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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불현듯 인식의 지평이 확대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사진으로만 보던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직접 볼 때 성당이 단순히 신과 내가 만나는 장소 이상임을 확인하게 된다. 형형색색 스테인드글라스와 정교한 조각품, 거대한 벽화와 웅혼한 파이프오르간 소리, 그 속에서 종교는 문자나 음성으로 전달되는 것보다 몇 곱절 숭고해진다. 사람들은 신을 만나러 성당에 가는가? 예술의 마력에 이끌려 성당에 가는가? 중세미술이나 바로크음악에 관해 책으로 읽는 것으론 알 수 없는 것을 어떤 장소가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 여행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나라시에 있는 도다이사는 745년에 만들어졌다는 오래된 절이다. 절이라고 하면 석굴암과 불국사만 대단한 줄 알았던 나는 도다이사의 엄청난 크기에 입이 딱 벌어졌다. 나중에 찾아보니 1709년에 재건했다는 대불전은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란다. 그 거대한 건축물은 일본은 작은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선입견을 단숨에 무너
[편집장이 독자에게] 한류와 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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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영화인의 시위를 보다가 궁금해졌다. 지금의 영화계를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 당신은 어느 편에 서겠냐고 다그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이번호에 실린 다섯 필자의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들은 대체로 중간파에 가깝다. 쿼터 사수 투쟁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스크린쿼터만 지키면 된다고 주장하는 입장은 아닌 것이다. 쿼터 사수의 전선을 흩트리는 시도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최근 사태를 보면 이번 투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쿼터 문제에 관해 그저 혼란스러워 할 뿐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얽히고 설킨 문제를 정리하는 논쟁의 2라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프랑스 평론가 아드리앙 공보는 이번 쿼터 축소 조치가 프랑스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한 이유가 쿼터제도가 산업을 보호하는 것인지, 예술을 보호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상원 교수 김소영은 마이너영화
[편집장이 독자에게] 쿼터 논쟁 2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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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다. 미국 와이오밍주에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지명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아무도 에덴동산에 가보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최근 해외토픽에서 에덴동산을 발견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는데 설령 사실이라 해도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아담과 이브가 먹은 선악과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잭과 에니스, 두 남자의 사랑이 된다. 양쪽 모두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 추방당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른 연인들은 누구도 보호해주지 못할 땅으로 쫓겨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는 아마 평생을 죄의식에 시달리며 살았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낯선 곳에서 두려움에 떨었으리라. 기독교의 관점에선 그것이 원죄에 대한 벌이겠으나 하나님의 추방으로 인해 인간은 비로소 우리가 오늘날 아는 인간이 된다. 희로애락을 알고 생로병사를 겪는
[편집장이 독자에게] <브로크백 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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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했다. 지난 1월26일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인다고 발표했을 때 영화계 관계자는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007 작전처럼 은밀히 진행된 축소방침은 설 연휴를 앞두고 전격 발표됐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한-미 FTA에 있기에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야 한다는 정부의 홍보는 주류 언론들에 별다른 비판없이 받아들여졌다. 몇몇 여론조사에서도 스크린쿼터 축소를 지지한다는 견해가 많았다. 특히 포털 사이트의 댓글은 영화계에 적대적이었다. 영화계는 지금 사면초가처럼 보인다.
먼저 밝히자면 나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고 당장 한국영화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지금 축소 반대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당장 올해 1월 한국영화 점유율이 역대 최대를 기록한 상황이니 쿼터가 없다고 돈 잘 버는 영화를 극장에서 내릴 리는 없을 것이다. 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입장에선 장기적인 효과에 주목한다. 20% 수준이던 한국영화 점유율이 최근 몇년 만에 50% 넘는 수
[편집장이 독자에게] 레디 액션, 친미바보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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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 영화과 입시가이드를 별책부록으로 만든 적이 있다. 새삼스럽게 영화과가 엄청나게 많이 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영화과가 많아진 것은 영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일 것이다. 영화가 배고픈 예술이나 조악한 기술의 이미지를 벗고 학문의 하나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영화감독이 CF에 나올 정도로 각광받는 직업이 된 만큼 영화는 절대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어른들도 많이 줄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과가 늘어난 만큼 영화교육의 질이 높아졌는가, 생각해보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상당수 영화과가 대학의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급조됐기에 교수진이나 시설면에서 충분치 않다. 카메라, 조명, 편집 등 관련 기자재보다 심각한 것은 대학 도서관이 보유한 자료의 양과 질이다. 대학이 직업훈련소로 변한 게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특히 도서관의 빈곤함은 참담하다. 봐야 할 고전들이 없는 황량한 대학이 촬영기술을 익히고 편집기를 만지는 기능적인 교육에
