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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 재난을 대비하는 580만 가지 방법 중에 관련책 읽기는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36계 줄행랑은 비단 전쟁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재난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장을 가능한 한 빨리 빠져나가는 일만큼 확실한 안전책이 또 어딨을까. 그런데 <생존 지침서>라니. 하긴, <세계대전Z>를 쓴 작가 맥스 브룩스는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도 펴냈었다. 좀비 천지의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을 전수한(!)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에 비하면 <생존 지침서>는 은근히 써먹을 데가 많아 보인다. 허리케인, 태풍, 토네이도, 홍수, 쓰나미, 지진, 화산, 눈사태, 산사태, 산불, 가뭄과 폭염 등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처하는 법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해, 전염병과 납치, 전력 공급 중단 상황 대응법을 전하고, 나아가 건강한 몸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대단원은 응급처치의 기술이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도서] 불필요한 책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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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초통령 강림
한때 팝계의 초통령으로 통했으나 이제 우리에게는 싸이와 빌보드 1위를 다툰 보이 싱어로 더 익숙한 저스틴 비버. 그가 ‘빌리브 월드투어’의 일환으로 10월10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진다. <베이비> <보이프렌드> 등 히트곡들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다. 공연은 월드투어의 프로덕션과 동일한 수준으로 진행된다니 기대해봐도 좋겠다. 예매는 이미 진행 중.
신파를 벗고 장르를 입다
‘장르 컬렉션’을 꾸준히 제작 중인 한국영상자료원이 <1950년대 신상옥 멜로드라마> DVD 박스세트를 출시했다. 신상옥의 1950년대 대표작 중 신파성을 벗고 멜로드라마의 정점을 찍은 영화 세편,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동심초>(1959), <자매의 화원>(1959)을 묶은 것이다. 영화 평론가 박유희의 작품해설이 담긴 소책자와 관련 이미지 자료를 모은 서플먼트도 포함돼 있다.
동서
[culture highway] 원조 초통령 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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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기라는 것은 나 같은 범인에게는 유니콘과 같아서 그 존재에 대해 들어도 보고 읽어도 보았으나 몸으로 실체를 확인한 적은 없는 어떤 것이다. 색기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대학 때였는데, 상경대쪽에 유명한 남학생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나라인가의 교포였는데 나보다 한 학번 위고 일단 괜찮게 생겼지만 연예인을 갖다댈 만한 꽃미남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문이 돌기로는 그 애가 연상녀 킬러였다(고 한다). 부모가 외국에 있어서 그애 혼자 서울 생활을 한 지 3년인가 되었는데, 그때 같이 살던 여자가 세 번째 동거녀인가 그랬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가장 웃긴 대목은, 그 이야기를 하던 나와 친구들 모두 그 남자애를 한번 구경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는 것일 거다. 연상녀들을 압도한다는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잘생긴 것도 아니라는데 대체 뭐지? 그 이야기는 결국 ‘(얼굴이나 한번)보고 싶다’에서 ‘자보고 싶다’로 흘렀고 둘 다 불발에 그쳤다. 그때 그 대화가 생각난 것은 오쿠다 히데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있지, 걔 얘기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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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 AKIRA>가 정식으로 국내에 발간되었다. “너무 재미있어 속상하게 하고, 정말 감동적이어서 마음을 뒤흔드는 작품들 사이에서 아키라는 언제나 조용히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이다”라는 만화가 윤태호의 말처럼, 1982년 연재를 시작한 뒤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이 작품 속의 디스토피아, 그리고 사이버펑크의 세계는 시간이 지났어도 수명을 다하지 않고 힘을 갖고 있다. 주말을 통째로 바쳐도 좋을 만큼 재미있는 만화.
