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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아름답다는 말을 나는 믿을 수 없다. 내 메일박스엔 하루 20개 안팎의 광고메일이 들어온다. 그중의 반은 성인사이트 광고다. 그중의 어떤 걸 클릭해봐도 성은 아름답지 않다. 로그인은커녕 성인인증을 하기 전에 나오는 초기화면만으로도 충분히 그렇다. 저열한 언어들과 그에 꼭 맞는 자료화면들을 한번이라도 보지 않고 넘어가는 날은 하루도 없다. 모 사이트의 초기화면이 열려 여성의 항문에 남성의 성기가 박혀 있는 사진에 내 눈이 멈출 때, 성은 차라리 추하며, 그 이미지를 은밀히 즐기는 나의 욕망은 당당하지 않고 부끄럽다. 성은 너무 복잡하고 거대하고 고통스러울 만큼 어려운 문제다.나는 감히 포르노를 완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담대하지 못하다. 예컨대 엄청난 크기로 확대된 남녀의 성기 사진이 담긴 광고판을 보며 거리를 걷는 일은 생각만 해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포르노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인터넷 선진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인터넷이 가져다준 가
죽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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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하는 목요일 저녁, 스콧 버거슨이라는 사람이 우리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한참 원고를 쓰다 갔다. 그날 막을 내린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유람기를 그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편집장으로서 귀한 필자가 왔으니 인사도 하고 멋진 유머도 발휘하는 매너를 발휘해야 마땅하나 독설가로 이름난 그가 짓궂은 농담을 던졌는데도 못 알아듣고 맹한 표정으로 듣고 있을까봐, 언제 다 쓰고 가나, 하고 눈치만 보다 말았다. 아, 하고 싶은 말이 이건 아니었다.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국제문화건달로 불리는 그는 한국에 4년 동안 눌러 사는 미국인이며, 자기 혼자 잡지를 만들어 거리에서 판 돈으로 끝없이 돌아다니는 유랑자다. <발칙한 한국학>이란 한국을 비판하는 책까지 펴내 이젠 꽤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한국을 사랑한다고 떠벌리기는커녕, 한국사회를 독하게 꼬집는 글을 썼지만, 그의 유별난 행동에서 이 땅과 이곳 사람들에 대한 애착 적어도 호감을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다.더한 사람도 있다. <씨네2
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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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중음악을 잘 모른다. 두어달에 CD 한장씩 사고 요즘 온갖 곡들이 담겨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최근 발견하고 마감 때 이것저것 듣는 게 전부이며, 취향은 아주 평범하다. 대중음악평론가를 가까운 친구로 두고 있고, 부서 내에도 대중음악전문가들이 서너명 있지만, 그들에게서 별로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보아의 을 듣고, 야, 죽인다고 느껴도 그냥 속으로만 좋아하고 발설하지 않는다(가요 순위 1위에 올라오는 곡을 음악전문가들은 안 좋아할 거라는 선입견이 내게 있다).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챠우>도 들어 있다. 1년 전쯤 버스에서 졸다가 이 노래 듣고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후아유>의 라스트신에 약간 감동받았는데, 그게 영화가 좋아서인지 그 대목에서 흘러나온 <챠우챠우>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노래를 대중음악평론가들이 높이 평가한다는 걸 알았을 때 자연스레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웃기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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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8년 3월부터 <씨네21>에서 일했다. 조선희 편집장으로부터 한국영화팀장을 맡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음, 일이 별로 많지 않겠군, 하고 생각하고 속으로 즐거워했다. 대단한 오판이었다. 1998년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믿기 힘든 일이 한국영화계에 벌어진 해였다.상상치 못했던 놀라움을 선물한 사람들은 자신의 첫 영화를 선보인 젊은 감독들이었다. 당장 떠오르는 이름만 적어봐도, 허진호(8월의 크리스마스), 김지운(조용한 가족), 박기형(여고괴담), 장진(기막힌 사내들), 이재용(정사), 임상수(처녀들의 저녁식사), 이광모(아름다운 시절), 이정향(미술관 옆 동물원)…. <여고괴담>말고는 대박엔 이르지 못했지만, 관객은 그들 대부분에게 보통 수준을 훌쩍 넘는 환대를 표했고, 비평가들은 주기적으로 흥분했다. 환상적인 릴레이였다. 이 선수들이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누군가 이들 모두를 한결같이 지지하지 않는다 해도, 이런 새로운 재능을 한해에 넝쿨채
그해, 그 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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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군생활을 보냈다. 80년대 세대의 선입견이었겠지만, 입대 전엔 흑인 병사들과 좀더 친해질 거라고 예상했다. 쑥스런 용어를 쓰자면, 프란츠 파농과 말콤X를 떠올리며 피억압자들의 연대의식 같은 걸 기대했던 것 같다. 현실은 달랐다. 못된 상관은 대개 흑인이거나 히스패닉이었다. 그중에서도 레슬러처럼 생긴 흑인 칵스 중사는 정말 악질이어서, 일과 뒤에도 카투사들만을 골라 사역을 시켰다. 반면 백인 상관은 부드럽고 공정했다.집단적 갈등도 주로 카투사와 흑인 병사들 사이에 일어났는데, 옆 중대에선 집단 난투극까지 벌어졌다. 머리로야 그들의 억압적 현실이 빚어낸 왜곡된 보상심리로 이해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인종주의자로 변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흑인들의 꽥꽥거리는 말투는 물론이고 그들의 냄새, 그들이 즐겨듣는 랩도 모두 싫어졌다. 그리고, 그들의 피부색까지. 단 한 가지, 노는 데는 흑인들을 따를 자 없었다. 걸음걸이부터 너무나 리드미컬해 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
