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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서술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여자, 마돈나를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하는 이야기다. 자연히 영화의 초점은 마돈나는 누구인가에 맞춰진다. 마돈나가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출 때 영화는 ‘마돈나는 왜 타락할 수밖에 없었나’를 보여주는 이야기에 그친다. 마돈나는 불쌍한 타자로 고립되거나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여성으로 해체된다. 이 둘을 피하기 위해 이 영화가 누군가의 시선에 비친 마돈나를 그릴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의 타락사
혼수상태에 빠진 마돈나를 재구성하는 인물은 해림(서영희)이다. 해림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거의 없으므로 해림이 누구인가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이 필요하다. 해림이 마돈나를 찾도록 의뢰를 받았다는 점, 주변 인물을 탐색한다는 점 등에서 그녀의 특수한 위치는 사립 탐정과 비슷하다. 사립 탐정이라고 칭한 이유에는 탐정이 남성적 캐릭터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한 것이다. 의뢰인 상우(김
[김소희의 영화비평] 마돈나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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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은 잘 만든 법정 드라마로 손색이 없지만 픽션보다 더 개연성이 없는 현실을 의식한 탓인지 매듭이 불완전한 방식으로 봉합된다. 사건의 실체는 끝내 명확히 해명되지 않는다. 대신 사건 당사자들의 감정이 극적으로 부각되는데 나는 그게 좀 이상해 보였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던 주인공 변호사들의 노력은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법정의 판결은 두루뭉술하며 변호사들이 구출하려 했던 피해자들은 깊은 절망과 회한에 빠진다. 사건의 실체를 가림막했던 국가기관의 당사자들은 어느 누구도 징벌받지 않고 그들 모두 앞으로도 무탈하게 살아갈 것이 암시된다. 이것은 감독 김성제의 정직한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이 영화가 지금보다는 더 주목받기를 원했던 평자로서 약간의 이의를 제기하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변호사 윤진원(윤계상)과 장대석(유해진), 기자 공수경(김옥빈)이지만 정작 말미에 정서적 초점을 맞추는 인물은 피고인 박재호(이경영)다. 박재호
[김영진의 영화비평] 여백으로 남은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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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포위된 풍경들
형사가 차에서 내려 걸어가면, 영화가 시작된다. 강력계 형사 정재곤의 눈앞에서는 거대한 타워크레인들이 아파트를 일으켜 세우고 있는 중이다. 이 아파트들은 재개발 열풍이 도시에게 안겨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노년기에 접어든 도시는 고도성장기의 기억을 떠올리며 회춘을 꿈꿨고, 아등바등 살던 사람들은 아파트 한채 면적만큼의 행복을 상상하며 중산층의 삶을 꿈꿨다. 물론 밀려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에 밝지 못한 이들은 어디에나 넘쳐나기 마련이다. 그런 이들에게 ‘기회’란 상승을 위한 도약대가 아니라 삶의 예측 불가능성만 증가시킬 뿐인 선택의 기로였다.
