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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모니터 시사에서 생긴 일이다. 극중 성수(손현주)와 민지(전미선)의 아들과 딸이 지하주차장의 차 뒷좌석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장면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 않자 오빠가 여동생에게 묻는다. “(엄마한테) 전화해볼까?” 그러자 학생으로 추정되는 관객이 일제히 “안돼! 하지마!”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소리를 지른 사람들도 웃고, 그 소리를 들은 나와 일행도 웃었다. 무서운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학습’해온 사람이라면 특정 장면이나 설정이 갖는 상징성에 민감해진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링컨: 뱀파이어 헌터>를 쓴 작가이자 팀 버튼의 <다크 나이트>의 각본가 중 하나였던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가 이런 공포영화의 클리셰에 대한 소사전을 펴냈다.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에는 당신이 공포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살아남을지 친절하게 소개해준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한 세기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살고 싶다면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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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네 번째 소설집. 2010년부터 2013년 현재까지 발표한 단편을 묶었다. 재산을 모두 축낸 아들 탓에 철거를 앞둔 아파트에서 불편한 몸으로 외로이 삶을 연명하는 노년의 여인, 오점 없는 삶을 단번에 파괴할 만한 비밀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중년의 남자, 말년을 함께하자며 찾아온 여동생을 요양원에 보내면서까지 노년의 허허로운 일상을 지키고자 하는 노인 등 여덟명의 주인공은 서로 다른 고독의 빛깔을 품고 있다.
[도서] 서로 다른 고독의 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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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마케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이성으로는 좀처럼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해석하기 위해 팬덤(fandom)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팬덤은 화장실 휴지에서부터 자동차 구매, 문화 현상에서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정보화시대의 대중은 정보들을 삭제하고 편집하며, 구미에 맞는 정보만을 수용, 새로운 ‘사실’을 창조한다. 팬덤은 네트워크 세상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도서] 감성마케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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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를 읽는 주요 키워드인 ‘아파트 공화국’을 ‘단지 공화국’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인석의 책. 아파트 단지를 읽으면 한국사회가 제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단지화 전략’과 ‘사교육 전략’을 견주며 한쪽에서는 아파트 단지 내 내 집 마련을 위해, 다른 한쪽에서는 내 자식 대학입시를 위해서 온 국민이 소득의 몇십 퍼센트씩을 스스로 지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덕에 건설산업과 사교육산업이 육성되고 있는 것도 공통점.
[도서] 아파트 단지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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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백색의 회벽으로 된 외관이 아름다워 백로 성이라고도 불리는 일본 효고현 히메지성에 가면 오키쿠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사라야시키’라는 괴담의 무대로 유명하다. 괴담의 기승전까지는 몇 가지 버전이 있으나, 결은 하나다. 오키쿠라는 시녀가 있었다. 오키쿠는 주인마님에 의해 열장 이 되어야 하는 귀한 접시 중 한장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갇힌다. 그녀가 스스로 우물에 몸을 던졌다고도 하고, (히메지성의 우물 앞 표지판 설명에 따르면) 매질당 해 죽은 뒤 시신이 우물에 던져졌다고도 하는데 그날 이후 밤마다 우물가에서 접 시 세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장, 두장, 세장… 한장이 모자라. 다시 세봐야 지. 한장, 두장….” 유사한 이야기가 일본 각지에서 발견된다고 하는데, 에도시대에 는 가부키로 각색되어 공연되기도 한 인기있는 괴담이었다. 이노우에 히로미와 박 지선이 엮은 <일본기담>을 읽고 있자면 요괴전문가이자 소설가인 교고쿠 나쓰히 코
[도서] 슬프고 무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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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주원앓이
주원의 힘인가, 스토리텔링의 힘인가. KBS 월화 드라마 <굿닥터>가 방영하자마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3급 자폐증 진단을 받았지만 천재적인 암기력과 공간지각능력을 자랑하는 시온(주원)이 소아외과 의사로 성장해나가는 스토리다. 주원은 장애가 있지만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증상인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인물로 분했다. 애교만점 시온에게 빠질 준비 되셨나요?
이번 휴가는 갤러리로
휴가를 즐기러 부산을 찾는다면? 해운대해수욕장 대신 전시회는 어떨까. 가나아트갤러리 부산점에선 대중을 위한 팝아트 전시 <POP! POP! POP! 전>을 마련했다. 현대예술을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길. 텔레비전이나 만화에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이미지를 재조립해 친숙함을 더한 재미있는 전시다. 9월7일까지 진행한다고 하니 휴가 기간에 가볍게 한번쯤 들러보면 좋겠다.
