글이 묶여 있지만 모두 취향이라는 하나의 ‘깔대기’에 대한 글이다. 그리고 그 차이에 대해 쿨한
[도서] 사랑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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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9일은 씨네데이
채널 고정! 마이 캐치온. <씨네21>이 창간 18주년을 맞아 통 큰 선물을 준비했다. 5월19일까지 하루 동안 마이 캐치온에서 무려 300편의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 <맨 인 블랙3> <알투비: 리턴투베이스> <연가시> <언터처블: 1%의 우정> <내 아내의 모든 것> <행오버2> <미확인동영상: 절대클릭금지> <마다가스카3: 이번엔 서커스다! 3D> 미드 <스파르타쿠스> 등 놓칠 수 없는 추천작 10편도 포함된다. <씨네21> 홈페이지에서 QR 코드만 찍으면 된다.
로린 마젤 & 뮌헨 필하모닉
‘살아 있는 20세기 지휘계의 마지막 거장’이라 불리는 지휘자 로린 마젤과 정통 게르만 사운드를 보전해온 세계 최정상급의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닉이 4월21일과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 베토벤의 <코
[culture highway] 5월19일은 씨네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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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만난 적 없는 고등학생 페이스북 친구로부터 날아온 메시지.
“변호사님! ㅎㅎ 뭐 하나 여쭙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아이 생일 때 선물할 만한 소설책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니 조금만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
하,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 애잔한 마음이 들게 하는 녀석. 내가 해봐서 아는데, 18살 때 좋아하는 여자아이 생일에 책 선물 같은 거나 하고 있다가는 덕후 소리 듣고 차이기 십상이란다. 하지만 의뢰인의 질문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변호사의 본분. 즉답을 보낸다.
“고등학생이군요.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권해드립니다.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나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선물하기 좋습니다. 여자 친구 생일 즐겁게 지내세요.^^”
질문을 한 학생처럼 나도 어린 시절 어떻게 좀 잘되기를 바라면서 교회누나와 책을 주고받던 기억이 있다. 책을 선물할 때는 누구나 어떤 의미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책 선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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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장르소설 비평가와 편집자들이 추려 뽑은 단편 컬렉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마이클 코넬리, <좀비>의 조이스 캐롤 오츠, 미국 드라마 <트루 블러드>의 원작인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의 샬레인 해리스 등 영미권 장르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단편소설이 <밤과 낮 사이1, 2>에 모였다. 다소 이름이 낯선 작가들의 작품으로 가는 흥미로운 문이 되어줄 작품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도서] 영미권 장르문학 단편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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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 라는 말에서 가능성의 울림을 느끼는 독자에게 권한다. 이장욱, 황정은, 김미월처럼 이름만으로도 책을 들춰보고 싶게 만드는 작가들의 단편들을 만날 수 있다. 신춘문예 등단작 <거리의 마술사>로 젊은작가상 대상까지 수상한 김종옥은 앞으로 주목해야 할 작가. 집단따돌림에 시달리던 학생의 죽음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한편의 소설이 현실의 아픔에 해줄 수 있는 위안을 믿게 된다.
[도서] 젊은 작가들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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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수 영취산에는 진달래가 산등성을 붉게 물들인다. <신동엽 시전집> 맨 앞에 실린 <진달래 산천>은, 그 호화로운 붉음이 피의 붉음이었던 시간을 잊지 말라는 청에 다름 아니다. “잔디밭엔 담뱃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라고 끝나는 시 옆에 이 시의 첫 수록 지면이 <조선일보> 1959년 3월24일자라는 게 농담처럼 들린다. <껍데기는 가라>처럼 수없이 읽고 들은 시가 여전히 새롭게 정신을 일깨운다는 감동도 느껴보시길.
[도서] 수없이 읽고 들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