정재곤은 아파트 건설 현장에 눈길을 주지 않고, 무심히 주차장을 걷는다. 그 역시 남들처럼 부동산 열풍에 기대어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적이 있지 않았을까? 아마 그 시도는 실패했을 것이고, 가정은 파탄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범인을 쫓되 돈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박해천의 영화비평] 아파트, 마카오, 컨테이너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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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프 티셔츠, 차도르, 스케이트보드, 고양이, 이 네 가지는 ‘악의 도시’에 살고 있는 뱀파이어 소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조건들이다. 애나 릴리 아미푸르 감독의 데뷔작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의 참신함은 스토리가 아니라 강렬한 이미지들을 결합하는 스타일에 있다. 스트라이프 티셔츠 위에 차도르를 뒤집어쓴 뱀파이어 소녀가 인적 없는 밤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달리는 모습은 현대적인 경쾌함과 고전적인 그로테스크의 경이로운 조합이다. 고전 설화부터 근대의 고딕소설로 이어지던 뱀파이어 이야기는 영화의 등장 이후 호러 장르의 가장 매혹적인 소재가 되었다. 인간의 피를 먹고 영원히 죽지 않는 뱀파이어는 두렵고 낯선 존재이기에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TV드라마의 주요 캐릭터로 뱀파이어가 나올 만큼 친숙해졌다.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는 본디 낯설었던 것이 마치 일상의 존재처럼 가까워져버렸을 때 그것을 다시 비일상적인 존재로 환원시키는 하나의 해법을 제시
[이현경의 영화비평] 소녀의 흡혈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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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감독의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하 <경성학교>)을 보고 나서 뭔가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리뷰가 아닌 아주 ‘조심스런’ 단상을 적고 싶다. 영화 전체를 설명할 생각은 없고, 내가 눌려버린 어떤 이미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건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으로, 아니 사실 말을 꺼내기도 힘들고 정확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이미지에 놀란 피할 수 없는 ‘나-관객’의 경험에 속한다. <경성학교>에서 내게 그것은 과다한 물의 이미지이며, 물에 잠긴 소녀들의 끔찍한 이미지이다. 이 이미지들은 놀라울 정도로 영화의 홍보성 자료들, 사진들에서는 결코 보이거나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터 끝까지 나를 공포에, 때로는 격한 슬픔에 잠기게 한 것들이다. 영화의 초반부 주란(박보영)과 연덕(박소담)이 호수에 빠져들게 될 때. 이미 그 순간부터 물(속에 잠긴 소녀들)의 이미지는
[김성욱의 영화비평]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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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조폭과 함께 한국 상업영화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직업 중 하나다. 수많은 영화들이 경찰을 원한다. 폭력에 대한 명분 있는 이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충무로에서는 격투와 추격, 스릴과 서스펜스를 좇는 데 경찰만 한 직업을 찾기 쉽지 않다. 할리우드에서 심심하면 등판시키는 로봇이며 공룡들에 비해 한국의 경찰관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간판급 선수다. 현실도 경찰을 원한다. 2012년 현재 국내 살인 발생 건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멕시코, 에스토니아, 미국 등에 이어 6위다. 더 암울한 사실은 2001년 이후 10년 동안 대다수 유럽 국가들에서 5대 강력범죄 발생이 꾸준히 줄어드는 사이 우리나라는 되레 84.5%가 늘었다는 점이다(한국경찰연구학회). 이 가운데 강간범죄는 1.8배나 늘었다. 한국영화에 경찰이 안 나올 이유보다 나올 이유가 더 많다고 봐도 될 정도다.
아이살리기 vs 실적올리기
역설적이지만 현실적-영화적 이유로
[송형국의 영화비평] 영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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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두 주체의 욕망과 계급이 적절하게 맞아떨어질 때 그것은 달달한 동화가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 그것은 전쟁 같은 현실이 된다. 가령 ‘백설공주’가 왕자님 대신 일곱 난쟁이들 가운데 하나와 사랑에 빠졌다고 상상해보자. 아마 그 이야기는 동화가 끝나는 그 지점- 결혼 혹은 결혼의 약속- 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이 단순히 낭만적 감정이 아니라 권력 싸움이며, 우리는 사랑을 통해 성적•사회적 욕망이 충족되길 갈구한다는 사실은 어른이 되면 받아들여야 할 진리 중 하나이다. 하지만 대체로 인간이 갖춘 자질들은 정확하게 수치로 환산되지 않고, 때로는 사회적 규약을 위반하는 데서 비롯되는 쾌감이 이성적 판단을 압도하기 때문에 계산은 뒤틀리고 욕망은 정착지를 찾지 못하고 늘 부유한다.
