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도 아동용 세계명작전집이 잘 팔리나?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웬만한 집엔 문고판전집이 하나쯤은 있었다. 우리집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생겼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친척 중에 월부 책장사를 하는 분이 계셔서 구입한 것이다. 50권 문고가 생긴 날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한달쯤 다른 거 안 하고 그 책만 보는 것으로 행복했다. 한권한권 1권부터 50권까지 독파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다 읽으면 다른 전집을 사달래야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차근차근 읽었다. 짐작하겠지만 쉽지 않았다. 재미있는 몇권을 읽고나자 남은 수십권보다 또 다른 전집 50권이 탐났다. 다른 전집을 사달라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난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비슷했다. 도스토예프스키, 헤밍웨이, 카뮈, 카프카 등 쟁쟁한 문호의 책을 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한두권 읽다 포기했다. <죄와 벌>을 제쳐두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읽었고 조흔파의 소년소설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그간
개편호를 내놓으며
-
역시 올림픽이 멋지긴 멋지다. 4년마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대회니만치 하루하루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가 이어졌다. 이번에도 한국은 평소 외면받던 종목들이 놀라운 투혼을 발휘했다. 유도, 탁구, 배드민턴, 양궁 등 금메달을 딴 종목들은 물론 역도, 체조, 하키, 핸드볼, 배구 등 숱한 비인기 종목에서 강호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언론의 레퍼토리는 4년 전이나 16년 전이나 다를 바 없다.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을 했고 어떤 좌절과 역경을 딛고 일어섰는가. 식상하고 진부한 얘기지만 그들의 성공스토리는 여전히 가슴을 파고든다. 왜일까? 아마 뻔한 이야기라도 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4년에 한번 아주 잠깐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이제 올림픽이 끝나면 그들은 퇴장한다. 앞으로 4년간 그들은 또다시 잠깐 주인공이 되는 그날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릴 것이다. 올림픽이 멋지다면 그건 그들이 주인공인 유일한 무대이기 때문이다.탁구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딴 순간 나도 모
올림픽이라는 블록버스터
-
“서울은 풋내기가 그린 유화다. 급하게 위로 덧칠하고 또 덧칠하고. 얼마나 급하게 그렸는지 밑색이 고스란히 올라오기도 하고 군데군데 미처 칠하지 못해 생뚱맞은 색들이 보이기도 한다.” 현재 온라인 전시 중인 <한 도시 이야기>(http://handosi.cine21.co.kr)에서 누군가 쓴 표현이다. 전시 중인 사진을 보노라면 참 맞는 말이다 싶다. 여기서 핵심은 ‘급하다’는 데 있다. 빨리 짓고 빨리 부수고, 빨리 뚫고 빨리 메운다. 내 몸이 서울이라면 너무 많은 성형수술에 괴물처럼 변했을 것이다. 잘못 주입한 실리콘으로 살과 근육이 뒤틀리고 뭉개진 흉한 몰골이 연상된다. 변화의 속도 면에서 서울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 경쟁력 있는 곳이다.
지금도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한강의 기적, 단기간의 고속성장’ 뭐 이런 것이 대한민국의 자랑이라고 배웠다. 춥고 배고팠던 부모 세대 얘기는 이런 말을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내
도시 이야기
-
나는 육교가 싫다. 코미디언 정준하의 말투를 흉내내면 육교에 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였다. 어느 겨울 눈이 많이 온 다음날, 학교 앞 육교에 쌓인 눈은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친구들과 하교하던 나는 육교 계단에서 두발이 붕 뜨는 순간을 경험했다. 모자 달린 점퍼를 입고 있었기에 뒤에 있던 친구가 내 모자를 낚아챘지만 소용없었다. 내 몸은 모자를 남겨둔 채 육교 맨 아래까지 단숨에 미끄러졌다. 쿵쿵쿵쿵, 계단참은 연신 등허리를 때렸고 나는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1초나 걸렸을까. 단숨에 바닥에 엉덩이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친구들은 “괜찮냐”며 걱정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프고 겁나고 창피해서. 육교와 나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됐다.어쩌다 그랬는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근처다. 17년 전에 졸업한 그곳 풍경은 놀랄 만큼 바뀌었다. 서울 시내에서 손꼽히던 달동네였는데 지금은 사방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한옥이나 판자촌은
육교
-
-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골마을에 버스가 도착한다. 여자가 내리고 부랑자 차림의 사내가 그녀를 노려본다. 당장 무서운 일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지만 잠시 뒤 사내의 눈이 풀린다. 여자는 이 마을에 새로 부임한 교사. 마을 소년의 안내를 받으며 버스정류장에서 십리 떨어진 학교로 발걸음을 옮긴다. 임권택 감독의 1982년작 <안개마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난 이 영화를 지난주 일요일 EBS <한국영화특선>에서 처음 봤다. 부끄러운 일이다. 영화잡지 기자 생활 10년을 하면서 이제야 <안개마을>을 보다니. 아무튼 꼭 보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영화는 그렇게 시작해서 단 한순간도 눈길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8월 <한국영화특선>은 <만다라> <족보> <깃발없는 기수> 등 임권택 감독의 걸작들로 이어진다. 놓치지 마시길).
