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부산 시네마테크. 기다리던 영화는 자막과 함께 시작됐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는 15만명의 북한군 포로가 수용되었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으로 반세기 동안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다.1952년의 거제도. 북으로 보낼 포로와 남에 남기 원하는 포로를 가르는 송환심사가 진행되던 중 거기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나던 때, 포로들 사이에서도 남과 북의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곳으로 가기 위해 영화는 스릴러의 호흡과 속도를 취한다.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매혹을 감독은 여러 차례 밝혔지만, 그때의 일에 무심한 오늘의 관객을 거제도로 유인하기 위한 작전 또는 배려처럼 보이기도 한다.이념과 인간에 환멸을 느낀 장용학의 누혜가 자살을 택한 곳도,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을 택한 최인훈의 명준이 갇혀 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세기가 바뀌었다. <흑수선>의 주인공들은 우선 살아남았다.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삶’이라는 단서가 처음부
역사, 그 인력과 척력
-
한때 창궐한 벽화그리기 운동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일종의 애교어린 관제운동의 유적일 텐데, 그 그림들을 그려넣기 한 10년 전쯤만 해도 벽화운동은 아주 불온한 행동으로 간주됐다. 그 불령미술 2세대쯤 되는, ‘가는패’라는 이름의 미술패도 시골마을의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주러 찾아가곤 했다. 따라가본 적은 없다. 다녀온 분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았을 뿐. 20대 젊은 ‘화백’들을 초청한 분들은 마을의 농민들이었는데, 고추가 특산물인 고장이라서 그림의 소재도 고추였다. ‘민중 속으로!’를 외치던 시대의 미술정신을 소박단순한 형식에 담아낸 그림이었다. 수성페인트가 벗겨지고 색이 날아가서 수복을 해주러 다시 찾아간다는 얘기도 들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그림을 그려주러 가는 화가들. 시간적 거리를 두고 그려보는 그 화면에 어쩐지 낭만적 정취가 채색된다. 이건 그때의 치열함을 배제해버린 감상인데, 하는 미안함을 밀어내고.감독은 두드러진 메시지를 배달하지 않았지만(그는
그의 손, 그의 머리
-
영화평론가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가 급히 글을 보내주었다. <고양이를 부탁해>와 <나비>가 개봉 이틀만에 스크린에서 퇴장당한 요즘의 사태를 ‘좌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영화가 그동안 외부를 향해 ‘문화적 종 다양성’을 지키는 데 스크린쿼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설득해왔는데, 내부적으로는 그 다양성을 추구할 수 없다는 그의 비판과 절망은 최근 여러 자리에서 산발적으로 들려왔었다.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한국영화 관객의 수를 늘려놓는 동안, 대안영화 또는 예술영화가 디디고 설 좁은 땅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흥행폭발을 일으킨 <조폭마누라>와 <고양이를 부탁해>의 참담한 현실이 보여준 극단적 대비는 그러한 한국영화의 경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신들의 근심은 문화적 특권의식의 발로일 뿐이라는 역비판도 있다. 대중이 옹호하는 영화에는 그럴만한 이유와 미덕이 있는 법이니 그것을 발견하는 노
고양이에 관하여
-
우리의 뉴욕통신원은 테러 이후의 뉴욕필름페스티벌 취재기(32쪽 현지보고2)를 전해왔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말미에 적어보낸 특별포럼 소식에 귀가 쏠렸다. 주제가 ‘의미있는 영화 만들기: 국가적 논쟁의 시점에서 영화의 역할’이었다는데 올리버 스톤, 뉴라인 시네마의 CEO, <소년은 울지않는다>를 만든 인디영화 제작자 등이 토론자로 나선 이 자리에 청중이 무려 1천여명 가까이 몰렸다는 것이다. 영화의 운명이 그렇게 궁금하단 말인가. 그것 참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스턴트 식품을 찾듯 인터넷을 뒤적거렸다.<알제리 전투>처럼 테러리즘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참 쉽지는 않을 거야. 아이스너나 루퍼트 머독 같은 자들이 사상과 문화를 통제하고 있거든. 올리버 스톤은 우울하게 말했던 모양이다. 이전에도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지만, 9월11일 이후 그나마 더 줄어들었어. 그래도 올리버 같은 작가는 변하지 않겠지. 정치적인 영화로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