계급차이에서 갈등이 시작되고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희곡 <미스 줄리>는 두 남녀의 ‘사랑’을 신분상의 격차와 젠더와 섹스 사이의 갈등이라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투과하여 담아낸 작
[김지미의 영화비평] 타자와의 투쟁에서 자기 위안적 파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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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쥘 베른의 소설 <카르파티아 성> 서두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있을 법하지 않으니 진실이 아닐 거라고 단정 짓는 것은 이르다. 지금은 불가능이 없는 시대이며, 온갖 과학적 수단을 통해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이 짧은 문구를 통해 어쩌면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하 <경성학교>)의 판타지적 성향을 간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쥘 베른의 말처럼 과학에 의해 현실화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우리는 그때의 서사를 판타지라고 단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이 경우엔 ‘그로테스크하다’거나 ‘있음직하지 않다’라는 식으로 감상을 정리하는 편이 더 적합해 보인다. 실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비현실적 이야기를 이렇듯 흔히 판타지라 부른다는 점을 떠올리며 영화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트와 의상의 화려함에 비례한 불안
[이지현의 영화비평] 판타지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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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첫사랑, 요시코’라는 1장과 ‘벚꽃우물’이라는 2장으로 구성된 일종의 옴니버스영화다. 아마도 관객은 정보 전달에 가까운 1장보다는 <비포 선라이즈>(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1996)의 감성에 맞닿아 있는 2장의 매력에 더 빠질 듯하다. 실제로 2장은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제목이 그리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1장의 매개 없이 2장과 바로 마주했다면, 우리는 과연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경험할 수 있을까? 물론 김새벽과 이와세 료의 로맨스가 알콩달콩한 재미를 주긴 하지만, 1장 없는 2장은 그저 그런 로맨스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1장과 2장이 서로를 마주볼 때만이 그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영화다. 그 엔딩까지도.
현재의 시간, 생명의 부활
두말할 것도 없이, 1장 ‘첫사랑, 요시코’는 장건재가 경험한 고조에 대한 기록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한여름의 판타지아&g
[안시환의 영화비평] 겸손한 응답 뒤의 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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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판타지아> 1부에서 감독인 태훈(임형국)은 조감독 미정(김새벽)과 함께 영화 촬영을 염두에 두고 고조시를 이틀간 답사한다. 첫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취재원은 공무원 유스케(이와세 료)다. 고조시의 현황에 대해 말해주고 도시 곳곳을 안내해준다. 둘쨋날 그들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겐지다. 요시노강과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고 시노하라 마을까지 데려가 취재할 수 있게 해준다.
따지고 보면 둘 중 겐지가 더 큰 도움을 주었다. 타지 출신인 유스케와 달리 겐지는 고조 사람이라서 더 상세히 일러줄 수 있었다. 심지어 겐지에겐 첫사랑 추억담을 포함해 영화에 넣을 개인적 이야깃거리가 더 많았다.
유스케와 겐지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온 여성과 과거에 만났던 일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스케는 태훈과 미정을 만났듯 공무원으로서 이전에도 고조에 온 한국 여성을 안내한 적이 있었다. 겐지는 오사카에서 일했을 무렵 술집에
[이동진의 영화비평] 그리고 요시코는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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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여년 전 <무뢰한>의 시나리오를 읽었다. 모니터를 부탁한 오승욱 감독에게 뭔가 얘기를 해줬겠지만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살인범을 쫓는 형사 얘기에 최소한의 액션은 필요하다는 따위의 철없는 충고가 기억날 뿐이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했어도 다 괜한 헛소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쓴 시나리오 행간에서 이 영화의 무드와 제스처를 떠올리지 못했다. 핏빛 잔상을 남겼던 <킬리만자로>(2000)와는 반대 방향에서 강박적으로 적요한 분위기에 매달리는 것으로 의심했을 뿐이다.
