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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해낸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죽이는 것은 너무 가벼운 벌일 것이다.” 앞부분에 인용된, 누구나 들으면 가볍게 웃고 넘어갈 마크 트웨인의 저 말처럼,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의 시작은 잔잔하다.
주인공 부부는 로맨스 소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쿨한 뉴욕 커플이다. 남편 닉은 1990년대 말 잡지계가 영광의 순간을 보낼 때 기자가 된다. 아내 에이미의 인생은 좀더 소설적이다. 그녀의 부모는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청소년용 시리즈물을 쓰는 작가 부부다. 누구나 어린 시절 이 시리즈를 읽으며 자라고, 에이미는 그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산다. 자신감 넘치는 남자와 부유한 부모를 둔 아름다운 여자의 만남. 두 사람은 <어메이징 에이미의 결혼식 날>이 출간된 직후 결혼한다.
물론 그들의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뜻하지 않은 인터넷의 발흥으로 닉은 직장생활 11년 만에 실직한다. 에이미의 처지도 나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올해 최고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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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아버지> 등에 출연해 친근한 코미디 배우이자 유명한 미술수집가인 스티브 마틴이 쓴 장편소설. 미술품을 경매하는 소더비와 첼시의 갤러리 거리 등 뉴욕 아트마켓을 배경으로 여성 아트 딜러 레이시 예거의 이야기를 그렸다. “20세기 미국 미술시장을 반추하는 책 열권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추천사처럼, 현대 미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작품의 상품성을 획득하고 그 가치를 불려가는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도서] 20세기 미국의 미술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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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 감독에 의해 <악마의 씨>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소설 <로즈메리의 아기>의 후속편. 이 이야기에 어떤 뒷이야기가 가능할까? 로즈메리는 30여년의 긴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실제로 소설도 전작이 출간된 지 30년 만인 1997년에 발표되었다). 사악한 자들의 손에 넘어갔을 아들은 놀랍게도 정의를 구현한 지도자로 성장해 있다. 전작에서 암시된 음울한 분위기가 세기말 뉴욕으로 이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도서] 정의를 구현한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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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버지가 20년 전에 남기고 떠난 스크랩북을 펼친다. 보수적인 목사 아버지와 진보 성향의 기자 아들(<씨네21>과 <한겨레21> 편집장을 지낸 고경태)이 <동아일보> 백지 광고부터 5월 광주, 중공 여객기 피랍을 비롯한 사건들을 바라본다. 여기에는 <고바우 영감> <두꺼비> 같은 네컷 만화도 있고, 당시로는 드물었던 컬러사진으로 실린 육영수 여사의 장례 사진, 수시로 등장하는 밑줄긋기와 메모가 있다. 아주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
[도서] 아주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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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의 여행>의 원제는 ‘Carnet de Voyage’, 즉 여행 수첩이다. 그래픽 노블 <담요>의 크레이그 톰슨이 책 홍보 여행 중에 만난 프랑스와 스페인, 모로코 거리의 기록을 담은 스케치북을 그대로 스캔해 만든 책이니 더 어울리는 제목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여행 일기를 쓰는 과정에서 톰슨은 카메라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 두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눈과 붓펜만을 사용해 기록했다고 한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불타오르는 긍정을 전도하는 성격과 거리가 먼 톰슨은 쉬지 않고 투덜거리고 그 순간을 기록한다.
1분에도 수십장씩 찍어 완벽하게 보정할 수 있는 사진을, 흑백의 스케치와 글이 대신할 수 있을까? <만화가의 여행>은 일단, 가이드북이기를 포기한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기록이다. 자신의 무지로 인한 낭패의 순간도 숨기지 않고 기록했다. 스케치를 하는 톰슨에게 모로코 마라케시는 낙원이자 재앙이었다. “거리에서 그림 그리기는 별로 현명한 일이
[도서] 그림으로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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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4권
벌써 8년째다.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2 4권이 출간됐다. 시즌2의 마지막인 4권은 30살이 된 낢 작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세상에 별 남자 없다며 결혼을 독려(?)하는 낢의 엄마를 보면서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일 거다. 소소하면서도 재미있는 낢의 이야기는 시즌2의 1~4권을 묶어 박스 세트로도 출간됐다. 세트에는 에코백 등 두둑한 선물도 포함된다.
록 스피릿으로 뭉쳐!
핫한 영혼들이 만드는 한/일 수교의 장이다. 델리스파이스와 일본의 모던록밴드 HY가 서울과 오키나와를 오가며 합동 공연하는 <서울×오키나와 커넥션(CONNEXION)>이 열린다. 서울 공연은 5월31일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펼쳐진다. 서울 공연을 끝내고 9월20일부터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불금’을 보내고 싶다면 예매를 서두르자. 물론, 스탠딩이다.
의지의 힘!
춤추기 딱 좋은 일렉트로
[culture highway] 낢이 사는 이야기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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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와 서울도 뉴욕을 깨끗이 하자는 캠페인에서 시작된 ‘I LOVE NEW YORK’이라는 카피처럼 ‘I LOVE TOKYO’와 ‘I LOVE SEOUL’이 세력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도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도쿄로 오갈 때마다 국경을 넘는다는 감각은 사라지고 평평한 감각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강상중은 여기에, 그렇다고 도쿄와 서울이 개성없는 메트로폴리탄이 된 것은 아니라고 부연하면서, 스물한살이던 1971년에 한국을 방문한 일을 계기로 나가노 데쓰오라는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결심한 일을 들려준다. 하지만 제목이 <도쿄 산책자>인 이 책은, 도쿄라는 도시의 몇몇 상징적 공간들에 대한 그의 해석을 들려주는 식으로 흐른다. 여행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오랫동안 반쯤 이방인으로서, 정체성의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느끼는 것들에 대해 들려주기에 도쿄에 관한 수많은 여행 에세이가 열어젖혀본 적 없는 묵직한 문을 열어주는 귀한 독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도시 읽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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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그림 중에는 공중에 떠 있는 남녀를 그린 그림이 꽤 있다. 특히 사랑에 빠진 이들의 고양된 마음이 붕 뜬 발을 통해 표현되곤 한다. 이연식은 샤갈이 결혼을 앞두고 그리기 시작한 <생일>에서 사랑에 빠진 남녀의 설레고 들뜬 마음을 포착한다. 하지만 낭만과 경악의 경계는 아주 옅다. 모로의 <춤추는 살로메>에서 살로메가 가리키는 쪽에 붕 떠 있는 세례 요한의 빛나는 목은 그저 오싹할 뿐이다. 많은 회화작품 속 관능과 환상을 에세이로 풀어낸 책.
