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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소설가란 이름의 인종은, 학교 선생이나 중처럼 끊임없이 인간과 사회를 테마로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킬 수 있는 홀가분함 덕분에, 즉 무절제한 사고에 브레이크를 걸 실질적인 체험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중요한 테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머지 전혀 실태를 모르는 구석이 있다. 특히 오랜 세월 작가생활을 하거나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예술가라고 믿는 자들 중에 많은 것 같다.”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 <소설가의 각오>에 나오는 말이다. 저 책을 읽었을 때 짐작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뛰어난,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을 쓴 기타노 다케시와 같은 독설능력자다. 그 사실은 이번에 출간된 에세이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에서 증명된다. 마루야마 겐지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필경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이다) 소설 <물의 가족>이나 <천년 동안에>를 읽어보라고 권
[도서] 독설능력자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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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그녀와 함께
그 유명한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 한복판 비너스의 자리에서, 옷을 벗고 다리를 벌리고 가슴을 긴 머리채와 함께 양손으로 거머쥔 레이디 가가를 보라. 레이디 가가의 신보 ≪ARTPOP≫의 이 재킷사진이 지금 홍대 거리에 나붙고 있다. 노래보다 패션이 먼저 이야기되는 일이 드물지 않은 그녀지만, 노래가 별로였다면 지금의 위치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R. 켈리가 피처링한 <Do What U Want>와 <Gypsy>에 주목하시라.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좋아하세요?
와인 오프너 안나 G, 스탠드 조명 아물레토, 프루스트 의자. 모두 미학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훌륭한 디자인 제품들이다. 그리고 모두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작품들이다.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한 <알레산드로 멘디니: 일 벨디자인>이 출간됐다. 번역서가 아니다. 저자 최경원이 직접 멘디니를 인터뷰하고 취재해서
[culture highway] 오늘밤 그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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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다섯권이 출간되었다. 그중 <데이먼 러니언>은 세계에서 가장 롱런하는 뮤지컬 중 하나인 <아가씨와 건달들>의 뼈대가 되는 이야기가 된 <혈압>과 <세라 브라운 양의 이야기>를 비롯한 25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세라 브라운 양의 이야기>는 미국 대도시의 건달 스카이가 어떻게 한 아가씨의 품에서 평화를 얻는가에 대한 귀여운 이야기. 미국 대공황이 덮치기 전이었던 광란의 20년대를 무대로 한 소설들을 읽을 수 있다.
[도서] 광란의 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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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아름다운 물건의 하나로 애정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절대 놓치지 말 것. 전세계 20곳의 아름다운 서점을 골라 소개하는데, 도시의 개성과 문화를 고스란히 품은 문화 공간으로서의 서점들이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 유명한 파리의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당연히 수록되었고, 기적의 서점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 산토리니의 아틀란티스 북스는 꿈에서나 봤을 법한 환상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도서] 문화 공간으로서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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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고골의 ‘코’뿐이랴. 어찌 체호프나 톨스토이뿐이랴. 도스토옙스키도 있고, 고리키도 있지 않겠는가. 문학판이라면 문학 얘기여야 마땅한 것. 그러고 보면 작가 정태언씨의 소재의 창고에는 보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없을까.”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이런 평은 우연이 아니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모스크바에서 유학 생활을 한 정태언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러시아 인문주의에서 태동한 소설을 쓰는 작가다. 그의 첫 번째 소설집.
