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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거의’ 하지 않게 되고 결국 ‘아예’ 하지 않게 되는 데는 두번의 선거면 족했다. 지난해 총선이 전자, 대선이 후자였다. 트위터를 하면서 평소 오프라인으로 어울리지 않던 사람들을 팔로윙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게 큰 착각임을 새삼, 그러나 절실히 깨달아서다. 트위터로 말을 트게 된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유형의 사람들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던 것뿐이었다. 얼굴을 몰라도 성향은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그 의견이 정말 세상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일. 1분도 쉬지 않고 세상의 흐름에 발맞추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트위터 이용자들의 흔한 착각. <의도적 눈감기>에는 이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비유가 등장한다. “나이가 들수록 같은 경험, 같은 친구, 같은 생각들이 더 많이 축적되고 강물은 더 빠르고 더 거침없이 흐르게 된다. 저항은 점점 더 줄어든다. 저항이 없을 때는 쉽고 편안하고 확신이 선다. 그러나 동시에 강바닥의 옆면, 즉 강둑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차라리 모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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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3분의 1가량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쓰였다. <로미오와 줄리엣>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그의 이 ‘이탈리아 희곡’들을 두고 오랜 세월 비평가들은 작가가 이탈리아에 가보지도 않고 책상 앞에 앉아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단언한다. 셰익스피어 연구가였던 리처드 폴 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이탈리아 장소들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해석해 들려준다.
[도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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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배수아, 등단 20주년 그리고 2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폐관을 앞둔 서울의 유일무이한 오디오 극장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는 스물아홉살의 김아야미를 내세워 기억과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권말에는 소설가 김사과의 <꿈, 기록>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김사과가 쓴 <꿈, 기록>은 ‘한국어 산문 문학이 주는 최상의 엔터테인먼트’라고 이 책을 권하는 추천사이자 ‘지연과 반복과 몰입이 가져다주는 쾌락’이라는 감탄어린 리뷰.
[도서] 기억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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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세 번째 책이 나왔다. 복잡한 현대예술사를 총체적으로 정리하면서,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과 철학 개념을 풀이하고 있다. <씨네21>에 연재되었던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를 읽었다면 더 잘 읽힐 책. 전후 예술계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주요 비평가들의 평론을 중심으로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의 바탕에 깔린 사유를 명료하게 드러냄으로써 현대예술의 지형도를 한눈에 파악하도록 돕는다.
[도서] 현대예술의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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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진짜 취향은 ‘남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누가 뭐라 하든 나에게 좋은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는 단호한 김경의 이러한 말에 동의한다면 좋아할 책이고 동의하는 대신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운운하며 토를 단다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을 책이다. 하지만 취향을 떠나 손에 잡으면 글에 쏙 빨려들게 만드는 맛이 있다.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는 <뷰티풀 몬스터>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의 저자이자 전직 패션지 피처에디터이며 몇주 전까지 <씨네21>의 ‘쏘왓’ 지면에 칼럼을 연재한 김경의 새 산문집이다. 여러 시기에 걸쳐 쓴 글을 새로 손보아 실었다는데, 모두 한달 전에 쓴 글처럼 가깝게 읽힌다. 사랑, 패션, 라이프스타일, 사람, 사회라는 다섯 가지 큰 주제 아래 글이 묶여 있지만 모두 취향이라는 하나의 ‘깔대기’에 대한 글이다. 그리고 그 차이에 대해 쿨한
[도서] 사랑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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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9일은 씨네데이
채널 고정! 마이 캐치온. <씨네21>이 창간 18주년을 맞아 통 큰 선물을 준비했다. 5월19일까지 하루 동안 마이 캐치온에서 무려 300편의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 <맨 인 블랙3> <알투비: 리턴투베이스> <연가시> <언터처블: 1%의 우정> <내 아내의 모든 것> <행오버2> <미확인동영상: 절대클릭금지> <마다가스카3: 이번엔 서커스다! 3D> 미드 <스파르타쿠스> 등 놓칠 수 없는 추천작 10편도 포함된다. <씨네21> 홈페이지에서 QR 코드만 찍으면 된다.
로린 마젤 & 뮌헨 필하모닉
‘살아 있는 20세기 지휘계의 마지막 거장’이라 불리는 지휘자 로린 마젤과 정통 게르만 사운드를 보전해온 세계 최정상급의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닉이 4월21일과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 베토벤의 <코
[culture highway] 5월19일은 씨네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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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만난 적 없는 고등학생 페이스북 친구로부터 날아온 메시지.
“변호사님! ㅎㅎ 뭐 하나 여쭙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아이 생일 때 선물할 만한 소설책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니 조금만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
하,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 애잔한 마음이 들게 하는 녀석. 내가 해봐서 아는데, 18살 때 좋아하는 여자아이 생일에 책 선물 같은 거나 하고 있다가는 덕후 소리 듣고 차이기 십상이란다. 하지만 의뢰인의 질문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변호사의 본분. 즉답을 보낸다.
