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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메테우스>에는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안드로이드 데이빗이 나온다. 인간 탑승자들이 우주선 프로메테우스호에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잠들어 있는 동안 데이빗은 모든 것을 돌본다. 마이클 파스빈더가 연기한 이 안드로이드는 매력적인 외모에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표현’하고 이해할 줄 알며 “요청받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데이빗의 탄생을 다룬 별개의 영상물이 제작되어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데, 데이빗을 ‘감성적’(emotional)이라고 소개한다. 그렇다고 프로메테우스호의 승무원이나 탑승객이 그를 인간처럼 대접하지는 않는다. 묘하게 각이 서 있는 말투와 행동 때문에 그가 인간이 아님을 수시로 인지하는 것일까? 아니, 오히려 데이빗이 인간처럼 행동할 때마다 혹은 인간처럼 질문을 던질 때마다 거리를 두려는 듯 데이빗에게 “너는 로봇, 나는 인간”임을 확인하는 말을 한다. 가끔은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렇다면 로봇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로봇도 섹스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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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자>를 생각하면 실비아 플라스의 집요하고도 단호했던 자살이 떠오른다. 그녀가 죽기 몇주 전 출간된 자전적 소설. 실비아 플라스는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여성주의 소설가로 가장 자주 이름이 오르내린다. 히스 레저가 출연했던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의 ‘깐깐한’ 여주인공이 들고 있던 하드커버 책이 <벨 자>였다는 사실도 이 책의 상징성을 알려준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과 일기도 함께 읽기를 권한다.
[도서] 실비아 플라스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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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불노’ , 그러니까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를 열렬히 지지하는(드라마든 책이든 양쪽 다든!) 팬들에게 유일한 소원이 있다면 저 끝내주는 이야기꾼 조지 R. R. 마틴의 만수무강 아닐까(최소한 완결 전에는 절대 돌아가시면 안돼!). 기껏 등장인물에 애착을 갖게 만들어놓고 죽여버리는 이 매정한 작가의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의 5부 <드래곤과의 춤>이 3권으로 출간되었다. 책 두께만큼 시간과 책장을 비우시길.
[도서]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의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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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공포증이 있어 일본 밖으로는 못 나간다던 온다 리쿠였는데, 라틴아메리카에 다녀와 에세이를 냈다. <한낮의 달을 쫓다>를 비롯해 일본 곳곳을 여행하며 그곳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소설들을 쓴 작가답게 라틴아메리카 현지 느낌이 물씬 나는 소설 다섯편을 써서 같이 실었다. 읽다보면 소설이 에세이 같고 에세이가 소설 같은 느낌이 드는 책. 과대망상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도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온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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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빈민가 연구에 선구적 구실을 한 사회학자들은 이제 주로 도시 변두리 주민들에게 관심을 돌리고 있다. 오늘날에는 소설가들조차도 대개 가난의 문제점이나 변화하는 세계의 현실하고는 거리가 먼, 중산층의 정신을 탐구하기에만 바쁘다.”
1961년에 출간된 멕시코 하층민 가족에 대한 르포르타주 <산체스네 아이들>의 책머리글은 지금이라고 뭐가 다를까 싶다. 자고로 돈을 많이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이 더 잘 팔리기 마련일 테니. 시위대가 천막을 친 자리에 화단을 만들고, 달동네로 유명했던 동 이름을 개명하고, 노점이 있던 자리에 컨테이너를 놓는 서울에서는 이 책이 어떻게 읽힐까.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어느 시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또한 같을 수도 없다. 처음 사랑하게 된 남자에게 “정말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한번 자줘야 할 것 아니야?”라고 추궁당한 일을 회고하는 목소리는 귀에 익지만, 아들이 칼에 배를 찔려 죽은 날에조차 식당 일을 쉴 수 없었던 어
[도서] 피할 수 없는 가난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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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농담,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한때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을 즐겨 들었던 팬들은 알고 있었다. 그가 실은 신동엽 뺨치는 음담패설의 대가라는 사실을. ‘감성변태’, ‘관음희열’ 같은 별명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의 엉큼한 개그본능을 확인하고 싶다면 9월7일부터 그가 고정출연할 예정인 <SNL 코리아> 시사 콩트 코너 ‘위켄드 업데이트’를 본방사수할 것. 요즘 매일같이 새벽에 문자로 아이디어를 날려 PD가 괴로울 지경이라니, 기대만발.