[도서] 러시아 인문주의에서 태동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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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적으로 글을 썼던 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 소설가였던 수전 손택의 일기와 노트를 묶은 <다시 태어나다>를 읽기 전에 사유의 원형이나 지성의 비밀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글 중 하나는 그녀의 아들인 데이비드 리프가 쓴 엮은이의 글이다. 리프는, 어머니가 평생 써온 막대한 분량의 일기를 언급하며, 어머니가 그 존재를 입에 올렸으나 어떻게 처분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불에 태워버릴까 고심하다가 책으로 출간하기로 마음먹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은 1947년부터 63년까지, 즉 14살부터 30살까지 손택의 일기 묶음인데, 리프는 어머니를 신화로 포장하기 위해 보기 좋은 것만을 추리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손택이 일기에 적은 젊은 시절은 대개는 두서없고, 지적 열망에 시달리느라 읽을 것들을 나열하며 느낌표를 반복해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24번째 생일을 앞두고 ‘규칙과 의무들’이라는 제목하에 자세를 더 곧게
[도서] 수전 손택도 20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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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공원>의 저자 마이클 크라이튼은 1999년에 쓴 <타임라인>에서 이렇게 말한다. “100년 전 19세기가 막을 내릴 때, 세계 각지의 과학자들은 이제 물질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며 흡족해했다. 물리학자 앨러스테어 리의 표현대로 ‘19세기 말까지는 물리적 우주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원리들이 두루 밝혀진 것 같았다.’ … 그러나 누군가가 만일 1899년의 물리학자에게, 100년 뒤인 1999년에는 하늘에 떠 있는 위성을 통해 전세계의 가정들에 동영상이 전송될 거라고 말한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 여성들이 투표권과 함께 출산을 조절할 알약을 갖게 될 거라든지, 사람들이 전화선도 없이 전세계 어떤 곳에 있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느니…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면, 그 물리학자는 그 사람이 미쳤다고 판단할 것이 틀림없다. 1899년에는 이런 종류의 발전들을 대부분 예측할 수 없었다. … 따라서 20세기의 문턱에서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그리하여 진보는 여기 도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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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고민하지 마
11월은 그간 GD 외 나머지 빅뱅 멤버들의 목소리를 그리워했던 팬들에게 빅뱅 풍‘월’이 될 예정이다. 우선 11월8일 태양이 3년 만의 싱글 ≪링가 링가≫를 공개했다. ‘신세계’ 컨셉의 무대 위 댄스도 기대된다. 이어 중순에는 T.O.P도 3년 만에 컴백한다. 앨범 준비는 마치고 출격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 여기에 월말에는 빅뱅까지 완전체로 돌아온다. 태양도 보고 T.O.P도 보고 빅뱅도 보고, 고민 말고 그냥 다 보면 되겠다.
노래의 적
방송의 적, 예능의 적, 소설의 적, 수필의 적… 우리에게는 무수히 많은 이적이 있지만 그중 최고는 역시 노래의 적이다. 이적은 11월15일 정규 5집 ≪고독의 의미≫를 발표한다. 이적의 5집 발매 기념 콘서트는 오는 12월6∼7일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응답하라 수험생!
수능이 끝난 당신, 즐겨라! 일단 수고 많았다는 말부터 전한다. 이제 놀 일만 남았다. 수험생이라면 할인 이벤트를 꼼꼼
[culture highway] 고민, 고민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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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세기의 여름>을 읽는다는 것은,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이 되는 것과 같다. 그때 그 순간을 살았던 그들은 미처 알지 못했겠지만, 당시 그들에게는 단지 조그만 한 발짝에 불과했던 사건이 이후 전 인류에 하나의 큰 도약이 되었고, 독자는 그들이 그 발걸음을 내딛던 순간들을 훔쳐보게 된다. 길과 달리 이 책의 독자에게는 파리라는 장소적 제약이 없다. 이 책이 기록한 첫 번째 사건은 1913년 0시1초, 뉴올리언스에서 새해 환영인사를 하려고 훔친 리볼버를 폭죽처럼 쏘아댄 소년이 경찰에 잡혀간 일이다. 소년이 날뛰자 경찰관은 트럼펫을 쥐어준다. 소년의 이름은 루이 암스트롱이다. 다음 순간은 자정을 알리는 축포 소리를 글로 적어 알리는 남자의 사연이다. 프라하에서 쓴 이 편지는 베를린의 여인이 읽게 될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다. 파블로 피카소는 루브르박물관에서 도난당한 <모나리자> 건으로 경찰의 심문을 받았고,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그해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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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과 역사서를 바탕으로 조선 시대 강력 사건을 해결한 실존 인물들을 재조명했다. 사건의 정황을 듣는 것만으로 진실을 파헤친 세종대왕, 천재적인 두뇌로 사건을 꿰뚫어본 연산군, 정조의 명에 따라 미해결 사건 91건을 조사했던 정약용에 이르기까지 조선 시대에 실제 벌어졌던 사건과 이를 끝까지 추리해낸 명탐정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들과 유사한 활약상을 보인 외국 소설 속 탐정들의 이야기를 곁들였다.
