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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특히 마지막 장면이요.” TV 뉴스를 보다 우연히 시각장애인이 이렇게 말하는 걸 봤다. 어떻게 시각장애인이 화면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지?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서 장애인영화제 취재를 제안했다. 과거 촛불시위도 여러 번 나간 적 있는, 의협심 강한 김도훈 기자가 선뜻 내가 하겠노라 나섰다. 주말을 반납하며 일한 그는 “인터뷰는 많이 했어?”라는 질문에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김도훈 기자는 장애인들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직접 장애체험부터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말문을 텄다. 이번주 기획기사 ‘장애우의 영화보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는 생애 처음 영화관에 온 한 시각장애인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고 썼다. 무엇보다 그 구절이 마음을 사로잡는다.생애 처음 영화관을 찾은 장애인의 미소란 어떤 것일까? 언젠가 TV에서 봤던 장애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라 여행가는 건
어느 장애인의 생애 첫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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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한텐 낯선 말이지만 ‘혼식’이라는 말이 있다. 쌀밥이 아니라 보리나 잡곡을 섞어 먹는 걸 가리키는 단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러니까 박정희 정권 시절엔 혼식장려정책이란 게 있었다. 혼식을 하면 튼튼해진다는 회유도 있었지만 도시락을 검사해서 쌀밥을 싸온 녀석들을 색출, 처벌하는 공갈, 협박도 적지 않았다. 순진한 어린 마음엔 혼식을 안 하면 정말 무슨 큰 병에 걸리는 줄 알았다. ‘혼식하라’는 말씀에 깊이 감화받은 아이들 가운데 자발적으로 프락치가 되는 친구도 있었다. “선생님, 얜 도시락 위만 살짝 보리를 얹은 거래요. 밑엔 다 쌀밥이에요.” 이렇게 일러바치기도 했다. 우리 집에선 보리보다 좁쌀을 섞는 일이 많았다. 그 무렵 우리 집에서 닭을 키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닭과 내가 같은 걸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난 좁쌀을 섞은 밥이 무척 싫었다. 어린 시절 상처 때문인지 지금도 난 흰 쌀밥만 좋아한다. 입맛이 촌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억지로 했던 혼식을 다
김부선의 선택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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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한 이 1분을 결코 잊지 않겠다.” <2046>을 보다가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장만옥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비정전>에서 장만옥은 장국영이 말한 그 1분 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마 장만옥은 그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 즉 ‘화양연화’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죽어가는 장국영은 그 1분을 기억하지 못한다(기억했다 해도 그에겐 그냥 장난이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생의 전부인 것이 상대방의 마음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다.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같은 시간, 같은 감정을 나눈대도 영원한 사랑을 보장받을 순 없다. 왕가위가 믿는 유일한 방법은 <화양연화>의 양조위처럼 앙코르와트의 돌벽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봉인하는 것이다.
<2046>은 <화양연화>의 후속편인 동시에 <아비정전>의 후속편이다. 차우는 <화양
왕가위를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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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씨네21>은 동갑내기다. 생일은 <씨네21>이 빠르지만 같은 해 태어난 인연 때문인지 부산영화제는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낸 친구처럼 느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영화제 일간지를 만들기 위해 부산행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멍하니 창 밖을 보니 옛날 일이 떠오른다. 1995년 가을 부산영화제는 국내에서 처음 생기는 국제영화제로 닻을 올렸다.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라고 당시 편집장 조선희 선배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난 그렇게 말할 입장이 못 된다. 솔직히 초보 기자였던 난 이 거대한 영화제에 대해 별 감상이 없었다. 그 무렵엔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았다. 부산에서 무슨 영화를 볼지 설레는 대신 부산에 간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했다. 어찌된 일인지 태어나서 한번도 부산에 안 가봤기 때문이리라. 부산에 가면 해운대에 가봐야지, 바다에서 일출을 봐야지, 어쩌면 멋진 로맨스가 있을지도, 뭐 그런 잡스런 생각에 혼자 들떴다. 돌아보니
부산국제영화제와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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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미리 짠 것도 아닐 텐데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4편에 묘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야기의 매듭이 엉켜 있다는 점이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패전처리 전문투수였던 감사용이 미치도록 열망하던 승리를 눈앞에서 놓치는 이야기다. 사회의 루저이자 아웃사이더인 한 인물이 아주 잠깐 세상의 중심에 섰다 쓸쓸히 퇴장하는 어느 정도 낯익은 스포츠영화다. 제목만 듣고도 패배자의 영화인 줄 짐작하겠지만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샌다. 감사용의 연애담이 끼어드는 것이다. 실화였던 감사용 스토리는 매표소 직원 은아와 감사용의 사랑 이야기에서 픽션으로 돌변한다. 가짜 티가 무척 많이 나는데도 러브스토리가 끼어든 것은 여성관객도 끌어보자는 상업적 배려 때문일까? 그냥 영화의 마지막에 감사용을 위로할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밥에 섞인 모래알처럼 서걱거린다. 연기를 못해서 그렇다거나 대사가 나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가 본론을 벗어난다는 게 문제다. 감사용은 루저다.