[도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힘을 갖고 있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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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감독의 <이창>에서, 주인공이 타인의 삶을 엿볼 기회는 창문 앞에 놓인 망원경에 눈을 가져다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트러스트 유어 아이즈>에서는 다르다. 편집증에 사로잡힌 토마스는 스트리트뷰 프로그램에 빠져 지낸다. 그러다 뉴욕의 스트리트뷰에서 창문을 통해 한 여자가 살해당하는 것 같은 이미지를 목격한다. 스트리트뷰 사진들의 사생활 침해 논란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서스펜스가 한층 가깝게 와닿을 것이다.
[도서] 스트리트뷰 사진들의 사생활 침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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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에서부터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개론>과 같은 영화들을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첫 책을 냈다.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해, 그녀만의 언어로 풀어낸다. 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몸을 기억하는 일, 몸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던 어머니의 언어를 읽어내던 일, 그리고 이제 어머니가 떠난 빈자리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추억을 더듬는 일이 책 읽는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도서] 어머니가 떠난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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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런 상상을 해봤을 것 같다. 꿈의 라이브러리 말이다. 원하는 작품들을 한데 모아놓을 수 있다면, 그 영화박물관은, 그 도서관은, 그 미술관은 어떤 공간이며 그곳의 입주자들은 어떤 작품들이 될 것인가. 이탈리아의 예술평론가 필리페 다베리오는 상상박물관을 짓는 지적유희로 한권의 책을 써냈다. 원하는 그림들을 호명해 한자리에 모아놓고 방의 유형에 따라 분류했다. 안티카메라, 생각하는 방, 도서관, 놀이방, 부엌, 침실, 음악실, 예배당과 정원… 지하부터 꼭대기층에 이르는 건물 한채가 거대한 화폭이 된다.
박물관에 들어가 가장 먼저 보이는 공간인 안티카메라가 출발점이다. 영어로는 홀이라고 번역되는 안티카메라는 만남의 공간과 동선의 중심 역할을 한다. 직각으로 되어 있는 계단 아래에는 둥그런 그림 하나가 어울리지 않을까. 다베리오가 이 자리에 선택한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 유일하게 이동 가능한 작품인 <톤토 도니>다. 이 그림의 여주인공 격인 인물은 작품을 위탁하
[도서] 바티칸이 따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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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드라마, 당신의 선택은?
조선시대 최초의 여성 사기장이로 변신한 문근영을 볼 것이냐, 지난해 화제의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 팀을 다시 한 번 믿어볼 것이냐. 문근영 주연의 사극 <불의 여신 정이>(MBC)와 손현주, 고수, 이요원 주연의 <황금의 제국>(SBS)이 지난 7월 1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아직 극 초반이라 작품의 온전한 재미를 따지기는 무리. 어쨌든 KBS의 <상어>와 함께 월화드라마 경쟁이 가속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읽으면서 들으세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뿐 아니라 음반 베스트셀러도 만들어낸다. <1Q84>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떴다면,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로는 리스트의 <순례의 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책 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리스트의 <순례의 해>,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 떼놓
[culture highway] 월화드라마, 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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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배수아가 <침묵의 세계>의 막스 피카르트가 쓴 <인간과 말>을 번역했다. 말과 소리, 말과 빛, 말과 진리, 말과 사물, 말과 행위, 말의 시간과 공간, 말과 목소리, 그림과 말, 말과 시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어느 한마디를 옮겨적고 전체에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는, 책 한권이 하나의 말처럼 빛난다. “소리를 정신에게 복종시키기, 아이는 그것을 아직 할 수 없고, 노인은 더이상 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말 속에서 오직 소리에 속하는 것이 많이 들리게 된다. 소리와 정신의 작별은 궁극적 작별에 대한 선행 작별이다.” 언어로 언어 이상의 존재를 설명하는 작업 속에서, 존재가 곧 언어임을 알게 된다.