[도서] 세종대왕, 연산군, 정약용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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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개를 들여놓았나>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갖는 게 집안의 전통처럼 되어버린 집안의 열다섯살 반 된 소년 데스의 이야기다. 그에게는 사고뭉치인 스물한살 삼촌 라이오넬이 있고, 고작 서른아홉의 나이에 아이들을 낳고 낳고 낳고… 또 낳은 할머니 그레이스가 있다. 그리고 데스는 그레이스와 섹스하는 사이이고, 이 일이 라이오넬에게 발각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정신사납긴 한데, 일단 이 이상한 족보에 적응하는 순간부터 몹시 웃기는 책.
[도서] 이상한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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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전연재가 쓴 여행의 기록. 낯선 이의 집에서 그들 삶의 기록자가 되는 경험을 글로 옮겼기 때문이다. 집은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어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로테르담에서는 은퇴한 전직 선장이 살고 있는 하우스보트에서 머물게 되는데,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라면 이 대목에서 신기한 점을 짚어내는 데 그치겠지만 건축가인 전연재는 하우스보트라는 거주 형태가 삶에 어떤 한계를 부여하는지, 네덜란드에 왜 하우스보트가 많은지 조목조목 짚어준다.
[도서] 건축가가 쓴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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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어른들은 다들 저렇게 슬픈 표정을 지을까?” 열넷의 나이, 140센티미터대 중반의 키. 소녀 아스미 가모가와, 국립 도쿄 우주학교 학생. 그녀의 꿈은 우주를 향해 날아오르는 것이니 모든 게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꿈의 뒷면에는 볕이 들지 않는, 영영 잊히지 않을 상실의 고통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한 사회의 고통이.
2024년을 무대로 하고 있는 만화 <트윈 스피카>(2003년에 한국에서 출간되다 중단된 바 있음)는 2010년의 어떤 사건을 가정하면서 시작한다. 그해 일본에서는 순수 일본 기술로 제작된 첫 유인 우주 탐사 로켓 사자호가 발사되었다. 그러나 발사된 지 불과 72초 만에 액체 연료 부스터가 폭발, 사자호는 불길에 휩싸였다. 우주관제센터는 로켓의 자폭장치에 해당하는 비행 정지 시스템 스위치를 눌렀으나 작동하지 않았고 결국 사자호는 시가지로 추락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 사고로 아
[도서] 엄마, 난 우주에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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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야 도망쳐!
할배들이 가고 누님들이 온다. 나영석 PD의 배낭여행 프로젝트 2탄 <꽃보다 누나>의 캐스팅도 막강하다. 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그리고 서지니를 대신할 비운의 젊은 짐꾼 이승기. 티저도 나오기 전부터 ‘승기야 도망쳐’라는 부제가 화제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10월31일 열흘 일정으로 크로아티아로 출국했으며, TV에서는 11월 말에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
버려진다는 것
버려진 것에 대한 가치를 돌아보고 디자인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디자이너,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의 저자로 유명한 나가오카 겐마이의 디자인 리사이클링숍 ‘디&디파트먼트’의 서울 지점이 11월9일 MMG 이태원점 내에 오픈한다. 일본의 도쿄, 오사카, 시즈오카, 삿포로, 오키나와, 가고시마점에 이은 8호점으로, 해외 오픈은 이번이 처음이다. 새것이 아닌 버려진 것, 오래된 물건도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생각 있는’ 공간이다.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culture highway] 승기야 도망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