[도서] 회화 속 관능과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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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상, 네뷸러상, 디트머상, 로커스상 등 SF소설에 주어지는 상을 휩쓴 레리 니븐의 책들이 소개된다. <플랫랜더>는 근미래 지구를 무대로 활약하는 형사 길을 주인공으로 한 중/단편집. 탐정이 주인공인 작품답게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들인데, 사고로 한쪽 팔을 잃고 대신 염동력과 에스퍼라는 능력을 갖게 된 주인공이 DNA 복제부터 두뇌 이식, 냉동 회생과 관련된 사건들을 추적한다. 레리 니븐의 대표작 <링월드>도 출간될 예정이다.
[도서] 미래의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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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더> <행복한 집구경> <셸터>를 쓴 목수이자 작가이자 출판인인 로이드 칸이 전세계 아주 작은 주택 250여채를 소개하는 책이다. 여기에는 일본의 캡슐 호텔이나 나무 위의 집 같은 공간부터 각양각색의 트레일러 하우스, 노새가 끄는 집 등 14평 이하의 초소형 주택이 등장한다. 단순히 작은 집이라기보다는 직접 만들고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유목민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많은 이동형 주택이 등장해 특히 흥미롭다.
[도서] 작은 주택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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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이름이 말녀 혹은 말자라면, 그 집에는 딸이 많고 막내가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이름이 드물어졌다. 아들을 간절히 원하는 딸부잣집이 없어져서일까? 그렇지 않다. 태아 성감별을 통해 딸아이를 뱃속에서 가려내 죽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라 비슨달의 <남성 과잉 사회>는 한국인에게는 전혀 새롭지 않을 초음파를 이용한 태아 성감별과 그로 인한 성비 불균형에 대한 책이다. 그렇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이언스>의 베이징 주재 특파원으로 일하는 마라 비슨달은 이러한 식으로 성비 불균형을 보이는 나라들의 공통점을 분석했다. 고도성장을 겪은 국가 중 태아 성감별이 가능할 정도까지 의료체계가 자리를 잡은 곳으로, 낙태율이 높다(중국, 베트남, 한국 모두 해당). 무엇보다도 이런 나라들은 출산율이 최근 급속하게 떨어졌다. 도시에 살고 교육을 잘 받은 사회 계층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도 특징이다. 그리고 부유층을 중산
[도서] 딸, 아들 구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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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의 귀환
이효리가 돌아온다. 3년 만이다. 5월2일 발표한 자작곡 <미스코리아>의 티저만 봐도 이효리가 왜 이효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흑백TV 속에서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걸’임을 태연하게 노래하는 그녀. 그녀에게 우리는 또다시 유혹당할 준비가 돼 있다. 나머지 곡과 뮤직비디오는 6일에 공개된다.
올 댓 재즈
재즈 피아니스트 램지 루이스,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보컬 필립 베일리, 데미안 라이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바우터 하멜…. 재즈 팬들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될 이름들이 한 무대에서 만난다. ‘서울재즈페스티벌 2013’이 5월17일부터 18일까지 올림픽공원 내 88잔디마당, 체조경기장 등에서 열린다. 최백호와 박주원, 10cm와 라 벤타나 등 국내 뮤지션들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도 이번 행사의 관전 포인트다.
Dance is Life, Life is Dance
현대무용? 어렵지 않아요~. 제32회 국제현대무용제(MODAFE)가 ‘
[culture highway] 미스코리아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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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 땅에는 어떤 이야기가 남을까. 두권의 책이 대비되며 떠오른다. 중국 출신 미국 작가 하진의 <전쟁 쓰레기>와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
서점에서 우연히 <전쟁 쓰레기>를 집어든 독자라면 서문만 읽고도 아연 흥미를 느낄 것이다. 하진은 중국에서 군 생활을 한 경험이 있고, 이 책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힌 중국 군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반공서적에서나 봤던 ‘중공군’- 희미한 피리소리와 함께 안개 너머로 나타나 한손에는 술병을, 다른 손에는 방망이 수류탄을 든 채 끝도 없이 밀고 내려오는 유령 같은 존재- 들이 비로소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죽는 걸 무서워하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내려고 안달을 한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고 나면 큰 울림이 남지는 않는다. 당시 한국의 생활상은 물론 모슬포에서 물질하는 해녀들의 평균 연령까지 정확히 파악한 작가의 취재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우리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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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시티즌 빈스>로 에드거상을 수상했던 미국 작가 제스 월터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의 올해의 주목할 책에 선정되고 ‘반스 앤드 노블’과 ‘아마존’의 올해의 최고도서에 선정됐다. 이탈리아 리구리아 해안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 포르토 베르고냐. 이곳의 작은 호텔에 죽음을 앞둔 여배우가 찾아온다. 50여년의 시간을 오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환상적이고,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도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