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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홍상수 감독 인터뷰를 하면서 그와 처음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떠올랐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개봉을 앞둔 1996년의 어느 날, 당시 <씨네21> 기자였던 김영진 선배와 난 너무나 낯선 영화를 만든 이 신인감독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다. 지금보다 훨씬 날렵하고 젊었던 홍상수 감독의 첫인상은 흔히 볼 수 있는 지식인 같았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깊이 들어가면서 그의 언성은 높아졌고 기자의 상투적 질문이 무색할 답변들이 쏟아져나왔다. 그건 그가 만든 영화만큼 색다른 경험이었고 일종의 정신적 충격이었다. 홍상수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 자기 영화의 방법론을 그처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영화이론서에서 결코 본 적 없는 사유체계를 접하면서 영화란 무엇인가에 관한 내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나는 <극장전>이 지금까지 홍상수 영화 가운데 가장 좋다. 솔직히 홍상수 영화가 얼마나 진보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의 영화는
[편집장이 독자에게] <극장전>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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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봄, 처음으로 칸영화제엘 갔다. 당시로선 일간지들이 아직 해외영화제에 기자를 보내지 않을 때였고, 나는 대종상 예심 심사료 받은 것과 약간의 돈을 모아 자비출장을 결행했다. 내가 놀랐던 건, 영화제 본부 건물은 외관이 예상보다 작고 수수했다는 것이고, 일단 영화제가 시작되니 해변을 따라 뻗어있는 시가지가 모두 행사장이더라는 것이다. 그해 칸영화제에서 받은 좋은 인상과 나쁜 인상 몇가지. 좋았던 건, 첫째, 영화제 주요 행사장과 호텔 로비들에 아침마다 가지런히 비치되는 각종 영화제 일간지들. <버라이어티> 등 잡지들이 현지에서 발행하는 일간지들은 매일매일의 영화제 상황을 환하게 알려 주었다. 둘째, 아이디카드의 위력. 아이디카드 발급 기준은 까다롭지만 일단 받으면 견본시 소극장들을 포함해서 본부 건물안에 있는 수십개 상영관을 자유자재로 들락거릴 수 있다. 단, 입구에 줄서서 입장권을 받아야하는 경쟁부문 메인 시사회만 빼고. 그래서 상영일정표를 들고 체크해가며 한 극장
[편집장이 독자에게] 또하나의 국제영화제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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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5일, <씨네21> 창간 10주년 기념 영화제가 끝났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6천명 이상이 이번 영화제를 다녀갔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영화를 못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었다. 극장에 못 들어간 사람들이 내 멱살을 잡는 꿈을 꾼 적도 있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번 영화제는 최근 몇년간 허리우드극장이 경험 못한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성황을 이뤘지만 매진은 딱 한번 나왔다. 지난 4월30일, 갑자기 한여름처럼 더웠던 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상영시간이었다.
당일 현장에 없었던 탓에 직접 목격하진 못했지만 이날 극장 환경은 끔찍했단다. 이른 더위에 무방비 상태였던 터라 에어컨은 작동이 안 됐고 때마침 매표시스템도 장애를 일으켰다. <안녕, 프란체스카>의 박희진 말투로 “아니, 이게 웬 당황스런 시추에이션”. 480석 좌석이 완전 매진된 상태에서 바닥에
[편집장이 독자에게] <씨네21> 영화제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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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담당 기자들은 김기덕 감독의 <활>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기자 시사회를 열지 않고 인터뷰도 전혀 안 하겠다고 하니 영화에 대해 쓸 말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보도자료도 없고 공개된 스틸사진도 달랑 한장이다. 이거야 원, 기자들 엿먹으라는 거야 뭐야,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씨네21>도 예외는 아니라서 이번호 기획기사에도 다른 데서 볼 수 없던 사진은 없다. 별 수 없이 우리는 제작진과 배우에게 <활> 제작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준비했다. 김기덕 감독은 <씨네21>의 인터뷰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1편 영화를 찍는 동안 너무나 많은 말을 했다. 내 영화를 있는 그대로 보기 힘들 만큼 많이. 그냥 영화 자체로 설명이 되지 않겠나? 나의 말로 규정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상태로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영화를 미리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냐, 대체 무슨 배짱으로
[편집장이 독자에게] 김기덕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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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벌써 1800명이나! <씨네21> 홈페이지에 창간 10주년 축하 리플을 다는 자리를 마련했더니 사흘 만에 1800명 넘는 사람들이 축하인사를 남겼다. 경품을 내걸긴 했지만 사심이 있어 쓴 글 같진 않다. 한마디 한마디 진심이 묻어나는 말이 대부분이다. <씨네21>을 만나 행복했다는 표현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쓸쓸히 보낼 줄 알았는데 여러 지인들이 예상치 못한 생일파티를 마련해준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날은 잘난 척 좀 해도 욕먹지 않을 것 같다.