“고등학생이군요.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권해드립니다.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나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선물하기 좋습니다. 여자 친구 생일 즐겁게 지내세요.^^”
질문을 한 학생처럼 나도 어린 시절 어떻게 좀 잘되기를 바라면서 교회누나와 책을 주고받던 기억이 있다. 책을 선물할 때는 누구나 어떤 의미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책 선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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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장르소설 비평가와 편집자들이 추려 뽑은 단편 컬렉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마이클 코넬리, <좀비>의 조이스 캐롤 오츠, 미국 드라마 <트루 블러드>의 원작인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의 샬레인 해리스 등 영미권 장르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단편소설이 <밤과 낮 사이1, 2>에 모였다. 다소 이름이 낯선 작가들의 작품으로 가는 흥미로운 문이 되어줄 작품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도서] 영미권 장르문학 단편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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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 라는 말에서 가능성의 울림을 느끼는 독자에게 권한다. 이장욱, 황정은, 김미월처럼 이름만으로도 책을 들춰보고 싶게 만드는 작가들의 단편들을 만날 수 있다. 신춘문예 등단작 <거리의 마술사>로 젊은작가상 대상까지 수상한 김종옥은 앞으로 주목해야 할 작가. 집단따돌림에 시달리던 학생의 죽음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한편의 소설이 현실의 아픔에 해줄 수 있는 위안을 믿게 된다.
[도서] 젊은 작가들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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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수 영취산에는 진달래가 산등성을 붉게 물들인다. <신동엽 시전집> 맨 앞에 실린 <진달래 산천>은, 그 호화로운 붉음이 피의 붉음이었던 시간을 잊지 말라는 청에 다름 아니다. “잔디밭엔 담뱃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라고 끝나는 시 옆에 이 시의 첫 수록 지면이 <조선일보> 1959년 3월24일자라는 게 농담처럼 들린다. <껍데기는 가라>처럼 수없이 읽고 들은 시가 여전히 새롭게 정신을 일깨운다는 감동도 느껴보시길.
[도서] 수없이 읽고 들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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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아이의 차이는 장난감의 가격뿐이라 했던가. 미니 사륜모터카에 흠뻑 빠진 아이와 자동차에 매료된 남자의 심리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장난감은 장난감일 뿐이라는 불편한 이분법이 숨어 있다. 어른이 되면 장난감의 역할을 대신할 더 비싼 무언가를 대체해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해야 할 만큼 값비싼 장난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면 프라모델이나 디오라마(배경 위에 축소된 모형을 설치해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것)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의 취미생활이라 일축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은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 프라모델 중에서도 건담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건프라’의 세계에 대한 해설서, <건프라이즘>이다.
제목처럼 건담은 하나의 이념이며 완성된 우주다. 그중 특히 건프라는 일본에서는 관련 서적만 수백권이 넘을 정도로 대중적인 취미지만 인터넷, 모형전문지에서 간혹 단편적인
[도서] 건프라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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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브 하이
<K팝스타> 시즌1에서 준우승한 이하이 정규앨범 1집 ≪First Love≫는 시즌2의 우승자인 악동 뮤지션뿐 아니라 시즌1의 우승자인 박지민의 미래까지 낙관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그루브를 아는 소녀, 이하이의 음악은 이제 시작이다.
스파이+저널리즘=<디 아워>
스파이와 저널리즘이 만났다. 냉전시대의 영국 BBC 방송국을 둘러싼 삶과 사랑, 음모를 다룬 드라마 <디 아워>가 4월14일부터 매주 금요일 밤 10시 <선댄스채널>에서 방영된다. 영국배우 벤 위쇼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거다.
바늘을 들어라
LP를 다시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조용필이 19집 ≪헬로≫를 LP로도 발매한 데 이어 그룹 들국화는 대표 앨범 세개를 묶어 한정판 LP 세트를 발매했다. ‘꼰대짓’이라고? 장기하와 얼굴들, 2AM의 한정판 LP 발매도 있다. 광학(CD)과 디지털(MP3)이 누락한 음악의 ‘질감’을 즐기고 싶
은 사람
[culture highway] 그루브 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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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이면 근처 오름의 숲에서 컹컹거리고 짖는 노루 소리가 몇 안되는 가로등보다 밝은 달빛 사이로 들리던 집에 신세를 지던 때, 4.3으로 인해 온 마을이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일의 참담함에 대해 들은 일이 있다.
현기영의 단편 <순이삼촌>에는 바로 그런 제사 지내는 밤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이집 저집에서 그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짖는 소리가 밤하늘로 치솟아오르곤 했다. 아,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에서 터져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낮에는 이곳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5백위(位)도 넘는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이 회상을 통해 풀려나온다.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를 본 사람이라면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으나, 제주도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곡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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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쓰는가>를 읽는다고 해서 딱히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책의 부제가 ‘글로 먹고사는 13인의 글쓰기 노하우’이기는 한데,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뭘로 먹고사는 사람이 노하우를 전수하는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 노하우가 전수되는 법은 없다는 것을. 그런데 이 책은 재미있다.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생각해보니 이런 거 아닐까 생각하며 자신의 글이 지금까지 ‘팔리는’ 이유를 적었으니까. 글로 먹고사는 일은 쉽지 않다. 인쇄매체는 쇠하고 있고(대개 원고료가 박하기도 하고), 온라인에서는 고료 받기가 쉽지 않고(애초에 무료로 글을 포스팅하는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기도 하고), 부의 편중 현상은 글쟁이들 사이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읽고 있자면, 이러니까 이들의 글이 팔리지 하는 생각에 글줄을 따라 웃게 된다. 신세 한탄도 다들 세련되게 하는군.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은 어
[도서] 글로 먹고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