[편집장이 독자에게] 빈곤한 영화과, 궁핍한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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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하는 여느 목요일과 달리 오늘은 회사가 많이 어수선하다. 다음날 사무실 이전을 하기 때문이다. 이전이라고 해봐야 같은 층에서 좀더 넓은 공간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지만 새 책상과 새 의자를 사주겠다는 회사의 결정에 적지 않은 술렁임이 있었다. “정말? 진짜?” 하며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반응한 이유는 지금 책상이 10년 전에도 썼던 것이기 때문이다(우린 그렇게 살았답니다. ㅠ.ㅠ). 하지만 그동안 책상을 바꿀 수 없었던 이유가 꼭(?) 돈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지금보다 큰 책상을 들여오기엔 무엇보다 공간이 비좁았다. 전에 <씨네21> 사무실을 방문한 어느 영화사 대표는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매주 그렇게 훌륭한 잡지를 만든다니, 하며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본인은 ‘훌륭한’에 방점을 찍어 말한 것이겠으나 듣는 사람 입장에선 ‘열악한’에 가슴이 아팠다. 어제 에어컨을 떼기 위해 오신 기사분 표정이 떠오른다. 15년 된 에어컨의 더러움에 망연자실하던 그 표정. 그
[편집장이 독자에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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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CNN을 볼 때가 있다. 영어를 못하니 제대로 볼 리는 없지만 신기하게 느꼈던 것이 하나 있다. 미국 얘기 못지않게 외국 얘기가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분명 미국인이 주시청자일 텐데 전세계인이 CNN만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여러 나라를 두루 살핀다. 전세계 어디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미국인의 의무와 책임 아래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CNN을 만드는 사람들은 분명 세계를 바라보는 기준이 미국에 있다고 확신하는 듯하다(이라크전쟁 당시 아랍 방송 알자지라는 이런 기준이 허상이란 걸 까발렸다). 하긴 CNN만 그런 건 아니다. 아카데미 영화상은 미국 영화인의 축제인데 가끔은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들이 자웅을 겨루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은 상징적이다. 들러리처럼 보이는 이 상을 타기 위해 올해도 여러 나라에서 엄선한 후보를 내놓았다. 들러리처럼 보이는 상인데도 수상을 고대하는 이유는 아카데미상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 때문일
[편집장이 독자에게] 중심과 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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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덜 쓰는 말이지만 의식화라는 표현을 자주 쓰던 때가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선배들이 의식화 교육을 시키고 의식화 교육을 받으면 빨갱이가 된다고 겁을 줬다. 요즘엔 전교조가 예전에 대학 선배들이 하던 일을 떠맡았는지 전교조가 학교를 접수할 거라며 사학법 반대투쟁을 벌이는 분들이 많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식화는 절대 안된다는 입장이다.
의식화의 반대말은 뭘까? 무의식화? 그렇진 않을 것이다. 대개 의식화란 공산주의 의식화라는 표현을 줄여 부른 말일 텐데 굳이 줄여 부르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의식화라는 단어가 적과 우리편을 가르는 결정적 잣대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의식화 이전은 순수한 백지 상태, 의식화는 백지를 붉은색으로 도배한 상태, 이런 식으로.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의식화 이전엔 순수했던 인간이 의식화로 인해 오염된 인간이 된다는 얘기다. 의식화는 나쁜 것, 뭔가 작위적이고 음모론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것, 이라는 이런 논리는 독재와 파시즘을 유지하는 데 좋은 환경을
[편집장이 독자에게] 사상이 필요해, 난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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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쯤 지난 일이다. 송강호씨와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술을 꽤 마신 뒤 <씨네21>의 연말 베스트 영화 선정이 도마에 올랐다. 송강호씨가 내게 물었다. 1년 전 베스트 5 목록에 <복수는 나의 것>이 빠진 이유가 뭐냐는 거였다. <복수는 나의 것> 개봉 때 특집기사를 썼고 꽤 좋게 본 걸로 알고 있는데 5위 안에 없는 건 기사를 거짓으로 썼다는 거냐고 추궁했다. 뜨끔했다. 나의 순위 선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 때문은 아니었다. 연말 특집기사 도표에 작은 글씨로 실리는 순위인데도 꼼꼼히 보고 있었구나. 혹시 내가 쓴 결과만 유심히 본 것일까 싶어 물어보니 <복수는 나의 것>에 관해서는 누가 몇위에 썼는지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작품에 대한 송강호 특유의 애정과 집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대답을 해야겠는데 말할 틈이 안 생겼다. 술자리의 취기에 휩쓸려 화제가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죠, &l