올 가을 한국의 영화글쟁이들은 행복해야 마땅하다. 가공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그래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처럼 생명으로 태어난 듯한 허진호의 가작 <봄날이 간다>가 곁에 있다. 이 영화는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선하고 지혜롭다. 저 먼 유행가의 봄날처럼 느닷없이 왔던 사랑이 다시 가는 과정을 보여주되, 집착에서 풀려나 소생하는 젊음의 생명력도 선사해준다. 바람소리, 정선아리리, 풍경소리, 아우라지의 물소리에 정결하게 귀를 기울이는 주인공들처럼 보는 이들은 사랑과 상실이 이들의 시간을 통과하는 소리, 마침내 성장의 매듭을 짓는 소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의 속에서도 그 소리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영화 속 그 사람이 아름다우면, 우리 사람도 아름답다.정재은 감독의 첫 장편 <고양이를 부탁해>도 그 옆에 있다. 서울의 변두리 인천(전국토가 서울공화국의 변두리지만)에서 스무살에 대학 대신 사회에 첫발을 디딘 여자애들이 거기 있다.
내 이름, 샌드위치맨
-
할리우드에는 법정 드라마가 많다. 부터 <알라바마에서 생긴 일> <허리케인 카터>까지 각종 편견에 몰려 누명쓴 사람들이 구원되는 곳으로 그려낸 영화들이 한켠에 있다. <데블스 에드버킷>처럼 정의는 돈으로 사고 파는 것이라고 냉소하기도 하고, <데드맨 워킹>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 온당한 거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쪽도 있다. 그래도,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어림짐작하기에 정의에 자기들의 희망을 거는 영화들이 많아 보인다. 누명쓴 사나이를 구해내는 청년 링컨의 무용담이 그 먼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전파된 걸 보면, 영화가 희망을 창작해낸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이 남자가 살인을 했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 달빛에 얼굴을 봤다. 이보쇼, 그날은 그믐밤이었소. 위인전 속에서 변호사 링컨의 활약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던가.적잖은 법정 드라마들은 현실에서 소재를 따왔다. 도색잡지 발행인의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의 영토를 넓
법정 드라마를 권한다
-
<씨네21> 320호는 지면개편호다.김지운 감독과 문화평론가 정윤수씨, 김봉석 기자가 각각 ‘고별사’를 발표했기 때문에 뭔가 바뀌는가보다, 짐작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칼럼 ‘숏컷’을 끝내고, 김봉석 기자는 소설가 김영하씨와 격주로 ‘이창’을 통해 독자 여러분을 만나게 된다. 민동현 감독과 제도교육의 틀을 스스로 깨고 나와 이제는 영화학도가 된 김현진씨의 발랄한 비디오체험기를 부활한 ‘오! 컬트’에서 들려준다. 영화의 뿌리를 비춰보는 자리를, 흔한 말로 급격한 매체환경의 변화를 겪고 있는 지금, 조금 넓혔다. 촬영감독열전이 그것이다. 영화를 영화이게 만드는 첫번째 기본요소 영상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역할을 우리는 너무 소홀히 하지 않았나하고 반성했다.세기의 카메라 그 첫번째로 코폴라와 베르톨루치, 사우라의 세계를 함께 축조해온 비토리오 스토라로로 이 순례의 문을 연다. 영화읽기의 새연재 ‘거장 예감 신세기 시네아스트’는 미래를 향해 낸 창이라고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시대정
숫자에서 사람으로
-
사실 참으로 부끄러운 기사가 얼마전 미국의 일간지 에 실렸었다. 국내 한 일간지의 짤막한 중계를 통해 정리하자면 일본 정권의 보수회귀에 한국인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문제는 한국 내부에도 있다고 분석했다는 기사였다. 한국 안의 친일세력(또는 그 후예)이 아직도 각계의 권력집단에 포진하고 있는 터라, 일제 강점기 친일행각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는 것. 하긴, 우리 역사교과서에 그 친일세력이 어엿하게 항일운동을 했노라고 기술되는 판이니 일본의 저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사람들이 보고 들을까 염려된다.(아마 알긴 알고 있을 것이다.)영리한 영화 <메멘토>를 보고나서 쓴 이번 칼럼에서 우리의 고종석 아저씨는 망각을 하는 자는 “과오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그 과오를 반복한다. 그리고 망각하는 자는 늘 속임을 당한다”며 한 신문과 우리의 관계를 지적했다. 속임을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충북 옥천의 시민들이 만드는 ‘물총’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일전에 어느 대학 시간강사를
메멘토!