문득 내가 처음 편집장을 맡았을 때 3대 편집장이었던 허문영 선배가 보낸 이메일에 적혀 있던 글이 떠오른다. “나오고 나서 보니까 <씨네21>이 여전히 중요한 매체라는 걸 알겠다. 옛날보다 더 중요하진 않더라도 여전히 중요하고, <씨네21>에 마음 기대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겠더라.” 가끔은 정말 그런가 의심스럽지만 10주년을 맞는 지금 같은 때는 이 말이 실감난다. 감히
[편집장이 독자에게] <씨네21>의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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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표지를 보고 어디서 본 장면인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맞다. <영웅본색>이다. 갑자기 <영웅본색>을 패러디한 표지를 찍은 건 <씨네21> 창간 1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다. 특별한 표지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결과다. 이번호에 이어 진짜 창간 10주년 기념호인 500호와 501호에도 패러디 표지는 이어진다. 어떤 장면이 어떻게 찍힐지, 두둥 기대하시라. 손홍주 사진팀장은 요즘 이 표지 준비 때문에 녹초가 됐다. 그래도 <씨네21>의 10주년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다는 열의가 끓어올라 주체할 수 없는 눈치다. 병원에서 수술하러 오라는데도 안 가고(실은 못 가고) 버티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 우린 늘 시간이 없는 걸까, 되묻게 된다. 어렸을 때는 일중독이라는 말이 참으로 이해가 안 갔다. 오죽 할 게 없으면 일에 중독이 될까, 싶었는데 요즘엔 일중독에 빠지지 않고서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편집장이 독자에게] 창간 기념 새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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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너, 잘하고 있는 거니?”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란, 대략 난감하다. 옆에서 아무리 “그래, 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도 불안하고, 거꾸로 “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 겉으론 태연한 척해도 속으론 섭섭해진다. 같은 질문을 <씨네21>을 향해 돌려보자. ‘우린 정말 좋은 잡지를 만들고 있는 건가?’ <씨네21>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이 질문은 꼭 누군가 “너, 떨고 있니?”라고 묻는 것 같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느낌을 받아 자꾸 주위를 둘러보지만 목적지를 알려주는 등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당장 당도할 목적지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항해 자체가 목적일지도. 빙하를 피하고 폭풍우와 맞서면서 고난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과장할 생각은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적당한 불안과 긴장과 위험도 때론 힘이 된다. 그래서 어딘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 때도 대범한 척 말한다. “아싸~.”
[편집장이 독자에게] 창간 10주년 기념 영화제를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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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성영화제 프로그램 소개 기사를 보다 깜짝 놀랐다. 다큐멘터리 상영작 내용 대부분이 글로 읽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이야기다. 이런 건 인권영화제에서 틀어야 적당한 것 아닌가 싶은 영화가 한두편이 아니다. 예를 들어 <명예살인>. 파키스탄의 경우, 가문의 명예를 훼손한 여성은 가족이 공모해서 죽여도 문제삼지 않는 처벌관습이 존재한단다. 한편 <결혼선고>에선 이혼문제를 라비의 법정에서 판결하는 이스라엘 상황이 등장한다. 자기는 다른 여자를 만나 함께 살면서 다른 남자를 만난 전처의 자유는 완전히 박탈한다는 라비 법정의 재판도 파키스탄의 <명예살인> 못지않게 끔찍하다. 세상에, 이런 나라에 태어나지 않은 걸 감사해야지 싶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에 봤던 다큐멘터리 한편이 떠오른다. 이란의 어느 연쇄살인범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는 매춘하는 여인을 살해하며 그것이 신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더 놀라운 것은 살인범 가족의 반응이다. 아내와 자식
[편집장이 독자에게] 여인잔혹사, 제7회 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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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울지 않는다. <아무도 모른다>에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이게 적당하지 않을까? <아무도 모른다>를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머니가 버린 꼬마 넷이 남들 눈을 피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본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빨리 마음을 진정시키는 방법은 아이들을 내팽개친 어머니를 비난하는 일일 것이다. 혼자 행복하자고 자식을 버리다니, 응당 누구나 분개할 만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별로 안 들었다. 적개심을 품기엔 너무 철없는 어머니가 아닌가. <아무도 모른다>에서 어머니는 꿈을 꾸는 여자일 뿐이다. 그녀는 너무 많이 버림받아서 버림받는 공포조차 잊어버렸다. 어머니는 크리스마스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나지만 소년도 안다. 이번엔 정말 돌아오지 않을지 몰라. 그래도 울고불고 매달리지 않고 어머니를 떠나보낸다. 건조하게 연출된 이별장면에서 <아무도 모른다>가 비범한 영화라는 걸 알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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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한국영화와 한국축구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한국영화가 칸, 베를린,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하자 월드컵 4강의 환호가 재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혹은 국민 4명 가운데 1명이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봤다는 사실이 월드컵의 광기를 보는 듯했다. 물론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응원 같은 눈에 보이는 이벤트는 없었지만 무언가 열광할 만한 것을 찾는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로 말하자면 축구팬으로서 월드컵의 환호를 즐거운 기억으로 간직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실망도 빨리 하는 편이다. 월드컵 이후 한동안 한국대표팀의 경기에서 희열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만, 베트남, 몰디브 등 월드컵 근처에도 못 가본 나라들한테 쩔쩔매는 경기를 하는 걸 보면서 복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래서는 내년 독일월드컵에 참가도 못하겠다, 싶었다. 그런 점에서 상당수 한국영화는 한국대표팀의 오만전을 연상케 한다. 문전처리 미숙, 골결정력 부족, 수비불안
[편집장이 독자에게] 한국영화와 한국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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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비사 가운데 ‘가짜 남동철 기자 사건’이라는 게 있다. 이렇게 말하면 두둥 북소리도 나고 뭐 대단한 일 같은 느낌이 있지만 그냥 편의상 나 혼자 멋대로 그렇게 이름 붙인 사건이다. 아마 8년도 더 된 일일 것이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가 동숭씨네마텍에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오늘 극장에 자리 빼놨다”는 전화였다. “자리를 빼놓다니, 무슨 말이죠?”