[도서] 존재가 곧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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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아키미의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5권 <남빛>이 출간되었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그 핑계로 1권부터 다시 읽게 되는 이 만화는, 한집에 살고 있는 네 자매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네 번째 가족으로 합류한 스즈는 배다른 자매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중학생. 하는 일이 다르고 성격도 제각각이지만 가마쿠라의 바닷가 마을에서 네 자매가 어울려 사는 모습은 뭉클하고 사랑스럽다. 5권에서는 스즈가 연을 끊고 살던 외할머니의 부고와 그로 인한 유산 상속에 대해 알게 되고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이모를 만나게 된다. 일본 ‘2013 만화대상’ 수상작.
[도서] 한집에 살고 있는 네 자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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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정말 읽기가 어렵고 고통스러운 책이 있다. 그러나 그중에는 일단 읽어내기만 하면 힘들었던 과정의 수천배가 넘는 만족감을 주는 책들이 있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가 여기에 속한다. 장담하건대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최소한 다섯번 이상 새로 시작하는 좌절을 맛보게 된다. 첫 페이지부터, 어렵다기보다는 이상한 문장이 계속된다. “그들이 깃발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이 치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들이 깃발을 도로 놓고 테이블로 갔다. 그리고 그가 치고 딴 사람이 쳤다.” 번역이 어색해서 그런가, 하면서 원서를 들춰봤다. 역시 마찬가지. 어려운 단어는 없는데 10여 페이지를 읽어도 도무지 무슨 얘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고 가끔 쳐다만 봤다. 도대체 포크너를 읽어내는 사람들은 얼마나 천재란 말이냐, 남몰래 한탄을 하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네 부분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첫 번째 화자(話者)인 벤지의 정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도전! 포크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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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 어디 가~
이순재, 신구, 백일섭, 박근형. 평균 연령 76살의 ‘꽃할배’들이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거기에 43살의 막내 이서진도 합류했다. 설정만으로 화제를 불러모은 tvN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가 7월5일 오후 8시50분 첫 방송된다. 연출을 맡은 나영석 PD(<1박2일>)의 이름 석자가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응답하라 1990
1990년대로의 여행은 계속된다. 20여년 전 한국 가요계 부흥기를 이끌었던 별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7월6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릴 <청춘 나이트 콘서트 시즌 2-back to the 90’s>에서다. 김건모, 임창정, 룰라, 현진영, 김원준, 김현정, 박미경, 소찬휘, 스페이스에이. 이름만 들어도 후렴구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그리워? 그때 그 시절이
한때 쿨한 언니 오빠들은 모두 요 라 텡고를 들었다. 뻥 좀 보태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culture highway] 할배 어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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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방에서만 볼 수 있다. <방의 역사>도 그렇다. 나체의 여자가 잠들어 있는 표지 때문에, 혹은 크기와 무게 때문에 마치 가구처럼 길보다 방에 어울린다. 무엇보다 내용이 그렇다.
조르주 뒤비와 더불어 <사생활의 역사>를 함께 집필한 미셸 페로의 <방의 역사>는 역사와 예술을 통해 보는 방의 이야기를 담았다. 예컨대 다수의 문학 작품은 모두 같은 곳, 즉 침실, 좀더 넓은 의미로는 집필실로 불리는 밀폐된 작은 공간에서 태어난다. 그곳은 사색과 회상의 장소다. 게다가 침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핵심 주제다. 카프카의 작품에 등장하는 “땅굴”에 사는 정체불명의 동물의 머릿속에서는 침실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침실을 꺼리는 만큼이나 고독을, 인적이 드문 공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된 방도 있다. 왕의 방이다.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왕의 침실이 단연 중요한 공간이 된다. 1785년 왕의 침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그 방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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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이 아니다. 도시 탈출이다.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은 3040 지식노동자들의 도시탈출기를 담았다. 책을 읽다 보면 일 때문에 지방에 가 살게 된 경우도 있고, 애초에 출퇴근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꽤 유혹적인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우리는 (남들이 보기에) 가난을 택했고, (남들이 모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충북으로 이주한 뮤지션 사이의 말이 인상적이다.
[도서] 도시탈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