카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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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별다른 충격이 없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가장 빈번한 사건 가운데 하나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람한테 일어났구나, 라는 짧은 감회가 스쳤고, 곧바로 한국과 이탈리아의 축구가 있었다. 떠들썩한 시간이 흘러갔고 만 하루가 지나자 그에 대한 기억들이 슬금슬금 떠올랐다. 뜻밖에 아니 당연히 나는 그를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그 친구의 이름은 채영주이며, 나와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고, 20대 후반부터 소설을 썼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신문 단신란에 날 정도의 사회적 이름을 얻었으나, 내게 있어 그의 의미는 아주 개인적인 것일 뿐이다.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잘 써서 이런저런 상을 받았던 그 친구는 무슨 이유에선지 정치학과를 택했다. 내 생각에 그는 떠돌이의 피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당연하게도 성실한 대학생활을 못하다가, 4학년 때 6개월 동안 행방불명됐다. 나중에 들으니 광주에 내려가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 생활을 했다고 했다. 왜 그랬는지 우리는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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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16강행이 확정된 6월14일 밤, 두통의 전화가 왔다. 한통은 냉소적인 성격의 감독(축구감독이 아니라 영화감독)으로부터 왔다. 축구 보고 바람 쐬러 나왔더니 거리가 난리더라, 젊은 친구들이 나쁜 일로 몰려나온 것만 보다가 좋은 일로 몰려나온 걸 보니, 기분 좋더라는 얘기를 전해왔다. 그 감독이 그런 얘길 할 정도니, 그날은 정말 한국의 축제일임에 분명하다.
또 한통은 아는 후배로부터 왔다. 축구를 아주 잘하고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데, 포르투갈이 떨어진 게 속상해서 술을 마시고 있다고 했다. 몰매 맞을 소리인지 모르나, 나는 후배의 심정에 조금 가까웠다. 경기를 보는 내내 제발 무승부로 끝나기를 빌었다. 피구를 따라붙는 송종국의 수비력은 경이로울 정도였으니, 그날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는 최상급이었다. 결국 미국 대신 포르투갈이 떨어지고 말았고, 나는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떨군 피구의 눈물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는 스포츠 재벌이니 그를 내가 동정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편집장이 독자에게] 미국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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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학자이며 축구광인 장원재 교수의 저서 <속을 알면 더 재미있는 축구이야기>는 빌 샨클리라는 원로 축구학자의 발언으로 말문을 연다.“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국가간의 전쟁에 비유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사람이 죽고 사는 일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치솟아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다. 왜냐하면, 축구는 그런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이건 정신나간 소리다. 아무리 축구가 좋다한들 사람이 죽고 사는 일보다 더 중요할 순 없다. 당연히 전쟁보다 더 중대할 수 없다. 이건 설명할 의욕조차 들지 않는, 상식이다. 그런데, 누구나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원로를 그 상식으로 설득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그는 축구에 ‘미친’ 사람이기 때문이다.따지고보면 우리도 정신나간 한달을 보내고 있다. 한 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월드컵 첫승이 14조원에 이르는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게 얼마나 타당한 수치인
사소한 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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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앞두고 가장 불쾌했던 일은, 내게는, 차량 2부제다. 미리 밝혀두는 게 좋겠다. 나는 축구를 싫어하지 않는다. 광팬은 아니지만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작년 9월 티켓 2차 예매 때, 거금 85만원을 들여 16강전과 8강전 티켓을 두장씩 샀다. 네덜란드나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보는 게 내 바램이었고(두 팀을 정말 좋아한다), 그건 이런저런 이유로 실패했지만 또 카드빚 메꾸느라 헉헉거렸지만 별로 후회되진 않는다. 또 나는 차를 거의 몰지 않는다. 내 면허는 흔히 말하는 장농 면허다.그렇지만, 거리 곳곳에 붙은 ‘차량 2부제 위반시 벌금 5만원’이라는 안내판은 아주 불쾌했다. 그 목적을 모르는 바 아니니, 이게 2부제 강력 권장 캠페인이었다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벌금’이라니. 여기엔 나쁜 국가주의의 냄새가 난다. 월드컵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주 화창한 날에 차를 몰고 바람을 쐬러 가는 일을 강제로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뭐 그런 사소한 일로 이