동숭씨네마텍에선 내가 전화해서 오늘 영화 보러 온다고 좌석을 부탁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저 그런 전화 한 적 없는데요.” 상대편에선 무슨 소리냐며 분명히 나에게서 전화가 왔고 좌석을 4개 마련해놨다고 말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내가 단기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걸까? 그러나 흥분 모드에서 평정 모드로 바꾸고 생각해보니 짐작가는 게 있었다. 그래, 전에도 이런 전화가 온 적 있었지? 추리를 해보니 결론은 하나였다. 누가 내 이름을 대고 공짜로(!) 영화를 본다는 얘기였다.
그
[편집장이 독자에게] 가짜 남동철 기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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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일, 휴일이라 회사가 썰렁하다. 주초에 휴일 있다고 마감을 하루 늦춰도 되는 게 아닌지라 기자들은 전부 나와 기사를 쓰고 있지만, 다른 부서엔 출근한 사람이 거의 없다. 인구밀도가 줄어서 숨쉬기는 편하지만 텅 빈 공간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남들 노는 날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 휴일이라 난방마저 끊긴 탓이다. 명랑만화처럼 기자들 얼굴에 빗금이 그어져 있는 듯한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사무실에 앉아 외투를 걸친 채 일하는 기자들 모습이 안쓰럽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떠오르진 않는다. 춥다고 투덜대는 기자들을 피해 약속이 있는 척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은 추워서 도망가는 거지만 절대 내색하지 않으면서.
문득 여기저기서 봄소식이 올라오는 3월이 진짜 겨울인 1, 2월보다 춥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꽃샘추위가 아니라도 얇게 입고 나섰다가 낭패 본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1, 2월엔 ‘그래, 겨울이니까’ 싶어서 단단히 대비해 옷을 입고 난방이 끊길 리도 없지
[편집장이 독자에게] 꽃샘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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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아, 겨울엔 원래 눈이 왔었지.’ 그런 생각이 든 날이었다. 지난 2월22일, 참으로 오랜만에 서울이 하얗게 보이던 날, 배우 이은주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침 그 시간엔 서울극장에서 <여자, 정혜> 시사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를 보다말고 휴대폰을 받고 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나지막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 상영 도중에 참 매너들도 없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이은주의 자살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25살, 이제 꽃피는 나이에 어떤 절망이 그녀를 삼켜버린 걸까? 딱 한번 스쳐가듯 그녀를 본 적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 현장에서. 벌써 5년 전 일이다. 그럼 20살 무렵의 이은주였을 것이다. 그때도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있었던가? … 잘 기억나지 않는다.
때로 어떤 영화에 대한 기억은 영화 내용보다 영화를 보는 환경에 더 크게 지배를 받는다. 이은주
[편집장이 독자에게] 정혜와 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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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한통을 받았다. 무늬나 색깔이 첨가되지 않은 평범한 편지지 10장에 빽빽이 사연을 적은 편지였다. 이메일과 휴대폰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이런 편지를 받은 것 자체가 신기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자신이 교도소에 있다고 밝혔고 2012년에 출소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이 지면에 썼던 ‘<토요명화>에게 보내는 편지’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이 정말 쓰고 싶었던 글이라고 적었다.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아 반응을 얻었다는 점에서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만큼 낯설기도 했다. 그는 <씨네21>을 창간호부터 쭉 사서 봤고 교도소에서도 부모님이 소포로 보내줘서 보고 있다고 했다. 그가 무슨 죄로 그곳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가 처한 환경을 상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전 외화물의 외국배우들 목소리 출연을 맡은 성우들을 맞춰보는 것에도 관심이 있어서 만일 예를 들어 <히트>란 영화를 하는데 주연으로 나오
[편집장이 독자에게] 교도소에서 온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