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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배우와 영화인들이 가장 자주 드나드는 장소를 꼽으라면 아마 <씨네21>이 다섯손가락, 적어도 열손가락 안에는 들 것이다. 한주에 평균 2명의 배우를 포함한 7,8명 안팎의 영화인이 사진을 찍으러 우리 회사를 방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씨네21>에서 사진을 찍기로 약속이 잡히면 배우들은 공포에 떤다고 한다.(‘공포’는 약간 과장이지만 어쨌든 그런 소문이 있다). 우리 스튜디오가 워낙 대단한 곳이기 때문이다.스튜디오가 자리잡은 곳은 한겨레신문 2층 한구석, 윤전기 바로 옆이다. 근처라도 가본 사람이면 아실테지만, 1시간에 수만부의 신문을 찍어내는 윤전기는 가공할만한 굉음과 열기를 함께 토해낸다. 우리 스튜디오는 간이벽으로 이루어진 가건물이다. 얇은 칸막이를 가볍게 통과한 엄청난 기계음이 오후 4시경부터 밤늦게까지 스튜디오에 충만하다. 소음과 열기가 앙상블을 이룬 한여름엔 극기훈련장으로 써도 전혀 손색없다. 정말 대단한 곳이다.이런 곳에서 사진도 찍고 인터뷰
스튜디오 공포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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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회사에 방이 붙었다. 기획위원 홍세화, 편집부국장 김훈.<씨네21>이 한겨레신문 소속이긴 하지만, 매체 성격도 특수한데다 구성원도 대부분 특채로 들어온 외인부대여서, 회사 돌아가는 사정은 잘 모른다. 방이 붙고서야 이 두 사람이 <한겨레>에서 일하게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이건 드물게 아주 재미있고 반가운 일이었다. 난 두 사람을 개인적으로 전혀 모른다. 오직 그들의 글(또는 글로 정리된 그들의 말) 중의 일부를 만났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다.홍세화씨의 이름은 많은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그의 책으로 알게 됐다. 그는 남민전이라는 70년대 아주 무시무시한 조직사건에 연루돼 프랑스로 망명했고, 파리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면서 먹고산 사람이다. 나는 비운의 혁명가, 망명객이라는 호칭이 주는 그 아득한 매혹과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대에 속한다(이번호에 소개된 명필름의 이은 감독도 그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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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가 개봉한 뒤로 2주 연속 김기덕 논쟁을 실었더니, 우리 온라인사이트에 어떤 이용자가 “이건 결국 김기덕 키워주기이고, 편들기”라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두번도 부족해 이번에 또 김기덕 논쟁을 실었으니, 그런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게 뻔하다. 그래서 제 발 저린 자로서 변명 겸 해명을 좀 하고 싶다.특정한 감독이나 영화 키워주기가 아니냐는 독자의 항의를 듣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했을 때도 들었고, <취화선> 동행기 실었을 때도 들었다. 이런 비판, 안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잡지 만드는 사람들이 제일 신날 때는 박수쳐주고 싶은 영화 혹은 영화인을 발견하고, 신나게 박수칠 때다. 그건 그 자체로 즐겁다. 아니, 잡지 만들면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을 포기하고 엄격하게,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그럴 자신도 없다.솔직히 말
변명,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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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 브래스코>에서 지워지기 힘든 장면 하나. 늙고 무기력한 갱 알 파치노가 집에 쭈그리고 앉아 ‘동물의 왕국’(영문제목은 따로 있겠지만)을 넋놓고 보고 있다. 그럴듯한 주석을 붙일 의욕도 없이, 그냥 그 모습만으로도 마음이 저렸다.편집자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말 없지만,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를 며칠전에야 봤다. 보면서 동물의 왕국을 보는 알 파치노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무슨 연상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쁜 남자>는 슬픈 영화였다. 주인공 한기는 짐승의 시간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아주 나쁜 방식으로 여인을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는 바람에 많은 여성평론가들을 다시 분노케 하긴 했지만, 한기의 그 나쁜 동물성은 어떤 충고도 계몽도 들어설 자리가 없는,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 없는 천형처럼 느껴졌다.개인적으로는 한기의 방식이 너무 명백하게 나쁘기 때문에 별로 해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은밀하게 나쁜 게 가장 나쁘
어떤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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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이 아주 싫어하는 음악가인 바그너는 파렴치한 인간이었다고 한다. 그에게 돈을 빌려줘서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바그너는 돈을 떼먹고도 미안한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김현과 함께 한국 최고의 산문가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기꺼이 존경을 바치고 싶은 시인 김수영도 돈에 관해선 쫀쫀하기 이를데 없었다고 한다. 여름날 그의 와이셔츠 주머니에 들어있는 지폐가 밖에서 환히 보이는데도(경험해본 사람은 알지만 거기에 돈 넣으면 아주 잘 보인다), 김수영은 커피값이나 술값을 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돈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예인 혹은 장인의 가치는 일상적 도덕성이나 상식적인 의미의 인간성과는 무관하다. 유태인인 우디 앨런이 바그너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의 인간성 때문이 아니라 나치스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였기 때문이다. 말난 김에 좀더 하자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에 미쳐서 집안을 거덜낸 인간이며, 발자크는 귀족임을 가장하기 위해 귀족이 쓰는 ‘드’를 자기