-
“예상했던 일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자신이 미워질 때는 혹시 없었는지?1996년 10월 헌법재판소가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륜)의 ‘사전심의’에 위헌결정을 내리고, 영화관련법이 바뀌어 그 공륜도, 심의도 이름이 바뀌었으나 그 행정기구의 등급심위위원들에게는 등급심의를 보류할 권한이 주어져 있었다. 등급없이 영화를 상영할 수 없도록 틀을 짜놓고 심의를 보류하지 않는다니, 그건 한꺼풀 벗겨보지 않아도 또다른 검열이었다. 이 법은 조만간 헌법재판소로 되돌려질 것이었다.예상했던 대로,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두차례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둘 하나 섹스>의 제작자가 영화진흥법 관련조항의 위헌여부를 가려달라고 법정으로 들고 왔다. 서울행정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헌재로 넘긴 것이 바로 1년전. 헌법재판소는 또다시 영등위의 등급보류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예상했던 대로, 귀신이 온다고, 검열이 사라졌으니 음란 폭력물이 범람해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리라는 경보음이 들려온다. 같은
귀신이 왔다고?
-
1945년 8월24일, 해방과 귀국의 기쁨을 채 만끽하지도 못한 한국인들을 태운 귀환선이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만에서 폭파, 침몰됐다. 일본 정부는 자국 해군의 특별수송함 우키시마마루의 폭침으로 조선인 524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원인은 미군이 부설한 기뢰에 부딪혔다는 것. 그러나 생존피해자와 유족들은 발표를 믿지 않았다. 배에는 조선인 7500명이 타고 있었고, 5천여명이 수장됐으며, 사고가 아니라 계획적으로 폭파됐다는 의혹이 아직도 남아 있다.8월23, 24일 서울에서 잇따라 시사된 <아시안 블루>와 <살아있는 영혼들>은 그 우키시마마루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다. 이중 먼저 제작된 영화는 일본 호리카와 히로미치가 감독한 <아시안 블루>. 이미 소개된 대로 헤이안시대의 수도였던 교토의 시민들이 제작비를 모금해 정도 1200년 기념사업으로 만든 영화다. 1995년 완성됐으나 당시 일본영화의 국내개봉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피해당사국인 한국에서는 상
우키시마마루호는 부산에 오지 못했다
-
지난 주 이 자리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겠다는” 이라는 미래형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씨네21>이 나온 건, 고이즈미가 이미 참배를 끝낸 뒤였다.(시제를 바로 잡습니다.)2차 대전의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참배를 유럽의 언론은 자기들 식으로 보자면 히틀러 추모행위와 같은 것이라고 단순명료하게 정리한 바 있다. 그런 논평을 읽고나니 지난해 유럽을 들쑤셔놓은 외르크 하이더 사건이 떠올랐다. 제50회 베를린 영화제를 취재하러 갔을 때, 나치에 우호적인 인종차별 발언을 한 오스트리아 자유당 당수를 규탄하는 소리가 외신으로 보고 듣던 것보다 훨씬 격앙돼 있는 데 조금 놀랐다. 공항 대기실의 신문들은 언어에 상관없이 일제히 하이더 비판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한 발 늦게 도착해서 개막날 풍경은 볼 수 없었는데, 한국 기자로는 유일하게 그날의 포츠담 광장을 지킨 <씨네21>의 박은영 기자로부터 다시 하이더 관련소