그게 꼭 정윤희의 압도적인 미모 때문은 아니었다(그러나 정윤희는 정말 예쁘다). 마을 사
안개마을 방문기
-
그놈은 멋있었다. 영화 얘기가 아니다. 한기주, 그 남자 얘기다. 지금 두집 중 한집에서 보고 있다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 물론 나도 본다. 어떻게 이 드라마가 내 마음에 파고들었나? 생각해보니 기주가 강태영을 대하는 태도 때문인 것 같다. 같이 밥 먹을 마음 없다는 태영에게 기주가 말한다. “나 혼자 밥 먹는 거 싫어서 그래. 그냥 앉아 있어.” 위압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단호하다. 웬만한 자신감 아니면 이렇게 말 못한다. 아, 떠올리기 싫지만, 밥 안 먹겠다는 그녀한테 그냥 밥 좀 먹자는 말을 하면서 난 얼마나 안절부절못했던가. 그녀의 마음을 잡아야겠는데 배는 고프고, 확 나도 일어날까, 하다 생각해보면 시켜놓은 음식이 아까웠다. 왜 기주처럼 멋지고 쿨하게 못했던 걸까? 후회가 된다.급기야 지난주 일요일엔 기주가 슬퍼하는 태영에게 노래를 들려줬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니, <나비야>가 나올 때 난 박신양이 서민정처럼 되길 바랐다. 헛된 기대였다. 박
시루떡 시스터즈
-
이번주 <씨네21>을 만들고 난 소감은, 여울목을 향해 여러 길목에서 덮쳐오는 물의 이미지다. 세상의 물은 게으른 듯 한데 엉켜 이리저리 일렁이다가, 불현듯 튀기고 쪼개지며 격렬하게 내달린다. 지금 보이는 물은 후자다. 그리고 나 자신이 세 갈래 길로부터 쏟아져오는 그 물세례 속에 잠긴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 어딘가를 향해 함께 흐르고 있다.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은 ‘영화적 행동주의’가 거둘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결실을 맺을 모양이다.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목적이란 딱 한 가지, 부시 낙선이었다고 밝히며 개봉 전후로도 쉼없이 입을 열어 조지 부시를 낚으려 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반부시 진영에 유용한 문화적 무기가 되는 데에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 큰 기여를 했으니, 정통 미학주의자들의 떨떠름한 기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칸과 프랑스는 스스로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도훈 기자의
바로 이런 식으로
-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 형사는 존 우(오우삼)에 대한 오마주로 보인다.” 4년 전 뉴욕에서 열린 어느 영화제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소개됐을 때 뉴욕의 한 신문에 실린 영화평엔 이런 말이 들어 있었다. 아마 이명세 감독의 전작을 봤다면 이런 말을 못했겠지만, 이 서구인의 눈에 오우삼과 이명세는 아시아의 액션감독이라는 한 묶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당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상영 직후 이명세 감독이 뉴요커들과 나눈 관객과의 대화도 기억이 난다. 그 무렵 뉴욕에선 경찰의 폭력문제가 큰 이슈였다. 그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형사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기겁을 했다. 뉴욕의 한 시민이 물었다. “한국에선 정말 경찰이 범죄혐의자를 그런 식으로 다루나요?” 그때 오래전 홍콩의 어느 경찰관에게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그는 “홍콩누아르를 보면 홍콩은 아무 데서나 총질을 해대는 도시로 보이지만, 사실 홍콩이 아시아에서 가장 안전한
거꾸로 보는 한국영화
-
나는 귀차니스트다. 나 자신은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남들이 그렇게 말한다. 주위 사람들한테 그런 말을 듣고 정말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정말 그렇다. 무슨 경조사가 생길 때마다 나의 반응은 일단 “아이, 귀찮아”에서 시작한다. 이가 아파도 웬만하면 참다가 병원에서 “많이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어요?” 하면 “병원 가기 귀찮아서요”라는 대답이 목구멍을 간지럽힌다. 심심해서 친구한테 만나자는 전화를 해볼까 싶다가도 전화번호 누르기가 귀찮아서 그냥 심심한 대로 시간을 보내는 일도 다반사다. 물론 이런 귀차니스트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만화 <스노우캣>은 그런 면에서 진한 동지애를 느끼게 한다. 내가 귀찮아서 안 한 일 가운데 대표적인 한 가지는 운전면허를 따는 일이었다. 시도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두번 떨어져보고 즉각 포기했다. 아마도 마지막 시험을 봤던 시간이 오전 9시였던 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날 아침 9시가 넘어서 잠에서 깬 나는 다시는 운전면허시
어느 귀차니스트의 첫인사
-
<씨네21>에 다시 돌아온 지 1년5개월, 이 자리를 맡은 지 만 1년 되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이른 시점인데 떠나려는 이유를 나 자신도 정확히 설명하진 못한다. 설명이라는 게 각자의 경험 덩어리들과 관점을 엮어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면, 다른 이들이 대신해줄 설명들을 기다려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그 대신 나는 며칠 동안 헤르메스를 생각했다. 제우스의 자식인 그는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샌들을 신은 채 신의 전령사 노릇을 한다. 오며가며 여행객도 안내하고 레슬링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심지어 황천길 가는 사람도 돌보아주었던 모양이다. 오지랖도 넓고 역동적인 젊은 신이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그를 무역의 신, 전령의 신이라고 간단히 줄여부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헤르메스를 가장 의미심장하게 현대로 불러들인 이는 아마도 미셸 세르일 텐데, 그는 과학기술을 통한 생산을 상징하던 프로메테우스의 시대로부터 그 기술을 전하고 여러 분야를 가로지르며 소통시키