차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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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어떤 인터뷰에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묻는 질문에 “권투와 마라톤”이라고 답했던 것 같다. <시장과 전장>과 <토지>를 읽고나서 더할 수 없는 존경심을 품고 있던 내게 그 대답은 이상하게 심금을 울렸다. 없다고 해도 좋을만큼 극히 단순한 룰에다 몸의 가장 단순한 기능만으로 승부하는 그 원시적인 스포츠를, 특히 남자들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그 무식한 권투를 좋아하시다니, 역시 남다르시군요,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오늘의 20대 독자들에겐 실감이 나지 않을 테지만, 우리의 스포츠 영웅은 안정환이나 허재가 아니라, 홍수환과 유제두였다. 홍수환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는 근 10년간 유행어였고, 유제두가 일본의 세계챔피언 와지마 고이치에게서 타이틀을 빼앗았을 때, 한 신문은 두면에 걸쳐서 내가 본 가장 큰(미국 테러 때보다 두배쯤 큰) 글씨로 ‘와지마, 다운, 다운, 다운’이란 제목을 달았다. 중학교 때
권투, 챔피언,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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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들과 술 마시는 것보다 여자들과 수다 떠는 게 더 좋다.”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남자를 최근에 두번 봤다. 한 사람은 <고양이를 부탁해>를 제작한 오기민씨다. 이 사람은 여성의 성장에 관한 영화를 연달아 세편 만들었으며, 집에 예쁜 운동화를 서른 켤레쯤 갖고 있는 특이한 남자다. 또 한 사람은 이번호에 길게 소개된 작가 김영하씨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필자이기도 했던 김영하씨는 남성적인 것과 축구와 정치와 도박을 싫어하며 쇼핑이 취미라고 태연하게 말했다(그래서 그걸 제목으로 뽑았다). 그리고, 공언한 적은 없지만, <씨네21> 기자였으며 지금은 조우필름 대표인 조종국씨도 그렇다.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데, 밤새도록 수다 떨 수 있는 드문 남자다. 따지고보면 영화판엔 그런 사람들이 매우 많다.솔직히, 나는 이런 사람들이 반갑다(축구와 도박에 대한 의견은 좀 다르지만). 나를 포함한 남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해온 말 가운데 하나가 쩨쩨하다, 계집애 같
소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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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차이밍량 감독에게 한 관객이 이렇게 물었다. “당신의 영화는 동시대성을 추구하는 영화다. 당신에게 동시대성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게 도대체 무슨 질문인가. 앞 뒤 문장이 연결이라도 되나. 뭘 묻자는 건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은근히 짜증이 나는데, 차이밍량은 의외로 아주 성심껏 꼼꼼하게 답했다.(차이밍량은 관객과의 대화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며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공동 인터뷰 자리에서 한 기자가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동석한 기자가 세명 밖에 없는터라 갑자기 등에서 식은 땀이 솟는데(성질 급한 감독들은 질문이 마음이 안들면 인터뷰 자리를 파해버린다), 타베르니에는 “영화는 나의 모든 것”이라고 명쾌하게 답했다.(타베르니에도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늘 상대방에게 질문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탓에, 나는 이런 질문을 이해한다. 아니, 나도 불쑥 한 적이 있다. 너무 포괄적이며 누구에게나 던질 수
잡스러움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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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행사가 무엇일까요, 라는 싱거운 퀴즈가 있다면, 정답은 국제영화제다. 우리의 오래된 꿈은 관객으로 영화제 구경 가는 것이다. 데일리 만드느라 새벽 두세시에 퇴근해, 아침에 눈비비며 헐레벌떡 인터뷰 장소로 가다보면, 깔깔거리며 극장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귀족계급처럼 보인다. 프레스카드라는 걸 차고 있지만 극장에 가는 건 귀한 경험이다. 올해 부산영화제 때는 누군가 여섯편을 봤다고 말하자, 와 그렇게 많이 봤어, 라는 탄성이 터져나왔다.짬을 내 지난 12월7일부터 열렸던 광주국제영상축제에 3일 동안 다녀왔다. 국내의 다른 국제영화제의 열기를 즐겁게 체험한 사람에게라면, 이건 영화제도 아니다. 예산이 다른 영화제의 10% 수준이고, 대학 시험기간과 겹친 일정도 불우하며, 그나마 홍보도 제대로 안 돼, 상영관들은 안쓰러울 정도로 썰렁했다. 몇편 안 되는 한국영화 상영관은 달랐다지만, 내가 간 상영관은 30명 이상 찬 적이 없었다(게다가