사소한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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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니던 사촌누나는 <아침이슬>을 가장 좋아했다. 아마 그에게 <아침이슬>은 연가였을 것이다. 나에게, 그리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아침이슬>은 성가였다. 많은 데모가가 있었지만, 그 노래만큼 부를 때마다 마음이 저려오는 노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아니 오래전부터 그 노래를 듣고 있기 불편하다. 90년대 초에 가장 싫었던 것 중의 하나가 술 마시고 헤어질 때 어깨동무하고 <아침이슬> 부르는 일이었다(요즘엔 그런 사람들이 사라진 것 같다). 우리 사는 꼴은 이미 <아침이슬>로부터 너무 많이 멀어져 있었다.잘은 모르겠지만 미국의 로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아마 대단한 부자일 것이다. 그가 95년에 를 내놨을 때 약간 놀랐다. 초기에 노동계급의 영웅으로 불리긴 했지만, 이미 돈방석에 올라앉은 지 오래된 가수가 갑자기 초심으로 돌아가 이민 노동자의 불행한 삶은 다룬 노래를 부른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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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보는 신문을 어깨 너머로 힐끗 보다, 오늘이 5·18이구나, 생각했다. 얼마 전 4·19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 숫자의 조합이 상기시키는 기억과 상념의 무게는 아마 세대별로 다를 것이다. 나는 그걸 무겁게 상기하는 세대에 속하지만, 그 무거움으로부터 도피한 부류다.영화는 도피처로 적당하다. 나는 <스타워즈>가 싫지 않다. 싫기는커녕, 그런 판타지의 쾌감이 없으면 이 일이 도무지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에피소드1>의 레이스 장면만으로도 나는 7천원 지불을 망설이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재미없는 건 할리우드영화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말들이다. 그런 말들은 너무 뻔하게 옳아서 재미없다.그런데 이 쾌락의 세계는 안전하지 않다. 판타지에서 다시 기억으로 결국 현실에의 회귀를 권유하며 안온한 자족적 쾌락을 뒤흔드는 것도 영화다. 켄 로치의 영화가 그랬다. 1996년, <랜드 앤 프리덤>을 봤을 때의 충격을 잊기 힘들다. 기
켄 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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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사는 게 힘들구나. 늙었다….”이렇게 만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사실은 좀 민망했다. 친구 상가에서 같이 운구를 했던 게 1990년쯤이니 12년 만이다.<씨네21> 평론상 당선작을 뽑고 나서 뽑힌 사람이 1962년생이라는 걸 알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이 마흔 넘어 이런 짓을 하고 있다니…. 이 사람도 속에 바람이 어지간히 많은 모양이군…. 그런데, 이름이 낯익었다. 설마 했다. 사실은 내가 아는 친구와 동일 인물일 거라는 예감이 곧바로 들었으나, 그렇지 않길 바랐다. 그런 예감이 든 이유도 그게 아니길 바란 이유도 잘 모르겠다.그 친구와 나는 딱히 친한 편은 아니었다. 그저 같은 시대에 같은 학교를 다니고 비슷한 고민을 했던 터라, 강의실에서보다는 술집에서 거리에서 좀더 자주 마주쳤고, 난 사람 좋아보이는 잔주름 많은 그의 얼굴과 처진 눈과 느린 말투를 기억하고 있었다. 살다보면, 느리게 천천히 다가와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목소리
5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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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다가 남동철과 논쟁을 벌였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아이언 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 뜨악하지게 느껴지실지 모르지만 간략하게 중계하자면 이렇다.남:<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최근의 멜로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만듦새도 좋고, 무엇보다 캐릭터가 참신하다. 윤리적 금기 뿐만 아니라, 전통적 여성성으로부터 이만큼 자유로운 여성 캐릭터를 최근 몇년간의 멜로에서 보지 못했다. <아이언 팜>은 너무 허술하고 진부하다.허:<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만듦새가 좋은 건 동의한다. 상대적으로 <아이언 팜>이 허술해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언 팜>을 지지한다. <아이언 팜>이 훨씬 영화적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영화적이지 않으면, TV드라마의 대체재로 전락한다. 영화적이려면 스크린 사이즈에 대한 자의식이 있든가, 아니면 영화사와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해야 한다. <
취중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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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는 직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어떤 선배가 “기자는 잘한다고 치켜세워주면 저 죽는 줄 모르고 뛰는 놈들”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내가 보기에 한국영화인들이야말로 그런 사람들이다.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고지를 그들은 의지와 뚝심으로 돌파해버렸다. 냉정한 사람이라면 해선 안될 일을 저질렀고, 그래서 성공했다. 20억 남짓한 돈으로 잠수함영화를 만들거나 대규모 시가지 총격전을 찍는 영화인들은 한국 밖엔 없었다. 그러느라 정두홍 무술감독 같은 사람은 몸에 볼트를 12개씩 끼우게 됐다. <씨네21>에서 강우석 감독을 ‘과욕의 승부사’로 부른 적이 있는데, 따지고보면 많은 그 호칭은 많은 한국영화인들이 나누어 가져야 맞다. 그 과욕이야말로 지난 7년간 한국영화가 이룬 경이적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문제는 그 과욕의 목표가 돈과 힘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창간 7주년 기념호라서 올해도 변함없이 한국영화산업을 움직이는 파워 50을 선정했다. 개인적으로 이 순위 작성에서 늘 흥미로
7년