안녕
-
“샤트야지트 레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몹시 울적했다. 그런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신이 그의 자리를 대신할 적임자를 찾아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영문 포스터에 인용된 구로사와 아키라의 말이다. 나는 벽에 붙여둔 포스터에서 꼬마의 눈길과 마주칠 때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날 몸이 느끼던 진동을 회상한다.내게 있어 프랑스 누벨바그의 첫 번째 이미지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때문이다. 행복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은 어린아이가 바다를 향해 내달리다가 물에 가로막혀 뒤돌아서는 그 얼어붙은 마지막 프레임이 내 가슴을 400번쯤 구타하지 않았을까.만화영화 <로보트 태권브이>에서 조그만 깡통 로봇이 가슴에 달린 양철 뚜껑을 열고 고춧가루를 발사하던 그 시절 이래로, 나는 어린이 영화에 민감하다.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오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며 먼 곳을 바라보거나,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어린이 영화
-
2002년 베를린이었다. 그해 영화제에 온 유럽 사람들이 <블러디 선데이>에 대해서 보이는 반응은 내 감각을 넘어서는 데가 있었다. 이번주 김현정 기자의 글이 알려주듯이, 이 영화는 동시대 유럽인들의 기억 속 어딘가를 건드려 통증을 유발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의 내게 <블러디 선데이>의 스타일과 내용은 기억이 아니라 현실에 가까웠다. 그것을 정면으로 대하자니 어질어질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기억은 안전거리를 갖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지금 충무로는 가까운 과거에 일어났던 실화들을 열심히 뒤쫓고 있다. 정한석 기자는 이를 두고 한국 근대사에 뚫려 있는 블랙홀로 빠져들어간다는 표현을 썼다.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박두만 형사(송강호)가 들여다보았던 땅밑의 검은 구멍을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거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왜 들여다볼까?과거를 캐는 것은 현재가 마뜩찮거나 고통스럽다는 뜻일 터이다. “도대체 왜
되돌아본다는 것은
-
최근에 익힌 말 가운데 기특하게 쓸모 많은 것이 ‘동급 최강’이다. 급의 차이 즉 범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평가는 각각의 범주 내부에서 내리겠다는 화법이다. 이것을 영화에 적용하면 특정 부류 자체를 옹호하거나 배척하는 대신 그 부류들 안에서 잘 만들어진 혹은 소홀한 영화들을 분별하고 평가하는 태도가 자리잡게 될 것이다. 문화 다양성이란 동급 최강이 많다는 뜻일 터.나는 여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취향이 선명한 편인데, 내가 좋아하는 범주 안에서 어지간히 잘 만들어진 영화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동급 최강이 주는 기쁨의 총량이 얼추 비슷하지 싶다. 물론 좋아하는 부류의 동급 최강을 만나면 몽롱하게 취한 기분이 2주일쯤 간다. 취향에 따른 관대함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직업적인 이유로 시사회를 다니다 보면 참 못 만들었다 싶은 영화에도 어쩌다 걸리게 되는데, 그럴 때는 내 얼굴 아는 사람 없다면 10분 만에 일어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만든 이에 대한 예의와 관련자
동급 최강
-
사무실에서 들리는 휴대전화 벨소리 가운데 요즘 새롭게 등장한 것이 <올챙이 송>이다. 누군가의 전화기가 울리면,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다리가 쏘옥 나온다는 이 동요를 율동까지 떠올리며 흥얼거리는 후유증을 잠시 겪는다.이번주 특집기사는 지난 시절 한국 영화계의 풍경을 재현한다. 성실하고 유머러스한 이영진 기자가 지금은 청년 개구리처럼 팔딱팔딱 뛰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꼬물꼬물 헤엄치던 시절을 재구성했다(물론 한국 영화사에 생물학적인 진화론의 관점을 적용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 기사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보다 앞선 1950~60년대는 뛰어난 작가와 작품들을 배출한 한국 영화사의 황금기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는 정치적인 이유로 기가 죽은 안일한 대중영화들이 하릴없이 쏟아져 나온 시기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극장주나 지방 배급업자가 제작비를 좌우하고 배우들이 연간 수십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시스템은 영화의 형식과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
올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