꽃보다 연극
여행으로 충전 완료. 할배들 이제 일상의 무대로 돌아왔다. H4의 맏형 이순재는 25년 만에 연출자로 나선다. 아서 밀러의 대표작 <시련>을 극화한 작품으로 마녀사냥을 모티브 삼아,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을 그린다(9월5일부터 1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귀염둥이 구야형 신구는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간암 말기로 죽음을 앞둔 아버지로 절절한 연기를 선사할 예정이
[culture highway] 야한 농담,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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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비르 사라일.’ 이스마일 카다레의 <꿈의 궁전>에 등장하는 이 국가기관은 독재자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조직이다. 국민들의 수면과 꿈을 관장하기 때문이다. 철권통치를 하는 절대군주라고 하더라도 국민들로부터 ‘자발적인’ 충성을 받고 있다는 환상을 원하는 법. 무의식의 무대인 꿈을 지배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수단이 있을 수 있을까. 타비르 사라일이 ‘위대한 제국의 최고 중추기관’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설은 주인공인 마르크 알렘이 이 기관에 말단 공무원으로 들어갔다가 마침내 최고 책임자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철저한 보안과 신비에 감싸인 그곳에서 알렘이 처음 근무하게 되는 부서는 ‘선별부’. 전국에서 수집된 수백만개의 꿈들 중에서 정치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꿈들을 솎아내는 곳이다. 술탄이 다스리는 제국의 방방곡곡에는 수많은 타비르 사라일의 분소가 있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분소에 찾아와서 내용을 구술한다. 필경사가 받아적은 꿈들은 중앙으로 보내지고 선별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모든 독재자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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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케트의 네편의 텔레비전 단편극(<쿼드> <유령 삼중주> <한갓 구름만…> <밤과 꿈>)에 붙인 철학적 해제. 들뢰즈는 베케트의 전작을 꿰뚫으며, 블랑쇼와 카프카, 예이츠, 베토벤까지 그 폭을 확장해나간다. 무엇보다 이 책은 베케트 말년의 작품에 붙인 들뢰즈 말년의 에세이다. “가능한 것을 소진하면서 그는 소진된다. 그 반대이기도 하다. 그는 가능한 것에서 실현되지 않은 것을 소진한다. 모든 피로 너머에서, ‘결국 다시 한번’ 가능한 것과 끝장을 본다.”
[도서] 들뢰즈 말년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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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정재승 교수가 트위터에서 “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는 왜 사라졌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백인천 프로젝트. 미국에서는 1941년 타율 0.406을 기록한 테드 윌리엄스 이후, 한국에서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첫해 0.412를 기록한 백인천 이후 4할 타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막상 읽어보면 백인천 프로젝트 자체보다는 4할의 가능성이 가장 많았거나 많다고 여겨지는 김태균, 양준혁, 정근우 등 야구선수들의 인터뷰가 재미있다.
[도서] 4할 타자는 왜 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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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새(뮬)의 삶. 이만큼 현대인의 삶을 잘 묘사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남의 짐을 지고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노새는 주인공 소설 <뮬>의 주인공 제임스와 케이트에 다름 아니다. 종말적 경기불황에 예상 못한 임신이 닥치면 한번만(!) 마약 운반책으로 일하는 것도 그럴싸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소설을 쓴 토니 데수자가 실제로 아내의 실직과 어린 두 아이에 더해 쓰던 소설을 포기하면서 경험한 종말론적 파국의 두려움에서 생각해낸 이야기다.