여름이야기(2)
-
하나. “누군가에게서 이름을 빼앗는다는 건 단순히 호칭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를 완전히 지배하기 위한 방법이다.” 일본의 극장을 흔들고 있는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의 의미를 밝히는 글에서 그렇게 말했다. 10살난 여자아이 치히로를 종업원으로 부리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온천여관의 여주인 마녀가 먼저 한 일도 이름 바꾸기였다( 마녀가 지어준 새 이름이 바로 센). 이름, 그것은 존재의 증명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일본의 미적 전통을 감각이 온통 서구화한 어린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어했다. 그 또한 이름과 마찬가지로 존재의 터전이다. 그는 “국경없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에게 딛고 설 땅과 역사와 과거가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런 땅과 역사와 과거를 짓기 위한 시도였던 것이다.둘. 말과 이름을 빼앗겼던 시대가 우리에게 있었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그대는
여름 이야기
-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던 때가 기억난다. 매맞는 남편도 많다고 농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남자였다. 그들은 농담으로 진심을 가장했던 것이다. 묵은 신문을 뒤져보면 아마, 그 즈음해서 매맞는 남편에 관한 기사들이 심심치않게 발견될 것이다. 세태가 이런 데 매맞는 여자들만 편들다니 섭섭 또는 고약하다는 심사를 환기시키는, 맞불효과 비슷한 것을 일시적으로 내기도 했다. 남자가 매맞는 데 찬성하지는 않지만, 두 현상을 그런 방식으로 섞는 데는 더욱 찬성할 수 없었다. 비슷한 분위기는 성희롱 방지법 때도 되풀이됐다.공격적인 여주인공과 수동적인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올여름 <친구>의 흥행바톤을 이어 받았다. 어디서나 맘에 안드는 사람들에게 시비걸고, 정신을 놓칠 정도로 술을 마시고, 토사물을 토해놓는 전지현을 차태현도, 관객들도 사랑스럽다 한다. 그렇다고 전통적 여성관과 남녀관계가 바뀌었다고 환호할 수준은 아직 아니다. 천방지축 날뛰는
그 여자, 아직도 그곳에
-
걸어서 마포대교를 건넌 적이 있다. 처음엔 가볍게 장난처럼 한강을 내 다리로 건너볼까, 시작한 일이었다. 북단에서 남단으로. 그러나 그건 결코 즐거운 장난이 될 수 없었다. 강위에 걸린 다리위에는 분명 인도가 양켠에 있는데, 그 다리로 올라갈 길이 없다. 가장자리에 심어둔 철제 난간에 바짝 붙어서야 인도를 밟을 수 있었다. 이 다리는 자동차용이다. 그럼 저 인도는 누굴 위한 거지, 운전자가 따로 있는 자동차 이용자. 그런 사람들만, 자, 나는 잠시 강바람을 쐬고 싶으니 당신은 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시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산책을 즐기라는 얘기다.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편하냐 불편하냐를 따지기 전에 이런 건 싫다. 차를 타고 달려 그 거리와 시간을 압축하는 `현대인`들도, 느릿느릿 걸어가며 그걸 늘여보고 싶은 때가 있는 법이다. 가끔은.영화도 그렇다. 안그러면 왜 에이젠슈테인은 오뎃사 계단의 시간과 공간을 그렇게 분할하고 다시 붙여서 확장했겠는가. 스쳐지나갔으면 놓치고 말았을 많
마포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