깔끔한 이야기가 그리운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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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오래된 김기덕의 지지자다. 그가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게 낯간지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간 김기덕을 지지하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1996년 <악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감동했다. 한강 물밑에서 죽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숭고한 종교적 기적처럼 보였다. 나는 당연히 남들도 그렇게 느낄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당시 <악어>를 본 평론가나 기자 누구도 이 영화를 지지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난 풋내기 영화기자였다. 좋은 영화로 판단했다고 <악어>의 훌륭함을 다 표현할 능력이 내겐 없었다. <악어>를 좋게 본 평론가가 있을까? 나는 애타게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내가 글로 쓰지 못한 이 영화의 진정한 새로움을 누군가는 봤을 것이라 믿었다. 내가 아는 한 그해 <악어>를 지지한 유일한 평론가는 정성일씨였다. 그의 글은 김기덕 감독뿐 아니라 내
김기덕 감독에 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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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한달 휴가를 얻어 유럽에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다. 미술 관련 서적 하나를 들고가 3주간 유럽여행을 하면서 유명한 미술관 몇 군데를 방문했다. 그중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을 잊을 수 없다. 고흐의 그림을 보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미술 관련 서적에서 본 도판에서 전혀 느낄 수 없던, 살아 있는 듯한 생생한 붓질의 느낌 때문이었을까. 평소 고흐의 그림을 특별히 좋아한 적 없건만 그의 삶과 영혼에 델 듯했다. 물론 그건 낯선 경험에서 오는 충격이 컸을 것이다. 그 유명한 그림들을 직접 대면할 기회가 한번도 없던 한국 촌놈이니 그럴 만한 일 아닌가. 지금 돌이켜보면 굳이 고흐의 그림이 아니었대도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진품의 향취는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전율을 불러온다.
그때 본 미술관 풍경 가운데 기억에 오래 남는 일은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보는 모습이었다. 이 아이들은 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직접 보며 자라는구나. 무심히 그 모습을
문화적 저력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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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아동용 세계명작전집이 잘 팔리나?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웬만한 집엔 문고판전집이 하나쯤은 있었다. 우리집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생겼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친척 중에 월부 책장사를 하는 분이 계셔서 구입한 것이다. 50권 문고가 생긴 날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한달쯤 다른 거 안 하고 그 책만 보는 것으로 행복했다. 한권한권 1권부터 50권까지 독파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다 읽으면 다른 전집을 사달래야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차근차근 읽었다. 짐작하겠지만 쉽지 않았다. 재미있는 몇권을 읽고나자 남은 수십권보다 또 다른 전집 50권이 탐났다. 다른 전집을 사달라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난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비슷했다. 도스토예프스키, 헤밍웨이, 카뮈, 카프카 등 쟁쟁한 문호의 책을 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한두권 읽다 포기했다. <죄와 벌>을 제쳐두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읽었고 조흔파의 소년소설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그간
개편호를 내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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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올림픽이 멋지긴 멋지다. 4년마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대회니만치 하루하루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가 이어졌다. 이번에도 한국은 평소 외면받던 종목들이 놀라운 투혼을 발휘했다. 유도, 탁구, 배드민턴, 양궁 등 금메달을 딴 종목들은 물론 역도, 체조, 하키, 핸드볼, 배구 등 숱한 비인기 종목에서 강호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언론의 레퍼토리는 4년 전이나 16년 전이나 다를 바 없다.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을 했고 어떤 좌절과 역경을 딛고 일어섰는가. 식상하고 진부한 얘기지만 그들의 성공스토리는 여전히 가슴을 파고든다. 왜일까? 아마 뻔한 이야기라도 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4년에 한번 아주 잠깐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이제 올림픽이 끝나면 그들은 퇴장한다. 앞으로 4년간 그들은 또다시 잠깐 주인공이 되는 그날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릴 것이다. 올림픽이 멋지다면 그건 그들이 주인공인 유일한 무대이기 때문이다.탁구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딴 순간 나도 모
올림픽이라는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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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풋내기가 그린 유화다. 급하게 위로 덧칠하고 또 덧칠하고. 얼마나 급하게 그렸는지 밑색이 고스란히 올라오기도 하고 군데군데 미처 칠하지 못해 생뚱맞은 색들이 보이기도 한다.” 현재 온라인 전시 중인 <한 도시 이야기>(http://handosi.cine21.co.kr)에서 누군가 쓴 표현이다. 전시 중인 사진을 보노라면 참 맞는 말이다 싶다. 여기서 핵심은 ‘급하다’는 데 있다. 빨리 짓고 빨리 부수고, 빨리 뚫고 빨리 메운다. 내 몸이 서울이라면 너무 많은 성형수술에 괴물처럼 변했을 것이다. 잘못 주입한 실리콘으로 살과 근육이 뒤틀리고 뭉개진 흉한 몰골이 연상된다. 변화의 속도 면에서 서울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 경쟁력 있는 곳이다.
