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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으로 묶여지는 글들의 대부분은 영화 자체보다는 영화가 불러일으킨 심리적 파장에 대해서 주로 말한다. 다시 말하면, 많은 영화비평은 대개 영화의 구조가 아니라, 영화의 효과를 말한다. 오로지 효과만을 말할 때, 그런 비평은 한때 인상비평으로 불렸다.그런 비평이 좋은 비평이 안 되라는 법은 없다. 인상비평이란 말은 한동안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낡은 비평방식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됐지만, 여전히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독자에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 내가 느꼈던 것을 어떻게 이렇게 잘 집어내 정확하게 표현했을까, 하는 즐거움을 주는 글은 좋은 비평이다. 따지고보면 감상도 비평도 결국 영화와의 대화이며 궁극적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결국 구조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영화들이 있다. 홍상수의 영화가 그런 영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대중영화들의 구조는 일정한 규칙과 관습에 따라 만들어지며, 비평이 그걸 매번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홍상수의 영화는
구조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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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지를 들추다가 이인제씨가 god 공연장을 찾아 마이크를 잡고 “god가 세계를 제패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는 기사에 눈이 멈췄다. 그 기사의 제목은 ‘연예인을 공략하라’였다.기분이 나빴다. 뒤이은 내용 때문에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이인제 고문의 god 콘서트장 방문에 가장 놀란 곳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진영이었다. god는 이 총재가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기 위해 ‘찜’해 놓았던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많은 배우, 가수, 개그맨의 이름과 이른바 대권후보 정치인들의 줄잇기로 채워져 있었다.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나는 이인제씨나 이회창씨가 평소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고 특정한 기호나 소신을 밝혔다는 소식을 한번도 접한 적이 없다. 국회에서 <친구> 폭력성 시비가 일었을 때, 혹은 이재수의 ‘컴배콤’ 논란이 터졌을 때 대권후보들이 어떤 소신을 밝혔다는 소식을 접한 적도 없다. 그런데 이 무슨 수작들인가.나는 대중문화를 알고 그것에 매혹된 정치인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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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린다. 정신사납다. 다 까먹었다.’이번주에 개봉하는 <촉산전>에 대한 영화평론가 박평식씨의 20자 평이다. <씨네21> 기자 가운데 다수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런데 그런 영화를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소개하다니, 라고 의아해하실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영화세상에는 이구동성 혹은 만장일치의 호평 또는 혹평을 받는 영화도 있고, 찬반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영화도 있다. 당연하게도, 후자에 속하는 영화들이 훨씬 흥미롭다. 발견의 기쁨을 선사하는 영화들은 바로 장점을 자기 속에 깊이 감추고 있어 쉽게 눈에 띠지 않는 영화들이기 때문이다.<촉산전>을 보고난 날 밤 김봉석과 나는 서로 입에 거품을 물고 찬사를 주고 받았다. 우리 둘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던 터라 우리는 더욱 신이 났다. 영화에 대해 말하고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순간의 쾌감은 그것이 아무리 얄팍한 것이라고 해도 포기하기 힘들다.우리의 판단이 과연 절대적으로 옳은가. 그
어떤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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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이창’을 쓰기 시작한 조선희 전편집장이 항의문을 보내왔다. 16군데를 고치다니, 왜 그랬는가. 왜 ‘쥐도 개도’를 ‘개나 소나’로 고쳤는가. 그런 내용이었다. 구두점 하나도 이리 찍어보고 저리 찍어보면서 제자리를 찾아주려고 고심하는 글쟁이에게 그건 너무 정당한 항변이었다. 첫 장편을 아직 출간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제 소설가다.우리 인터넷 사이트에 <씨네21>에 실린 글 중에 어법이 맞지 않는 대목을 골라 지적한 글이 몇편 올랐다. 한사람이 썼는데, 틀린 지적이 없다. 아마 그도 소설가일지 모른다.이번호 특집 거리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든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든 박찬욱 감독은 감독이기 이전에 글쟁이였고 예리한 평론가였다. 그의 저서 <비디오드롬…>은 1990년대 초반 영화광들이 탐독한 책이었다. 지금은 감독만 한다. 박찬욱, 김지운, 민규동, 장진 감독은 글로 먹고 사는 왠만한 사람들보다 글을 더 잘 쓴다. 실제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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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년전쯤 공중파 TV로 <우묵배미의 사랑>을 다시 보다가 혼자서 한참 씩씩거렸다. 이번주 ‘내 인생의 영화’로 이 작품을 고른 김해곤씨만큼 열렬하지 않을진 몰라도, <우묵배미의 사랑>은 내 20대의 마지막 구비에서 오랜 술친구처럼 찾아와 마른 지푸라기같던 마음을 어루만져준 속깊은 영화였다.지금도 배일도와 민공례의 못나고 궁상맞은 기차여행을 떠올리면, 그 시절, 너무 젊어 피하지 못한 상처와 조로한 비겁이 놓아버린 소망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잠시 청승을 떨게 된다. 