[편집장이 독자에게] 2005년에 기억할 영화들,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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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CJ-CGV가 발표한 2005년 한국영화산업 결산자료를 보니 올해 극장관객수는 1억4천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올 상반기엔 관객수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는 지표가 나왔으나 하반기 개봉한 한국영화들이 호조를 보이면서 영화시장이 9년 연속 성장을 멈추지 않게 됐다고 이 자료는 덧붙였다. 산업의 흐름에 관심있는 관계자들이라면 이런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성장폭이 줄고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 있겠으나 크게 봐서 한국영화산업은 아직 괜찮아 보인다. 새삼스럽게 한국영화산업이 호황이라는 걸 강조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관심을 끈 것은 최근 30년간 최고라는 올해 극장관객수가 역대 관객수 기록에선 고작 7번째라는 사실이다. 1969, 1968, 1970, 1967, 1966, 1971년 관객수가 1억4천만명보다 훨씬 많았다는 얘기다. 요즘 관객 가운데 한국영화산업의 전성기가 1960년대 중후반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때가 지금보다 호황이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편집장이 독자에게] 1960년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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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페이스’라는 말이 있다. 카드를 할 때 좋은 패가 들어오든 나쁜 패가 들어오든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에서 유래한 말이라는데, 흔히 무표정한 사람을 일컫는다. 영화배우 가운데 포커페이스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찰리 채플린과 쌍벽을 이뤘던 코미디 감독 겸 배우 버스터 키튼일 것이다. 키튼은 얼굴에서 표정을 지운 대신 몸의 액션코미디를 만들어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포커페이스 하면 또 떠오르는 인물로 기타노 다케시가 있다. 기타노의 <소나티네>나 <하나비> 같은 영화는 기타노의 무표정과 잔혹한 상황 또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의 충돌로 이뤄져 있다. 기타노의 이런 스타일은 때로 공포와 충격을, 때로 폭소와 희열을 몇배로 증폭시킨다. <브로큰 플라워>의 빌 머레이 또한 포커페이스의 또 다른 경지다. 중년의 피로가 쌓인 그의 얼굴은 우리 인생의 당황스러운 국면을 의인화시킨 결과 같다. <브로큰 플라워>의 빌 머레이를 문장으로 옮기면 이렇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포커페이스의 비애, <브로큰 플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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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동 올림픽>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신도시 개발 때문에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내쫓기는 상계동 철거민들을 그린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대목 하나는 상계동에서 내몰린 그들이 부천시의 고속도로 근처에 자리를 잡은 다음 벌어진다. 당시 정부가 철거민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그들을 서울 외곽으로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부천의 고속도로 옆이 그곳. 그들은 정부가 지정한 장소에 판잣집을 지어놓고 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부천시 공무원들이 불법건축물이라며 판잣집을 헐러 온 것이다. 철거민들은 정부에서 시킨 대로 이주한 것이라고 하소연했지만 소용없었다. 상계동에서 철거 깡패들과 힘든 싸움을 벌였던 그들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약자였다. 기가 막힌 것은 철거의 이유다. 관계자는 고속도로로 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데 서울의 낙후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지 않겠냐고 말한다. 국익을 위해 도시 빈민쯤은 짓밟아도 좋다는 끔찍한 논리다.
최근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둘러싼 논
[편집장이 독자에게] 국익이를 내버려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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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금기였던 탓에 일본 영화사엔 아직 우리가 잘 모르는 감독들이 많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마스무라 야스조도 그중 하나다. 그는 오랫동안 스튜디오의 고용감독으로 일했고 작가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재평가받은 거장이다. 이번 회고전에서 그의 영화 몇편을 보면서 마스무라를 보러 가자고 선동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오랜만에 발견의 기쁨을 만끽한 영화들이었으므로.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애정없는 결혼이긴 남편쪽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아내를 가정부 겸 비서로 부려먹었고, 아내는 남편을 가난에서 탈출하는 방도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남편의 일을 도와주는 청년에게 마음을 뺏긴다. 애타는 마음을 누르려 애쓰지만 남편은 아내의 마음이 딴 데 있다는 걸 눈치챈다. 암벽등반을 즐기는 남편은 아내와 청년에게 함께 산에 가자고 제안한다. 남편의 속셈은 아내와 청년을 산속에 버려두는 것이었으나 그만 일을 그르친다. 청년과 아내와 남편은 같은 로프에 묶여
[편집장이 독자에게] 마스무라를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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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주위에 절망이 삼켜버린 젊음이 서성거린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대학을 졸업한 뒤 같은 과 여자동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군대를 제대한 뒤 한때 함께 공부했던 후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딘가 발을 헛디딘 듯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난다. 전태일의 분신처럼 세상을 뒤바꾸는 외침이 아닌 자살, 딱히 누군가가 기억하길 원치 않는 자살을 나는 아직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수많은 책과 영화가 절망과 싸우는 법을 가르쳐도 자살자가 나오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럼 세상이 원래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는 전형적인 젊은 영화광처럼 보였다. 고작 서너번 마주쳤고 그가 쓴 평을 1년 정도 본 것밖에 없으니 선입견에 불과하지만 첫인상은 그랬다. 1997년 제2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았던 그는 수상소감에서 “누벨바그 감독들처럼 창작과 평론을 같이 하고 싶다. 사상은 지식과 실천의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이 닿는 한 시도는 해
[편집장이 독자에게] 어느 영화 청년의 자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