지금도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한강의 기적, 단기간의 고속성장’ 뭐 이런 것이 대한민국의 자랑이라고 배웠다. 춥고 배고팠던 부모 세대 얘기는 이런 말을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내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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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교가 싫다. 코미디언 정준하의 말투를 흉내내면 육교에 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였다. 어느 겨울 눈이 많이 온 다음날, 학교 앞 육교에 쌓인 눈은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친구들과 하교하던 나는 육교 계단에서 두발이 붕 뜨는 순간을 경험했다. 모자 달린 점퍼를 입고 있었기에 뒤에 있던 친구가 내 모자를 낚아챘지만 소용없었다. 내 몸은 모자를 남겨둔 채 육교 맨 아래까지 단숨에 미끄러졌다. 쿵쿵쿵쿵, 계단참은 연신 등허리를 때렸고 나는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1초나 걸렸을까. 단숨에 바닥에 엉덩이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친구들은 “괜찮냐”며 걱정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프고 겁나고 창피해서. 육교와 나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됐다.어쩌다 그랬는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근처다. 17년 전에 졸업한 그곳 풍경은 놀랄 만큼 바뀌었다. 서울 시내에서 손꼽히던 달동네였는데 지금은 사방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한옥이나 판자촌은
육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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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골마을에 버스가 도착한다. 여자가 내리고 부랑자 차림의 사내가 그녀를 노려본다. 당장 무서운 일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지만 잠시 뒤 사내의 눈이 풀린다. 여자는 이 마을에 새로 부임한 교사. 마을 소년의 안내를 받으며 버스정류장에서 십리 떨어진 학교로 발걸음을 옮긴다. 임권택 감독의 1982년작 <안개마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난 이 영화를 지난주 일요일 EBS <한국영화특선>에서 처음 봤다. 부끄러운 일이다. 영화잡지 기자 생활 10년을 하면서 이제야 <안개마을>을 보다니. 아무튼 꼭 보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영화는 그렇게 시작해서 단 한순간도 눈길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8월 <한국영화특선>은 <만다라> <족보> <깃발없는 기수> 등 임권택 감독의 걸작들로 이어진다. 놓치지 마시길).
그게 꼭 정윤희의 압도적인 미모 때문은 아니었다(그러나 정윤희는 정말 예쁘다). 마을 사
안개마을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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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은 멋있었다. 영화 얘기가 아니다. 한기주, 그 남자 얘기다. 지금 두집 중 한집에서 보고 있다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 물론 나도 본다. 어떻게 이 드라마가 내 마음에 파고들었나? 생각해보니 기주가 강태영을 대하는 태도 때문인 것 같다. 같이 밥 먹을 마음 없다는 태영에게 기주가 말한다. “나 혼자 밥 먹는 거 싫어서 그래. 그냥 앉아 있어.” 위압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단호하다. 웬만한 자신감 아니면 이렇게 말 못한다. 아, 떠올리기 싫지만, 밥 안 먹겠다는 그녀한테 그냥 밥 좀 먹자는 말을 하면서 난 얼마나 안절부절못했던가. 그녀의 마음을 잡아야겠는데 배는 고프고, 확 나도 일어날까, 하다 생각해보면 시켜놓은 음식이 아까웠다. 왜 기주처럼 멋지고 쿨하게 못했던 걸까? 후회가 된다.급기야 지난주 일요일엔 기주가 슬퍼하는 태영에게 노래를 들려줬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니, <나비야>가 나올 때 난 박신양이 서민정처럼 되길 바랐다. 헛된 기대였다. 박
시루떡 시스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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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씨네21>을 만들고 난 소감은, 여울목을 향해 여러 길목에서 덮쳐오는 물의 이미지다. 세상의 물은 게으른 듯 한데 엉켜 이리저리 일렁이다가, 불현듯 튀기고 쪼개지며 격렬하게 내달린다. 지금 보이는 물은 후자다. 그리고 나 자신이 세 갈래 길로부터 쏟아져오는 그 물세례 속에 잠긴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 어딘가를 향해 함께 흐르고 있다.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은 ‘영화적 행동주의’가 거둘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결실을 맺을 모양이다.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목적이란 딱 한 가지, 부시 낙선이었다고 밝히며 개봉 전후로도 쉼없이 입을 열어 조지 부시를 낚으려 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반부시 진영에 유용한 문화적 무기가 되는 데에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 큰 기여를 했으니, 정통 미학주의자들의 떨떠름한 기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칸과 프랑스는 스스로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도훈 기자의
바로 이런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