멀리 떠나와 여관방에서 공례와 처음 살을 맞댄 배일도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특히 잊을 수가 없다. 정사장면이 그렇게 슬플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고, 그 뒤론 어떤 영화의 정사장면에서도 그런 절절함을 느끼지 못했다.문제는 TV에서 방영한 <우묵배미의 사랑>엔 그 정사 장면이 삭제돼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어처구니 없고 분통 터져서 처음엔 허, 허, 하는 소리만 새나왔다. 그 장면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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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지난 얘기지만 지난 2월22일에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가 종영했다. 마지막회는 박정수가 암에 걸려 가족들이 모두 슬픔에 빠져있다 결국 박정수의 죽음으로 끝맺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약간 밝은 후일담이 덧붙긴 하지만 시트콤 마지막회에서 중심인물이 갑자기 죽는다는 건 상식 밖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PD를 빼고는 이런 결말을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마지막회가 방영된 건 금요일 밤 9시반. 보통은 마감하느라 모두 정신이 빠져있을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약속한듯 하나둘씩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고백하자면, 나를 포함한 <씨네21> 식구들은 김병욱 PD의 팬이다. 우리는 <순풍산부인과>를 사랑했다. 지금은 퇴사해 TV평을 쓰는 구둘래는 <순풍…>이 인생의 유일한 낙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500회 때는 <순풍…> 특집도 마련했다.(TV 프로그램 하나로 특집을 꾸민 건 이때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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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면서, 처음엔 신났고 나중엔 찜찜했다. 신난 것도 찜찜한 것도 작품성과는 관계없다. 처음 1시간여 가량은 오우삼 영화 같아서 신났다. 첩혈쌍웅으로 통칭되는 멋진 두 남자의 의리와 개폼은 아직도 마음 설레게 한다. 지상의 계율이 적으로 갈라놓았으나 형제의 영혼을 지닌 사내들의 비감한 운명적 조우. 유치하다고 몇번인가 비난을 들었지만 그 유치한 기호에서 벗어난다는 게 무지 힘든 일이라는 걸 의 멋진 전반부가 깨닫게 해주었다. 취조실의 장동건 앞에 앉은 나카무라가 “이름은?”하고 물을 때 아득한 슬픔과 분노에 젖은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비춰주는 장면에선 “야, 죽인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그게 멋있는 건 지상의 율법으로부터 그들의 영혼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는 그렇게 시작했지만, 결국 배신한다. 배타적 민족주의, 그 단순한 세속적 정치학으로 돌아간다. 그게 싫었다. 멋있으려면 끝까지 멋있어야 한다. 그런 영혼은 지상의 질서에 포섭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멋있다. 지상의 어떤 이
민족,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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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배우와 영화인들이 가장 자주 드나드는 장소를 꼽으라면 아마 <씨네21>이 다섯손가락, 적어도 열손가락 안에는 들 것이다. 한주에 평균 2명의 배우를 포함한 7,8명 안팎의 영화인이 사진을 찍으러 우리 회사를 방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씨네21>에서 사진을 찍기로 약속이 잡히면 배우들은 공포에 떤다고 한다.(‘공포’는 약간 과장이지만 어쨌든 그런 소문이 있다). 우리 스튜디오가 워낙 대단한 곳이기 때문이다.스튜디오가 자리잡은 곳은 한겨레신문 2층 한구석, 윤전기 바로 옆이다. 근처라도 가본 사람이면 아실테지만, 1시간에 수만부의 신문을 찍어내는 윤전기는 가공할만한 굉음과 열기를 함께 토해낸다. 우리 스튜디오는 간이벽으로 이루어진 가건물이다. 얇은 칸막이를 가볍게 통과한 엄청난 기계음이 오후 4시경부터 밤늦게까지 스튜디오에 충만하다. 소음과 열기가 앙상블을 이룬 한여름엔 극기훈련장으로 써도 전혀 손색없다. 정말 대단한 곳이다.이런 곳에서 사진도 찍고 인터뷰
스튜디오 공포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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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회사에 방이 붙었다. 기획위원 홍세화, 편집부국장 김훈.<씨네21>이 한겨레신문 소속이긴 하지만, 매체 성격도 특수한데다 구성원도 대부분 특채로 들어온 외인부대여서, 회사 돌아가는 사정은 잘 모른다. 방이 붙고서야 이 두 사람이 <한겨레>에서 일하게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이건 드물게 아주 재미있고 반가운 일이었다. 난 두 사람을 개인적으로 전혀 모른다. 오직 그들의 글(또는 글로 정리된 그들의 말) 중의 일부를 만났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다.홍세화씨의 이름은 많은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그의 책으로 알게 됐다. 그는 남민전이라는 70년대 아주 무시무시한 조직사건에 연루돼 프랑스로 망명했고, 파리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면서 먹고산 사람이다. 나는 비운의 혁명가, 망명객이라는 호칭이 주는 그 아득한 매혹과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대에 속한다(이번호에 소개된 명필름의 이은 감독도 그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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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가 개봉한 뒤로 2주 연속 김기덕 논쟁을 실었더니, 우리 온라인사이트에 어떤 이용자가 “이건 결국 김기덕 키워주기이고, 편들기”라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두번도 부족해 이번에 또 김기덕 논쟁을 실었으니, 그런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게 뻔하다. 그래서 제 발 저린 자로서 변명 겸 해명을 좀 하고 싶다.특정한 감독이나 영화 키워주기가 아니냐는 독자의 항의를 듣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했을 때도 들었고, <취화선> 동행기 실었을 때도 들었다. 이런 비판, 안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잡지 만드는 사람들이 제일 신날 때는 박수쳐주고 싶은 영화 혹은 영화인을 발견하고, 신나게 박수칠 때다. 그건 그 자체로 즐겁다. 아니, 잡지 만들면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을 포기하고 엄격하게,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그럴 자신도 없다.솔직히 말