뉴페이스를 찾아라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가 4번
[culture highway] 다시 찾아온 주원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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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일기>를 쓴 아르투로 파올리는 이탈리아의 신부다. 세계대전 동안 동료 사제들과 800명이 넘는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했다는 그는 1954년 아르헨티나행 배를 탄 뒤 알제리의 사막에서 수련하고 해방신학의 선두주자로서 라틴아메리카에서 45년을 보냈다. 종교인이 쓴 책이지만 힐링이라는 당의정을 상처에 바르고 핥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도시에서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과도 완전히 다른 사막에서의 시간. 당연한 말이겠지만 <사막일기>는 사막이라는 장소에서 신을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파올리가 사막에서 지내게 된 이유는 ‘예수의 작은 형제회’를 만나 수련을 받기 위해서였다. 사하라 사막에서 홀로 죽은 샤를 드 푸코의 뒤를 이어 엄격한 봉쇄 기도 생활, 성체 조배와 노동을 하며 지내던 ‘예수의 작은 형제회’의 수도사들은 전쟁에 참전하면서 사회와 교회로부터 소회되는 가난한 이웃들을 돕게 된다. 처음부터 원대한 뜻을 품고 사막으로 향한 것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사하라에서 신을, 시베리아에서 인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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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가장 큰 공포는 인간이 100살까지 죽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직장생활로는 반평생 실직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알렉스>를 쓴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는 57살의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대기업의 채용에 응시하기 위해 가상 인질극을 벌여야 하는 알랭 들랑브르는 합격자가 내정돼 있다는 말을 듣고 극단적인 수단을 쓰기로 한다. 르메트르의 아버지가 50대 중반에 실직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도서] 반평생 실직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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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필로우 토크~침대를 향한 기대~>의 원작으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다나베 세이코가 쓴 또 한편의 연애소설이다. 남자가 ‘갈까’라고 말하면 당연히 러브호텔에 가자는 뜻이라고 생각하는 나이와 경험의 여자주인공에게 사랑은 어떻게 다가올까. <아주 사적인 시간>을 비롯해 다나베 세이코표 연애소설 특유의 시니컬하고 때로 잔인한 현실감각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도서] 다나베 세이코표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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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등으로 잘 알려진 철학자 강신주가 무슨 질문에든 다 답해준다. 1권은 사랑, 몸, 고독에 대해, 2권은 일, 정치, 쫄지마라는 주제에 대해 상담 사연을 받고 그에 대해 답한다. 무난하고 착하게 사는 게 목표일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언제나 절대 착하게 살지 말 것, 부모 말만 듣지 말고 적당한 때 집을 나올 것을 권하는 그의 조언은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지만 효과는 뛰어나다.
[도서] 착하게 살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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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에서는 나이듦을 이렇게 말한다. “세상 모든 일이 반복인 것처럼, 두 번째, 세 번째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지는, 그런 시기.”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의 나이듦은 조금 복잡하다. 엄밀히 따지고 들자면 칠순의 나이가 문제라기보다는 병, 그러니까 알츠하이머가 문제라서다.
아버지를 죽인 일을 시작으로 30년간 꾸준히 사람을 죽여오다 25년 전부터는 그 일을 그만두고 살아가는 연쇄살인범 김병수에게는 모든 일이 전에 없던 것처럼 느껴져서 문제다. 그에게 모든 사건은 낡고 닳고 뻔한 게 아니라 매번 새롭고 위태롭고 이상한 것이 된다. 매번 글로 기록하고 목소리를 녹음해서 어떻게든 기억해보고자 하지만 여의치 않다. 개는 있다 없다 하는데 그가 키우는 개인지 남의 집 개인지 매번 헷갈린다. 수상한 사람이 보인다. 그래도 상관없었을지 모른다. 그의 딸이 위기에 처한 게 아니라면. 아, 딸 은희 얘기를 빼먹었나. 그 옛날 그의 손에 죽은 부부의
[도서] 한 살인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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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말고 단풍
9월, 버스커버스커가 2집으로 돌아온다. 앨범 발매를 앞두고 부산(10월3일), 대구(10월20일), 서울(11월1∼2일)을 차례로 돌며 <2013 버스커버스커 콘서트>도 연다. 부산과 대구 공연의 티켓 예매는 8월6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된다. 가을에 만나게 될 버스커버스커의 음악은 과연 어떤 색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전설의 사운드
키스 자렛, 팻 메스니 등의 전설적인 명반을 제작해온 독일의 명품 레이블 ECM의 한국 전시 <ECM展>이 오는 8월31일부터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지금까지 발매된 모든 ECM 앨범의 전시와 주요한 전설적 명반의 집중 소개는 물론, 엄선된 앨범들을 개별적으로 들을 수 있는 리스닝 시스템이 설치될 예정이다. 전시회장에서 열리는 기타명인 랄프 타우너와 비올라의 여제 킴 카쉬 카시안 등의 마스터클래스도 놓치지 말 것.
꽃보다 소년 합창단
올해는 ‘천사들의 합창’을 듣기 위해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리지
[culture highway] 벚꽃 말고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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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읽을 책이 주변에 없으면 불안해진다. 그러다보니 한때는 여행을 갈 때 적어도 대여섯권의 책을 가져가느라 끙끙대곤 했다. 가볍게 읽을 책과 모처럼 시간 날 때 정독을 하려고 벼르던 책, 그 책들을 다 읽으면 읽을 책, 세 번째 책이 재미없을 경우에 대비한 책, 그 책도 재미없을 때를 대비한 책, 이런 식으로 챙기다보면 가방이 터져나갈 지경이 됐다.
가져간 책의 절반도 읽지 못하고 돌아오는 시행착오를 몇번 겪은 뒤에야 다른 방법을 찾았는데, 장편이 아닌 단편집을 가져가는 것이다. 짬이 날 때마다 짧은 이야기를 한편씩 읽다보면 여러 권의 책을 가져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번 여름에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고 갈 책은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과 정유정의 <28>이겠지만, 공항이나 역에서 잠깐 시간을 보낼 때 이야기에 빠지고 싶은 분들께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집 <녹턴>을 권한다.
‘음악과 황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휴가지로 동행,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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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무대로 한 <미생>이라고 해야 하나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말하기에는 직장인의 애환보다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정세의 판도 변화가 큰 그림이라 다른 어떤 책과 비교해 칭하기 힘들겠다 싶다. <태백산맥> <아리랑>의 조정래가 세계 경제를 집어삼키며 세계의 중심이 된 중국의 급부상을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 다섯 나라 비즈니스맨들이 벌이는 경제 전쟁을 통해 보여준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알 수 있는 문학적인 틀을 제시한다.
[도서] 세계의 중심이 된 중국의 급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