오승욱이 오랜 기다림 끝에 스크린에 구현한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 그들을 감싼 공간의 분위기는 오승욱이 구상한 스토리가 근사한 맥거핀이었음을 알려준다. 오승욱은 형사 누아르물의 외피를 두른 이 영화에서 ‘억압의 미적 제스처’라고 할 만한 것들을 허다하게 만들어낸다. 그것들이 스토리의 인과를 빼곡 메울 필요는 없다. 그것들은 이미 이 영화의 스토리가 시작되기 전에,
[신 전영객잔] 남는 것은 제스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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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다>의 공동 제작자이자 기획자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 영화를 평할 수 없다. 지난 일년간 어떤 감독보다 오래 박정범 감독을 만났고 대화했던 나는 완성된 영화 <산다>를 보며 비평에 가까운 장르는 자서전이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떠올렸다. 그의 전기적 삶의 전모에 관해 나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그가 그토록 이 영화에 매달려 기어코 완성한 심리적 내력이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는 이 영화의 완성에 오랜 시간을 들였다. 거의 5년의 시간이 흘렀고 시나리오는 여러 번 바뀌었다. 2013년 가을, 박정범이 만든 <두한에게>(인권영화 프로젝트인 옴니버스 장편 <어떤 시선>의 한 에피소드) GV 때문에 CGV압구정에서 그를 만난 날, 나는 전주국제영화제 삼인삼색 프로젝트를 장편으로 전환하는 내 구상을 말해주고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박정범은 선뜻 하겠다고 했다. 오랫동안 묵혀둔 기획이 있다며 그는 당장이라도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전영객잔] 노동으로 만든 진실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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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은 장례 행렬 장면으로 시작한다. 모두 검은 상복을 입은 무리 가운데 앞줄에 선 중년 남자 오정식(안성기)이 문득 뒤돌아본다. 행렬의 끝에 붉은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보인다. 오정식이 상무로 재직 중인 회사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오정식이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여자 추은주(김규리)다. 이 영화는 오정식의 죽어가는 아내(김호정)에 대한 기록과 그런 아내를 간호하면서 젊은 여직원을 마음에 뒀던 오정식의 내면의 추이에 관한 묘사다. 원작소설도 비슷한 구성이었지만 원작에서 독백으로 묘사한 추은주에 대한 오 상무의 마음은 훨씬 건조하게 객관적으로 그려진다.
맹렬한 직설화법
이 영화에서 특이한 것은 때로 돌출하듯이 맹렬한 직설화법으로 오정식의 욕망을 그리는 장면들이다. 현재와 과거가 오가는 가운데, 영화 중반 오정식과 그의 아내가 별장에 가서 마치 의식을 치르듯이 섹스를 하는 장면이 좋은 예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참을 수 없이 비루한 느낌을 주는데 차마 연민이라도 할 수
[신 전영객잔] 인생은 치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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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거대한 바다괴물이다. 어떤 무기로도 뚫을 수 없는 단단한 비늘로 온몸이 뒤덮여 있는 최강의 생물체이다. 영화 <리바이어던> 중반 대목에 이 괴물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주인공 콜랴가 극단적 절망 상태에 빠져 가게 앞에서 방금 산 술병을 선 채 들이마시고 있을 때 동네 신부가 가게 문을 나온다. 콜랴는 시비 걸듯 묻는다. “자비롭고 전능한 신은 어디 있습니까?” 설전이 오가는 사이에 신부가 리바이어던을 거론한다. “낚시로 리바이어던을 잡겠느냐? 그 혀를 끈으로 묶을 수 있겠느냐? 그것이 네게 계속 간청하고 부드럽게 네게 말하겠느냐? 그에 비할 존재가 없으니 교만한 자에게 군림하는 왕이다.” 왜 선문답을 하느냐고 항의하는 콜랴에게 신부는 욥기 스토리를 들려준다. “욥의 얘기를 아시오? ‘왜 하필 접니까?’라고 물었지요. 그를 불쌍히 여긴 신이 폭풍의 형상으로 그에게 나타나 모든 것을 상세히 말해주셨소.”
모두를 향한 불안과 고통
자신들이
[신 전영객잔] 잡히지 않는 말씀에 대한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