변명,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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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 브래스코>에서 지워지기 힘든 장면 하나. 늙고 무기력한 갱 알 파치노가 집에 쭈그리고 앉아 ‘동물의 왕국’(영문제목은 따로 있겠지만)을 넋놓고 보고 있다. 그럴듯한 주석을 붙일 의욕도 없이, 그냥 그 모습만으로도 마음이 저렸다.편집자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말 없지만,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를 며칠전에야 봤다. 보면서 동물의 왕국을 보는 알 파치노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무슨 연상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쁜 남자>는 슬픈 영화였다. 주인공 한기는 짐승의 시간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아주 나쁜 방식으로 여인을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는 바람에 많은 여성평론가들을 다시 분노케 하긴 했지만, 한기의 그 나쁜 동물성은 어떤 충고도 계몽도 들어설 자리가 없는,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 없는 천형처럼 느껴졌다.개인적으로는 한기의 방식이 너무 명백하게 나쁘기 때문에 별로 해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은밀하게 나쁜 게 가장 나쁘
어떤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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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이 아주 싫어하는 음악가인 바그너는 파렴치한 인간이었다고 한다. 그에게 돈을 빌려줘서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바그너는 돈을 떼먹고도 미안한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김현과 함께 한국 최고의 산문가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기꺼이 존경을 바치고 싶은 시인 김수영도 돈에 관해선 쫀쫀하기 이를데 없었다고 한다. 여름날 그의 와이셔츠 주머니에 들어있는 지폐가 밖에서 환히 보이는데도(경험해본 사람은 알지만 거기에 돈 넣으면 아주 잘 보인다), 김수영은 커피값이나 술값을 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돈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예인 혹은 장인의 가치는 일상적 도덕성이나 상식적인 의미의 인간성과는 무관하다. 유태인인 우디 앨런이 바그너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의 인간성 때문이 아니라 나치스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였기 때문이다. 말난 김에 좀더 하자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에 미쳐서 집안을 거덜낸 인간이며, 발자크는 귀족임을 가장하기 위해 귀족이 쓰는 ‘드’를 자기
차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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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어떤 인터뷰에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묻는 질문에 “권투와 마라톤”이라고 답했던 것 같다. <시장과 전장>과 <토지>를 읽고나서 더할 수 없는 존경심을 품고 있던 내게 그 대답은 이상하게 심금을 울렸다. 없다고 해도 좋을만큼 극히 단순한 룰에다 몸의 가장 단순한 기능만으로 승부하는 그 원시적인 스포츠를, 특히 남자들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그 무식한 권투를 좋아하시다니, 역시 남다르시군요,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오늘의 20대 독자들에겐 실감이 나지 않을 테지만, 우리의 스포츠 영웅은 안정환이나 허재가 아니라, 홍수환과 유제두였다. 홍수환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는 근 10년간 유행어였고, 유제두가 일본의 세계챔피언 와지마 고이치에게서 타이틀을 빼앗았을 때, 한 신문은 두면에 걸쳐서 내가 본 가장 큰(미국 테러 때보다 두배쯤 큰) 글씨로 ‘와지마, 다운, 다운, 다운’이란 제목을 달았다. 중학교 때
권투, 챔피언,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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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들과 술 마시는 것보다 여자들과 수다 떠는 게 더 좋다.”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남자를 최근에 두번 봤다. 한 사람은 <고양이를 부탁해>를 제작한 오기민씨다. 이 사람은 여성의 성장에 관한 영화를 연달아 세편 만들었으며, 집에 예쁜 운동화를 서른 켤레쯤 갖고 있는 특이한 남자다. 또 한 사람은 이번호에 길게 소개된 작가 김영하씨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필자이기도 했던 김영하씨는 남성적인 것과 축구와 정치와 도박을 싫어하며 쇼핑이 취미라고 태연하게 말했다(그래서 그걸 제목으로 뽑았다). 그리고, 공언한 적은 없지만, <씨네21> 기자였으며 지금은 조우필름 대표인 조종국씨도 그렇다.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데, 밤새도록 수다 떨 수 있는 드문 남자다. 따지고보면 영화판엔 그런 사람들이 매우 많다.솔직히, 나는 이런 사람들이 반갑다(축구와 도박에 대한 의견은 좀 다르지만). 나를 포함한 남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해온 말 가운데 하나가 쩨쩨하다, 계집애 같
소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