태도와 취향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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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영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서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로 이야기가 옮아갔다.가장 가깝게는, 지난 추석연휴에 이미 새롭고 다양한 한국영화들이 설 땅을 잃는 상황은 예견됐었다. ‘새롭고 다양한’이라는 아주 모호한 형용사를 사용한 것은 그 영화들을 예술영화나 작가주의 영화라는 개념으로 묶어버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눈 있고 귀 있는 사람은 보고 들으라고 정좌한 채, 관객에게 말걸기를 거부하는 실험실의 영화들도 거기 없었다. 그렇다면 왜 이 영화들이 외면당한 것이냐를 많은 사람들이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그것이 올 가을 한국영화가 거둔 수확인 성싶다. 배급의 문제가 새삼 재발견됐고, 이같은 영화를 옹호하는 ‘운동’이 발생했다. 인천에서 <고양이를 부탁해>를 재개봉하고, 서울 센트럴6에서 네편의 영화를 다시 틀고, 스카라극장에서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재상영하는 일들. 이 낯선 일들을 반기는 이들에게 문화적 귀족주의의 혐의는 없는지 감시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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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7일 폐막됐다. 출범 이듬해에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란 평가가 나라 밖에서 들여온 이 영화제는 이제 ‘세계 최대의 아시아 영화제’라는 호칭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부산은 우리들에겐 세계 영화의 오늘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외국의 영화전문가들에겐 아시아 영화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독파할 자리를 제공하는 명실공히 ‘아시아 영화의 창’이 되었다. PPP를 통해서 아시아 주요감독들의 새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으니, ‘미래’란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이 부산에서 한국영화가 모든 상을 휩쓸었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 우리가 뛰어난 가작을 적잖이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국제영화제인데 주최국을 너무 배려한 건 혹시 아닌지 염려됐다. 그러나 “눈에 띄는 건 한국영화뿐이었다”는 어느 심사위원의 심사 후일담을 전해듣고 노파심을 조금 덜어냈다. 어쨌든, 이 일은 관객들이 외면한 올해의 저예산 수작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을 성 싶
부산국제영화제, 양지와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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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비틀스를 꿈꾸었지만, 이제는 초라한 밴드조차 와해돼 주인공은 고향인 온천도시 단란주점에서 생계를 잇는다. 벌거벗고 ‘광란’하던 취객은 그에게 너도 옷을 벗으라 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주인공이 체념하듯 벗은 알몸을 기타로 가리고 연주를 계속하는 장면은 이렇게 하면서도 음악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고등학교 시절 음악을 함께하던 친구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생활 속으로 들어간 이 친구의 질문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사니 “너 행복하냐”였다. 거기에는 어린 시절의 꿈에 대한 미련이 묻어 있기는 했다.임순례 감독은 그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하지 않는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신세대 웨이터에게 차라리 다른 기술을 배우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떠돌이 밴드 생활이 그 역시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지만. 함께하던 밴드의 동료들은 하나둘 떠나고, 어린 시절의 음악스승도 무너져 떠나고, 연주흉내만 겨우 배
“너 행복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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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씨는 자칭 임권택 팬클럽 회장이다. 솔직히, 임권택 감독을 추켜세우는 글은 많이 봤어도, 한사람의 관객으로서, 또 비평가로서 임권택 감독에게 열광하는 사람을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나 또한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별 생각없이 본 <만다라>에 머리를 얻어맞자 한시간인가 무턱대고 길거리를 쏘다닌 기억이 있고, <서편제>를 본 뒤엔 한동안 사운드트랙만 틀면 눈물 콧물이 뒤범벅이되던 경험이 있지만, 모두가 추앙하는 한국의 거장이라니, 내가 굳이 그 대열에 낄 필요는 없겠군, 하는 삐딱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춘향뎐>이 내 태도를 바꿔놓았다. 영화 자체의 정서적 공명은 덜했을 지 몰라도, <춘향뎐>은 영화라는 매체의 한계와 싸워, 그 싸움의 기록을 영화의 문법으로 다시 끌어안으려는 놀라운 패기와 미학적 야심으로 끓어넘치는 영화였다. 첫대면에서 느낀 당혹감은 점점 경이로움으로 바뀌어갔고, 나는 이 어눌한 말솜씨의 노감독이, 골방에서 익힌 영
어떤 팬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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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판매에 절대 반대하는 사람들도 중국에서 처형된 신 아무개의 일에는 분노하거나 한탄한다. 국가가 재외국민의 인권을 그토록 방치할 수 있느냐는 질책이 쏟아져 나온다. 필로폰 사용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최근의 황수정 사건을 다루는 방식을 한번 생각해볼 법 하다.브라운관의 ‘청순가련’ ‘요조숙녀’가, 더구나 한사람의 ‘공인’이 이럴 수 있느냐는 도덕적 비난 앞에 그는 노출돼 있다. 공인이라면 공직에 있는 사람, 또는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분명 공직에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텔레비전 드라마 출연은 공적인 일인가. 그의 연기활동은 그 드라마와 함께 대중예술의 영역으로 분류해놓아야 할 것이고, 연기라는 행위는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공적인 일이라 부르기는 어렵다.그러면 왜 그는 필로폰을 함께 마신 이보다 이목을 끄는가.(너무 답이 뻔해서 질문이랄 수도 없다.) 유명인이니까. 기업들이 상품을 팔기위해 그들의 유명함을 거액의 광고모델료를 내고 사듯이, 언론은 상품 그 자체
우리는 얼마나 작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