[도서] 종말론적 파국의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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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드라마 <셜록>의 팬이라면 주목할 것. 시즌1과 2의 모든 사건을 분석한 <셜록: 케이스북>이 출간되었다. 셜록 홈스를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주홍색 연구>가 <분홍색 연구>로 바뀌면서 무엇이 달라졌는지와 같은 드라마 뒷이야기는 물론 셜록의 집 세트 구석구석을 볼 수 있는 사진과 해설을 비롯해 관련 자료들이 실렸다. <셜록>을 제작한 스티브 모팻과 마크 게이티스의 회고는 특히 흥미로운데, “코난 도일의 원작들은 단 한번도 프록코트와 가스등을 중요시하지 않았어요. 경탄할 만한 수사와 무시무시한 악당, 피가 얼어붙을 듯한 범죄에 여성들이 크리놀린을 입던 끔찍한 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다였죠. 다른 탐정들은 사건에 연연했지만 셜록 홈스는 모험을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탐정들과의 차별점이라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실루엣만으로도 셜록 홈스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프록코트를 고집하지 말 것, 그리
[도서] 시즌3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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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퀴방’의 영광을 다시 한번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씨네21>이 본격 박스오피스 게임 어플 ‘씨네한수’를 출시했다. 영화 퀴즈는 물론, <씨네21>이 제공하는 초특급 영화 정보까지 제공한다. 신의 한수로 영화의 운명을 맞히고 영화 예매권도 얻는 행운을 누려보자. 페이스북과 연동하여 친구들과 랭킹을 겨룰 수도 있다. 이제부터 시간이 나면 언제나 씨네한수다. 애플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가을엔 가을방학
여름이 가니 가을방학이 찾아온다. 올림픽공원 88호수의 수변무대를 배경으로 가을방학의 콘서트 <담화>가 9월27일 오후 8시에 열린다. 호숫가에서 진행될 이번 공연은 장소에 걸맞게 록비트를 덜어내고 어쿠스틱한 사운드는 보다 살리는 ‘맞춤형 수변콘서트’로 꾸며질 예정이다. 계피의 청량한 목소리는 변하지 않으나, 구성 악기에 따라 음악의 정서를 카멜레온처럼 바꾸곤 했던 가을방학이기에 그 변화가 더욱 기대되는 가을밤
[culture highway] ‘영퀴방’의 영광을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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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더이상 화젯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뇌물을 받은 전직 국회의원이 강물에 몸을 던지는 모습이야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남자들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알쏭달쏭한 단체의 대표가 고작 몇푼의 모금을 위해서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는 퍼포먼스를 벌이다가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생명이 얼마나 가볍게 다루어지는 것인지 몸이 떨릴 정도다.
그 극단의 형태는 어떤 사회일까. 벤 H. 윈터스는 이 책에서 하나의 예를 손에 잡힐 듯이 실감나게 그려낸다. 천체망원경에 먼지처럼 떠올랐던 지름 6.5km의 돌덩어리,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은 불과 0.000047%, 즉 212만8천번의 기회 중 한번 일어날 수 있는 일에 지나지 않았던 소행성이 어느 날 인류를 전멸시킬 존재로 등장한다. 전세계 16억명이 시청하는 가운데 TV 카메라 앞에 나온 과학자들의 대표가 6개월 뒤 지구와 충돌한다는 관측 결과를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여기는 목매다는 도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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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딱지치기! 공기놀이!
“대문을 두드리며 ‘OO야 노올자~’ 외치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그립다.” 최용석 작가의 전시 의도 중 일부다. 종이죽을 소재로 입체조형물을 만들어온 최용석 작가는 개인전 <학교 앞 문방구 전>을 통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놀잇감들을 과거로부터 불러낸다. 누구나 한번쯤 만지작거려봤을 종이죽이라는 소재가 전시 분위기에 친근함을 더한다.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리앤박갤러리에서 8월 25일까지 진행한다고 하니 얼른 놀러가보자~.
그린데이의 영혼을 담아
<아메리칸 이디엇>의 오리지널팀이 내한한다. 2004년에 발표된 그린데이의 7집 동명 앨범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며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토니 어워드 최우수 연출상을 수상한 마이클 메이어가 연출을 맡았다. 그린데이의 앨범이 가지고 있는 서사구조를 바탕으로 재해석된 록오페라 형식의 작품이다. 9월 5일부터 2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만날 수 있다.
[culture highway] 응답하라, 딱지치기! 공기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